희정 “당신의 장례는 어떠하길 바라나요?“
살아가고 싸우고 견뎌내는 일을 기록하는 희정 작가. 그가 우리에게 ‘죽음’이라는 화두를 제시한다. 직접 장례 노동자가 되어 만난 사람들의 목소리를 꾹꾹 눌러 담아.
글 : 신연선 사진 : 표기식
2025.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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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 『뒷자리』 등 수많은 현장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과 만나고 기록해온 희정 작가에게 떠나지 않는 물음표가 있었습니다. 죽음, 그리고 애도. 고인과 사별자들이 절차에서 소외되기 마련인 지금의 장례를 자세히 들여다보려던 이유였지요. 그래서 희정 작가는 직접 장례 노동자가 됩니다. 그곳에서 만난 차별적 전통에 균열을 내는 장례인들의 존재는 비로소 ‘나의 것’ 같은 장례를 상상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죽은 다음』은 묻습니다. 과연 다양한 삶을 담아내는 죽음이 가능한가? ‘모두가 죽음 앞에서 평등하다’는 말에 책임을 지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우리는 더 늦지 않게 답해야 합니다. 답을 써 나가는 과정에서 회복되는 관계라는 것이, 분명히 있으니까요. 

 



막막해서 무서운, 죽음이라는 문제


그간 다양한 자리에서 싸우는 분들의 이야기를 다뤄오셨죠. 이번에는 ‘죽음’입니다. 이 주제에 깊이 들어가보겠다고 결심한 순간이 있으셨나요? “내가 인터뷰한 이들이 사라졌다.”(14쪽)는 문장이 마음에 걸렸는데요. 

주로 노동 현장의 이야기를 기록하기 때문에 주변에서 죽음을 많이 보고 접할 수밖에 없었어요. “사라졌다”고 쓰긴 했지만 제가 더 많이 보는 사람은 사실 남겨진 사람들이고요. 죽음이 저에게는 늘 가까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이것이 저의 경험만은 아닐 거예요. 사회적 참사가 반복되고, 젊은 여성들의 자살 시도율이 올라가는 문제도 있잖아요. 그 맥락에서 ‘사회적 애도’라는 얘기를 반복하는데요. 최근 몇 년간은 나에게 사회적 애도라는 것이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지, 어떤 마음을 품고 어떤 행위를 해야 사회적 애도를 하는 것인지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어요. 떠난 사람들과 남은 사람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어떠해야 하는지가 계속 물음표로 남아 있었던 것 같아요. 

 

확실히 죽음을 목격하는 일이 많았죠.  

네, 그와 더불어 현실적으로는 저희 부모님이나 제 동생의 고양이들도 나이 들어 가면서 어쨌든 준비할 것들이 생겼는데요. 막막해서 무섭더라고요. 장례를 피할 수 없을 텐데, 장례에는 정해진 틀이 있잖아요. 자세히는 몰랐지만 그 틀을 벗어나면 주변의 지탄을 받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비정규직에, 불안정한 노동자라 화환이나 부조금 같은 것을 사회적 기준에 맞출 수 없을 것 같은 거죠. 그러니까 제가 사회 구성원으로서 갖는 의문도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인생의 과제나 막히는 부분을 글 쓰는 행위로 풀어내는 편이에요. 오래 갖고 있던 질문을 만나고, 듣고, 쓰는 행위로 해결하는 경향이 있어요. 이번에도 죽음에 대한 막막함과 제 안의 물음표를 기록을 통해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막연하게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덜 막막해진, 덜 무서워진 느낌인가요? 

확실히 그런 것 같아요. 그것은 장례의 절차와 과정 등 정보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리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어서 책의 한 챕터에 해당 내용을 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해볼 여지, 장례라는 틀 안에서 내가 변주할 수 있는 여지라는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에요. 과연 장례가 누구의 것인지, 의문이 있었거든요. 한 장례 종사자분은 장례는 고인의 것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 안타깝다는 얘기를 하시기도 했는데요. 대체 나의 것 같지 않은 이 장례란 무엇일까, 고민했던 것이 책을 쓰면서 바뀌었어요. 장례 절차가 상업화되어 있다거나 너무 틀에 박혀 있다는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저는 그것들을 하나씩 짚어가면서 다른 애도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 기존의 장례에 조금이라도 파열을 내보려고 하는 사람들을 만났으니까요. 나도 뭔가 해볼 여지가 있겠다,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겠다, 생각했고 덕분에 덜 무서워졌어요. 

 

지금은 너무나 죽음이 멀잖아요. 가려져 있고요. 죽음이란 병원이나 장례식장에서만 벌어지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 것 같아요. 그러니까 죽음에 대해 알 기회가 없고, 모르니까 무섭죠. 조금 더 들어가서 알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죽음뿐 아니라 우리의 몸이 굉장히 의료화된 상황이잖아요. 어떤 치료를 할지조차 정보가 거의 주어지지 않고요. 그냥 정신없이 병원에서 하루가 흘러간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요. 아픈 내 몸, 노후에 대해 선택권이나 주도권을 가지지 못하고 살죠. 나아가면 육아와 양육과 결혼에 있어서도, 내 노동과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같아요. 생애 주기 전반을 어딘가에 내맡긴 상황 같거든요. 

 

죽음을 삶의 거울이라 할 정도로, 죽음은 삶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할 수밖에 없어요. 현재의 죽음 또는 장례라는 의례가 이런 모습인 이유는 우리의 삶이 그러한 모습이기 때문이고요. 많은 분들이 삶 자체를 계속 막막해하고,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잖아요. 책을 쓰면서 그런 생각도 많이 했어요. 




관계 맺음 


시작할 때와 달리, 책 작업을 하면서 새로이 하게 된 생각도 있을 것 같아요. 

사는 대로 죽는다는 것 하나는 인정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제가 책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묻잖아요. “당신의 장례는 어떠하길 바라나요?” 하고요. 그 바람에 제게도 그 질문을 몇 분이 하셨는데요. 제 답변은 “내가 어떤 장례를 바라는지 지금 말할 수 없는 건 내가 지금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마도 나는 살아가는 대로 죽을 것이고, 앞으로 살아갈 삶이 내 장례의 모습이 될 것이다.”였어요. 그렇듯 ‘죽음 앞에서 삶을 생각한다’는 관용적 표현의 구체적인 의미가 책을 쓰면서 저한테 와닿은 것 같아요. 내 장례에 대한 막연한 바람이 있지만 그것이 장례라는 별개의 이벤트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그렇게 살아갈 테니까 이러한 장례를 원한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어요. 

 

제목을 자꾸 다시 보게 돼요. 누군가가 죽은 다음 남겨진 사람들이 다시 어떤 생을 조직하는지까지도 생각해보자고 하는 것 같았어요.  

제목은 출판사에서 택해 주신 거지만, 저도 출판사에서 주신 여러 선택지 중 제일 끌리는 것이 『죽은 다음』이었어요. 죽은 다음에 뭐가 있을까요. 저는 남겨진 사람과 그들이 살아갈 세상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거기에 돌아가신 분이 없는 건 아닐 거예요. 남겨진 사람은 떠난 사람과 맺은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죽은 다음 남는 것은 관계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사회적 애도도 그래요. 제게 사회적 애도는 사회적으로 존중 받는 것, 존엄한 것, 기억하는 것 등등 추상적 언어로 뿔뿔이 흩어져 있었는데요. 지금은 나와 당신이 맺은 관계를 많이 생각해요. 저라는 존재는 제가 만든 수많은 관계 속에서 형성된 거잖아요. 누구도 ‘1인’이라는 명칭을 쓸 수 없다고 저는 생각하는 편이고요. 『죽은 다음』을 쓰는 동안 관계성이라는 것이 구체적이고 선명하게 다가온 것 같아요. 

 

장례 문화에 담긴 여러 규칙이 따지고 보면 고인과의 관계 안에 있는 사람들, 사별자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드러내기도 하셨죠. 역시 관계네요. 

장례가 상업화되었고, 그곳의 노동자들이 불안정한 위치에 있고, 장례 상품 영업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점을 책에서 계속 얘기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여주고 싶었던 면은 그 노동의 현장이 사실 관계 맺음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었어요. 현실적인 한계 속에서도 장례인들은 고인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거든요. 더불어 그건 사별자와 관계 맺음이기도 해요. 한편으로는 그 관계와 마음을 더 진전시킬 수 없게 만드는 자본 중심의 장례 산업 구조를 벗어나려는 사람들의 행보와 그들이 맺는 관계도 얘기하려고 했어요. 무연고자 장례의 경우, 가족도 안 치르는 장례를 왜 치러줘야 하느냐는 질문이 종종 들리잖아요. 그 질문은 관계라는 걸 공유하지 않고서는 대답이 되지 않거든요. 그래서 무연고자 장례를 치르는 ‘나눔과나눔’의 활동가 박진욱 님이 그러한 질문에 대답하기 수월해진 것은 사별자들을 보고 난 뒤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말이 되게 의미가 깊다고 생각했어요. 

 

“초창기에는 사별자들의 존재에 대해서 깊이 인식을 못 해서 더 답하기 어려웠던 것 같아요. 지금은 사별자들을 떠올려요. 사람들은 끊임없이 죽음과 죽은 이에게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죽음으로 끝이 나는 게 아니에요. 애도는 끝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어요. 죽은 후에도 관계 맺기가 계속되는 거죠.”(283쪽) 


 


“내 고인 너무 예쁘다”  


이번 작업을 위해서 실제 장례 노동자로 일하셨죠. “엿보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19쪽) 장례지도사 직업훈련을 받고, 자격증을 취득하셨는데요. 그것은 어떤 마음이었나요?  

현장에 들어간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요. 첫째는 누군가의 일터를 찾아갈 때 저의 기본 원칙이 그 사람의 노동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었어요. 저도 기록이라는 제 노동을 하는 입장에서, 취재를 한다는 이유로 저 사람의 노동을 침범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렇다면 방해되지 않는 취재를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고민하다 장례지도사 자격증을 따기로 한 거죠.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채 현장에 데려가달라고 하는 건 예의도 아니고, 부담을 드리는 것 같더라고요. 특히 영안실은 법적으로도 자격증을 가진 자 또는 유가족, 장례식장 직원만 들어갈 수 있어요. 위생이나 보건에 관련된 문제도 있으니까요. 때문에 자격증을 취득하는 건 저로서는 당연한 일이었어요. 현장을 구체적으로 보겠다, 깊숙이 들어가겠다, 하는 마음이 아니라 인터뷰이에 대한 예의였죠. 

 

한편으로는 정말 모르기 때문이었어요. 장례에 대한 어떤 인식이나 판단 기준도 없는 상태였는데 그것은 어떤 존재를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의미잖아요.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은 여러 종류의 편견이 들어갈 공간이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시신을 보고 “무섭진 않으세요?” 같은 질문을 하게 되겠죠. 무지하기 때문에요. 그걸 최대한 방지하려면 알아야겠다 생각했어요. 이분들을 조금이라도 더 꼼꼼하게 알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했고요.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일이 필요하겠다, 그러려면 교육을 받고 가야겠다, 했던 거예요. 

 

그렇게 현장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알게 된 것들이 많을 것 같아요. 강하게 남았던 장면이 자신의 립밤을 꺼내 고인의 입에 바른 분의 이야기였는데요. 현장에 계시는 다양한 분들의 진짜 목소리를 듣는 의미가 컸어요. 

고인을 대하는 태도가 엉망인 사람들도 제법 있지만, 안 보려고 해도 볼 수밖에 없도록 지극하신 분들이 있었어요. “내 고인 너무 예쁘다” 말하시는 분, 고인과 대화하듯 일하시는 분의 모습은 발견할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었죠. 시신을 맨손으로 만지시는 분도 있거든요. 사실 수의가 꽤 거칠어요. 그것을 세게 힘줘서 매듭을 묶고 하기 때문에 라텍스 장갑을 껴도 다 찢어져요. 그러니까 불편해서 장갑을 벗고 일하시는 거예요. 동시에 고인을 더럽다고 여기지 않을 거라는 마음, 정말 산 사람처럼 대할 거라는 생각으로 맨손으로 만지시거든요. 그건 제가 따라갈 수 없는 영역이죠. 정말 좋은 장례지도사분들은 고인을 진짜 산 사람처럼 대하시니까요. 

 

장례는 안 보이는 곳에서 일어나는 노동이 많기 때문에 태도가 반인 직업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매일 똑같은 일을 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매일 똑같은 마음으로 같은 일을 하는 건 정말 어려운 것 같은데요. 저는 그것을 해내는 분이 좋은 장례인이라고 생각했어요. 

 

‘명정(죽은 사람의 신분을 밝히기 위해 품계, 관직, 성씨 등을 기재하여 상여 앞에서 길을 인도하고 하관이 끝난 뒤에는 관 위에 씌워서 묻는 기(旗))’에 여성은 이름을 넣지 않았던 전통처럼 장례 문화에 남은 여성혐오의 요소들이 있잖아요. 조금씩 변화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바꿔 나가야 할 부분도 많더라고요. 

전통과 관련해서 주의하려던 것은 어떤 입장을 내세우거나 전통을 허례허식이라고 함부로 얘기하지 말자는 것이었어요. 전통을 중요하게 여기는 장례인들도 만나고, 그 안에서 파열을 내려는 장례인들도 만나고, 애를 쓰지만 한계를 마주하는 분들도 만났거든요.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애를 쓰고 계시니까 저도 예의를 갖춰야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전하는 메시지라는 건 있잖아요. 그 선을 어떻게 잘 그을지 고민이 많았어요. 그래서 전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직접 묻기도 하면서, 결국 그것마저도 삶과 맞닿아 있는 구체적인 것이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수의에 대해서도 보통 사람들이 지켜오고 만들어 왔던 옷이라고 표현하는 분도 계시고, 내 자손이 잘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격식을 갖추는 거라고 얘기하는 분도 계셨어요. 또 이러한 의례를 붙잡는 것이 생사의 불확실성에 대한 인간의 반작용이라는 것도 생각해보게 됐거든요. 불확실한 가운데 변하지 않는 것을 붙잡고 있으려는 사람의 마음이라는 의례로 등장한 것도 당연히 인정하는 거예요. 그걸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을 존중해야 되고요. 하지만 동시에 장례라는 형식이 통치를 위해 활용된다는 이야기도 꼭 해야 했어요. 

 

여성 장례노동자 분들이 겪은 차별의 경험도 분명히 이야기하셨어요. 가부장제의 억압이 장례 절차에 여성이 참여하지 못하도록 했던 역사가 남아 있기 때문인데요. 

전통에 계속해서 균열을 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행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그런 장례 노동자의 행위와 사별자의 노력이 맞물렸을 때 어떤 시너지가 나는지 얘기하고 싶었죠. 보면 계속 서로 원하잖아요. 여성 장례 노동자는 자신들을 찾는 상주가 필요하다고 얘기하고, 퀴어 분들은 퀴어에 더 친화적인 또는 차별 없는 태도가 무엇인지 아는 장례 지도사가 필요하다고 얘기해요. 서로 그렇게 찾고 있거든요. 그래서 서로가 만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싶었죠. 

 

여자 상주나 여자 상여꾼이 장례 역사나 맥락 속에 없지 않았다는 점을 알게 된 것도 큰 소득이었어요. 

그 내용을 자료를 찾다 발견했는데 너무 기쁘더라고요. 그런 분들이 계셨다는 것이 말이에요. 그런데 기쁜 동시에 그것이 그저 특이한 문화의 보존으로만 멈춰 있는 것이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이런 사례들을 잘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과거에도 여자 상주가 있었네, 지금이라고 못할 게 뭐 있어, 하고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랐죠. 지금과 같이 가부장적이고 자본화된 장례를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에게 기운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어요. 

 

장례가 지금처럼 자본화 되기 전에는 집 밖에서 죽는 것을 ‘객사’라고 했지만 지금은 대부분이 집에서 죽지 않잖아요. 따지고 보면 그런 변화가 의외로 금방 일어난 것이죠. 절대 바꿀 수 없는 전통, 절대 건드려서 안 되는 의식이란 없다는 생각도 하게 되더라고요. 

맞아요, 말씀드렸듯 죽음은 정말 삶의 거울 같은 거라서요. 삶이 변화하는 과정 속에서 장례의 형태는 당연히 변화할 수밖에 없어요. 반대로 장례가 변화함에 따라 삶이나 생애 주기의 형태도 변화시킬 수도 있고요. 저도 지금 말씀에 동의해요. 




평등한 죽음을 위해 필요한 것들 


장례 산업이 “돌봄 노동으로 단련된 이들의 노동 없이는 굴러갈 수 없다”(101쪽)는 점도 분명히 논의해야 할 것 같아요. 차별적 장례 문화에 더해 여초직군이기 때문에 생기는 다중의 노동 차별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을 듣고 싶어요. 

돌봄과 수발을 동시에 해야 되는 것이 장례 현장인데요. 그에 특별히 훈련된 성별과 나이대가 있는 거예요. 그들을 굉장히 손쉽게 쓰고 있죠. 사실 어떤 직업이 당일 아침에 연락해서 일을 시켜요? 이건 굉장히 이상한 상황이에요. 주부라는, 집안의 돌봄 노동자들을 외주화해서 시장이 쉽게 빼갈 수 있도록 만든 거잖아요. 이 사회의 모순된 노동 현장을 완전히 집약해서 보여주고 있죠. 그런데 장례는 너무나 상처받은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보살피는 노동이 없으면 이루어지지 않아요. 이들이 없으면 현재의 상업화된 장례든 전통적인 장례든 돌아갈 수 없는데요. 지금은 이들의 노동이 지닌 가치가 절하당하고 있는 상태예요. 

 

이분들이 고객 만족 평가를 받는다는 사실도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현장의 장례 노동자 분들은 뒷짐도 지면 안 되고, 꾸미는 것도 조심해야 하고, 말 한 마디도 조심해야 하는 민감한 상황에 있는데 그마저도 평가의 시선이 계속해서 개입한다는 게 무척 위험하고 불편하게 느껴졌어요. 

사실 모든 서비스 노동이 그런 식으로 평가받고 있죠. 심하게 왜곡되어 있어요. 저는 단순하게 이러면 안 된다는 말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책에서는 이런 꼴이 된 이유가 뭔지 얘기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성별화된 노동을 시장이 활용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도 문제고, 중산층 가족 모델이라는 환상도 문제잖아요. 가족 안에서 다 할 수 있다는 환상을 사회가 심어주지만 가족구성원만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때가 많고, 외주화 된 노동을 사오는 방식으로 해결하고 있어요. 심지어 그 가족은 혈연과 법으로만 규정되어진 가족이죠. 우리의 다양한 삶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건데요. 이 사회를 지금의 모습으로 유지하려면 가족이라는 단위가 꼭 필요한 거예요. 이런 여러 원인에 대해서도 계속 얘기하고 싶어요. 

 

말씀처럼 다른 노동에도 존재하는 문제인데 어째서 장례 노동이 왜곡되어 있다는 사실이 더 불온하게 느껴지는 걸까요? 죽음을 둘러싼 노동이기 때문일까요? 

저는 그래서 희망적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내어주기 꺼려지는 마지노선이 죽음 같거든요. 관련해서 ‘분묘기지권’이 참 흥미롭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유재산은 최우선이잖아요. 자신의 땅이면 나무를 다 뽑아도 되고, 그린벨트나 자연유산 보존지가 아닌 이상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법적으로 거의 보장이 되는데요. 무덤은 그렇지 않아요. 남의 무덤이라도 함부로 훼손해서는 안 되고, 많은 절차를 거쳐야만 옮길 수 있거든요. 죽은 사람한테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이 사회를 지탱시키는 힘이 아닌가 생각해요. 때문에 ‘모두가 죽음 앞에서 평등하다’는 말을 하는 것이겠죠.

 

한편으로는 너무 당연해서 관용어구가 된 이 말을 책임지기 위해 우리가 무얼 하고 있는지 묻고 싶어요. 모든 사람이 죽음 앞에서 평등하다고 하지만 가난한 사람은 가난하게 죽고 없는 취급을 당하던 사람은 없던 것처럼 죽는 현재의 모습을 드러내서, 그렇다면 이 말을 책임지기 위해서 우리 사회에 무엇이 필요한지 질문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죽음을 숨기는 일은 사실 삶을 숨기는 것”(259쪽)라는 문장이 묵직했어요. 인식의 변화만큼 제도의 변화가 시급하고, 중요할 텐데요. “법, 혈연 중심의 ‘정상가족’이 모든 법률의 근간이 되는 체계”(272-273쪽) 바깥의 존재들을 더 이상 소외시켜서는 안 되니까요. 관련해서 시급히 필요한 제도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제가 살피지 못한 시급한 것이 있을 수 있으니까 함부로 얘기할 수 없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건 생활동반자법과 차별금지법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책에 그 부분을 많이 썼다가 뺐는데요. 나쁜 선택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너무 아쉽긴 해요. 질문 주셔서 반갑고요. 생활동반자법이 궁금하신 분들은 『가족을 구성할 권리』『가족신분사회』와 같은 책을 꼭 같이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장례복지’ 역시 사회가 죽음을 ‘보장’하자는 지극히 상식적인 제안이라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시급히 합의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우리의 상상력이 거기까지 닿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저 역시 그랬는데요. 앞서 모든 사람이 죽음 앞에 평등하다는 말을 책임지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지 고민했잖아요. 그럴 때 장례복지가 죽음이 평등하다는 것을 증명할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복지가 그렇잖아요. 누구도 굶어 죽지 않아야 된다, 누구도 혼자 죽지 않아야 된다, 이런 말에 책임지기 위한 아주 기본인 거잖아요. 물론 그 기본도 어렵게 획득하고 있지만요. 함께 상상하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어떤 애도를 할 것인가 


“우리는 서로에게 우리 자신으로 기억되어야 한다”(294쪽), “우리에겐 난잡하고, 느슨하고, 다소 외로운 애도가 필요하다”(375쪽)는 말에 담은 애도에 대한 생각은 어떤 것인가요? 

애도의 한자가 ‘슬플 애(哀)’에 ‘슬퍼할 도(悼)’예요. 한자 뜻과 실제 쓰이는 의미가 이렇게 분리된 단어도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책 작업을 하기도 했는데요. 작업 중간쯤 나답게 죽는 것, 그리고 그답게 기억하는 것이 애도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책에 언급한 퀴어 활동가 말에 따르면 평범한 장례식장이 고인도 아닌 그를 애도하는 사별자 중 하나인 자신을 아는 사람들이 모이면서 굉장히 퀴어적인 장례식이 됐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요. 그 얘기를 들으면서 꼭 무엇답게 규정지을 필요는 없겠다 생각하게 됐어요. “느슨”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나왔어요. 

 

또 계속 얘기한 것처럼 ‘관계’가 『죽은 다음』을 가로지르는 키워드라면, 서로가 난잡하게 돌보는 관계 속에서 장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돌봄 선언』에 등장하는 ‘난잡한 돌봄’에서 가져온 말인데요. 제주 4.3 항쟁 당시 떠내려온 시신들을 대마도 거주민들이 수습하고, 제를 지내줬다고 해요. 그러면서 4.3을 공부하고, 때마다 한국에 와서 추모제를 지내시거든요. 일반적으로 연고가 있는 수준이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존재들이 연결되는 거예요. 그런 사례들을 보면서 아주 느슨하고, 다소 외로운 연결을 통해서도 애도가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지금 집중하고 있는, 더 깊이 들어가보려고 하는 주제가 무엇인지 궁금해요. 

『일할 자격』까지 쓴 뒤에 이제는 더 이상 노동이란 무엇인지 안 물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다 알기 때문이 아니라 저로선 너무 많이 물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요. 그렇지만 그전에는 노동이라는 질문에 직면하지 못하고 계속 곁을 맴돌았거든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직면하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러다 『일할 자격』 작업까지 하고는 충분히 물었으니까 노동이 무엇인지 얘기 안 해도 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요. 시간이 조금 지나면서는 이제 직면해서 물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로 사람들에게 직접 노동이 무엇인지를 물어볼 수 있겠다고요. 지금은 그 작업을 장기적으로 준비하고 있어요. 

 

왜 노동이라는 질문에 사로잡히는 걸까요? 어쩔 수 없이 노동하는 인간이라서 그런 걸까요? 

노동이 사회의 작동 원리를 비롯해 아주 많은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이 세상을 보는 렌즈가 노동이기도 하고요. 한편으로는 모두가 자기 노동에 대한 윤리 기준, 자부심을 지켜 나간다면 세상이 변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열심히 일해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자, 같은 논리가 아니고요. 노동자가 자기의 직업 의식으로 허용할 수 있는 일과 허용하지 않는 일을 사유하게 되면 세상이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감명 깊게 읽은 『관타나모 키드』라는 그래픽노블에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일하는 한 사람이 그 안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보면서도 “나는 그냥 나의 일을 하는 것뿐”이라는 얘기를 해요. 저는 이 말을 뒤집을 수 있는 건 노동하는 사람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철도 노동자가 철도가 이렇게 운행되어도 괜찮은가, 내가 정비하는 철도가 이런 수준에서 정비되어도 되는가 묻는다면 완전히 달라지겠죠. 각자 자리에서 나의 노동이 이래도 되는가 묻는다면 세상이 달라질 거라는 믿음 때문에 거듭 노동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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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다음

<희정>

출판사 | 한겨레출판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

<희정> 저/<반올림>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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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정> 글/<반올림> 기획/<정택용>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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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정> 저

출판사 | 포도밭출판사

가족신분사회

<가족구성권연구소>

출판사 | 와온

돌봄 선언

<더 케어 컬렉티브> 저/<정소영> 역

출판사 | 니케북스

관타나모 키드

<제롬 투비아나>글/<알렉상드르 프랑> 그림/<이나현> 역

출판사 |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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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선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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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기식

사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