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노이드』
김상균 저 | 베가북스
세상의 여러 나라들 중에 로봇 공화국이라는 별명을 붙여 부르기에 가장 어울리는 나라는 어디일까? 이 질문에 세계 많은 나라 학자들은 한국이 가장 정답에 가까운 답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은 공장에서 로봇을 유별스러울 정도로 아주 많이 사용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 보자면 한국은 제조업 현장에서 로봇을 가장 자주 배치해 놓는 나라로 세계 1위 수준으로 평가해 볼 수 있는 나라다.
언론에서 자주 인용하는 통계 중에 국제로봇연맹, 즉 IFR이라는 단체에서 집계해 발표하는 “로봇 밀도”라고 하는 숫자가 있다. 로봇 밀도는 생산 현장에 배치된 사람 노동자 1만 명 당 로봇이 몇 대나 배치되어 있는 지를 헤아려 본 숫자다. 오래전부터 세계적인 로봇 선진국이자 제조업 기술 강국으로 손꼽히는 일본이나 독일 같은 나라는 로봇 밀도라는 이 숫자가 보통 300에서 500 사이를 기록한다. 그렇다는 말은 1만 명의 노동자들이 일하는 큰 공장이 평균적인 곳이라면 로봇은 300 대에서 500 대 사이 정도 배치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한국의 로봇 밀도는 일본이나 독일 보다도 훨씬 더 많다. 사실 한국 보다 로봇 밀도가 더 높은 나라는 없어서 한국이 로봇 밀도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냥 조금 숫자가 더 앞서서 세계 1위가 된 정도도 아니다. 한국은 일본이나 독일의 두 배 이상에 달하는 큰 격차로 1위를 하고 있다.
2024년 국제로봇연맹에서 발표한 한국의 로봇 밀도 수치는 무려 1000을 넘는다. 그러니까 대충 어림잡아 보자면, 한국 공장에 가 보면 사람 10 명에 로봇 한 대씩은 배치되어 있다는 뜻이다. 한국 전체의 인구 중에 부산 인구의 비중은 10분의 1에 좀 못 미친다. 그러니 조금 과감하게 비교해 보자면 한국 공장 전체의 평균을 내면 로봇이 부산 사람 보다도 한국에는 더 흔하다는 이야기도 해 볼 수 있겠다.
세계에서 로봇 밀도가 1000을 넘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다. 이 숫자는 일본과 독일의 숫자를 합한 숫자 보다도 더 많다. 한국의 로봇 밀도는 수 년 전부터 1위였고 지금까지도 줄곧 1위다. 2010년대만 하더라도 도시 국가인 싱가포르가 한국 대신 1위를 하던 시기도 있기는 했다. 싱가포르는 인구가 많지 않고 넓이는 더욱 더 좁은 나라다. 그러므로 한국, 독일, 일본 같은 나라에 비하면 대규모 공장의 개수는 적다. 그러니 싱가포르에 로봇을 유독 많이 쓰는 공장이 몇 곳만 잘 자리 잡게 되면 싱가포르의 로봇 밀도 숫자는 확 올라갈 수가 있다. 그런데 한국은 그런 싱가포르의 로봇 밀도 수치조차도 능가하고 말았다. 로봇이라고 하면 아직도 미래의 신기한 풍경 즈음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많지만 한국의 제조업 생산 현장에서 로봇은 너무나 당연한 현실이다.
한국의 공장에는 왜 이렇게 로봇이 많을까? 가장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유는 한국에 로봇을 사용하면 유리한 산업과 로봇을 쉽게 사용할 수 있을만한 기업이 발달해 있다는 점이다. TV에서 애국가가 나오는 장면이 방송될 때 화면에 자주 나오는 모습 중에 하나가 자동차 공장에서 분주히 움직이며 작업하는 로봇 팔의 모습이다. 자동차나 자동차와 비슷한 기계 장치류를 대규모로 많이 만들어 내는 공장은 이렇게 로봇을 사용하기 유리한 산업 분야다. 그리고 한국에는 마침 자동차 산업이 발달되어 있다.
자동차 말고도 생산 방식이 비슷한 기계, 장비, 전자 제품 등이 한국에서는 많이 생산되는 편이다. 뿐만 아니라 몇 가지 다른 이유에서도 공장에 로봇과 같은 자동화 장비를 배치해 놓는 것이 한국에서는 사업에 유리한 점이 있다. 그렇다 보니 어느 새 한국은 세계에서 로봇을 가장 흔하게 쓰는 나라로 변화해버리고 말았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이렇게 로봇을 많이, 또 쉽게 사용하고 있다는 점은 현재 한국 제조업의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이자 장점으로 연구할 가치가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여기에 또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은 한국이 이렇게 로봇을 많이 사용하는 나라이면서도 정작 로봇을 만드는 기술은 그만큼 발전하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한국의 로봇 개발 수준이 아주 떨어진다는 뜻은 아니다. 현재 한국에도 여러 방식의 로봇을 개발하고 생산하는 다양한 기업들이 있다. 신기하고 새로운 로봇을 개발해 선보이는 회사가 있는가 하면, 예로부터 사용하던 전통적인 기계 장치를 점점 더 개량하고 더 지능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보완해서 로봇으로 변화시켜 판매하는 회사들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이런 한국 회사들의 수준이 전통적인 세계의 로봇 개발 선진국에 비해서는 아직 부족하다고 보는 것이 중론이다. 로봇 개발의 정상권을 유지하고 있는 일본이나 독일 업체들과 한국 로봇 기술의 격차를 찾기란 어렵지 않다. 스웨덴,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지에 거점을 마련해 놓은 다른 유럽계 로봇 회사들의 품질도 만만치 않게 뛰어나 세계 시장에서 인기가 많다.
근래에는 중국 로봇 개발 회사들도 굉장한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몇 년 간 급격히 로봇 밀도가 늘어나면서 한국의 로봇 밀도를 추격하고 있는 나라다. 그렇기에 한국과 비슷하게 로봇을 많이 사용하는 나라기도 하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중국은 로봇 개발 산업도 두터운 편이다. 중국에서 거대한 규모로 다양하게 발달해 있는 전자 산업의 기술이 로봇 개발에 넉넉히 사용되면서 다채로운 로봇 개발 사업은 매우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결정적으로 최근 중국 과학계의 자랑거리인 많은 인공지능 인재들이 인공지능을 이용해 로봇을 조종하는 시도에서 뛰어난 성과를 내고 있다. 그 덕택에 중국 로봇 산업은 적어도 지금은 세계 어느 나라 이상으로 활력 넘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런 소식들을 듣다 보면 로봇을 보는 시각이 한국에서는 다른 나라 보다는 조금 더 적극적인 방향으로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자주하게 된다. 세계의 주요 선진국에서는 요즘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빼앗는다거나 로봇 때문에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걱정스럽게 많이 다루는 편이다. 그런데 가만 보면 한국은 이런 시각에 빠져 굳이 같이 휩쓸려 갈 필요가 그렇게 많은 나라는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한국은 이미 완연히 로봇 공화국이 된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자동화 장치와 로봇에 의해 인력이 활용되고 있는 상황이 바뀌고 일자리가 변화에 온 경험을 벌써 생생하게 많이 겪은 나라다. 제조업 현장의 노동자들은 지난 수 십 년간 이런 경험 속에서 적응하며 살아왔다. 언론과 대중매체에서는 화려한 직업이나 높은 사람들의 삶을 다루는데 주로 관심이 많다. 그렇다 보니 노동자들의 삶은 덜 다루었을 뿐이다. 즉, 한국이 로봇 공화국으로 변화해 온 이런 변화 속에서 노동자들이 어떻게 적응하며 살아 남았는지를 깊이 있는 시각으로 성찰하는 일이 잘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런만큼 지난 30년 사이의 제조업 자동화 속에서 일어난 변화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보다 진지하게 이해하면 앞으로 인공지능과 로봇이 더 늘어나는 미래에 한국은 어느 나라 보다 더 잘 적응할 수 있지 않을까?
더군다나 한국은 특유의 인구 구조 문제 때문에라도 인력을 대체하는 일을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상황이다. 출생이 적고 인구가 감소하는 속도가 어느 나라보다 극심한 한국에서는 곧 모든 분야에 일할 사람이 부족해지는 상황이 온다. 그러면서도 평균 수명은 세계 최고 수준에 달하기 때문에 돌봄이 필요한 노인의 숫자는 대단히 늘어 나는 것이 한국에 닥칠 미래다. 로봇과 자동화는 이에 대한 가장 긴급한 대책이다.
장기적으로 출생을 늘려서 인구 구조를 다시 되살리기 위한 투자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일할 사람이 부족하고 돌볼 사람이 많은 시대는 앞으로 우리의 노력과 관계없이 적어도 몇 십 년 정도는 견뎌내야 하는 현실이다. 그러므로 적어도 한국에서는 로봇이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 문제 이상으로 오히려 로봇이 사람이 하던 일을 좋은 방향에서 잘 해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야 한다. 그래야만 한국 사회는 유지될 수 있다.
김상균의 책 『휴머노이드』는 로봇 중에서 가장 미래의 로봇처럼 보이는 휴머노이드를 중심으로 로봇 기술의 다양한 기초 지식을 쉽게 소개해 주는 책이다. 휴머노이드는 우리가 미래의 로봇을 떠올려 보라고 할 때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을 닮은 로봇을 말한다. 그러니까 머리 부분과 몸통이 있고 거기에 팔과 다리가 사람 비슷한 형태로 달려 있는 로봇이 바로 휴머노이드다. 이런 로봇은 한국의 산업 현장에서 현재 널리 쓰이고 있는 작업용 로봇 팔과는 다르다. 로봇 청소기 같은 제품이 납작한 모양을 한 채 바퀴로 굴러 다니는 것과도 휴머노이드는 다른 형태다.
현재의 상황만을 생각해 보면 휴머노이드 로봇은 대개 경제적으로는 비효율적인 제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아직까지 바퀴로 움직이는 로봇에 비해 다리로 걸어 다니는 로봇은 속력도 더 느리고 안정성도 더 떨어질 때가 많다. 사람을 닮은 몸통에 두 개의 팔이 달린 로봇과 비교해 보자면 오히려 로봇 팔 하나가 굵고 큼지막한 형태로 움직이는 장비가 공장에서는 더 싼 값에 센 힘을 내기에 유리하다. 그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런데 그렇기에 이 책처럼 휴머노이드를 중심으로 로봇 이야기를 풀이해 보면 현재의 로봇뿐만 아니라 가까운 미래의 로봇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해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렇게 보면 김상균의 『휴머노이드』는 로봇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이야깃거리들을 골고루 쉽게 맛보기에 좋은 책이다. 휴머노이드 로봇 그 자체에 대해서 상세하고 독특한 이야기들을 많이 담고 있는 편은 아니지만, 대신에 기술의 발전과 사회의 변화를 고민할 때 필요한 여러 가지 주제들을 많이 품고 있는 책이다. 그래서 휴머노이드 제조를 위한 기계 부품 기술도 언급하면서 동시에 인공지능의 발전이 로봇을 변화시키고 사회도 바꾸어 가면서 생길 문제들도 같이 소개하고 있다. 로봇에 대한 생각의 환기가 필요한 독자들에게는 이런 책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지고 보면 한국은 한 동안 세계적인 IT 강국이었다. 요즘 중국이 인공지능 강국이라고 하지만 한국의 소프트웨어 개발 인력도 세계 전체에서 보면 결코 뒤쳐지는 편은 아니다. 로봇을 움직이는 데 필요한 각종 기계 부품, 전자 장비를 다루며 제품을 제조하는 일에 대해서도 20세기 말 이후 한국은 세계적인 제품을 꾸준히 생산해 본 경험이 있다. 이런 훌륭한 바탕을 갖고 있는 한국이 어떤 점 때문에 아직까지 로봇 개발의 속도는 부족해 보였는지, 같이 한 번 돌아볼 수 있다면, 한국 로봇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휴머노이드
출판사 | 베가북스

곽재식(작가)
작가이자 숭실사이버대학교 환경안전공학과 교수. KAIST에서 원자력 및 양자 공학 학사 학위와 화학 석사 학위를, 연세대학교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각종 대중매체에서 과학 지식으로 사회 현상을 해석하는 패널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