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션] 민주주의는 함께하는 놀이예요
놀이는 즐겁지만, 뜻이 맞지 않으면 다툼이 인다. 민주주의도 그렇다.
글 : 한미화(어린이책·출판 평론가)
2025.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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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 년 전 스페인은 독재자 프랑코가 사망하자 민주화를 위한 과도기를 겪었다. 그때 어린이를 위해 만든 『민주주의를 어떻게 이룰까요?』라는 책에 “민주주의는 놀이와 같아요.”라는 말이 나온다. 무척 적절한 비유다. 놀이는 즐겁지만, 뜻이 맞지 않으면 다툼이 인다. 민주주의도 그렇다. 

 

초등 6학년 사회 교과에 ‘정치’ 단원이 나온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시민이 노력한 4.19, 5.18, 6.10 민주화 운동을 소개하고 이어 민주주의, 국민주권, 삼권분립에 관해 설명한다. 국민주권을 행사하는‘선거’도 이때 나온다. 하지만 어린이는 그 이전부터 선거를 경험한다. 매 학기 직접 선거를 통해 학급 임원과 전교 임원을 선출한다. 학교장에 따라 다르지만, 선거 포스터 제작, 선거 캠프 구성, 후보자 연설 등 선거 운동의 모든 과정을 직접 체험할 수도 한다. 코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 역시 어린이에게 공부 거리다. 여기에 더해 선거를 제재로 삼은 동화 몇 권을 소개한다. 어떤 교과서보다 선거의 명암을 생생하게 느껴 보는 방법이다. 현실의 선거는 물론 교과서 속 민주주의도 다르게 만나는 방법이다. 

 

왜 허무맹랑한 공약을 내세운 멍청한 인간에게 투표할까?

 


『승리의 비밀』

주애령 글 | 바람의아이들

 

어린이책이 맞나 싶게 현실 선거의 모든 전략을 담은 책이다. 전교 회장 후보에 나선 정민이는 라이벌 구용진이 조직적으로 선거 운동에 나서자 다급해진다. 우연히 ‘승리의 비밀’이란 정치 컨설턴트에게 조언을 받으며 이야기가 급진전 된다. 정민이 역시 처음에는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선거를 상상했다. 예컨대 정민이는 “공약이란 실현 가능해야 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승리의 비밀’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대신 말해주는 저 멍청하고 용감한 후보에게 끌”리는 마음이 들어야 하며, 그래서 “공약이란 실현 가능성보다 유권자의 흥미를 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잘라 말한다. 정민이는 여론 형성, 네거티브 선거 운동, 후보 단일화 등을 차례로 배우고 때로 시도한다. 물론 그렇다고 동화가 어린이에게 선거의 전략을 가르치겠다는 뜻은 아닐 테다. 작가가 하고 싶은 가장 중요한 말은 선거의 속성을 알면 속지 않고, 그래야 제대로 선거할 수 있다는 게 아닐까. 

 

왜 공부 못하는 애들이 공부 잘하는 애를 뽑을까




『기호 3번 안석뽕』

진형민 저/한지선 그림 | 창비

 

동화 속에 사회적 메시지를 담는 진형민 작가의 데뷔작. 대개 회장 선거에는 공부 잘하는 애들이 나온다. 시장통 아이들은 홧김에 일명 석뽕이로 불리는 떡집 아들 석진이를 내세워 선거에 나서기로 의기투합한다. “일등만 사람이냐, 꼴찌도 사람이다. 꼴찌까지 생각하는 기호 3번 안석진”이 슬로건이다. 시장통 아이들의 선거 전략은 간단하다. 공부 잘하는 애는 한 두 명 뿐이고 다수는 공부하기 싫다. 다수의 표를 가져오면 이길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공부 못하는 애들도 결국은 공부 잘하는 애를 뽑는다. 초등학교만 그런가. 어른의 선거도 가진 것 없는 이들이 의외의 선택을 한다.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여기에 있다. 이를 대형마트와 시장 상인의 갈등을 대비해 보여준다. 말하자면 일등부터 꼴등까지 다 잘사는 세상은 선거를 통해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는 뜻일테다. 석뽕이와 친구들의 캐릭터가 생생해서 읽는 재미가 크다. 

 

왜 하필이면 우유 선택권이야, 좋은 공약도 많은데!

 


『딸기 우유 공약』

문경민 글/허구 그림 | 주니어김영사  

 

청소년 소설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문경민 작가의 첫 동화. 전교 회장 선거를 소재로 삼았다. 이 작품 역시 선거가 소재지만 공약을 중심에 내세웠다. 같은 공약도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기 마련이다. 그 감정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전개한다. 나현이는 회장선거에서 흰 우유를 딸기 우유로 바꾸겠다는 별스러운 공약을 내건다. 같은 반 덕주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딸기 우유에 집착하는 바람에 학교에서 소동을 피운 적이 있다. 나현이의 선거를 돕겠다고 나선 이유다. 친구인 유라는 나현이의 공약이 못마땅하다. 알고 보니 나현이 아버지가 학교에 흰 우유를 배달했던 것. 나현이조차 엄마와의 갈등 때문에 딸기 우유 공약을 떠올렸다. 동화는 선거 과정에서 벌어진 잡음 말고도 딸기 우유 공약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따라간다. 이 과정에서 나현이가 성장하고 친구를 만난다. 아무리 좋은 공약도 다수의 동의가 필요한 법. 결국 민주주의는 여럿이 즐거워야 하는 놀이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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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비밀

<주애령> 글/<김윤주> 그림

출판사 | 바람의아이들

기호 3번 안석뽕

<진형민> 글/<한지선> 그림

출판사 | 창비

딸기 우유 공약

<문경민> 글/<허구> 그림

출판사 | 주니어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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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화(어린이책·출판 평론가)

어린이책 평론가이자 출판평론가. 독서운동가, 사서, 현직 교사 사이에서 ‘책으로 아이와 소통하는 법을 가장 잘 아는 어린이책 전문가’로 손꼽힌다. 웅진출판과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등에서 일하며 25년 넘게 어린이책을 다루었고, 출판 잡지에 기사를 쓰고 인터뷰를 하며 글쓰기를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