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소컬(작고 소중한 컬렉션)’ 이야기
현대미술사를 공부하고 미술품 경매회사의 신입으로 입사한 직후 컬렉팅을 시작했습니다. ‘컬렉터가 되어야지!’ 목적을 갖고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작가와 작업이 내뿜는 에너지에 매료되어 나의 세계에 들이다 보니 어느새 작고 소중한 컬렉션이 만들어졌더군요.
이후 100% 재택근무를 하는 미국회사에 입사 이후 개인사업, 이직한 현 직장에서까지 집에서 근무하게 된 지 4년 차.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일할 때도 밥 먹을 때도 나와 함께하는 이 작품들이 나의 단조로운 일상에 부어주는 이 상큼하고 따스한 에너지를 새삼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미술시장에 몸담고 있다 보니, 미술품을 시장 관점으로 바라보고 설명하고 구매하는 때도 많습니다. 실제로 구매 후 가치가 올랐을 때 다시 재판매한 작품도 많고요. 그러나 한두 푼이 아니기에 투자를 생각하며 소장하게 된 작품이라도, 집에 걸어두게 된 작품들은 결국 제 일상에 스며들고 깊은 정이 들어버려 ‘내 새끼’가 되고 마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 희로애락을 조용히 다 바라보고 있는, 작가의 숨결이 담겨있는 그 작품들과 매번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 연재에서는, 나의 작고 소중한 컬렉션의 ‘내 새끼들’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제 ‘작소컬’의 시작과 현재를 사적이지만 누구나 쉽게 따라 해볼 수 있는 이야기들로 녹여 공유해보겠습니다.
흙에 담긴 온 우주를 내 공간으로 - 김호정의 도자 시리즈
여느 특별한 만남이 그렇듯, 김호정 작가를 처음 만났던 날은 아직 생생하게 기억난다. 아직 추위가 코끝에 맴도는 겨울의 끝 - 봄의 시작쯤이었고 작가의 홍대 작업실로 방문했었던 날.
한창 기획 중이던 전시 준비로 야근하며 바쁠 때라 일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손에 잡히지 않는 나날들을 보내던 차에 그 고요하고 흙 내음 가득한 호정의 작업실로 입장하던 순간! 흠—하고 기분 좋은 숨을 들이쉬며 “아 좋다” 하고 느꼈던 기분이 생생하다.
1차로 구운 후 (소성 후) 다시 말리는 중인 항아리들, 원재료 그 상태 그대로의 흙, 한 쪽에는 가마가 있는 따스한 작업실 풍경에 한번 마음이 말랑 해졌고 작가님이 만드신 플레이트와 잔에 정갈히 내온 티푸드와 티는 번잡하고 분주했던 나의 일상을 단정히 정돈해주는 느낌이었다.
작가 스튜디오의 한 풍경. 작가 제공
흙을 만지는 직업 (도예가)을 가진 작가님의 특성일지 모르겠지만, 처음 만난 날부터 굉장히 따스하고 고요한 기운을 내뿜던 김호정 작가의 작업은 내가 그녀의 작은 달항아리 작품으로부터 시작해 흑유 찻잔 두 점, 플레이트, 보울까지 실생활에 쓰는 기물들을 사용하게 된 이후 내 일상 속으로 자연스럽고 따스하게 스며들었다. 어쩌면 내 작고 소중한 컬렉션에서 가장 일상에 맞닿아 있는 작품을 말하자면, ‘공예’의 정의를 그대로 대변하고 있는 김호정 작가의 작품들일 것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공예’라는 단어의 뜻을 실용적 가치와 미술적 가치를 가진 공작에 대한 기법 또는 조형예술이라 정의하고 있고, 네이버 사전에서는 기능과 장식의 양면을 조화시켜 직물, 염직, 칠기, 도자기 따위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일이라 정의한다. 참 알맞은 설명이다. ‘실용’ 그리고 ‘일상’의 키워드를 가진 ‘예술’. 공예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나의 디저트 시간 혹은 올리브오일 샷 루틴에 매일 함께하는 김호정 작가의 흑유 찻잔(왼쪽),
작가 프로필(오른쪽). 작가 제공
김호정은 경희대 도예학과 학사, 홍익대 석사를 졸업한 후 런던 Royal College of Art 도예과 석사 과정을 마치고 현재 경희대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며 후학을 양성 중인 - 그야말로 ‘도예의 정도’ 를 걸어오고 있는 작가다. 흙의 물성을 더 깊게 알기 위해 전국, 전 세계의 흙과 자연물을 채집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자연의 색을 도자 안에서 표현하기 위해 끊임없는 안료와 색의 실험을 지속하고, 자신만의 기형을 탄생시키기 위해 선사시대의 유물부터 전 세계의 도자 역사를 연구하는 모습을 몇 년간 지켜보노라면 참 작가라는 직업은 끝도 없는 공부의 연속이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할 만큼 연구의 탄탄함을 바탕으로 작업을 해나가고 있는 젊은 도예가. 2021년에는 청주공예비엔날레 특별상을 받았고, 프랑스와 뉴욕에서 개인전을 열고 작년 한국에서도 개인전을 통해 그동안의 작업을 망라해 선보이며 왕성히 활동하는 중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미학적이고 철학적인 수사를 더 많이 붙여 설명할 수도 있겠으나, 그저 작가의 팬이자 친구, 또 한 사람의 컬렉터로서 생각했을 때 김호정 도자의 매력을 하나의 키워드로 설명하자면 ‘우주’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흙 안에 바다와 하늘이 다 담겨있는 그녀의 Blue Moon Jar 시리즈. 휘영청 뜬 달 (혹은 뽀얗게 하얀 아가엉덩이..!)처럼 포근한 달항아리 안에 무수히 담겨있는 푸른 점들. 작가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천도가 넘는 가마 속의 불을 거치면서 무작위의 무늬를 내게 되는 그 푸른 점들은, 마침내 가마 밖으로 재탄생될 때 어떤 때에는 은하수 같기도 어떤 때에는 산수화 같기도 또 어떤 때는 바다 위의 물결이 이는 파도 같기도 한 오묘한 우주를 담고 나온다.
Blue Moon Jar 작품의 단면. 작가 제공
고온의 불 & 인간의 손이 협업하여 자연에서 만들어진 흙을 재료로 하는 또 하나의 새로운 우주를 탄생시킨다니, 신비하다. 가끔 그녀의 작품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게 되는 이유이다. 무한한 자연과 세계, 창조와 창조 질서까지 고리를 물고 생각하게 만드는 김호정의 작품은 또한, ‘아름답다’.
가끔 현대미술사를 공부하고 업계에 일하다 보면, 심미적/ 장식적 아름다움 보다는 더 복잡하고 철학적인 – 어떨 때는 추함의 아름다움 - 등을 더 자주 마주하곤 하며 많은 경우 후자가 트랜디하게 받아들여질 때도 있다.
모든 사람의 취향은 다르고 각 예술의 가치가 고유하기에 비교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나는 컬렉팅을 할 때만은 예술의 심미적 가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름다움’. 그리고 아름다운 예술을 일상에서 향유하며 더 발달하는 심미적 기쁨. 그것이 참 좋다.
아름다운 우주를 담은 김호정 작가의 도자 세계가 어떻게 확장될지 앞으로의 작업 세계도 매우 기대된다. 가끔 안부를 묻기 위해 전화를 걸면 항상 작업실 혹은 시골의 자연 속에 있는 김호정 작가를 조만간 집으로 초대해 그녀의 플레이트에 정갈하게 담은 음식들로 대접하며 물어봐야지. “다음 작업에는 어떤 우주를 담아내실 생각이세요?”
아티피오는 ART ‘예술’ + PIONEER ’선구자’라는 비전 아래 온라인에서 고품격 예술 콘텐츠와 아트테크를 체험할 수 있는 투명하고 안정적인 시스템을 제공하는 문화예술 플랫폼입니다. 누구나 아티피오를 통해 일상 속에서 미술을 향유하면서 안심하고 미술품에 투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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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지 (널위한문화예술 시니어 아트 디렉터)
이화여대에서 사회학과 미술사학을 전공한 뒤 영국 런던대 SOAS에서 동양미술사학 석사과정을 마친 김예지 씨는 서울옥션 홍콩 경매팀과 글로벌 사업팀, 세계 최대 글로벌 온라인 미술작품 거래 플랫폼 ‘아트시(ARTSY)’의 아시아 비즈니스팀 서울 담당 디렉터로 재직하며 전시 기획, 국내외 갤러리, 기관, 작가들과 협업을 통해 글로벌 미술 시장에 대한 전문성을 쌓았다. 현재는 문화예술전문미디어 널위한문화예술에서 시니어 아트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