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12회 대상 작가] 이미진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데이터 삽질하다가 열 받아서 썼습니다”
『데이터 삽질 끝에 UX가 보였다』 이미진 작가 인터뷰
글 : 출판사 제공 사진 : 출판사 제공
2025.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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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경험 설계는 데이터 기반으로 해야 한다고 배웁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요? A/B 테스트, 전환율 분석, 퍼널 설계··· 이론 속 UX는 언제나 논리적이고 정교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분석가는커녕 제대로 된 데이터조차 없는 곳에서, 모든 판단을 홀로 내려야 했던 적은 없으신가요?

 

정답 없는 문제를 푸는 그 막막함 속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입니다. 여기 17년간 현장에서 수많은 제품과 사용자를 마주해온 한 디자이너는 말합니다. “정답은 없지만 방향은 만들 수 있다.” 『데이터 삽질 끝에 UX가 보였다』는 누군가 대신 정리해주지 않는 현실 앞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설계하는 힘을 길러온 여정의 기록입니다. 데이터 없이도 사용자에게 닿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할까요? 그리고 어떻게 버티고 성장할 수 있을까요?


 

12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을 수상하셨습니다대상작 발표 때와 책으로 출간되었을 때의 감회가 다를  같은데요어떠신가요?

처음엔 사기 메일인 줄 알았어요. 참여에 의미를 두었던 만큼 당선은 기대를 안 하고 있었는데 김장하다가 메일을 받았죠. ‘아, 이렇게 카카오인 척 당첨됐다고 말한 뒤 ‘돈을 주면 책을 출간해주겠다’라며 사기 치나 보다’ 싶었죠. 메일을 보던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다시 김장에 몰두했어요. 근데 곧이어 출판사에서도 메일이 왔어요. 그때도 어리둥절했죠. ‘아, 대상자가 많나 보다. 그중 이제 출간 가능한 작가를 추려서 최종 선정을 하나 보네. 그럼 난 장려상 정도려나?’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러다 결국 알게 됐죠. 제가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수상자라는 걸요. 그게 진짜라는 걸요. 좋아해야 할 타이밍을 허무하게 놓쳐버려서 그런지 책 쓰는 내내도 실감이 안 됐어요. 집필을 끝내고 출판사에서 표지 디자인을 보여줄 때 처음으로 ‘진짜구나’ 싶더라고요. 그리고 이 인터뷰에 답하는 지금에서야 저는 1년 전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의 기쁨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빡쳐서 썼다 말이 인상 깊어요 책을 쓰게 만든 결정적인 분노의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데이터 기반으로 디자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는 말에 매료되어 입사했어요. 그런데 막상 가보니 아무도 그렇게 일하고 있지 않더라고요. 모든 구성원이 ‘대표님이 정한 기능’을 만드는 데만 집중하고 있었죠. 어쩔 수 없이 혼자 시도해봤어요. 하지만 갖춰지지 않은 환경에서 디자이너 혼자 사용자 데이터를 보기 위한 노력은 정말 처절합니다. 무엇보다 시간이 오래 걸려요. 저 역시 데이터 전문가가 아니니 많이 찾고, 시도해 보고, 실패하고, 다시 찾고, 시도하고, 실패하고를 반복했어요. 문제는, 회사는 저를 기다려주지 않고 제가 찾아본 모든 콘텐츠와 강의, 책은 ‘환경이 갖춰져 있는 상황’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어요. 데이터 관련 전문가가 진행하는 웨비나를 듣게 되었는데 이때다 싶어 질문했죠. 제가 궁금한 건 ‘공급자 관점에서 정의된 문제가 사용자에게 일어난 문제와 일치하는지 데이터를 통해 확인하고 싶은데 함께 할 동료도, 갖춰진 데이터도 없을 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였어요. 돌아온 답은 ‘동료와 함께해야 한다, 팀 리드와 상의해야 한다’였어요. 

 

또 이런 적도 있었죠. 회사 안에 GA를 설치해줄 사람도, 알려줄 사람도 없었어요. 제가 찾아보고 개발자에게 부탁해야 했습니다. 국내에 판매되는 책은 다 본 것 같아요. 봐도 잘 모르겠고 설치도 어렵더라고요. 책에서는 개발자에게 요청하라고 하는데 팀의 개발자 역시 GA가 처음이었고 그도 혼자서 모든 걸 처리하느라 따로 공부할 시간이 없었어요. 책 저자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보낸 메일의 답변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돌아온 답변은 ‘개발자에게 물어서 해결하라’였거든요.

 

그때부터 분노가 시작됐어요. 왜 모든 책과 강의는 ‘환경이 갖춰졌다는 전제’에서만 출발할까? 왜 도구도 없고, 사수도 없고, 팀도 없는 디자이너는 늘 소외돼야 할까? 그래서 제가 직접 삽을 들기로 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일하는 곳은 강의 교안 속 이상적인 환경이 아니잖아요. 100의 90은 이상이 아닌 현실에서 혼자 우물을 파며 일하죠. 누가 삽을 들고 시작해야 한다면 그게 저여도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데이터 기반 UX 처음 시도했을  ‘잘했다!’ 싶었던 순간이나 인상 깊은 변화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처음 시도했을 땐 ‘잘했다!’ 싶은 순간이 없었어요. 모든 게 엉망이었고 제 뜻대로 되지 않았죠. 그래도 멈추지 않고 계속 시도하다 보니 결국 누군가의 관점을 변화시킨 순간이 있었는데 그때가 가장 인상 깊네요. 

 

한 회사에서 사용자 인터뷰를 리딩한 적이 있어요. 사용자와 접점이 있는 모든 팀과 함께하기 위해 TF를 발의했어요. 그때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두 가지였어요. 사용자 경험을 프로덕트에 녹이는 포지션이면서 사용자보단 기획자의 목소리대로 움직이는 개발자 전원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과 사용자와 접점이 있는 팀이 서로 각자 다르게 해석하고 있는 사용자의 정의를 통일시키는 것.

 

먼저 정량 데이터로 현재 사용자의 현황을 파악한 다음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가지를 지키며 사용자 인터뷰를 진행했죠. 결과적으로 처음 제가 세운  가지 목적을 모두 이루었어요. 개발자들이 ‘실제 사용자를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다’라고 하더니 이후에 적극적으로 사용자 입장에서의 의견을 내더라고요. 사용자를 다르게 바라보던 다른 부서의 팀원들이 처음으로 모두 한자리에 모여 우리의 사용자를 함께 정의하고 세그먼트를 정리하기도 했죠. 

 

저는 사용자에게 가치 있는 기능을 만들고 그걸 비즈니스 목표와 일치시키기 위해서는 이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데이터 기반 UX는 결국 모두 함께 만드는 거니까요. 그 환경을 누군가 만들어주길 기다리지 않고 직접 만들려고 시도한 게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잘한 순간’인 것 같아요.

 

스타트업의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일할  혼자라고 느꼈던 순간은 언제였고그럴  어떻게 마음을 다잡으셨나요?

조직에서 사용자 데이터를 보는 사람이 저 하나뿐일 때요. 회의에서 나온 모든 의견이 다수결처럼 흘러갈 때 ‘나만 이상한가?’ 싶은 순간이 찾아와요. 사용자 데이터를 근거로 다른 방향을 제시하면 분위기가 싸해지고 결국 제가 틀린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요. 한 번은 회의 중에 ‘사용자의 구매 퍼널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이탈률이 높은 구간을 발견했다’고 말했는데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오히려 ‘디자이너인 네가 왜 그런 걸 신경 쓰냐’라는 말까지 들었죠. 정말 외로웠어요.

 

그때 저는 조직을 바꾸려 하지 않았어요. ‘큰 꿈 꾸지 말자. 그냥 내 환경만 바꾸자’라고 마음 먹었죠. 그래서 내 커리어를 위해, 오직 나를 위해 필요한 일을 했습니다. 내가 가진 도구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데이터를 수집해서 가설을 세우고 그걸 꼼꼼히 기록했어요. 그렇게 쌓인 기록과 경험이 언젠가 나를 진짜 그렇게 일하는 곳으로 데려다줄 거라고 믿었어요.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잡았던 것 같아요. 아, 반야심경도 자주 들었네요. 

 

책에서 ‘혼자서도   있다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데요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감당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을 분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버텨야  내가   있는 사용자 데이터가 '있을

저는 먼저 ‘내가 볼 수 있는 사용자 데이터가 있을 때’는 버텨봐요. 회사가 데이터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하지 않더라도 내가 사용자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으면 혼자서라도 의사결정을 할 수 있어요. 혼자 내는 결과물을 회사에서 받아주지 않더라도 회사 프로젝트와 별개로 혼자 사부작거리며 의사결정을 내리는 시도를 해보는 거예요. 그 과정 자체가 경험이 되고, 사고력을 키워주고, 포트폴리오가 되거든요. 그렇게 쌓인 결과물은 언젠가 그렇게 일하는 동료가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는 나의 무기가 됩니다.

 

[나와야  나의 시도가 반복적으로 '무시'당할 

반대로 혼자 감당하지 않아야 할 때는 내가 하는 시도가 반복적으로 무시당할 때예요. 이 판을 바꿔보려고 혼자 애쓰고 있지만 정작 그 누구도 바꿀 의지가 없는 구조라면 그땐 나와야 해요. 그런 곳에서는 얻을 수 있는 것도 없고 마음이 버텨주지 못해요. 그렇게 되면 다음 도전을 위한 힘이나 의지를 잃게 되고 더 나은 환경으로 갈 가능성도 낮아지거든요. 

 

데이터로 사용자 경험을 설계한다 방식이 향후 AI 시대에는 어떻게 달라질 것이라고 보시나요?

‘질문하는 능력’과 ‘의사결정’ 능력이 중요해질 것 같아요. AI는 데이터를 빠르게 수집하고 정리해줄 수 있지만 그 안에서 무엇을 문제로 보고 어디에 개입할지를 결정하는 건 여전히 인간의 몫이니까요. ‘무엇’을 문제로 볼 것인지는 질문에 따라 달라질 거예요. ‘어디에 개입할지’를 결정하는 건 의사결정 역량에 따라 달라질 거고요. AI는 질문에 답하는 존재예요(아직까지는요). 그리고 우리의 의사결정을 기다리죠(아직까지는요). 그러니 향후 AI 시대에 데이터로 사용자 경험을 설계하려면 질문하는 능력과 의사결정 능력이 가장 중요해질 거라고 생각해요.

 

혼자 우물을 파는 디자이너들에게, ‘당신은 지금 잘하고 있다 전하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면요?

“지금 잘 하고 있어요.” 

지금 어렵고 막막한 건 당신 탓이 아닙니다. 이는 현실의 문제이자 구조적인 시스템의 문제예요. 하지만 시스템만 탓한다고 해서 실력이 저절로 생기진 않아요. 누군가가 우물을 파주길 기다리면 돌아오는 건 심해지는 갈증뿐이에요. 하지만 삽을 들고 스스로 땅을 파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근육이 붙고 요령이 생깁니다.  과정에서 사고방식이 바뀌고 능력이 향상돼요. AI 시대가 본격화될수록 스스로 모든 걸 결정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겁니다. 지금 삽을 드는 당신은 그 시대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겁니다. 잘하고 있어요. 그리고 동료가 필요할 때도, 내가 우물을 팔 줄 알아야 함께 할 동료를 알아보고 그들과 나란히 설 수 있습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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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삽질 끝에 UX가 보였다

<이미진(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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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