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덕 시인의 『아오리 아니고 아오모리』가 난다 시의적절 시리즈 10월 책으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사과의 계절이자 무엇이 끝나고 또 시작되기 직전의 달인 10월을 따라 혼슈 최북단의 도시 아오모리로 향한다. 푸른 숲이라는 뜻의 이름을 지닌 이곳에서 그는 오래된 사랑과 오래된 이야기가 겹겹이 쌓인 풍경 속을 걸으며, 현실과 불화하던 자신과 화해하고 세상을 다시 사랑하게 되는 감각을 기록한다. “왠지 너무 사랑하는 존재에게는 존대를 하고 싶어진다”는 시인의 고백처럼, 『아오리 아니고 아오모리』는 도시와 계절, 그리고 사과처럼 둥글고 단단한 김연덕 시인의 문장들로 채워진다.
“무엇이 시작되기 직전의 달처럼 느껴지는” 10월이에요. 이번 10월, 시인님에게 어떤 시작이 다가오고 있나요?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근 몇 년간 저는 제 삶에서 결혼이라는 주제에 집중하고 있었는데요, 실은 이십대에 결혼하고 싶었거든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족을 이루고 싶다는 소원도, 조급함도 컸었어요. 그러다 서른한 살의 가을이 찾아왔고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죠. 여름이 지나가고 나니 연애에도, 결혼에도 시들해지고 “하지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도 차분히 사라져버렸네요. 혼자로도 충분해지는 날들이 시작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랑에 대해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혼자 서서 꾸려가는 삶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어요. 따라서 저에게 다가오고 있는 시작은 ‘혼자라는 오롯한 기쁨’입니다.
그리고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어요! 새 언어를 익혀보는 경험이 정말 오랜만인데,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어서 매일 아침 지하철에서 단어장을 편 채 문장과 단어를 외우고 있답니다. 다음에 아오모리에 방문하게 되면, 더 자연스러운 표현들로 아오모리 분들과 막힘없이 대화하고 싶어서요. 쌍둥이 동생이 도쿄에 십일 년째 거주중이라, 헷갈리는 뉘앙스나 표현들이 있을 때 바로 전화를 걸어 동생의 도움을 받고 있기도 하고요. 동생으로부터 일본어 공부법 중 하나로 드라마 시청을 추천받아, 최근 좋은 드라마 여러 편을 몰아 보기도 했어요.
누군가 나를 기억하지 못해도 마음에 남는 장면이 있을 것 같아요. 시인님이 다시 머물고 싶은 아오모리의 장면이 궁금해요.
책에는 시로만 적었지만, 지금도 생각이 많이 나는 곳 중 하나는 ‘아오모리 현립 미술관’이에요. 제가 방문했을 때는 사노 누이(佐野 ぬい)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는데, 푸른빛들로 가득했던 옛 작가의 작품에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었어요. 상설로 샤갈의 대형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어 좋았고요. 미술관 직원 분들이 입고 있던 유니폼도 기억에 남아요. 약간 벙벙한 원피스 스타일의 유니폼이었는데 이곳만을 위해 디자인된 옷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정격의 유니폼도 아니고 그렇다고 잠옷 느낌도 아니고 그 사이에 있는 느낌의 옷이었죠. 잘 설계된 꿈속을 가볍게 거닐 만한 옷이요.
또, 현립 미술관은 내부도 내부지만 미술관까지 걸어가는 길이 정말 아름다워요. 미술관이 안쪽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어서, 꽤 넓은 앞마당을 가로질러 들어가야 하거든요. 저는 한여름에 방문해서 커다란 녹색 나무와 평원을 볼 수 있었는데, 눈이 많이 오기로 유명한 겨울에 그 앞마당을 걸어보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해지곤 해요. 미술관 걸어가는 길에, 건너편에서 관람을 마치고 걸어나오는 사람들도 마주할 수 있는데 서로가 교차되는 순간을 꽤 멀리서부터 알아챌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로운 부분이에요. 미술관에서 아오모리 시내로 돌아오며 버스에서 보았던 여름 풍경들도 기억에 남아요.
공항 문을 열고 나가 마주했던 감각들이 시인님을 어떤 사람으로 바꾸어놓았나요?
화려한 관광지가 아닌 도시에 비행기를 타고 방문했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으니까, 그곳 사람들의 일상이나 삶이 억지로 배치되지 않은 곳을 누비는 감각이 참 좋았어요. 한꺼번에 현지 분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어본 것도 처음이었고요. 저와 전혀 관계가 없었던 도시와 아주 친밀하고 인간적인 관계를 맺어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곳의 호텔, 박물관, 쇼핑센터와 음식, 항구와 나무, 거리의 분위기와 사람들 그 모든 것에 스며들어갔어요. 분명 처음인 곳인데 왜 그리운 느낌이 들까 궁금해하면서요.
낯선 공간과의 뜻밖의 연결은 저를 더 부드럽고 생생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어요. 아오모리로 떠나기 전 저는 삶에도 관계에도 그리고 쓰기에도 약간 무기력한 상태였는데, 이번 방문으로 아직 저에게 연결될 세상이,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깊이 알게 되었지요. 삶에 대한 사랑과 기대감이 조금씩 피어올랐고요. 무기력했던 저 자신이 부끄러워지기도 했고, 이방인인 저를 따뜻하게 맞아준 아오모리라는 도시에 지금도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커튼은 그것을 단 사람의 성격과 이야기를 품고 있는 것 같아요. 시인님이 새 커튼을 단다면, 어떤 색과 무늬를 고르고 싶으신가요?
너무 사랑스러운 질문이에요! 아직 자취 경험이 없어서 집을 제 마음대로 꾸며본 적이 없는데, 만약 집안의 모든 커튼을 제가 결정해도 되는 날이 온다면 무조건 가장 단순한 스타일의 커튼을 고를 것 같아요. 흰색이나 아이보리색에 민무늬, 혹은 무늬가 있다 해도 가까이 다가가 보지 않으면 그것이 무늬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조용하고 자글자글한 무늬로 이루어진 커튼요. 그리고 창밖에 나무나 산이 있다면 그 창에는 자연의 잔상을 볼 수 있도록 반투명한 커튼을 달고 싶어요.
어릴 적, 제가 아직 무력했을 때, 저에게 가장 커다란 이미지로 남아 있는 커튼이 조부모님 방에 달려 있던 두껍고 어두운 커튼이었기에 아예 반대의 이미지를 꿈꾸게 되나봐요. 그분들의 방에는 거의 암막 커튼 같던, 그래서 낮에도 빛이 거의 들지 않게끔 하던, 검은색에 가까운 자줏빛 커튼이 있었거든요.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커튼 앞에서 제가 때때로 우울했던 것 같아요.
지금도 저는 환하고 깨끗하고 빳빳한 커튼에 마음이 끌린답니다. 때문에 아오모리에서도 온갖 종류의 연한 커튼들로 가득했던 거리를 걸을 때 행복했었나봐요.
「심장과 사과 파이」의 하트 모양처럼, 평범한 것들이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어주곤 하죠. 요즘 시인님에게 그런 사소하지만 특별한 ‘사물’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5월에 아오모리에 방문했을 때 관광 물산 ‘아스팜’에서 사과 핸드폰 고리를 하나 샀어요. 아오모리에 대한 온갖 기념품들을 모아 팔고 있는 곳인데요. 그때의 저는 최대한 전형적인 기념품을 사오고 싶었던 것 같아요. 아오모리에서 팔고자 마음먹은 ‘바로 그것’을 사오고 싶었죠. 이 핸드폰 고리는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기는 하지만 크기도 작고 다소 투박한 디자인인데, 그날부터 제 에어팟 케이스에 늘 달고 다녀요. 사과 옆에 방울이 달려 있어 케이스를 움직일 때마다 방울 소리가 들린답니다. 그 짧은 순간 저는 다시 아오모리를 떠올리게 되고요. 이 고리는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 나눠주려고 세 개 정도 더 사왔고, 귀국 직후 친구들에게 나눠주었어요.
이번 책에 담긴 세 편의 편지는 다시 만나자는 다정한 약속처럼 읽혀요. 시인님에게 ‘편지’는 어떤 마음의 역할과 의미를 지니는지 궁금해요.
편지의 가장 신비로운 점은, 보내는 사람이 편지를 쓰는 시간과 받는 사람이 그것을 읽는 시간 사이의 시차에 있는 것 같아요. 편지를 받아 읽는 사람은 이것을 썼던 사람이 필압과 글씨체와 문장들에 집중하며 보내버렸을 시간, 두 사람 모두에게 이미 지나가버렸을 시간을 상상하게 되어요. 이 문장이 지금도 유효한 것인가 생각해볼 수도 있고요. 때문에 편지는,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모두에게 이런 시차 앞의 믿음을 요구하는 것 같아요. 쓰는 순간의 감정을 당장 전달할 수는 없기 때문에 시간 속에 그것이 약간 퇴색될 가능성이 있음에도요. 반대로 지금 읽고 있는 편지가 과거의 그 사람(최신의 과거라 하더라도요)이 쓴 것이라는 것에 두려워져도, 여전히 이 문장들로 서로가 연결되어 있을 거라는 믿음도요.
그리고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 문장들이 편지지 안에서 물리적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저에게 복잡한 기분을 줘요. 매우 아름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강력하고 무서운 일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럼에도 편지를 주고받는 마음이란 어떤 것일까, 다들 무언가 감수하면서 용감해지려 하고 있구나 싶고요. 편지를 쓰는 일도, 받는 일도 제게 소중한 일이에요.
긴 연휴를 마치니 10월의 가운데에 도착했어요. 함께 10월을 건너고 있는 독자들에게 어떤 마음을 건네고 싶으신가요?
연휴가 지나니 날이 점점 추워지고 있네요. 모두 따뜻함 속에서 건강 잘 챙기셨으면 좋겠습니다. 한 해의 끝으로 다가가고 있는 시기에 이 이야기가, 여러분에게 작은 웃음을 짓게 해주는 무엇이 되어준다면 저는 더 바랄 것이 없겠어요. 언젠가 여러분의 여행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기쁘게 들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10월이 여러분에게 어느 때보다 찬란하고 크고 환한 달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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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리 아니고 아오모리
출판사 | 난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