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연의 장면의 전환
엄마의 얼굴을 닮은 혁명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이자연 기자가 포착한 영상이 자아내는 여러 '전환'들.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에서 딸들이 이어나가는 끊임없는 싸움을 읽어냅니다.
글: 이자연
2025.11.07
작게
크게

나의 모친 순이씨는 남자 형제 넷에 둘러싸여 자란 고명딸이다. 단어에서 풍기는 뉘앙스따라 그는 금이야 옥이야 귀하게 자랐으나, 결국 음식의 모양이나 빛깔을 돋보이게 하는 '고명'의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아들들과 달리) 실질적인 혜택에서 비껴나 자랐다. 순이씨는 자꾸만 강인해졌다. 사실 그는 세상 물정 모르는 (혹은 몰라도 괜찮은) 순진무구한 사람이고 싶었다. 오직 고고한 온실 속 화초가 되길 바랐다. 그러나 자신의 존재를 무시하는 원가족이, 남편이, 일터가, 택시 기사가, 경비원이 그의 눈을 뜨게 했다. 두 딸을 낳은 뒤에는 자신을 겨냥했던 화살표가 그들에게 고스란히 내려가지 않도록 더더욱 강인해졌다. 그의 뼈와 살을 나눠 태어난 나와 언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집은 우연히 '여초사회'의 수평성을 띄었지만 변함없는 가부장제 그늘 아래서, 기울어진 학교와 회사에서 많은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받았다. 사랑으로 자란 고명딸과 남아선호사상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자매는 시나브로 마음속에 화염을 키웠다. 아니다. 어쩌면 그렇기에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우리집 여자들은 혁명을 꿈꿨다. 


 

혁명가는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한때 '두렵지 않을 자유'를 갈망하며 혁명을 일으켰던 퍼피디아 베버리힐즈(테야나 테일러)는 연인 밥 퍼거슨(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과 함께 혁명조직 프렌치75를 이끌었다. 그는 오직 총성과 폭약만이 진정한 혁명을 이끌어낼 거라 믿을 정도로 거칠고 험악한 구석이 있지만 정작 록조 대위(숀 펜)에게 총을 겨눴을 때 돌아오는 말이란 "귀엽다"이다. 게다가 건물 화장실에 은밀하게 폭탄을 설치해야 하는 중대한 미션을 수행할 때에도 계획을 멈춘 건 물리적 저지나 위협이 아닌, "네 바닥을 보고 싶다"는 백인 남자의 허름한 말이었다. 임신 후 남산만 한 배 위에 기관총을 올려두고 총을 난사하는 충격적 이미지는 그로 말미암아 낯선 해방감과 자유로운 여성상을 안겨주지만 그의 연인은 "임신했다는 자각이 아예 없는 것 같다"는 말만 되뇔 뿐이다. 따라서 밥과 퍼피디아는 혁명의 여정에서 동등한 동료처럼 보이나, 각기 사정을 내밀하게 들여다보면 혁명의 이유도, 그것을 수행하는 방식도 모두 다르다. 조금 더 모나 보이는 건 퍼피디아다. 아무래도 그는 주변으로부터 이해 받을 길이 마땅치 않다. 

 

퍼피디아가 록조 대위에게 프렌치75를 밀고한 후 혁명가들의 삶은 전복된다. 조직은 와해되었고 몇몇은 정부에 잡혀가 행방이 묘연해졌다. 밥과 그의 딸 윌라(체이스 인피니티)는 다른 이름으로 새 삶을 살아야만 한다. 16년의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조직원을 느슨하게 연결해준 것은 서로 가까이 있을 때 멜로디가 흘러나온다는 신뢰 디바이스(Trust Device)였다. 그리고 친구들과 놀러 간 댄스 파티의 화장실. 훈련할 때만 들어본 익숙한 선율을 윌라는 듣는다, 목격한다, 경험한다. 아버지 밥이 아닌, 또 다른 혁명가와의 만남. 실재하는 눈을 마주하고 허상 같던 암호를 맞춰보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면서 윌라는 난생 처음 혁명의 시간을 가늠한다. 그러나 상황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퍼피디아와 질긴 인연의 록조가 이제는 윌라를 처리하기 위해 이곳 박탄크로스로 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 때문이다. 도망과 은둔을 선택할 차례. 이들은 옛 동료들의 집결지인 용감한 비버 자매회를 찾는다.

 

그러니까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오히려 혁명이 아닌 순간부터 작품의 진짜 방향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다. 현재진행형의 혁명이 아닌 지난 혁명의 잔여물을 조명하고, 혁명가의 미래가 아닌 혁명가의 과거를 비춘다. 제 딸이 납치 위기에 놓인 급박한 상황 속에도 암호를 죽어라 기억하지 못하는 밥의 시퀀스가 비중 높았던 이유는 더 이상 현실에 생존하지 못한, 이제는 숨이 잦아든 과거의 혁명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지금 몇 시냐”는 암호에 밥이 끝까지 답하지 못한 것도 단지 기억이 일시 정지해서가 아니라 그것들이 밥 안에서 사라지고 잊혀져버린 폐허가 되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새 세대의 어린 혁명가도 정보 공백을 맞닥뜨린다. 용감한 비버 자매회가 있는 수녀원을 찾았을 때 윌라는 엄마를 향한 수녀들의 경멸과 멸시를 느낀다. 그 이유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이 때 그가 선택한 건 기묘하게도 총을 쏘고 발차기를 하며 수녀원 훈련에 성실히 임하는 것이다. 댄스 파티를 위해 입었던 나풀거리는 드레스 그대로, 그는 혁명을 준비한다. 


 

영화 말미에 이르러 '알 수 없음'의 영역은 윌라와 밥을 구별하는 기준점으로서, 모계로 전이된 혁명적 태도로서 더더욱 중요하게 작용한다. 납치된 곳으로부터 벗어나 구불거리는 도로를 질주할 때, 그리고 자신을 쫓아오는 사내의 정체가 누군지 알 수 없을 때 윌라는 위아래로 흔들거리는 지형을 본능적으로 활용하여 뒷차를 무자비하게 부숴버린다. 덜컹. 잠시 앞길이 안 보이는 사이. 쿵. 앞 차를 박을 수밖에 없게끔 유도하면서. 다시 말해 밥 퍼거슨이 자신이 잊어버린 것을 세르히오와 탤리, 즉 오랜 동료와의 카르텔로 보완한다면 그의 딸이자 어린 세대의 윌라 퍼거슨은 제 눈 앞에 있는 것,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융합하여 미지의 세계를 채운다. 독립적이고 능동적으로. 그러나 너무도 외롭고 처절한 목소리로. 비정한 핏빛 도로의 공기를 가르는 “그린 에이커스, 베벌리 힐빌리스, 후터빌 정션!”은 어린 여자에게 유전적 기억을 남긴 모계 혁명가의 증명이고 자욱이다. 

 

혁명가는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끝내 친아버지로 밝혀진 록조 대령으로부터 윌라가 "화장이라도 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 "잡종"이라는 모욕을 들었을 때. 어머니를 "쥐새끼"라고 일컬은 수녀의 말을 들었을 때. 논바이너리 친구들을 조롱하는 아버지의 말을 들었을 때. 윌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치닫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마음속에 화염을 키웠을지 모를 일이다. 아버지 몰래 스마트폰을 사고, 오븐 안에 캐서롤을 마련해 놓는 게 전부였던 평범한 여자아이지만 세상 만사가 그를 자꾸만 눈 뜨게 한다. 퍼피디아가 이 용감한 딸에게 묻는다. "내가 했던 것처럼 세상을 바꿀 거니? 우린 실패했단다." 그러나 사실 답은 명확하다. 비 내리는 날 우비를 입고 오클랜드의 혁명을 돕기 위해 거뜬히 나서는 윌라의 평온한 얼굴 앞에서. 순이의 강인한 마음을 이어가고자 분투하는 자유로운 자매 앞에서 혁명은 실패하지 않았다. 딸들은 계속해서 다음의 끊임없는 싸움(One battle after another)을 본능적으로 이끌어나갈 것이다.



이자연의 장면의 전환

장면이 현실로 전환되는 순간, 찰나의 단상이 긴 사유로 전환되는 순간,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하게 되는 순간. 영상이 자아내는 여러 ‘전환’을 포착해보고자 합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0의 댓글
Writer Avatar

이자연

가족들이 일터로 떠난 빈집에서 텔레비전과 한 몸처럼 지내다가 어느덧 대중문화 비평을 말하는 어른이 됐다. 페미니즘 미디어 비평서 <어제 그거 봤어?>를 썼고, 한겨레신문 칼럼니스트 공모전에 당선되어 온라인 커뮤니티의 여성 문화를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는 칼럼을 연재했다. 현재 <씨네21>의 영화 기자로 활동 중이다. 목동불주먹이자 <슬램덩크> 사랑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