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회 아르떼문학상을 수상한 임수지 소설가의 첫 장편소설 『잠든 나의 얼굴을』이 출간되었다. 이 소설은 총 503편의 응모작 가운데 심사를 거쳐 만장일치로 선정된 작품이다. 할머니, 고모, 주인공으로 이어지는 가족의 슬픔과 아픔, 유대와 성장을 그린 이 작품을 두고 심사위원들은 “심사하고 있다는 것을 잊을 정도로 좋았던 소설”, “줄어가는 문학의 영토 속에서 오늘날 소설이 해야 하고 해낼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탐색하는 소설”이라고 평했다. 고요하지만 섬세하게 인물의 치열한 성장을 기록한 임수지 소설가와 첫 책에 대해 서면으로 대화를 나눠보았다.
제2회 아르떼문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살면서 경험하는 수많은 ‘처음’이 있을 텐데, 작가님에게 첫 책이 갖는 의미는 무엇이었을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처음 인사드립니다. 임수지입니다. 장편소설 『잠든 나의 얼굴을』을 썼습니다. 저에게 처음은 늘 떨려요. 이 인사 또한 떨리는 마음을 담아서 하는 것입니다. 첫 책이 나왔지만 그것이 갖는 의미를 정확하게 문장으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그건 아마도 뒤늦게 제게 도착할 거예요.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야 저는 혼자 깜짝 놀라며 맞아! 그런 거였어! 뒷북을 둥둥 치며 호들갑 떨지 않을까 합니다.
이번 작품에는 ‘잠’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오는데요. 잠을 자는 사람의 무방비한 자세나 불편한 마음이나 아픈 기억 등에서 해방된 듯한 표정 등을 떠올리면 타인에게 잘자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따뜻한 안부인지 깨닫게 됩니다. 이번 소설의 키워드로 ‘잠’을 선정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이 소설의 시작에는 여러 조각들이 있었는데 그중 가장 큰 조각이 잠이라고 할 수 있어요. 쉽게 잠들지 못해 새벽 내내 뜬눈을 하고 있을 때가 많았거든요. 잠을 포기하고 놀아버리지도, 저를 완전히 잠에 맡기지도 못하는 그 시간은 이상하고 괴로웠어요. 잠든 나도, 잠들지 못하는 나도 모두 하나의 나인데 어쩐지 다르게만 느껴졌고요. 그때의 생각들이 소설 속 장면들에 녹아 있어요,
신기한 것은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비교적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인데요. 맑은 정신으로 소설을 쓰려면 오전 시간이 필요하고, 그럼 아침에 일어나야 하는데 그러려면 일찍 누워야 하고…… 어리석은 저는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저녁 무렵까지 커피를 마셔대느라 불면에 시달렸다는 것을…….
요새 저는 잠을 미워하지 않아요. 잠을 기대하고 잠에 온 마음 기대고 싶기도 합니다. 가끔 사나운 꿈을 꾸고 새벽녘 잠에서 깨 멍하니 천장을 바라볼 때도 있지만 그래도 이제는 전처럼 무섭진 않습니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나진과 고모, 할머니가 있습니다. 세 사람 사이에는 내밀한 기억도, 두드러지는 애정표현도 없는 듯하지만, 대화의 여백이나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 속에서 충분히 애틋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작가의 말’에서 할머님에 대한 사랑이 잔뜩 배어나오는 점도 인상적이었는데요, 작가님께 가족이라는 말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나요?
가족은 꼭 주머니가 엄청나게 많이 달린 외투 같아서 어떤 주머니에는 아무 의심 없이 손을 쑥 집어넣어 쉽게 따뜻해지기를 바라고 어떤 주머니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없어 긴장하게 돼요. 나를 놀라게 할, 어쩌면 나를 절망시킬 무언가가 튀어나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어요. 어떤 주머니는 있는 줄도 모를 것이고, 어떤 주머니에는 먼지만 뭉쳐 있을 것이며, 또 어떤 주머니에는 구멍이 나서 무엇을 넣더라도 줄줄 새기만 할 거예요. 하지만 또 그 외투를 걸치고 몸을 데우겠죠. 가끔은 그 외투에 팔을 꿰고 밖으로 나가기도 할 거예요.
나진은 스노보드를 타고 오겠다는 고모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10년 만에 광주의 할머니 집에 가고, 그곳에 도착한 이후로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상황들을 겹쳐보게 되는데요. 작가님에게 강렬하게 각인된 순간들을 불러일으키는 장소가 있다면 어디인지 궁금해요.
제가 머물렀던 모든 방들은 저의 어딘가에 깊게 남아 있어서 어떤 물건이나 냄새를 다시 마주하면 그때의 기억이 순식간에 저를 사로잡아요. 그러면 그때 들었던 음악이라거나 복도의 한기 같은 것이 함께 떠오르며 그때의 저와 지금의 제가 겹치는 순간들이 생겨나요. 심지어 그때 제가 했던 고민들까지 떠오르기도 하는데, 거기서 나는 얼마나 멀리 떠나왔나 싶으면서도 어떻게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그대로인가 싶기도 해요.
어쩌면 저의 생각이라거나 고민, 미운 마음도 좋은 마음도 모조리 제가 머물렀던 방들에 쌓였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리고 거기로 향하는 문은 원하지 않더라도 내 안에서 어느 순간 활짝 열리고 마는 거죠.
몸이 커진다거나 목소리가 바뀌는 등의 신체적인 성장은 발견하기 쉬운 반면, 내면의 성장은 상대적으로 알아차리기 어려운데요. 소설을 읽으면서 잠을 자는 동안 알게 모르게 많은 것이 변하고 그 또한 성장의 한 부분이지 않을까 생각하곤 했어요. 작가님이 평소에 생각해온 성장의 순간은 언제인가요?
소설에 이런 문장을 썼어요. “내가 자라고 있다는 것을 전혀 실감하지 못하며 성장했다.” 성장하는 순간에는 그걸 알아차릴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때는 그냥 아프고 괴롭고 무섭고 다가오는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해서요. 우와 나 자랐어! 그런 개운한 성장도 좋지만 흉터가 남는 성장에 더 마음이 가요. 앓은 자리를 다시 돌아볼 때, 어떤 방식으로든 나는 성장해버리고 말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는 것 같아요. 그 알아차림이 성장의 마디가 되지 않을까 해요.
뇌출혈 수술 이후 회복 중인 할머니를 보살피는 일부터 나진이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돌봄을 살필 수 있는 작품이지 않나 싶습니다. 이기호 소설가님의 추천사 속 문장(“성장이란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가는 일임을 떠올리게 될 것”)처럼 점점 개인화되는 현대 사회에서 타인과 함께하기를 선택하는 인물들을 그려내신 이유를 더 듣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일단 제가 누군가를 너무나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혼자서도 잘하는, 매사에 담대한 사람이고픈데 그건 언제나 희망 사항일 뿐이에요. 소설을 쓸 때, 나진을 포함한 인물들이 살면서 필연적으로 외로움을 느끼겠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덜 외로웠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너무 단단해서 한 번 깨져버리면 돌이킬 수 없어지는 결속이 아닌, 모두가 조금은 멀찍이 둥둥 떠 있지만 그럼에도 서로 연결되는 느슨한 관계를 그리고 싶었어요. 서로가 있음을 아는 것. 그것만으로도 어떤 때에는 힘이 나는 것 같아요. 안도하기도 하고요.
작가님의ᅠ수상ᅠ소감을ᅠ읽어ᅠ보면ᅠ작가님이ᅠ얼마나ᅠ책을ᅠ사랑하시는지가ᅠ느껴집니다. 그런ᅠ이유로, 요즘ᅠ인상ᅠ깊게ᅠ읽은ᅠ책이ᅠ있을까요?
저는 책에 연필로 사정없이 밑줄을 긋는 사람인데요. 여름과 가을이 하루에 다 담기던 때에는 로베르트 발저의 작품집 『장미』에 열심히도 밑줄을 긋고 페이지 귀퉁이를 접었습니다. 로베르트 발저의 글을 읽으면 귀여운데 찡하고 사소한데 가끔은 또 대단히 크고 넓은 문장들을 마주하게 돼요. 한 세기를 지나 나를 통과하는 문장이라니! 정말 멋진 일입니다.
지난주에는 황벼리 작가님의 그래픽노블 『믿을 수 없는 영화관』을 읽었는데 기억에 대한 작가님만의 아름다운 사유가 담긴 장면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지금이 아닌 언젠가를, 여기가 아닌 어딘가를 문득 생각하는 분에게 이 책을 추천해요. 한 페이지, 한 페이지마다 충분히 오래 머무르시기를. 아마 그렇게 될 거예요.
최근에는 유디트 헤르만의 에세이 『말해지지 않은 것들에 대한 에세이』를 아침마다 조금씩 읽고 있습니다. 어떤 문장에는 다짐하는 마음으로 밑줄 긋고, 어떤 문장에는 속절없이 울고 싶어지는 마음으로 밑줄 긋고 있어요. 자꾸만 무언가를 쓰고 싶다면, 나의 문장을 어딘가에 남기게 된다면 이 책을 열어보시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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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나의 얼굴을
출판사 | 은행나무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