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미술 경매시장에 다시 볕이 든다
클림트부터 이우환·김환기, 백남준까지 '반등의 신호' 읽기
글: 아티피오(ARTiPIO)
2025.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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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긴 터널을 지나 미술 경매 시장에 볕이 스며들고 있습니다. 팬데믹 이후 과열 조짐을 보였던 국내외 미술시장이 조정기에 들어가면서 정체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올 11월 들어 뉴욕,  서울에서 파악된 시장 데이터는 회복세 진입을 뒷받침합니다. 뉴욕 가을 메이저 경매 주간에 소더비, 크리스티, 필립스 3사 합쳐 20억 달러(2조 원 이상) 규모의 낙찰 총액을 기록했는데요. 국내 역시 9개 경매사의 3분기 낙찰 총액이 약 313억 5,000만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약 32% 증가했습니다. 반등 조짐을 확인할 수 있는 흐름입니다.

 

구스타프 클림트 ‘엘리자베스 레더러의 초상’ 경매 현장. 사진 : 소더비


11월 글로벌 경매 시장의 반등을 상징하는 장면은 단연 ‘황금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엘리자베스 레더러의 초상(Portrait of Elisabeth Lederer)>(1914-16)입니다. 11월 18일에 열린 소더비 뉴욕 이브닝 세일에서 이 작품은 경매사 추정가인 1억 5,000만 달러를 크게 웃도는 2억 3,636만 달러에 낙찰되었는데요. 글로벌 경매 역사상 두 번째로 비싼 작품입니다. 클림트가 현대 미술의 블루칩임을 감안하더라도 놀라운 기록인데요. 최고가 경신 외에도 이번 낙찰은 또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2억 달러 이상의 경매 거래가 성사되었다는 것은 극소수의 고액 자산가, 컬렉터들이 미술품을 여전히 ‘안전 자산’으로 선호하고 있음을 재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클림트의 다른 작품들 역시 고가에 거래되며 금액대가 상향 조정되었습니다. 출처(프로비넌스)와 미술사적인 가치를 모두 갖춘 작품에 자금이 모이는 흐름입니다.

 

클림트가 시장 거래의 정점을 기록한 것과 별도로 새로운 흐름을 입증하는 기록들도 쏟아졌습니다. 세계 최대 온라인 미술작품 거래 플랫폼 아트시(ARTSY)에 따르면 이번 뉴욕 메이저 경매 주간의 핵심 키워드는 '다양성'과 '재평가'로 좁혀지는데요. 그 중심에는 프리다 칼로의 <엘 수에뇨(라 카마) (El sueño (La cama))>(1940)가 있습니다. 5,466만 달러에 낙찰되며 여성 작가 경매가 역대 1위 기록을 경신했는데요. 여성 초현실주의 작가인 도로시아 태닝과 레오노르 피니가 수백만 달러대 신기록을 세우며 시장의 새로운 흐름을 선도했습니다. 이는 지난 10년간 계속된 박물관과 비엔날레, 학계의 미술사적 재평가 작업이 드디어 경매 가격으로 연결되는 흐름으로 해석됩니다. 오랫동안 가려져 있던 이들 작가의 가치가 재평가되며 시장 금액대가 다시 형성되는 수순입니다.

 

프리다 칼로 ‘엘 수에뇨(라 카마)’ 경매 현장. 사진 : 소더비

 

다양성이라는 키워드는 ‘장르’와 ‘지리적 영역’에서도 두드러집니다. 콜롬비아 작가 올가 데 아마랄(Olga de Amaral)의 <Pueblo H>(2011)는 텍스타일에 금박(gold leaf) 작업인데요. 추정가 상한의 5배가 넘는 약 312만 달러에 낙찰되면서 공예 작품이 회화와 동급의 시장 가치를 인정받는 전환점을 이루었습니다. 나아가 노아 데이스와 보포드 딜레이니 같은 아프리카 디아스포라 아티스트들의 작품이 수백만 달러대 신기록을 경신했고, 뉴미디어 분야에서도 로버트 앨리스의 비트코인 코드 기반 작업 <Block 1>이 신기록을 세운 것을 보면 다양한 장르에서 시장 가치가 함께 상향 조정되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심지어 데이비드 호크니의 아이패드 드로잉 연작까지 추정가 대비 수배에 이르는 낙찰가를 기록하며 디지털 기반 작업 역시 주요 컬렉터의 선택지로 자리 잡고 있는 기류를 재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술 경매가가 해외에서 정점을 찍는 사이, 국내 역시 3분기와 10~11월 경매를 기점으로 눈에 띄는 회복세를 보였습니다.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집계에 따르면, 2025년 3분기 국내 9개 경매사 낙찰 총액은 전년 동기 대비 약 32% 증가했으며, 특히 10월에는 케이옥션과 서울옥션 경매의 낙찰 총액이 전년 동월 대비 각각 50%, 70% 이상 뛰어올랐습니다. 이러한 흐름의 중심에는 그동안 한국 미술시장을 견인해온 단색화 중심의 근현대 블루칩의 반등이 있습니다. 10월 국내 메이저 경매에서 이우환의 <바람과 함께(with winds)>가 8억 5,000만 원, 김환기의 <무제(Untitled)>가 7억 8,000만 원에 낙찰되며 여전히 견고한 시장성을 입증했습니다. 같은 경매에서 쿠사마 야요이의 '인피니티 네츠(Infinity Nets)' 시리즈가 19억 원에 거래되는 등 글로벌 블루칩의 거래도 활발했습니다. 

 

백남준 ‘에디슨’. 사진 : 서울옥션

 

특히 국내 시장의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은 백남준 작품이었는데요. 11월 초, 시작가 2억 원이었던 백남준의 <에디슨 (Edison)>(1995)은 치열한 경합 끝에 3억 5,000만 원에 낙찰되었습니다. 이는 그간 같은 세대의 이우환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평가되어 있던 백남준의 작품들이 재조명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여기에 한국의 달동네 밤 풍경 그림으로 유명한 정영주의 작품이 1억 1,000만 원으로 치솟았고, 원계홍, 김선우 등 중견·신진 작가들의 작품이 추정가 최고치를 훌쩍 넘기는 사례도 등장했습니다. 이는 투자 목적뿐만 아니라 소장과 감상을 목적으로 하는 컬렉팅 수요가 늘고 있는 흐름입니다. 국내 시장은 이처럼 국내외 핵심 블루칩의 반등과 소장 가치가 검증된 중견·신진 작가군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내실 있는 동반 상승세를 타고 있습니다.

 

글로벌과 국내 시장 모두 이번 반등의 최전선에는 ‘고가 대형작’이 있었는데요. 뉴욕에서는 클림트와 칼로가 최고점을 찍었고, 한국에서는 이우환, 김환기 등 대가의 10억 원 안팎 혹은 그 이상 매매가 가능한 작가들의 거래가 먼저 되살아났습니다. 이는 최상단 블루칩이 앞서 시장을 이끈 뒤 중저가 시장이 차례대로 회복되는 전형적인 패턴입니다. 그러나 2020~2021년의 역대급 호황기와 비교하면, 이번 반등에는 주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바로 수요의 성격인데요. 이는 초단기 전매(flipping, 작품을 사자마자 곧바로 되파는 행위)를 위한 투기적 수요라기 보다 여성 초현실주의나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처럼 지난 10년 이상 축적된 학계의 예술적 가치 평가에 경매 시장의 수요가 화답하는 움직임입니다.  국내에도 단기 투기 수요가 줄어든 반면,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면 기꺼이 지갑을 여는 '소장형 컬렉터'의 비중이 커졌습니다. 이번 반등은 시장이 투기 거품에서 벗어나 내실 있는 회복 단계로 들어서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입니다. 

 

이는 미술시장이 오랜 조정기를 거쳐 모처럼 활기를 되찾으면서 ‘무엇이 좋은 작품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으로 회귀하고 있는 흐름이기도 한데요. 한결 밝아진 시장의 분위기 속에서 독자 여러분도 '좋아서 오래 곁에 두고 싶은 작품',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을 가치를 지닐 작품'들에 관심을 가져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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