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고 외로운 ‘싸구려 커피’에 중독되다 - 장기하를 만나다
장기하를 제일 처음 주목한 건 누리꾼들이었다.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로 얼굴을 알렸고, < EBS 스페이스 공감 >의 무대가 동영상으로 퍼졌다. 순식간에 장기하는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2008.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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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에 있는 붕가붕가레코드사. 휑한 사무실 한구석에 소파가, 다른 한구석에는 책상이 있고, 그 책상 한구석에 컴퓨터 본체를 닮은 기계가 놓여져 있다. 원판 CD를 넣으면 한번에 7장을 구울 수 있는 CD 라이터다. 그들 말을 빌리자면 ‘산업혁명’이란다. 세 곡의 노래가 담긴 ‘장기하와 얼굴들’의 『싸구려 커피』가 ‘대박’이 나면서 주문량을 맞추기 위해 산 기계다. 그래도 물량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아우성이다. 그전에는 컴퓨터로 한 장씩 CD를 구워 라벨을 붙이고 케이스에 넣었다. 이렇게 손으로 만든 『싸구려 커피』는 파는 곳이 서너 군데로 한정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3,000장이 팔렸다. 이 정도면 장기하가 누군지 궁금해진다.
장기하를 제일 처음 주목한 건 누리꾼들이었다.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로 얼굴을 알렸고, 의 무대가 동영상으로 퍼졌다. 순식간에 장기하는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사람들은 ‘장기하와 얼굴들’의 CD를 구해 들었다. 그들은 공중파 텔레비전 음악프로에 얼굴을 비추었고, 라디오에 게스트로 초대되었다. 신문과 잡지에 그들의 사진과 인터뷰가 실렸다.
그들의 무대는 재미있다. 장기하와, 음악 실력과 외모 모두 출중한 멤버들(정중엽, 이민기, 김현호)과 섹시한 미미 시스터즈. 그들은 무대에서 노래하고 랩도 하고 춤도 추고 연주도 한다. 그러나 웃지 않는다. 웃음은 관객의 몫이다.
『싸구려 커피』에 실린 노래들은 심플하고 경쾌하다. 한두 번만 들으면 자기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린다. 묘한 중독성이 있다. 원더걸스의 「노바디」만큼이나. 노래 가사는 웃기면서도 슬프고, 허전하면서도 충만하다. 성찰한다.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이삼십 대의 눅눅한 젊음을 말려주는 햇빛 같다. 장기하는 음악으로 뭔가 대단한 것을 이루려고 하지 않는다. ‘위로’라는 단어도 버겁다. 어떤 ‘감흥’을 느낀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공연과 1집 녹음으로 바쁘다고 들었다. 1집에는 모두 몇 곡이나 실리나.
『싸구려 커피』에 실린 3곡을 포함해서 13곡 정도 실릴 예정이다. 13곡 중 9곡은 공연에서 부른 거라 공연에 자주 오신 분이라면 귀에 익을 것이다. 나머지 4곡은 생소한 곡이다. 2월 말쯤 내려고 한다. 상상마당에서 2월 27일 공연 겸 쇼케이스가 잡혀 있어서 자연스럽게 1집 마감 시한이 결정되었다. 그전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앨범을 완성해야 한다. 지금 추세라면 무난하지 않을까 싶다.
『싸구려 커피』에서는 작곡, 작사, 연주를 혼자 다했다고 들었다.
1집은 지금 공연을 같이하고 있는 밴드(정중엽-베이스, 이민기-기타, 김현호-드럼/퍼커션)가 연주한다.
노래를 어떤 식으로 만드는지 궁금하다.
집에서 만든다. 홈 레코딩을 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지식을 가지고 녹음을 하면서 음악을 만든다. 그림으로 치면 스케치 작업이다. 곡을 조금씩 조금씩 고쳐서 완성되면 그것을 수없이 듣는다. 듣다가 자기도 하고, MP3P에 담아서 다니면서도 계속 듣는다. ‘이 부분은 괜찮네.’ 기분 좋아하면서. 그 과정을 거친 후 내부용 데모로 만든다. 데모 테이프를 만들어서 사운드 전문가인 친구 집에 가서 들려주고, 녹음을 한다. 『싸구려 커피』에 실렸던 노래는 다 이런 식으로 녹음했다.
본격적으로 음악을 한 건 언제부터였나?
대학교 3학년부터였다. 나름 대학 1~2학년 때 질풍노도 시기였다. 그때 과방에서 기타 친 것 말고는 음악 활동은 한번도 하지 않았다.
전공이 사회학이고, 대학에 입학할 때의 장래 희망은 학자라고 들었다.
사회학과에 가서 학자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대학에 가고 나니 그것이 (고등학생의) 박약한 근거에서 나온 생각인 걸 알았다. 학교 성적이 좋으면 학문에 소질이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대학에 가보니 그건 전혀 다른 거였다. 나는 학교 공부는 잘했지만 학문에는 소질이 없었다. 의도는 틀렸지만 사회학과에 들어간 것을 후회해본 적은 없다. 공부는 재미없었지만 과에 80년대의 대학 분위기가 고스란히 남아있어서 사람들과 만나서 술 마시고 같이 노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과 활동을 열심히 했다.
그러다 ‘눈뜨고 코베인’의 드러머로 활동하게 되었는데 어땠나?
나에게 음악이란 제일 하고 싶은 거였고, 제일 열심히 해야 할 거였다. 그것으로 먹고살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다른 일을 하더라도 음악에 중점에 두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선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지 고민했다.
어떤 고민을 했나?
음악으로 돈을 버는 방법을 찾았다. 창작은 먹고살기 힘들다. 연주자는 스펙으로 돈을 벌 수 있지만 창작은 인기에 기대 돈을 번다. 그래서 연주자가 되기 위해 레슨도 받고 연습도 많이 했는데, 내 연주는 프로와의 거리가 꽤 멀었다. 하다 보니 내 적성은 창작 쪽이었다. 군대에 가기 전에 창작자 쪽으로 결정했다.
연주자와 창작자가 많이 다른가? 창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연주자이기도 하지 않나?
기대 자체가 다르다. 창작자는 연주가 좀 미숙해도 어느 정도 받아들여진다. 예를 들어, 산울림 1,2집을 보면 박자가 하나도 안 맞는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귀에 거슬리지 않다. 그런데 발라드 가수 앨범에 연주를 하는 드러머가 조금이라도 틀리면 그건 큰 문제요, 사고다.
『싸구려 커피』가 나온 붕가붕가레코드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다닌 학교에 ‘붕가붕가 중창단’이 있었다. 학교 내의 행사나 집회에서 노래를 부르고, 게릴라 공연도 하고…… 게릴라성 노래집단이었는데, 거기에 지금 붕가붕가레코드의 곰사장, 내가 드러머로 있었던 ‘눈뜨고 코베인’과 ‘청년실업’의 이기타 등이 있었다. 그중에는 지금 사회인으로 사는 친구들도 있고. 그러다 ‘눈뜨고 코베인’ ‘그림자 궁전’의 송재경 씨와 같은 학교 밴드들이 주축이 되어서 『뺀드뺀드짠짠』이라는 컴필레이션 앨범을 냈는데 그때 참여한 사람들이 의기투합을 했다. 처음에는 일종의 캠퍼스 레이블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학교 내에서만 머무르지 말고 인디 레이블을 만들어보자. 그래서 ‘관학청년포크협의회’와 ‘청년실업’(『착각』)이 앨범을 냈다. 이것이 붕가붕가레코드의 시작이었다. ‘브로콜리 너마저’ ‘술탄 오브 더 디스코’(『여동생이 생겼어요』)가 들어왔고, 지금은 학교와는 별 관계 없는 하나의 인디레이블로 정착했다.
공CD에 구워서 손으로 일일이 스티커 붙이고 종이 케이스를 제작하는 것 보고 놀랐다.
붕가붕가레코드에서 나오는 앨범들은 다 수공업포맷이다. 80% 정도가 수작업이다. 이런 식으로 앨범을 냈는데, 『싸구려 커피』가 아홉 번째 앨범이다. 처음에는 공연한 뒤에 팔려고 만들었다.
어떤 음악을 좋아하나?
나는 어렸을 때부터 명곡이면서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 곡을 좋아했다. 산울림이나 송골매 같은 70~80년대 음악은 대학에 들어가서 밴드 활동을 하면서 듣게 되었다. 질리도록 많이 들었다. 그전까진 듣는 음악 폭이 굉장히 좁았다. 지금도 넓은 편은 아닌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음악프로보다는 오락프로를 좋아했고, 자라서는 록보다는 팝을 더 좋아했다.
그런 것이 자기 음악에 반영이 되었나?
그런 건 잘 모르겠다. 그냥 나는 어떻게 하면 내가 듣기에 재미있는 음악을 할까, 고민한다. 내가 들어서 재미가 없으면 하기가 싫다. 자기가 들어서 재미있어야 다른 사람과의 공감대도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다.
공연할 때의 모습과 인터뷰할 때의 모습이 너무 다르다. 공연할 때는 굉장히 유머러스한 느낌이었는데, 이렇게 웃음기가 없는 인터뷰도 처음이다.
둘 다 내 모습이다. 뭔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면 무섭게 진지해진다. 술자리에서 보면 또 다른 모습일걸.(웃음)
단시간에 굉장히 유명해졌다. 기분이 어떤가?
아직은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포레스트 검프가 된 것 같다. 영화를 보면 포레스트 검프가 역사의 순간마다 유명인들을 만나지 않나. 나도 이름만 듣던 사람들이랑 아무렇지도 않게 술을 마시고 있고, 방송국에서 만나서 인사하고, 라디오 게스트로 출연하는데, 그런 내 모습이 굉장히 신기하다. 얼마 전 방송국 복도에서 배철수 선배님을 만났다. “역사상 가장 존경하는 뮤지션입니다.” 그랬더니 “고맙네.” 딱 한마디 하셨다. 그런데 그 말이 건성으로 하는 말처럼 들리지 않았다. 호들갑 떨지 않고 담담하게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마음이 담긴 듯했다. 참 멋진 어른이시구나, 내가 생각하던 그대로시구나, 싶었다.
뭔가 달라진 건 없나? 유명해지고 나서.
아직 실감하는 건 없는데……. 인기니 유명세니 너무 휘둘리지도 않으려고 하고 또 ‘나는 절대 변하지 않아, 흔들리지 않아.’ 장담하지도 않으려고 한다. 너무 자신하면 방심하게 된다.
세상엔 『싸구려 커피』보다 더 좋은 앨범이 많다. 그 반대도 분명하고. 그런데 음악이 좋은 순서대로 대중에게 사랑받는 건 아니다. 내 음악이 대중에게 사랑받는다면 그건 무엇보다 기쁜 일이지만, 그렇지 못하다고 해서 흔들릴 필요도 없다. 내가 좋아서, 재미있어서, 즐거워서 음악을 하니까.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대중가요다. 많은 사람이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게 대중가요 아닌가? 공연장에서 서로 어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참 잘하는데 잠이 온다, 이런 건 아니었으면 좋겠다. 공연장에 오신 분들이 웃는 게 좋다. 인터넷에서 내 음악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이 가사가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웃겼기 때문에,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 사무실에 팬레터가 왔다. 4장에 걸쳐 쓴 편지였는데, 힘든 일이 많아서 너무 우울했는데 내 노래를 듣고 기분이 좋아지고 힘이 났다는 내용이었다. 정말 기분이 좋았다. 나는 내 노래가 팬들에게 어떤 감흥을 불러일으켜준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개그로 받아들여도 좋다.
주위의 기대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싸구려 커피』가 큰 호응을 얻고 앨범도 많이 팔렸다. 2월에 나올 1집에서 뭔가 더 멋진 걸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은 없나?
나 자신을 최대한 그대로 내버려두려고 한다. 나에게 ‘더 잘해야 해.’ 하는 압력이나 부담을 가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1집을 듣고 사람들이 실망하면 어쩌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실망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실망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음악을 대충한다는 뜻이 아니다. 나는 언제나 가장 재미있는 음악을 하려고 했고, 앞으로도 할 거다. 그것을 대중이 좋아해 준다면 다행이고, 만약 최대한 열심히 했는데 별로라고 하면 그건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그 이상을 할 능력이 내겐 없으니까. 스스로에게 ‘이거 저거 신경 쓰지 말고 니 마음대로 해라.’라고 말해 준다. 1집은 내 20대에 주는 마지막 선물 같은 앨범이다. 아이로 만들 수 있는 음악은 다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어른이 되는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슬슬 든다.
좋은 어른은 어떤 어른인가?
우리 사회에 좋은 어른이 너무 없어서 쉽게 이야기하기 힘든데……. (잠시 생각) 그러니까 덜 컸을 때는 뭔가 반짝거리는 게 있다. 사람은 계속 덜 큰 상태로 철이 없는 상태로 있을 수 없다. 나이가 먹으면 놀이 감각에서 서서히 벗어나 어른의 규칙에 적응하게 된다. 하기 싫은 것도 하고. 그런데 어른이 되고 나면 다들 “어른은 원래 그런 거야.”라면서 그 반짝거림을 잊어버리고 산다. 좋은 어른은 그 반짝거림을 계속 간직하고 그것을 다듬어서 어른의 반짝거림으로 만든다. 만약 내가 그것에 성공한다면 1집 이후의 노래들에서 그것을 보여줄 수 있겠지. 정말 그것에 성공하고 싶다.
그들의 무대는 재미있다. 장기하와, 음악 실력과 외모 모두 출중한 멤버들(정중엽, 이민기, 김현호)과 섹시한 미미 시스터즈. 그들은 무대에서 노래하고 랩도 하고 춤도 추고 연주도 한다. 그러나 웃지 않는다. 웃음은 관객의 몫이다.
『싸구려 커피』에 실린 노래들은 심플하고 경쾌하다. 한두 번만 들으면 자기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린다. 묘한 중독성이 있다. 원더걸스의 「노바디」만큼이나. 노래 가사는 웃기면서도 슬프고, 허전하면서도 충만하다. 성찰한다.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이삼십 대의 눅눅한 젊음을 말려주는 햇빛 같다. 장기하는 음악으로 뭔가 대단한 것을 이루려고 하지 않는다. ‘위로’라는 단어도 버겁다. 어떤 ‘감흥’을 느낀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공연과 1집 녹음으로 바쁘다고 들었다. 1집에는 모두 몇 곡이나 실리나.
『싸구려 커피』에 실린 3곡을 포함해서 13곡 정도 실릴 예정이다. 13곡 중 9곡은 공연에서 부른 거라 공연에 자주 오신 분이라면 귀에 익을 것이다. 나머지 4곡은 생소한 곡이다. 2월 말쯤 내려고 한다. 상상마당에서 2월 27일 공연 겸 쇼케이스가 잡혀 있어서 자연스럽게 1집 마감 시한이 결정되었다. 그전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앨범을 완성해야 한다. 지금 추세라면 무난하지 않을까 싶다.
『싸구려 커피』에서는 작곡, 작사, 연주를 혼자 다했다고 들었다.
1집은 지금 공연을 같이하고 있는 밴드(정중엽-베이스, 이민기-기타, 김현호-드럼/퍼커션)가 연주한다.
노래를 어떤 식으로 만드는지 궁금하다.
집에서 만든다. 홈 레코딩을 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지식을 가지고 녹음을 하면서 음악을 만든다. 그림으로 치면 스케치 작업이다. 곡을 조금씩 조금씩 고쳐서 완성되면 그것을 수없이 듣는다. 듣다가 자기도 하고, MP3P에 담아서 다니면서도 계속 듣는다. ‘이 부분은 괜찮네.’ 기분 좋아하면서. 그 과정을 거친 후 내부용 데모로 만든다. 데모 테이프를 만들어서 사운드 전문가인 친구 집에 가서 들려주고, 녹음을 한다. 『싸구려 커피』에 실렸던 노래는 다 이런 식으로 녹음했다.
대학교 3학년부터였다. 나름 대학 1~2학년 때 질풍노도 시기였다. 그때 과방에서 기타 친 것 말고는 음악 활동은 한번도 하지 않았다.
전공이 사회학이고, 대학에 입학할 때의 장래 희망은 학자라고 들었다.
사회학과에 가서 학자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대학에 가고 나니 그것이 (고등학생의) 박약한 근거에서 나온 생각인 걸 알았다. 학교 성적이 좋으면 학문에 소질이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대학에 가보니 그건 전혀 다른 거였다. 나는 학교 공부는 잘했지만 학문에는 소질이 없었다. 의도는 틀렸지만 사회학과에 들어간 것을 후회해본 적은 없다. 공부는 재미없었지만 과에 80년대의 대학 분위기가 고스란히 남아있어서 사람들과 만나서 술 마시고 같이 노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과 활동을 열심히 했다.
그러다 ‘눈뜨고 코베인’의 드러머로 활동하게 되었는데 어땠나?
나에게 음악이란 제일 하고 싶은 거였고, 제일 열심히 해야 할 거였다. 그것으로 먹고살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다른 일을 하더라도 음악에 중점에 두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선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지 고민했다.
어떤 고민을 했나?
음악으로 돈을 버는 방법을 찾았다. 창작은 먹고살기 힘들다. 연주자는 스펙으로 돈을 벌 수 있지만 창작은 인기에 기대 돈을 번다. 그래서 연주자가 되기 위해 레슨도 받고 연습도 많이 했는데, 내 연주는 프로와의 거리가 꽤 멀었다. 하다 보니 내 적성은 창작 쪽이었다. 군대에 가기 전에 창작자 쪽으로 결정했다.
연주자와 창작자가 많이 다른가? 창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연주자이기도 하지 않나?
기대 자체가 다르다. 창작자는 연주가 좀 미숙해도 어느 정도 받아들여진다. 예를 들어, 산울림 1,2집을 보면 박자가 하나도 안 맞는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귀에 거슬리지 않다. 그런데 발라드 가수 앨범에 연주를 하는 드러머가 조금이라도 틀리면 그건 큰 문제요, 사고다.
『싸구려 커피』가 나온 붕가붕가레코드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다닌 학교에 ‘붕가붕가 중창단’이 있었다. 학교 내의 행사나 집회에서 노래를 부르고, 게릴라 공연도 하고…… 게릴라성 노래집단이었는데, 거기에 지금 붕가붕가레코드의 곰사장, 내가 드러머로 있었던 ‘눈뜨고 코베인’과 ‘청년실업’의 이기타 등이 있었다. 그중에는 지금 사회인으로 사는 친구들도 있고. 그러다 ‘눈뜨고 코베인’ ‘그림자 궁전’의 송재경 씨와 같은 학교 밴드들이 주축이 되어서 『뺀드뺀드짠짠』이라는 컴필레이션 앨범을 냈는데 그때 참여한 사람들이 의기투합을 했다. 처음에는 일종의 캠퍼스 레이블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학교 내에서만 머무르지 말고 인디 레이블을 만들어보자. 그래서 ‘관학청년포크협의회’와 ‘청년실업’(『착각』)이 앨범을 냈다. 이것이 붕가붕가레코드의 시작이었다. ‘브로콜리 너마저’ ‘술탄 오브 더 디스코’(『여동생이 생겼어요』)가 들어왔고, 지금은 학교와는 별 관계 없는 하나의 인디레이블로 정착했다.
공CD에 구워서 손으로 일일이 스티커 붙이고 종이 케이스를 제작하는 것 보고 놀랐다.
붕가붕가레코드에서 나오는 앨범들은 다 수공업포맷이다. 80% 정도가 수작업이다. 이런 식으로 앨범을 냈는데, 『싸구려 커피』가 아홉 번째 앨범이다. 처음에는 공연한 뒤에 팔려고 만들었다.
어떤 음악을 좋아하나?
나는 어렸을 때부터 명곡이면서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 곡을 좋아했다. 산울림이나 송골매 같은 70~80년대 음악은 대학에 들어가서 밴드 활동을 하면서 듣게 되었다. 질리도록 많이 들었다. 그전까진 듣는 음악 폭이 굉장히 좁았다. 지금도 넓은 편은 아닌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음악프로보다는 오락프로를 좋아했고, 자라서는 록보다는 팝을 더 좋아했다.
그런 것이 자기 음악에 반영이 되었나?
그런 건 잘 모르겠다. 그냥 나는 어떻게 하면 내가 듣기에 재미있는 음악을 할까, 고민한다. 내가 들어서 재미가 없으면 하기가 싫다. 자기가 들어서 재미있어야 다른 사람과의 공감대도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다.
공연할 때의 모습과 인터뷰할 때의 모습이 너무 다르다. 공연할 때는 굉장히 유머러스한 느낌이었는데, 이렇게 웃음기가 없는 인터뷰도 처음이다.
둘 다 내 모습이다. 뭔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면 무섭게 진지해진다. 술자리에서 보면 또 다른 모습일걸.(웃음)
단시간에 굉장히 유명해졌다. 기분이 어떤가?
아직은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포레스트 검프가 된 것 같다. 영화를 보면 포레스트 검프가 역사의 순간마다 유명인들을 만나지 않나. 나도 이름만 듣던 사람들이랑 아무렇지도 않게 술을 마시고 있고, 방송국에서 만나서 인사하고, 라디오 게스트로 출연하는데, 그런 내 모습이 굉장히 신기하다. 얼마 전 방송국 복도에서 배철수 선배님을 만났다. “역사상 가장 존경하는 뮤지션입니다.” 그랬더니 “고맙네.” 딱 한마디 하셨다. 그런데 그 말이 건성으로 하는 말처럼 들리지 않았다. 호들갑 떨지 않고 담담하게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마음이 담긴 듯했다. 참 멋진 어른이시구나, 내가 생각하던 그대로시구나, 싶었다.
뭔가 달라진 건 없나? 유명해지고 나서.
아직 실감하는 건 없는데……. 인기니 유명세니 너무 휘둘리지도 않으려고 하고 또 ‘나는 절대 변하지 않아, 흔들리지 않아.’ 장담하지도 않으려고 한다. 너무 자신하면 방심하게 된다.
세상엔 『싸구려 커피』보다 더 좋은 앨범이 많다. 그 반대도 분명하고. 그런데 음악이 좋은 순서대로 대중에게 사랑받는 건 아니다. 내 음악이 대중에게 사랑받는다면 그건 무엇보다 기쁜 일이지만, 그렇지 못하다고 해서 흔들릴 필요도 없다. 내가 좋아서, 재미있어서, 즐거워서 음악을 하니까.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대중가요다. 많은 사람이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게 대중가요 아닌가? 공연장에서 서로 어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참 잘하는데 잠이 온다, 이런 건 아니었으면 좋겠다. 공연장에 오신 분들이 웃는 게 좋다. 인터넷에서 내 음악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이 가사가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웃겼기 때문에,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 사무실에 팬레터가 왔다. 4장에 걸쳐 쓴 편지였는데, 힘든 일이 많아서 너무 우울했는데 내 노래를 듣고 기분이 좋아지고 힘이 났다는 내용이었다. 정말 기분이 좋았다. 나는 내 노래가 팬들에게 어떤 감흥을 불러일으켜준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개그로 받아들여도 좋다.
주위의 기대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싸구려 커피』가 큰 호응을 얻고 앨범도 많이 팔렸다. 2월에 나올 1집에서 뭔가 더 멋진 걸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은 없나?
나 자신을 최대한 그대로 내버려두려고 한다. 나에게 ‘더 잘해야 해.’ 하는 압력이나 부담을 가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1집을 듣고 사람들이 실망하면 어쩌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실망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실망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음악을 대충한다는 뜻이 아니다. 나는 언제나 가장 재미있는 음악을 하려고 했고, 앞으로도 할 거다. 그것을 대중이 좋아해 준다면 다행이고, 만약 최대한 열심히 했는데 별로라고 하면 그건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그 이상을 할 능력이 내겐 없으니까. 스스로에게 ‘이거 저거 신경 쓰지 말고 니 마음대로 해라.’라고 말해 준다. 1집은 내 20대에 주는 마지막 선물 같은 앨범이다. 아이로 만들 수 있는 음악은 다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어른이 되는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슬슬 든다.
좋은 어른은 어떤 어른인가?
우리 사회에 좋은 어른이 너무 없어서 쉽게 이야기하기 힘든데……. (잠시 생각) 그러니까 덜 컸을 때는 뭔가 반짝거리는 게 있다. 사람은 계속 덜 큰 상태로 철이 없는 상태로 있을 수 없다. 나이가 먹으면 놀이 감각에서 서서히 벗어나 어른의 규칙에 적응하게 된다. 하기 싫은 것도 하고. 그런데 어른이 되고 나면 다들 “어른은 원래 그런 거야.”라면서 그 반짝거림을 잊어버리고 산다. 좋은 어른은 그 반짝거림을 계속 간직하고 그것을 다듬어서 어른의 반짝거림으로 만든다. 만약 내가 그것에 성공한다면 1집 이후의 노래들에서 그것을 보여줄 수 있겠지. 정말 그것에 성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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