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저마다 비극의 시간을 버텨내고 있었다
출발하기 전날, 일본산 맥주를 곁들여 집에서 직접 저녁을 해먹었다. 저녁이라도 그럴싸하게 먹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난번 태국에서의 쓰나미 취재 때 끔찍하게 썩어 들어가는 주검들을 본 후 트라우마가 생긴 탓인지 또다시 대량의 주검들과 맞닥뜨려야 한다는 사실이 가슴을 짓눌렀다.
2009.02.03
출발하기 전날, 일본산 맥주를 곁들여 집에서 직접 저녁을 해먹었다. 저녁이라도 그럴싸하게 먹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난번 태국에서의 쓰나미 취재 때 끔찍하게 썩어 들어가는 주검들을 본 후 트라우마가 생긴 탓인지 또다시 대량의 주검들과 맞닥뜨려야 한다는 사실이 가슴을 짓눌렀다.
대지진으로 28초 만에 10만 명의 사람이 사망한 나라,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진입로인 국경 지역 퀘타에서 총기로 위협하는 자들을 피해 야반도주를 감행해야 했던 악몽 같은 기억마저 생생한 이곳, 파키스탄. 쓰레기통 주위를 몰려다니는 까마귀 떼, 검고 진한 자동차 매연, 알록달록 요란하게 치장을 하고 달려가는 트럭들. 익숙한 풍경들이 데자뷰를 일으킨다.
한 시간짜리 다큐멘터리를 며칠 내에 취재해야 하는 빡빡한 일정 탓에 곧바로 지진 피해가 심각하다는 파키스탄 북부 무자파라바드라는 도시로 이동했다. 약 3만 명으로 추정되는 그곳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이번 지진 사태로 희생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일곱 시간을 차로 달려 해발 2천 미터의 산간 지방을 지날 무렵, 말 그대로 칠흑 같은 밤이다. 자동차 라이트에 의존해 조심조심 통과하다가 최초의 지진 발생 지역을 목격하게 되었다.
굽이굽이 이어지던 산간 도로는 지진 당시 떨어진 바위들로 막혀 있어 야밤에 도로 복구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열악한 장비들밖에 없지만 한시라도 빨리 도로를 복구해보겠다는 현지인들의 다급함이 느껴져 카메라를 들고 촬영을 시작한다. 마침내 차량 한 대가 지나갈 넓이가 확보되자 다시 산길을 달린다. 어둠 속에서 피해 지역 주민들이 짐 보따리를 이고 지고 걸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마치 유령도시를 배회하는 기분이다. 여진의 피해를 우려해 넓은 공터에 마련된 베이스캠프에 짐을 풀고서야 각국의 구호팀, 취재팀을 보며 안도감을 느낀다.
아침이 되어 본격적인 취재를 시작한다. 무너져버린 건물들, 스멀스멀 건물 밑에서 기어나오는 냄새. 쓰나미 취재 이후로 절대로 잊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바로 그 냄새가 난다. 지진 발생 나흘이 지난 탓에 도시 전체에 부패하는 냄새가 넘쳐난다. 무너진 건물을 보고서야, 시신이 부패하는 냄새를 맡고서야 비로소 이곳이 재난 발생 지역임을 체감하기 시작한다. 건물의 잔해를 치워내고 시신을 수습하는 작업이 도시 여기저기서 펼쳐지고 있지만 턱없이 열악한 장비 탓에 작업의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장비 하나 없이 오직 양손에만 의지해 돌을 치워내는 사람들도 있다.
뜨거운 태양 아래 짐을 들고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 무너진 건물 주위에 모여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특유의 요란한 트럭을 타고 어딘가로 이동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 구호물품을 받아보고자 뻗어 올리는 손들, 생존자 및 시신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는 구조단의 드릴 소리, 그리고 혼잡한 도로 위에서 시끄럽게 울려대는 경적 소리. 슬픔이 배여 있는 죽음의 도시라기보다 오히려 북적대고 활기가 넘치는 모습이다.
이란의 대지진을 소재로 하여 제작되었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죽음의 그림자가 채 가시지 않은 도시 위로 생존한 사람들의 삶의 풍경이 펼쳐지는 영화였다. 죽음은 죽음이고, 살아가는 문제는 또 다른 문제인가? 재난의 현장이 마치 건설 현장을 보는 듯하다. 그러나 북적거리는 재난 현장의 한가운데서 조금만 벗어나자 도시의 또 다른 얼굴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조심스레 구호팀에게 다가와 무너진 건물 밑에 있는 부인의 시신이라도 수습해주기를 부탁하는 50대의 남자. 남자가 인도하는 장소로 따라가 보았지만 시신 수습 과정에서 자칫 2차 붕괴의 위험이 있어 구조가 어렵다는 말을 전해야만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남자는 체념한 채 발길을 돌리면서도 부인의 시신이 깔려 훀는 무너진 건물 쪽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건조한 표정으로 다가와 취재진에게 아이의 시신을 매장한 장소까지 안내해주던 어머니는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빗물에 쓸려나갈까 무덤 위에 덮어놓은 비닐을 부여잡고 있는 손길이 파르르 떨린다. 붕괴된 초등학교 현장. 무너진 건물 틈 사이로 책상이며 책가방이며 신발, 책 등이 보인다. 지진 발생 당시 한창 수업이 진행 중이었을 교실의 풍경이 그려진다.
부상자들이 수용되어 있는 병원을 찾았다. 제대로 된 병원시설이 아니라 운동장 한켠에 부상자들을 눕혀놓고 수술과 치료를 해주는 간이시설에 불과하다. 운동장의 또 다른 한편에선 헬기로 구호물품을 나르느라 이착륙 시 엄청난 먼지를 일으킨다. 환자들은 들것 위에 누운 채 헬기가 일으키는 지독한 먼지를 그대로 받으며 땡볕에 방치되고 있다. 부족한 약품 탓에 마취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수술이 진행된다. 머리를 다쳐 고통에 악을 쓰며 수술을 받는 아이. 그런 아이를 아버지는 머리를 감싸 쥔 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 있다.
밤이 되자 유령도시가 재현된다. 거리는 온통 컴컴해지고 짐을 짊어진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유령처럼 배회한다. 식량이 부족해 물을 붓고 끓인 음식으로 허기를 채운다. 습기로 축축이 젖은 이불을 깔고 차가운 땅바닥에서 잠을 청한다. 날씨가 점점 추워진다. 야간 취재를 위해 들고 다니는 라이트 불빛에 그들의 퀭한 눈빛이 비춰진다. 죽음에 대한 공포감이 어려 있는, 그런 눈빛이다.
부녀자들이 천막 안에 모여 앉아 눈물을 훔치며 서로 부둥켜안고 있다. 십수 명의 주민들이 전선 위의 참새처럼 무너진 담장에 줄줄이 앉아 멍하니 구호작업을 지켜본다. 다친 아이를 업고 몇 시간 거리를 오가며 병원 치료를 받게 한 아버지는 아이를 다시 들쳐 업고 길을 떠난다.
엄청난 재난 이후 고통에 몸부림치거나, 현실을 받아들이거나, 혹은 다시 무언가를 모색하는 움직임을 시작하면서 그들은 그렇게 저마다 비극의 시간을 감내해 내고 있었다.
대지진으로 28초 만에 10만 명의 사람이 사망한 나라,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진입로인 국경 지역 퀘타에서 총기로 위협하는 자들을 피해 야반도주를 감행해야 했던 악몽 같은 기억마저 생생한 이곳, 파키스탄. 쓰레기통 주위를 몰려다니는 까마귀 떼, 검고 진한 자동차 매연, 알록달록 요란하게 치장을 하고 달려가는 트럭들. 익숙한 풍경들이 데자뷰를 일으킨다.
한 시간짜리 다큐멘터리를 며칠 내에 취재해야 하는 빡빡한 일정 탓에 곧바로 지진 피해가 심각하다는 파키스탄 북부 무자파라바드라는 도시로 이동했다. 약 3만 명으로 추정되는 그곳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이번 지진 사태로 희생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일곱 시간을 차로 달려 해발 2천 미터의 산간 지방을 지날 무렵, 말 그대로 칠흑 같은 밤이다. 자동차 라이트에 의존해 조심조심 통과하다가 최초의 지진 발생 지역을 목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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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이굽이 이어지던 산간 도로는 지진 당시 떨어진 바위들로 막혀 있어 야밤에 도로 복구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열악한 장비들밖에 없지만 한시라도 빨리 도로를 복구해보겠다는 현지인들의 다급함이 느껴져 카메라를 들고 촬영을 시작한다. 마침내 차량 한 대가 지나갈 넓이가 확보되자 다시 산길을 달린다. 어둠 속에서 피해 지역 주민들이 짐 보따리를 이고 지고 걸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마치 유령도시를 배회하는 기분이다. 여진의 피해를 우려해 넓은 공터에 마련된 베이스캠프에 짐을 풀고서야 각국의 구호팀, 취재팀을 보며 안도감을 느낀다.
아침이 되어 본격적인 취재를 시작한다. 무너져버린 건물들, 스멀스멀 건물 밑에서 기어나오는 냄새. 쓰나미 취재 이후로 절대로 잊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바로 그 냄새가 난다. 지진 발생 나흘이 지난 탓에 도시 전체에 부패하는 냄새가 넘쳐난다. 무너진 건물을 보고서야, 시신이 부패하는 냄새를 맡고서야 비로소 이곳이 재난 발생 지역임을 체감하기 시작한다. 건물의 잔해를 치워내고 시신을 수습하는 작업이 도시 여기저기서 펼쳐지고 있지만 턱없이 열악한 장비 탓에 작업의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장비 하나 없이 오직 양손에만 의지해 돌을 치워내는 사람들도 있다.
뜨거운 태양 아래 짐을 들고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 무너진 건물 주위에 모여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특유의 요란한 트럭을 타고 어딘가로 이동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 구호물품을 받아보고자 뻗어 올리는 손들, 생존자 및 시신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는 구조단의 드릴 소리, 그리고 혼잡한 도로 위에서 시끄럽게 울려대는 경적 소리. 슬픔이 배여 있는 죽음의 도시라기보다 오히려 북적대고 활기가 넘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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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대지진을 소재로 하여 제작되었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죽음의 그림자가 채 가시지 않은 도시 위로 생존한 사람들의 삶의 풍경이 펼쳐지는 영화였다. 죽음은 죽음이고, 살아가는 문제는 또 다른 문제인가? 재난의 현장이 마치 건설 현장을 보는 듯하다. 그러나 북적거리는 재난 현장의 한가운데서 조금만 벗어나자 도시의 또 다른 얼굴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조심스레 구호팀에게 다가와 무너진 건물 밑에 있는 부인의 시신이라도 수습해주기를 부탁하는 50대의 남자. 남자가 인도하는 장소로 따라가 보았지만 시신 수습 과정에서 자칫 2차 붕괴의 위험이 있어 구조가 어렵다는 말을 전해야만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남자는 체념한 채 발길을 돌리면서도 부인의 시신이 깔려 훀는 무너진 건물 쪽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건조한 표정으로 다가와 취재진에게 아이의 시신을 매장한 장소까지 안내해주던 어머니는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빗물에 쓸려나갈까 무덤 위에 덮어놓은 비닐을 부여잡고 있는 손길이 파르르 떨린다. 붕괴된 초등학교 현장. 무너진 건물 틈 사이로 책상이며 책가방이며 신발, 책 등이 보인다. 지진 발생 당시 한창 수업이 진행 중이었을 교실의 풍경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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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자들이 수용되어 있는 병원을 찾았다. 제대로 된 병원시설이 아니라 운동장 한켠에 부상자들을 눕혀놓고 수술과 치료를 해주는 간이시설에 불과하다. 운동장의 또 다른 한편에선 헬기로 구호물품을 나르느라 이착륙 시 엄청난 먼지를 일으킨다. 환자들은 들것 위에 누운 채 헬기가 일으키는 지독한 먼지를 그대로 받으며 땡볕에 방치되고 있다. 부족한 약품 탓에 마취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수술이 진행된다. 머리를 다쳐 고통에 악을 쓰며 수술을 받는 아이. 그런 아이를 아버지는 머리를 감싸 쥔 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 있다.
밤이 되자 유령도시가 재현된다. 거리는 온통 컴컴해지고 짐을 짊어진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유령처럼 배회한다. 식량이 부족해 물을 붓고 끓인 음식으로 허기를 채운다. 습기로 축축이 젖은 이불을 깔고 차가운 땅바닥에서 잠을 청한다. 날씨가 점점 추워진다. 야간 취재를 위해 들고 다니는 라이트 불빛에 그들의 퀭한 눈빛이 비춰진다. 죽음에 대한 공포감이 어려 있는, 그런 눈빛이다.
부녀자들이 천막 안에 모여 앉아 눈물을 훔치며 서로 부둥켜안고 있다. 십수 명의 주민들이 전선 위의 참새처럼 무너진 담장에 줄줄이 앉아 멍하니 구호작업을 지켜본다. 다친 아이를 업고 몇 시간 거리를 오가며 병원 치료를 받게 한 아버지는 아이를 다시 들쳐 업고 길을 떠난다.
엄청난 재난 이후 고통에 몸부림치거나, 현실을 받아들이거나, 혹은 다시 무언가를 모색하는 움직임을 시작하면서 그들은 그렇게 저마다 비극의 시간을 감내해 내고 있었다.
|설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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