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만남] 아직 끝나지 않은 그의 클로징 멘트 - 『신경민, 클로징을 말하다』 신경민
처음엔 원래 그런 코너가 있었나 싶었습니다. 어느 날 끝나고 이어질 드라마를 기다리는데, 뉴스를 마칠 때 흐르는 클로징 멘트가 예사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혹자는 MBC의 클로징 멘트를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클로징 멘트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글ㆍ사진 채널예스
2010.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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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징 멘트, 언론인의 기본 의무

처음엔 원래 그런 코너가 있었나 싶었습니다. 어느 날 끝나고 이어질 드라마를 기다리는데, 뉴스를 마칠 때 흐르는 클로징 멘트가 예사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혹자는 MBC의 클로징 멘트를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클로징 멘트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2009-04-13
회사 결정에 따라서 저는 오늘 자로 물러납니다. 지난 1년여, 제가 지닌 원칙은 자유, 민주, 힘에 대한 견제, 약자 배려 그리고 안전이었습니다. 하지만 힘은 언론의 비판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서 답답하고 암울했습니다. 구석구석과 매일매일, 문제가 도사리고 있고 밝은 메시지를 전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희망을 품은 내일이 언젠가 올 것을 믿습니다. 할 말은 많아도 제 클로징 멘트를 여기서 클로징하겠습니다. 월요일 뉴스데스크 마치겠습니다.(p.105)


이것이 신경민 앵커의 마지막 클로징 멘트였습니다. 9시 뉴스데스크를 1년하고도 이십여 일 지키고, 저 마지막 멘트로 신경민 앵커는 보도국으로 하차되었지요. 앵커가 하차를 하는 일이야 기실 있을 법한 일이지만, 저 클로징 멘트, 소위 권력 비판 멘트가 주목받기 시작하고, 이를 불편해하는 사람이 등장하면서, 이 하차 사건이 정치적 결정이라는 의혹이 불거진 것이지요. 혹자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9시 뉴스 앵커가 중립을 지키지 못한다고요. 신경민 앵커는 이렇게 말합니다.

뉴스 보도는 사실을 나열하고 전달하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사실을 그 가치에 따라 선택하고 배열하면서 동시에 사실 뒤에 숨은 원인의 상관관계를 따져 설명하고 비판하는 작업이다. 앵커는 보도의 한복판에서 언론인의 기본 의무를 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앵커가 중립적으로 진행이나 잘하라고 말하는 측은 앵커의 임무에 대한 상식을 거부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용비어천가』를 절묘하고 구수하게 노래했더라도 이런 시비를 걸었을지 생각해보면 시비를 거는 측의 정치적 실체와 의도를 바로 알 수 있다.(p.6)

일 년 치의 클로징 멘트와 그 이야기가 『신경민, 클로징을 말하다』로 엮여 출간되었습니다. 이를 기념해 신경민 앵커는 독자 열 명과 특별한 점심시간을 가졌지요. 2월 27일 토요일 점심. 아직 쌀쌀한 바람이 부는 날, 넓은 테이블에 둥그렇게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 시간. 음식이 차려진 줄도 모르고, 식는 줄도 모르고, 질문하고 경청했던 그날의 식사 시간을 살짝 보여 드릴게요.

카메라 너머로 번뜩이던 눈빛 대신 부드러운 눈짓으로, 독자들과 눈을 마주치며 신경민 앵커는 천천히 이야기를 해 나갔습니다. 독자들도 순서 없이 편하게 질문하고, 대꾸했고, 가끔 날 선 질문들을 신경민 앵커의 접시 위에 얹기도 했었지요. 무엇보다 클로징 멘트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는 시작되었습니다. “클로징 멘트를 쓸 때, 가장 중요시한 것은 무엇이었나요?” 독자의 질문에, 그는 “팩트의 타당성”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유, 민주, 평화, 약자 배려, 평등, 권력 비판……. 주제는 대개 이렇습니다. 사실 주제를 선택하는 것에서부터 팩트에 대한 확인을 굉장히 철저하게 합니다. 논리를 검토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나만의 논리가 되어서는 안 되니까요. 적어도 절반은 승복하게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합니다. 이러이러해서 문제가 있다고 해야지, 나쁘다고 표현하지 않습니다. 대개 열심히 썼다가, 필요 없는 표현을 지워 나가는 식으로 멘트를 준비합니다. 멘트는 30~40초인데, 그걸 쓰기 위해 대부분의 경우 몇 시간씩 작업을 합니다.”

부정을 비판하는 때에도, 우호적인 이미지와 부딪칠 때 어려움이 특히 많다고 합니다. “기사를 써 보면, 잘생긴 사람 욕하기가 쉽지 않아요.(웃음) 잘못 욕하면 내가 나쁜 놈이 됩니다. 되려 나를 보고 ‘저 자식이 나쁜 놈 아니냐!’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는 거지요. 이래서 팩트나 논리 점검을 철저히 하죠. 특히 잘생기거나 우호적인 이미지를 가졌거나 종교계 인물에 관해서 언급할 때는 이런 어려움이 더합니다. 만약 잘생겼는데, 언론에서 나오는 이미지도 우호적인데 엉망진창인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언론이 책임을 다하지 못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는 그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하는지가 중요한 거죠.”


뉴스를 편집하는 클로징 멘트

2009년, 시국을 달군 뜨거운 뉴스거리들에 대해 일침을 가한 클로징 멘트는 많은 이들의 속을 시원하게 긁어 주는 한마디가 많았습니다. 네티즌들은 인터넷에 그의 멘트를 퍼 나르면서, 응원했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논쟁거리도 되었고, 클로징 멘트는 때때로 위험한 멘트(!)가 되기도 했습니다. 가장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KBS의 왜곡 보도를 언급했던 클로징 멘트를 기억하실 겁니다.

2009-01-01
이번 보신각 제야의 종 분위기는 예년과 달랐습니다. 각종 구호에 만여 경찰이 막아섰고요. 소란과 소음을 지워버린 중계방송이 있었습니다. 화면의 사실이 현장의 진실과 다를 수 있다는 점 그래서 언론 특히 방송의 구조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점을, 시청자들은 새해 첫날 새벽부터 현장실습 교재로 열공했습니다. 2009년 첫날 목요일 뉴스데스크 마치겠습니다.(p.14)


여러 면에서 파장이 참 길~었던 멘트, 책 속에서도 가장 먼저 언급되는 멘트이기도 한데요. 이 멘트를 작성하고 방송하기까지 많은 고민과 갈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분명한 사실 하나는 누구도 현장의 진실을 영원히 감추지는 못한다는 점이다.”(p.21) 이렇게 투철한 기자 정신이 요구되는 까닭은, 세상이 자꾸 진실을 가리려고 하고, 그것을 가리려는 자가 있기 때문일 겁니다. 독자들이 물었습니다. 그 엄격한 방송의 세계에서 이렇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가 있었느냐고요. 앵커님 말씀으로는 클로징 멘트는 아나운서의 영역. 사전 검열이나 승인이 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검열을 할 수는 없지만, 여러 가지 불편한 얘기가 많이 오갔다고 해요. 외부에도 내 멘트를 모니터하는 기관이 많다고도 하고요. 정치나 방송 관련된 기관들에서 모니터하면서, 이야기를 했을 거고, 그게 회사로 피드백이 됐고, 에코가 됐겠죠. 회사 안에서 두런두런하는 소리가 있었죠.”

2008년 3월 말 앵커를 시작하자 멘트에 대해 찬사와 비난이 함께 쏟아졌다. 의외의 찬사는 신문에서 멀어진 20대 젊은 학생들에게서 나왔다. 비난은 권력층에서 은근하고 집요하게 나왔다. 권부 안에 내 멘트를 기록하면서 자료 축적과 분석이 이뤄지고 있다고 귀띔하는 사람이 있었다. (…) 회사와 타 방송사의 지인들은 여기저기에서 들었다면서 앵커의 안위를 걱정해왔다.(p.100)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로징 멘트를 이어나간 것은, 그것이 언론인의 의무라고 생각했기 때문. 그가 클로징 멘트에서 감춰질 뻔했던, 혹은 왜곡되었던 문제를 언급한 것은 단순한 정치 비판도, 논쟁을 일으키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그 멘트가 일종의 뉴스 편집 기능을 하고 있었다.

“멘트를 잘 보면, 본 뉴스가 다루지 않은 뉴스가 있기도 하고, 본 뉴스가 다룬 것과 다른 포인트로 얘기하는 것도 있어요. 아주 예민한 문제의 경우, 담당자가 뉴스에서 편집할 수도 있잖아요. 하루 종일 작업을 해서 빼놨는데, 제가 클로징 멘트로 얘기해 버리면, 작업이 무산되는 거잖아요.(웃음) 빼려고 하는 기류가 있으면 저에게 얘기를 안 하죠.

제가 앵커뿐 아니라 편집 데스크도 오래 봐서, 편집 판단을 잘합니다.(웃음) 이 꼭지를 올리거나 내리거나, 빼거나 방향을 어떻게 하거나 결정하는 편집 판단 기록이 좋아요. 앵커라기보다는 편집을 판단하는 사람으로서 클로징 멘트를 판단하기도 했죠.

제가 ‘왜 이 뉴스를 뺐느냐?’고 물으면, 어쩌고저쩌고 이유가 있잖아요. ‘그래? 뺐단 말이지? 그럼 내가 할게.’ 이렇게 나오면 다시 편집하는 경우도 있거든요.(웃음) 제가 생각해도 불편했을 거예요. 하지만 그게 저로서는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었죠. 이걸 뉴스로 다루지 않고, 진행되면, 기자의 양심상 이건 뉴스가 아니라고 생각한 거죠.”



베스트(Best)가 제자리에 있어야

저번 정권과 이번 정권, 언론이 대하는 태도가 너무 다른 것이 아니냐고, 토픽 자체가 다른 것 같다는 질문도 나왔습니다. “지금의 정권 보도는 깊이도 없고, 다양하지도 않다. 그런 이슈는 인터넷에서 더 많은 것이 다뤄지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이전과 달리 MB 정권에 대해 별말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는 다시 한번 뉴스 편집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영화가 종합 예술이듯이 뉴스 편집도 총체적인 거거든요. 인생관, 학식, 철학, 역사관 총체적으로 필요한 데다가 자기 의무가 수반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뉴스 편집이 굉장히 어렵습니다. 저는 뉴스 편집을 앵커 일보다 오래 했습니다. 만약에 그런 사안을 다룰 때, 제가 편집하면 스트레이트포워드, 충실하게 했겠지만, 지금 편집된 뉴스를 보며 불만이 있다는 것은, 그게 지금 제대로 안 된다는 얘기겠죠. 제가 뉴스를 하고 있을 때에도, 편집진하고 갈등이 많았습니다. 왜 이걸 이렇게 적게 다루나. 왜 이렇게 다루나. 그런 갈등의 발로가 클로징 멘트입니다. 하지만, 제가 뉴스를 하고 있을 때도 ‘뉴스가 좋았다.’ 이렇게 권할 수 있나, 하는 자책감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뉴스 편집이 훌륭하게 이루어지려면, 편집자가 훌륭해야 합니다. 가장 지혜롭게 편집할 수 있는 사람이 제자리에 있어야 하지요. 여기엔 자연히 인사의 문제가 중요시됩니다. “우리가 좋은 뉴스를 하려면 편집자가 훌륭해야 하고. 그러려면 현실의 공영 방송 체제가 아니라 진짜 논리적이고, 이상적인 공영 방송 체제가 갖춰져야 좋은 편집자가 나온다고 봅니다. 사장의 문제도 있지만, 사장 문제가 처음이 아닙니다. 사장이 바뀔 때마다 ‘좋은 사장이냐, 아니냐.’ 싸웠고, 사장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죠. 사장이 그렇게 되니까 베스트가 있어야 할 자리에 오지 못하게 됩니다. 어떤 것이 바람직한 편집인가, 좋은 편집인가에 관한 문제보다는, 베스트(best)가 제자리에 가지 못하는 구조적인 문제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제 뉴스를 그대로 신뢰할 수 있는 사회는 아닌 것 같습니다. 아무리 진실은 밝혀지는 법이라고 해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무척이나 많으니까요. 뉴스를 믿을 수 있는 사회, 가능할까요? 독자들도 한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좋은 뉴스를 보고 싶다고. 신뢰할 수 있는 언론을 만나고 싶다고요. 이런 위기의식에 대해 신경민 앵커도 충분히 공감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역시 실력을 쌓아야지.’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나도 줄을 잘 서야지.’ 생각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고, “좋은 언론(혹은 좋은 언론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꾸준히 지켜보는 게 중요”하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자존심, 나에게는 무한대의 값어치

신경민 앵커님은 요즘 어떤 책을 읽으시는지 물었더니 주로 사회과학 책을 즐겨 읽는다고 합니다. 이날 독자들에게는 『저널리즘의 기본요소』를 추천해 주셨습니다. “저널리즘과 상관없이 볼 만한 책입니다. 굉장히 좋은 책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회사 생활을 하는 사람은 볼만할 겁니다.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공부 많이 하는 게 좋아요. 처세술이나 생존법을 알려 주는 책보다, 좋은 책, 현실적인 책을 보세요. 이 나이 되어서 박사가 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현실적인 지혜가 담긴, 실행 가능한 책을 보세요.”

마지막으로, 소신을 밝히는 문제에 대해서 언급했습니다. 언론인으로서, 사회인으로서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것은 용기에 해당되는 문제라고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두려움이 있죠. 어떤 경우에는 오늘은 이 얘기를 꼭 해야겠다 맘먹고 하기도 하고, ‘오늘은 참자.’ 하는 경우도 있고. 아까 얘기했듯이 편집 판단에는, 인생관과 역사관이 다 들어가는데 거기에 더해지는 게 용기입니다. 마지막 판단은 용기입니다. 이걸 쓰느냐, 안 쓰느냐는 기본적으로 용기에 관련된 부분이죠.

누가 물어보더라고요. 잘난 것처럼 살았는데, 그걸 지탱해 주는 힘이 뭐냐고요. 그래, 나도 한번 생각을 해봤죠. 아마 그것은 자존심일 겁니다. 편집을 잘하고, 글을 잘 쓰려고 노력하고, 용기를 가지려고 하는 일련의 과정이 따지고 보면, 그 밑바닥에 있는 건 최소한의 자존심일 겁니다. 내 이름 석 자를 더럽히지 않겠다는. 그 자존심을 어디다 쓸 거냐고요? 쓸 데는 없지.(웃음) 시중에는 값어치가 없어서. 그러나 나에게는 무한대의 값어치를 가집니다.”


갑작스러운 앵커 하차로 나는 방송기자로서는 침묵하게 되었다. 다른 역할로 옮겨가거나 아니면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내가 지닌 생각과 주장이 언론의 어디에선가 메아리로 울려 나오기를 바란다. 생각 깊은 후배 기자와 앵커가, 제대로 된 마이크와 카메라를 준비하고 있을 것으로 희망해본다.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언론의 일을 여기서 멈출 수는 없기 때문이다.(p.302)

#신경민 #클로징을 말하다
5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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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gnose

2012.03.21

글쎄요, 뉴스라는 건 어디까지나 사견을 섞지 않는 사실만을 말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단순한 클로징 멘트라 해도 뉴스에서 아나운서가 그런 식으로 말한다면 일반 사람들이 그와 같은 의견을 갖게 되지 않을까요? 차라리 나중에 책을 써서 낸다면 몰라도 뉴스 시간에는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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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2.03.20

지금은 방송국을 그만 두시고 민주 통합당 대변인이 되셨죠. 영등포 지역 후보자로 서게 되시는데 결과는 20여일뒤에 나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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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

2010.03.25

감동깊은 인터뷰네요. '현실적인 지혜가 담긴, 실행가능한 책을 보라'는 말이 가슴에 닿네요. 요즈음의 제 독서고민에 좋은 조언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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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채널예스는 예스24에서 운영하는 콘텐츠 플랫폼입니다. 책, 영화, 공연, 음악, 미술, 대중문화, 여행 등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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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민

1953년 8월 전주에서 태어났다. 지방지의 기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기자가 된다. 1971년 서울대 문리과 대학 사회학과에 입학했다. 유신 정국으로 시국이 어수선해 학기 내내 학교를 다닌 기간은 두 학기에 불과하다. 대학시절의 대부분을 길거리와 문리대 앞 다방에서 공부를 했다. 1980년 가을 문화방송의 입사 시험에 합격했지만 신군부의 기자 해직 사태로 인해 입사 취소 직전까지 갔다가 다음해 초 입사했다. 사건, 국제, 법조, 교육, 북한, 외교 담당 기자와 외교, 사건 데스크를 거쳐 2000년 초 워싱턴 특파원으로 일하고 이후 부장과 부국장, 국장을 지냈다. 미국 의회 펠로우와 인디애나 대학교 언론 대학 펠로우로 각각 1년을 보낸다. 뉴스 진행을 선호하지 않았음에도 여러 차례 진행 경력을 쌓았다. 1986년부터 1년 정도 뉴스 데스크의 '보도국입니다' 코너를 맡아 새끼 앵커로 데뷔했고 1993년 초부터 1년 동안 '뉴스 데스크' 주말 엥커, 1998년 가을부터 열 달 동안 아침뉴스 앵커로 일했다. 2008년 3월 말부터 1년여 동안 '뉴스 데스크'의 앵커를 했다. 신경민의 특징인 클로징 멘트는 2007년 이후에 매일 이어졌다. 2009년 4월 13일 뉴스 데스크 앵커에서 교체된 뒤 보도국 선임 기자로 일하며 30년 8개월간 언론인으로 일했다. 2012년 1월 민주통합당 대변인을 거쳐 같은 해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영등포을에 당선됐으며 2013년 5월 초선의원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최고위원에 선출됐다. 저서로는《신경민의 개념사회》《신경민, 클로징을 말하다》, 공저로는 《대학생이 된 당신을 위하여》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