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이 플라토노프(Андрей Платонов/ Andrei Platonov, 1899-1951)는 엄밀히 말해서 SF작가는 아니다. 그는 노동자의 아들이었다. 극도로 가난한 가정에서 13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나 플라토노프는 18세에 공산혁명을 목격하고 깊은 감명을 받는다. 그리고 마을마다 생겨난 노동자 문화학교와 문학클럽에서 글쓰기를 배워 플라토노프는 내전이 진행 중이던 1920년에 지역 문학 클럽에서 시인으로 데뷔했다. 혁명 후 그는 대학에 진학해서 공학을 전공하고 건설기술자로 근무했다. 러시아 제국에서는 귀족만이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었으나 혁명 후 소련에서는 학교 교육이 모든 사람에게 무료로 제공되었다. 그러니 플라토노프는 공산혁명의 성과를 현실적으로 누리게 된 첫 세대라 할 수 있다.
「마르쿤」(Маркун, 1921), 「태양의 후예들」(Потомки солнца,1922), 「달의 폭탄」(Лунная бомба, 1926)은 플라토노프가 사회주의 혁명 시인에서 현실 비판적인 소비에트 작가로 작품세계의 성격을 바꾸어 나가는 과정에서 발표한 SF 단편들이다. 「마르쿤」은 무한동력, 「태양의 후예들」은 대규모 건설공사를 통한 지리와 기후 최적화, 「달의 폭탄」은 제목대로 달을 향한 우주 탐험을 소재로 한다. 그러나 이 세 단편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기술적인 시도의 성공 여부가 아니다. 세 작품 모두, 결말에서 주인공들은 기술적인 시도가 성공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슬퍼한다.
‘... 오직 지금에야 나는 살기 시작했다. 오직 지금에야 나는 세상이 되었다.
내가 감히 그 시도를 한 첫 번째 사람이다.’
마르쿤은 잠이 깨기 시작하는 창백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이해해서 무척 괴롭다. (「마르쿤」, 플라토노프 선집 1권, 31쪽)
마르쿤은 자연에 무한한 힘이 있다고 믿으며, 그런 믿음에 기반하여 무한동력 기계를 제작하기 시작한다. 그는 자연의 무한한 힘을 가진 금속을 채굴해서 자신의 무한동력 모터에 설치하면 인간이 지구 중력을 이기고 우주로 나아갈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한 반발력을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 가정한다. 그러나 인용문에 보이듯, 모터가 돌아가며 땅을 파기 시작하고 “자연과 자신 사이의 장벽이 사라지는” 순간을 맞이하자 마르쿤은 자신이 ‘너무 많은 것을 이해’한다는 이유로 괴로워한다. 자연은 무한히 강하고 위대하며, 자연과 인간 사이의 장벽이 사라지는 순간 인간은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달의 폭탄」에도 이런 관점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주인공인 기술자 페터 크레이츠코프는 달 궤도에 진입할 우주선을 개발하던 중 자동차 사고로 어린 소년을 치어 죽게 한다. 그러나 기술자협회가 나서서 크레이츠코프가 살인의 의도는 없었고 단지 과실이었음을 증명하고, 크레이츠코프는 감옥에서 풀려나 다시 우주선 개발에 집중한다. 마침내 제목과 같은 우주선 ‘달의 폭탄’ 호가 달 궤도에 진입하고, 크레이츠코프가 달 착륙을 앞두고 지구에 통신을 보내며 작품은 끝을 맺는다.
부디 모두에게, 사람들이 완전히 잘못 알고 있다고 말해 주시오. 세계는 사람들의 지식과 일치하지 않소. 은하수에서 일어나는 재난이 보이시오? 역방향의 푸른 흐름이 일어나고 있소. 이것은 성운도 별무리도 아니오... (「달의 폭탄」, 플라토노프 선집 제1권, 59쪽)
크레이츠코프는 이렇게 우주적인 대재난을 예견한 뒤 ‘달의 폭탄’ 호가 하강하고 있으며 자신은 우주선에서 탈출할 것이라 말하고 지구의 동료들에게 영원한 작별을 고한다.
크레이츠코프는 어린이의 생명을 잃게 하는 중대한 과실을 저질렀다. 그런데 기술자협회도 사법부도 그가 능력이 뛰어나니 국가 발전을 위해 다시 우주선 연구를 해야 한다고 결정한다. 그러나 크레이츠코프는 달 착륙 시도가 성공하는 순간에 그 모든 논리가 틀렸으며 파멸은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태양의 후예들」에서 주인공 보굴로프는 대규모 공사를 통해 지구의 산과 언덕을 평평하게 고르고 바람의 방향을 바꾸어 지구 전체의 기후를 온난하게 변화시킨다. 대규모 건설공사를 통해 기후를 변화시키면 인간이 더 살기 좋아질 것이라는 상상은 보그다노프의 『붉은 별』이나 이반 예프레모프의 『안드로메다 성운』 등 다른 20세기 초중반 소련 SF에도 자주 나타난다. 그러나 「태양의 후예들」에서 보굴로프는 어린 시절 사랑했던 소녀의 죽음을 언제나 마음속에 품고 있다. 그리고 그 어떤 과학기술적 성공으로도 죽음과 상실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가 최종적으로 기후변화 시도에 성공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세 작품에서 플라토노프는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의 실존적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고 말한다. 사람은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고 이미 죽어 상실한 존재는 되돌릴 수 없다. 플라토노프는 이런 인간의 한계에 대해 슬퍼하고 죽어서 곁을 떠난 사람을 애도한다. 그리고 이런 실존적인 슬픔과 근원적 상실에 대한 애도는 이후 플라토노프의 작품세계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된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다, “사람들이 아는 것은 모두 틀렸다”는 인간의 한계에 대한 고찰은 이후 소련 작가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노변의 피크닉』(1972)이나 폴란드 작가 스타니스와프 렘의 『솔라리스』(1961) 등에도 나타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이 시작되면서 자유진영에 대항한 공산진영의 과학기술 경쟁, 우주정복 경쟁이 심화되었다. 그러면서 과학기술이 최고라는 무조건적인 신념이 공산주의와 소련 정권에 대한 찬양으로 이어졌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위의 작가들은 작품 속에서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은 작고 나약하고 언젠가 죽는 존재라는 실존적 한계를 돌아보고 인간의 자만심을 비판했다.
그런데 플라토노프 작품의 특징은 인간의 실존적 한계를 슬퍼하고 애도하며 측은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그의 작품들이 매력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관점 때문에 플라토노프는 스탈린에게 미움받았다. 그는 반정부 작가로 낙인찍혀 평생 고통받다가 가난과 질병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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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라
SF와 환상 문학을 쓰고 번역도 한다. 2022년 부커상 최종 후보에 선정됐다. 지은 책으로 『문이 열렸다』, 『죽은 자의 꿈』 등의 장편 소설과 『저주토끼』 『왕의 창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