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긋한 북살롱] 그녀가 쓴 영화 카피는 섹시하다 - 『크리에이티브 테라피』 윤수정
이제는 몸짱, 얼짱에 이어 뇌짱(?)까지 되어야 하는가! 이것 중 어느 것 하나 해당되지 못하는 필자는 두 팔을 걷어 부치고 홍대 상상 마당을 찾아 나섰다. 지난 10월 4일이었다.
글ㆍ사진 채널예스
2010.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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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매혹시키는 행복한 고민 “크리에이티브는 뇌로 하는 섹스다.”


나이나 학벌, 성별, 환경 등은 결코 인간의 한계가 될 수 없다. 한계가 있다면 그것은 할 수 없다는 스스로의 마음이 지어놓은 울타리일 것이다. (p.29)

몸이 아닌 생각으로, 소통하고 배려하며, 책임지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끊임없이 훈련하고, 수없이 준비하고, 때론 상처받고, 그러나 최고의 기쁨과 보람을 얻을 수도 있는 일, 그러나 서로를 이해하며 서로를 위해 행복을 만들어내는 일. 그것이 ‘뇌로 하는 섹스’ 크리에이티브다. (p.133)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 (p.151)

사람과 사람이 포개지면 '인골탑'이 되지만 사람과 사람이 수평으로 손을 잡으면 '강강술래'라는 유희가 되고, 문화재가 되어 100만 대군도 막아내고 수천 년 역사를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p.251)


이제는 몸짱, 얼짱에 이어 뇌짱(?)까지 되어야 하는가! 이것 중 어느 것 하나 해당되지 못하는 필자는 두 팔을 걷어 부치고 홍대 상상 마당을 찾아 나섰다. 지난 10월 4일이었다.

『크리에이티브 테라피』 책은 출판이 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책 재쇄가 결정됐다. 재쇄란 국내에서 발간 책 중 10%에 해당된다. 상상마당 측에서도 광고가 없었고 작가로서도 무명에 가까운데. 출판업계에서도 이례적인 일로 보고 있다.

“책은 어떻게 보면, 우연히 만들어졌다. 시작은 우연이었다. 강좌 제의를 받았는데 카피라이터가 아니라 크리에이티브였다. 낯선 용어였지만, 도전해 보고 싶었다. 책이 나왔을 때 사람들이 말하는 ‘불가능’ 중 하나가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의 『공감의 시대』가 최근 출간되었다. 그는 책에서 공감적 특성이 진화해 온 과정을 들여다보고 문명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줬다.

그 중 「10장 포스트모던의 실존적 세계에 담긴 심리학적 인식」에서 창의성에 관하여 야코프 모레노의 견해를 인용했는데, 다음과 같다.

20세기 심리학적 의식이 형성되는 데 끼친 모레노의 영향은 대단했다. 심리학자이자 사회학자였던 모레노는 낭만주의자들처럼 인간의 본성은 창의성이서 무엇보다 창의적인 삶을 살 때 인간은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 역시 창의성은 고독한 상황에서 발휘되는 것이 아니라(그런 것은 천재의 작업이다) 사회적 교재를 통해 이루어지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창의성을 자극하고 사회적 신뢰를 만들어 내는 수단으로서 역할 연기와 즉흥 연기를 비롯한 연극 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공감의 시대』p.506)

저자 윤수정이 말하는 크리에이티브 역시 이런 맥락에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자신이 읽은 책, 자신이 본 영화,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 자신이 접하는 경험들을 자신의 '크리에이티브'와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무리 책을 읽고, 아무리 여행을 다니고, 아무리 좋은 경험을 겪어도 결국 그 재료들을 써먹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본인이 읽은 책이, 본 그림이, 경험이, 그 자체로 '크리에티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그 안에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그 안에는 사람이 보여야 한다. (p.274)

우리는 천재적인 아마데우스보다 그를 질투한 살리에르를 더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평범하다고 하는 것은 특별한 재능을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어렵다. 그것에는 성실성이 뒷받침 되어야하고 열정이 수반되어야 한다. 크리에이티브 역시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타인과 소통하는 방법, 그것은 제러미 레프킨이 말하는 '공감'을 찾는 방법이고, 감성을 자극하는 훈련인 것이다.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감상하고 나서 '난 정말 오늘 크리에티브한 활동을 했어.' 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그림을 보고 다른 어떤 것의 생산으로 이어지고, 더 나아가 타인과 자신이 생산한 어떤 것을 가지고 소통하는 것. 그것이 바로 크리에티브한 활동이 되는 것이다.

크리에이티브 그래서 너는?─작가의 이야기

나는 크리에티브 지진아였어요!


“글짓기 같은 대회를 나가면, 혜성같이 나타나 장원을 채가는 아이들이 있잖아요. 저는 기껏해야 가작 장려상 정도만 받았어요.

상을 받아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았죠. 대학 국문과를 진학했어요. 제 아버지 같은 경우 신춘문예에 등단하여 20대 작가로서 삶을 살 줄 아셨어요. 아버지는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셨어요.

저는 그 꿈을 이루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어요. 그런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친구들에게 크리스마스 카드 쓰는 것도 벅찬 사람이 저 거든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지금 이 시점에 돌아보면 바로 알 수 없어서 헤맸던, 혜성 같은 한 줄을 내세우지 못해서 괴로워하고, 스스로 포기할까 하며 망설이던, 끝까지 실날처럼 부여잡았던 그 순간이, 제 안에 느낌의 언어를 만들냈던 것 같아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예를 들면, 야한 이야기로 시작했으니까 야한 이야기로 해보면, <스물셋>이라는 영화가 있어요. 스물세 살 섹스보다 키스가 좋아졌다. 라는 카피를 썼어요. 한 남자가 여러 가지를 하다가 비로소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가 영화의 내용이에요. 그런 카피를 쓸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가 그런 것에 대해 고민을 해 볼 수 있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죠.

만약 혜성처럼 반짝반짝한 언어로 (사람들에게) 각광을 받는데 익숙해져 있다면, 스스로에 대한 고민은 원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늦은 시간 더디어 오는 것들. 그만큼 많은 것들을 차곡차곡 쌓아둘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소통의 다른 이름 크리에이티브

웃는 아이들은 주변을 둘러보는 법이다. 원하는 것을 가지지 못하는 아이는 책 한권의 소중함, 연필 한 자루의 특별함을 안다. 삶의 다양한 표정들을 더 많이 목격하고 느끼고 싶다면 순탄한 삶보다 굴곡 많은 삶이 유리하다. 당신이 기억하는 작가들, 화가들, 영화감독들을 떠올려 보라. 부족할 것 없는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나 더할 나위 없는 교욱을 받고 근심 하나 없는 얼굴로 해맑게 웃고 있는 사람들이 그 안에 보이는가? 상처, 시련, 가난 …… 세상의 사전에서는 피해라고 가르치는 것들이 크리에이티브의 세계에서는 특혜가 된다. (p.292)

현대에 사는 우리는, 관계중독이라고 불릴 만큼 사람에 치이고 그만큼 사람을 그리워한다. 요즘에 새로운 종교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름하여 '물신'이다. 이것은 교회나 절처럼 특별한 장소가 필요하지 않다. 성공은 특강이 되고, 실패는 인간극장이 된다. 그러나 인간 극장 역시 그 시련을 딛고 일어선 사람들의 이야기다. 따라서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은 성공의 화려한 겉모습 뿐이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 이 땅에 숨을 쉰다는 것은, 자질구레하고 추레한 모습이지만, 떳떳한 자신의 진실을 상대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우리가 진짜 소통이 필요한 이유는, 진짜로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타인과의 번지르르한 말과 겉모습보다는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귀 기울어 보고, 그것을 정리해보고, 그리고 타인과 ?나는 것은 어떨까?

‘상처’가 있다는 말 대신에 ‘그거 상처 아니야. 난 더 큰 상처를 준비하고 있어.’라고 말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것이 날 것 그대로가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서 승화된 목소리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통은 크리에이티브의 다른 이름이다.

독자가 말하는 크리에이티브

이 날의 강연회는 한 시간 사십분 가량 진행되었다. 사회자의 미끈거리는 유머와 저자 윤수정의 시원시원한 목소리가 상상마당 공간을 채웠다.

참석한 사람들에게 물었다. 크리에이티브란 (□☆○◇) 다.

크리에이티브란 내가 걸었던 발자국이다.
- 내가 했던 말들, 내가 했던 일들. 새로운 것이 아니라 내 이야기에서부터 시작을 한다고 생각해요.

크리에이티브란 물음표 속에 느낌표다.
-물음표에 관한 굉장한 강박감이 있었어요. 항상 물음표 보다는 느낌표가 많아야 된다고 생각했었어요. 내가 생각했던 것에 대해서 뭔가 깨달아야 하고, 내가 생각했던 것에서 뭔가 조금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오늘 강연을 듣고 나서 더 많은 것이 아니라 물음표 속에서 느낌표 하나만 있더라도 그게 정말 크리에이트브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크리에이티브란 번개이다.
-번개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하는 순간에 번쩍하는 거잖아요.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놀라는 사람도 있고,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고, 그것을 또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요. 그 다음 번개라는 것이 비가 오면 치는 거잖아요. 그런데 또 꼭 비가 온다음에 치는 것은 아니잖아요. 똑같은 상황에도 사람마다 다르잖아요. 번개를 보는 위치가 있는가 하면 못 보는 위치도 있는 것이구요. 작가 선생님처럼 크리에이티브에 관한 강연을 하는 사람도 있고 이렇게 듣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크리에이티브는 우리 일상에서 번개 같아요.

크리에이티브란 홍대이다.
-10년 전부터 홍대를 오기 시작했습니다. 홍대를 처음 왔을 때는 무척 좋아했습니다. 10년 후의 지금을 돌아보면, 예전에는 호기심에 이곳에서 크리에이티브를 찾았다면, 현재는 일 때문에 크리에이티브를 찾아야만 하는 곳이 홍대인 것 같습니다.

크리에이티브란 스펀지에 나오는 네모다.
-수학처럼 정답이 없고, 모든 사람이 생각하는게 다르기 때문에, 끊임없이 네모를 채워야 하는 것 같아요.

한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사람을

제가 좋아하는 영어 문장에 'One for All, All for one' 이란 말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모두를 위하고, 모두는 한 사람을 위한다는 뜻입니다. 같은 의미로 <화엄경> 법성게에 ‘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切多卽一)’ 이란 말이 있습니다. 하나가 곧 전체이고 전체가 곧 하나라는 가르침입니다. 한 사람은 모두를 위하고, 모두는 한 사람을 위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곧 진정한 깨달음이고 진리의 세계입니다. (법정,『한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사람을』p.154)

결국, 크리에이티브는 '편의'가 아니라 '편리' 일지 모른다. 편의는 형편이나 조건 따위가 편하고 좋음을 뜻한다. 반면에 편리는 편하고 이로우며 이용하기 쉬움이라는 사전적 뜻을 가진다. 자신의 편의에 따라 크리에이티브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모두가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에서 크리에이티브는 편리이고 그래서 어느 한쪽은 이익을 받으나, 다른 쪽은 이익도 해도 없는 공생의 한 양식을 뜻하는 편리공생(片利共生)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윤수정의 『크리에이티브 테라피』는 말하고 있는게 아닐까?



#크리에이티브 테라피 #윤수정
4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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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gnose

2012.09.13

크레이티브 하면 그냥 창의적인 뭐 이런 거 정도 밖에 생각안했었는데.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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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2.03.11

크레이티브 테라피 영어를 고스란히 옮겼네요. 제목만으로는 그다지 창의 성과 관련 없이 느껴져요. 홍대에서 창의 성을 찾으신다면 삼청동이나 효자동은 어떤가요. 예스러움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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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sdc

2010.12.01

잘보고갑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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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수정

카피를 쓴다. 광고와 크리에이티브를 강의한다. 닭, 오리 등의 가금류와 익힌 어류, 게로 만든 요리를 못 먹는다. 전생에 새, 게와 친한 인어공주(생선공주)였다고 생각한다. 중학교 1학년 때 교과서에 수록된 큰 바위 얼굴에 감동, ‘나는 얼굴이 작으니 얼굴 큰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결심하여, 그 꿈을 이룬 남편과 즐겁게 인생 동행 중이다. ‘네가 힘이 된다.’는 아버지의 유언을 품고, 지나온 시간들에 감사하며 살아갈 시간들에 용기를 내고 있다. 이화여대에서는 국문학을, 고려대에서는 영문학을 배웠다. 광고대행사와 영화사에서 카피와 마케팅을 익혔다. 영화, 축제, 식품, 화장품, 드라마, 게임, 음반, 책 등 다양한 분야의 카피를 맡아 왔고, 맡아오고 있다. 영화 소개 칼럼을 연재했고, 라디오에서 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진행했다.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을 처음으로 한국 영화계에 도입했으며 현재까지 영화전문 프리랜서 카피라이터로서는 유일한 사람이다. 예술영화, 독립영화는 물론 블록버스터와 애니메이션까지 장르와 크기를 불문한 한국 영화 80여 편과 외국 영화 70여 편의 카피를 작업했다. 서울예대 광고창작학과와 콘텐츠진흥원 아카데미에서 광고와 크리에이티브를 강의한다. 상상마당 아카데미에서 ‘크리에이티브 테라피’라는 강좌를 열고 있으며 2년 동안 매회 조기마감의 성황을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