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출생의 비밀은 ‘부정선거’였다
개가 미쳤다. 웃음을 참지 못한 채 뒹굴고 있다. 뒤엔 ‘개표장’이 있다. 가축병원에 데리고 갔다. 수의사가 개와 무슨 이야긴지를 주고받는다.
글ㆍ사진 고경태
2011.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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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미쳤다.
웃음을 참지 못한 채 뒹굴고 있다. 뒤엔 ‘개표장’이 있다. 가축병원에 데리고 갔다. 수의사가 개와 무슨 이야긴지를 주고받는다. 궁금한 주인공이 묻는다. “아니 뭐라고 합니까?” 수의사가 답한다. “그걸 선거라고 치렀냐고 웃습니다.” 주인공의 머리가 띵~. 이번엔 개판이다. 누군가 작은 방문 앞에서 확성기를 들고 소리친다. “단돈 10원이면 선거결과를 알 수 있습니다.” 궁금한 주인공이 10원을 내고 들어간다. 방 안엔 딱 두 글자만 붙어있다. “개판.”


아버지의 스크랩 제6권(1967년1월~1968년12월)을 펴자마자 눈에 들어온 건 만화였다. 아버지는 신문기사를 스크랩할 때마다 관련된 4컷 시사만화를 붙여놓았다. 1권 때부터 했던 일이니, 새삼스럽지는 않다. 그런데 6권엔 유독 새록새록 추억을 일깨우는 작품들이 많다. 그 어느 때보다 풍자에 날이 서 있다.

초등학생이 되기 전부터 나는 아버지의 스크랩을 꺼내들고 만화를 보며 키득키득 웃었다. 중학생 때도, 고등학생 때도, 대학교와 직장에 다닐 때도 그랬다. 신문기사는 제목만 훑었다. 아버지가 쓴 시나 메모는 읽는 둥 마는 둥 했다. 거의 만화 중심으로만 섭렵을 한 셈이다. 어린 시절엔 그 안에 담긴 정치사회적 맥락 따위는 알 바 없었다. 그림만으로도 충분히 재밌고 웃겼다. ‘개’가 등장하는 두 만화도, 그래서 평생 잊지 못했다. 옛날에 받았던 느낌은 이런 것이었다. ‘실성한 개를 데리고 병원에 가다니 진짜 웃긴다.’ ‘개판? 이런 말은 선생님이 쓰지 말라고 했는데 신문에 버젓이 실리네.’

그 만화는 당대 신문만화계에서 쌍벽을 이뤘던 김성환 화백의 ‘고바우영감’(당시 <동아일보>)과 안의섭 화백의 ‘두꺼비’(당시 <조선일보>)였다. 아버지의 스크랩에 가장 많이 등장한다. 직설적인 톤으로 사회의 부조리를 뒤틀고 조롱하며 40여 년 간을 풍미했던 캐릭터다. 적어도 70년대까지는, 다른 신문의 만화들과는 잽이 되지 않았다. 그 만화들을 다시 본다. 이젠 그림의 메시지와 정치적 배경을 속속들이 음미하며 본다. 왜 개는 실성했을까, 왜 ‘개판’이라는 속어까지 사용했을까. 세상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때는 1967년 봄과 여름이었다. 화상이라도 입힐 듯한 뜨거운 열기가 한국사회를 휘감고 있었다. ‘선거’였다. 하나도 아니었다. 두 개였다. 총선과 대선이 모두 치러지는 2012년과 같다고 보면 된다. 2012년은 총선4월, 대선12월로 8개월 떨어져 있다. 1967년엔 순서가 바뀌어 대선이 먼저였는데 불과 한 달 간격이었다. 5월3일엔 제6대 대통령선거가, 6월8일엔 국회의원을 뽑는 제7대 총선이 있었다.(대통령 취임식은 총선이 끝난 7월1일이었다) 스크랩 속의 만화도 선거와 관련한 세태를 꼬집는 작품들이 가장 흥미롭다. 만화들부터 감상해보자.

맨 앞의 세 만화는 공천과 관련한 풍경이다.


나는 선거시즌 각 정당들의 지역구 의원후보 공천심사가 벌어질 때마다 이 만화들이 저절로 떠오르면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만화 속 대사를 그대로 따서 표어로 지어도 재밌을 것 같다. “공천자는 만세만세! 낙천자는 저리비켜!” 세 만화는 모두 공천과 낙천이 천당과 지옥 차이임을 세상에서 가장 쉬운 방법으로 설명해준다.

두 번째는 대통령선거 공약의 포퓰리즘과 여당에 편파적인 유세환경을 전하는 만화들이다.


두 번째로 골인했다 철창으로 들어가는 주자와 격투기 경기에서 패한 뒤 무자비한 폭력을 당하는 이는 모두 장준하를 암시하는 듯하다.


장준하는 신민당 대선후보였던 윤보선 선거캠프에 뛰어들어 유세현장 최일선에서 공화당 후보 박정희를 맹공격했다. 그는 5월3일의 대선 투표결과가 박정희의 승리(박정희 51.5%, 윤보선 40.9%)로 확정된 지 5일 만에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전격 구속됐다. 그래도 이 만화들은 점잖은 편이다.

맨 앞에서 예로 든 ‘개’들은 모두 세 번째로 묶인 총선 풍자 만화에 등장한다.


그만큼 6월 총선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온갖 치사하고 황당한 방법들이 동원됐다. 나는 이를 ‘한국의 68운동’이라고 이름 붙여본다. 유럽과 미국의 청년들이 ‘구악’에 저항한 1968년 봄의 그 유명한 ‘68운동’과는 관계가 없다. 재선에 성공한 박정희가 1967년 ‘6월8일’에 이기기 위해 ‘구악’을 총출동시킨 ‘6.8 부정선거 운동’일 뿐이다. 개가 웃을 정도로 말이다.


동장에 협조부탁
여 부정선거지령 입수- 신민 주장


신민당은 31일 “공화당인천을구당에서 공화당관리장과 동장들에게 내린 부정선거 지령문을 입수했다”고 주장, “관권개입에 의한 공포분위기 조성과 함께 부정선거의 양상은 절정에 이르렀다”고 비난했다.
김수한 부대변인은 성명을 내어 “지난 14일 공화당 인천을구당에서 내린 부정선거지령문은 ‘박대통령 일하도록 밀어주자 공화당’이란 표제 하에 선전지침, 반상(反想)한 야당작전, 기간요원활동지시, 각 관리장에 대한 지시, 동장에 대한 부탁 등의 부문으로 나뉘어 있다”고 설명하면서 그 주요한 내용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공화당 관리장에게
▲ 각 동 할당 득표수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책임 완수하라
▲ 할당 득표수를 완수하기 위해 각 동별로 OO님과 협의해서 철저한 계획을 수립, 활동하기 바란다

◇동장님에 대한 부탁
▲동장님은 분명히 엄정중립을 지켜야 도리이겠으나 국가적 견지로 보아 보다 나은 조국을 발전시키는데 정치적 안정세력을 구축하기 위해 음성적인 협조를 앙청하나이다.
▲동장님은 각 반장님을 조심스러이 포섭해주기 바랍니다.
▲반장중에 야경(野傾)된 반장님이 계시면 경계하면서 빨리 바꾸시는 방향으로 협조를 바랍니다.
▲인물검토후 믿을 만한 반장님은 작전지령을 내리도록 협조를 바랍니다.
▲대통령선거 때 기권자를 파악토록 지시하고 인물 검토 후 포섭하는 방향으로 협조를 바랍니다.
▲투표계몽을 빙자, 우리 당의 후보자 지지를 반장님으로 하여금 하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각동 숙원사업사항을 여권국회의원이 당선되면 틀림없이 이룬다고 대담하게 공약해주기 바랍니다.

총선을 일주일 앞둔 6월1일치 기사다.


여당인 공화당이 각 동장들에게 내린 행동지침 문안을 신민당이 입수했단다. ‘음성적인 협조’라는 표현이 코믹스럽다. ‘포섭’ ‘작전지령’이라는 말은 웬지 남파간첩 용어 같다. ‘투표계몽을 빙자’ ‘대담한 공약’들은 수치심을 잊은 표현들이다. 스크랩에 있는 다음 제목들을 보면 부정선거의 양상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박수부대도 동원, 노무자에 일당 3백원씩 주고- 공화 창녕
두 사람에 백원씩- 공화당 울주군 유세 끝내고 돈 뿌려
공개투표 폭로한 사병 행방이 묘연
“오후에 대리투표하라”- 면산업계장 부정선거 9개항 지령폭로
사상최악의 부정선거, 야당 6.8총선을 규탄
유효표 불태운 증거물도 발견-변소서 버린 인주통도
고대?서울법대?문리대?연대 등 부정선거 규탄데모-최루탄 발사
고창서 만여명 대리투표-옷 바꿔가며 대리투표를 자행
“대리투표자는 왼손에 수건, 명부대조할 때 통과시켜라”



누구는 50원이고, 누구는 300원이다. 그냥 유세장에 모이기만 하면 두 사람에 100원이고, 박수를 치면 300원이란 말인가. 알바 일당을 주기도 했지만, 막걸리로 환심을 사기도 했다. 유세장에서 막걸리에 취해 드러누운 아낙네의 사진 밑에 ‘막걸리에 실성한 주권’이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고바우영감’엔 시위대를 향해 살포하는 ‘막걸리 대포’가 등장한다. 아, 근사한 아이디어다.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전투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최루액 물대포가 아닌 ‘호프 대포’를 뿌리는 상상을 해본다.
아버지는 ‘개탄하는’ 시를 적었다. 제목이 ‘국灰의園’이다. ‘灰’(회)자를 넣어 조어를 한 것을 보면 출마자들의 기회주의적 처신을 비판하려고 했던 모양이다. 녹색 사인펜으로 썼는데 일부는 지워져 해독이 불가능해 'XXX‘로 처리했다.


국灰의園

밤은 밝고 대낮은 어두XXX
얄궂은 가랭이가 미쳐서 XXX
돈-돈은 무말랭이
권력-권력은 오징어 다리
정초도 아닌데 세배를 한다

울면 예뻐지고 웃으면 미워지는 XX
암표가 식탁에 오르고
취객들이 반찬이 된다
부정한 자살
밤도 아닌데 잠들을 잔다

생전(生前)의 필사(必死)
밀주의 행렬-
잔액은 없다

돈은 무말랭이처럼 흐느적거리고, 정초도 아닌데 놈들은 세배를 하고, 취객들은 아무 젓가락에게나 몸을 의탁한 반찬이 되고, 끝내 잔액은 없다고 하신다. 마지막 문장에 한 표를 던지련다. 잔액은 없다! 남김없이 다 빨아갔다!!

한국현대사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읽었지만, 1967년 총선에 대해선 관심도 없었고 잘 몰랐다. 그 해를 꿰뚫는 키워드는 역시 ‘부정선거’였다. 유령 유권자 조작, 부정투표, 부정개표, 매수, 협박에 야당 토벌작전까지…. ‘부정선거 좀 심하게 했구나’하고 넘어갈 수준이 아니었다. 박정희는 마치 1961년5월16일 새벽에 넘었던 한강다리를 다시 넘는 심정으로 사생결단을 하고 불법?편법선거에 달려든 모양이다. 63년과 67년 대선에 이어 한 번 더 합법적으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선 3선 개헌을 해야만 했다. 그러려면 반드시 6.8총선에서 공화당이 2/3 이상의 의석을 차지해야 했던 것이다.

여당은 ‘여망’을 이뤘다. 공화당은 헌법 개정에 필요한 117석을 훨씬 웃도는 의석을 얻었다. 전국구를 포함해 130석(지역구 103석, 전국구 27석)이었다. 이에 반해 신민당은 44석(지역구 27석, 전국구 17석)뿐이었다.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아버지의 스크랩에 있는 사진 한 장만으로도 알 수 있다.


신민당 홍천지구 부위원장 장원준(당시 36살)씨가 6월19일 ‘6.8부정선거 무효화 궐기대회’에 참여했다가 할복자살을 기도하는 모습이다. 손에 쥔 칼은 배에 꽂혀 있다. 배에는 이미 여러 번 그어진 칼자국이 보인다. 신문 사진이 아니라 잡지 화보에서 오려 붙인 듯 해상도가 좋다. 고통을 참지 못해 잔뜩 찌푸린 얼굴. 보는 이들에게 통증이 전이될 것만 같다.
야당은 재선거를 요구하며 등원을 거부했다. ‘선거에 의한 쿠데타’라며 규탄데모를 조직했다. 6월13일 서울의 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서자 박정희는 서울 21개 학교에 휴교령을 내렸다. 6월16일엔 전국31개 대학과 163개 고등학교로 확대했다. 아버지는 할복사진 뒷장에 또 한 편의 시를 남겼다.


하얀 비닐봉지가 운다. 검은 모래알들이 줄을 지어 입장권을 사들고
부정을 연출하는 공회당에서 잔치를 베푼다
피리 부는 고무신짝들이 나비가 되여 춤을 추고 불태운 휴지쪽들은
목숨을 걸고 칼을 씹는다. 목이 멘 방망이들은 광대처럼 꺼들거리고
새끼고양이들이 방귀를 핥는다
거리마다 바람이 쐐기를 틀고 사람 같은 짐승들이 사냥을 한다
어떤 사나이는 창자를 틀어 요리를 하고 그 손틀마다 피를 그린다
영원한 인생의 그림자는 없다. 회화도 없고 차분한 XX도 없다
노란 방망이를 피리처럼 불며 까만 철조망을 얼굴에 바르고
불고기집에 앉아 냄새만 맡는다
우주의 곡예는 드디어 막을 열고 갓난 계집애가 앉아 재판을 한다
소리 없는 참새들은 제 털을 뽑아 고층건물을 짓고
장터에 앉은 소경들은 때를 긁는다
말세의 풍경들이 제비를 뽑고 권력자의 젖꼭지를 창녀들이
빨고 미친놈의 택시들은 대낮에 거리에서 입을 맞춘다
영원한 권력의 안식은 없다. 영원한 권력의 주검을 본다

‘말세의 풍경’에 의분을 참지 못한 신민당은 자해할복으로 항거를 했다. 생명을 건졌을까? 보람이 없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신민당 지도부는 어정쩡하게 타협했다. 대책 없는 ‘등원거부’만을 외치다가 여당으로부터 “3선 개헌을 하지 않겠다”는 보장을 받지 못했다. 그럼 끝까지 등원을 하지 말던가. 그리고 결국 손님이 찾아왔다. ‘간첩사건’이라는 불청객이었다. 전율할 만한 제목이라서인지, 아버지는 사인펜으로 사각형을 그렸다. 사형!


“사형!” 떨어지자 몸 떨며
핏기 가신 채 고개 숙여
동베를린 공작단사건 선고공판정 안팎


낮12시25분, 35분간에 걸친 김 재판장의 판결문 낭독이 끝나고 잠시 말을 멈추는 사이 가족?방청객?내외보도진으로 꽉 들어찬 대법정 안은 찬물을 끼얹은 듯 숨가쁜 침묵만이 흘렀다.
정하룡 피고인은 오른손으로 머리를 한번 쓸었다. 천병희 피고인은 오른손가락으로 무릎 위에 무엇인가 끄적였다. 정규명 피고인은 눈을 꼭 감아버렸고 조영수 피고인은 침을 꿀꺽 소리가 나도록 삼켰다.
최정길 피고인은 바싹 탄 입술에 혓바닥으로 침을 한번 칠하고는 재판장의 입을 지켜보았다.
(중략)
○… “조영수?정규명 두 피고인에게 사형!” 순간 조영수 피고인은 몸을 한번 부르르 떠는가 하더니 두 눈을 감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안경 속에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있던 정규명 피고인은 두 눈을 번쩍 뜨더니 금세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정 피고인에게 사형이 떨어지자 옆자리에 앚았던 그의 처 강혜순 피고인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떨구었다.
(중략)
○… 오전11시10분 이응로 피고인을 선두로 구속 피고인들이 입정, 서독TV해설가 ‘슐즈’씨가 윤이상 피고인에게 “건강이 어떠냐”고 물었으나 윤 피고인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하략)

1967년9월14일치다. 음악가 윤이상, 화가 이응로 등 독일과 프랑스로 건너간 194명이 연루된 동백림(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은 ‘한국 68운동’의 자식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부정선거에 대한 비판분위기에 물타기를 하려는 중앙정보부(당시 부장 김형욱)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중앙정보부는 총선 직후인 6월17일을 전후해 유럽현지에 요원들을 풀어 납치공작을 벌였다. 7월8일에 이를 ‘간첩단 사건’이라면 떠들썩하게 내놓았다. (독일과 프랑스 정부의 항의로 사형수까지 포함한 구속자 모두가 1970년 광복절특사로 풀려난다)

김형욱은 훗날 자신의 회고록에서 “동백림 사건의 모든 관련자들에게 사죄하고 싶다”고 말했다. 2006년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 이 사건 조사과정에서의 불법 연행과 가혹행위 등에 대해 사과할 것을 정부에 권고한 바 있다.
8월22일 청양의 구봉 석탄광산에서 일어난 매몰사고도 ‘한국 68운동’과 떼어놓고 말할 수 없다. 지하 125m 갱도에 꼼짝없이 갇혔으나 사고 며칠 뒤 전화선을 복구해 ‘살아있다’는 연락을 보낸 김창선(당시 36살)씨. “어떻게든 살려내라”는 대통령 특명이 떨어졌다. 해병대 사령관이 달려가고 미군도 구조작업을 거든다. 16일(386시간)만인 9월6일에 극적으로 구조되는 기적과 같은 과정을 텔레비전과 라디오가 생중계를 했다. 대중들이 이 ‘드라마’에 넋을 놓고 있는 사이 부정선거의 잔해물들은 쓸려갔다. 이 사건은 딱 한 장에 스크랩돼 있다. 여기에도 시가 있다.


眞. 生命

苦도 없고 樂도 없는 房
인생은 거미줄
붉은 선이 탄식을 한다

生도 없고 死도 없는 房
인생은 새끼줄
검은 벽이 복통을 한다

感도 없고 情도 없는 房
인생은 고무줄
하얀 백지가 질식을 한다

色도 없고 食도 없는 房
인생은 생명줄
황색경보가 解産을 한다

김창선씨를 향한 생명줄은 ‘부정선거 규탄’이라는 갱도에 갇힌 박정희 정권이 기다린 동아줄이기도 했다. 덕분에 부정선거에 대한 ‘황색경보’도 해산(解産)을 해버렸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해산’을 했다. 나의 어머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그렇다면 해방둥이가 아닌 부정선거둥이? 스크랩 6권을 앞장부터 넘기며 1967년 사건을 순서대로 되새겨본다. 이 해는 특별(^^)하니까.


1월14일 여수-부산간 정기여객선 한일호가 진해 앞바다 가덕도 서쪽 해상에서 해군 호위구축함 충남함과 충돌해 침몰했다. 승객 96명 사망.
5일 뒤인 1월19일엔 해군경비정 제56함 당포호가 동해에서 북한의 포사격을 받아 침몰했다. 해군 승무원 39명 사망.
3월22일 판문점에서는 조선중앙통신 부사장 이수근씨가 경비병 사격을 뚫고 남하했다.
4월9일에는 여의도공군기지에서 이륙한 C-46 공군수송기가 청구동(지금의 중구 신당4동) 판자촌에 떨어졌다. 63명 사망.
5월7일엔 세계여자농구선수권 대회에서 한국팀이 2등을 했다.
12월 28일 공화당은 2/3의석수의 힘으로 예산안을 3분 만에 날치기 통과시켰다.
짜투리 기사까지 구석구석 훑어본다. ‘하노이의 미군포로’ 사진기사가 베트남전의 근황을 전한다. 인도네시아의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가 올라탄 나무가 수하르토의 도끼에 찍히는 만평이 나온다. 이와 관련한 신문칼럼 문장에 아버지는 줄을 그어놓았다. “권력은 기울기 전에 미리 내놓을 줄 알아야 한다.”
인도네시아 상황에 관한 코멘트지만, 사실은 한국사회를 향한 은유다.
스크랩 6권엔 그 어느 때보다 아버지의 정성스러움이 묻어있다. 일단 표지가 예술적이다. 앞과 뒤의 표지 총 4면을 모두 신문 콜라주로 처리했다. 흑백의 사진과 만화와 활자가 어지럽게 몸을 섞은 채 지난 역사를 증언하는 듯하다. 표면은 콩기름을 발라놓아 코팅을 한 것처럼 번질번질하다. 모서리만 일부 하얗게 벗겨져 있다.


표지 다음 첫 장엔, 세 쪽에 걸쳐 긴 글을 빼곡히 적어놓으셨다. 200자 원고지로 치면 30매는 족히 되겠다. ‘공지’(空紙)라는 제목의 꿈 이야기다.


바람이 몹시 불고 눈이라도 내릴 듯한 추운 날씨에 들판을 걷다가 초가집과, 외양간과, 노인과, 쇠똥과, 쇠파리와, 염소와, 여우와, 세 여자들과, 독수리와, 뱀을 잇따라 만나면서 벌어지는 괴이하고 복잡한 이야기다. 쇠똥에서 향기로운 냄새를 맡다가 메스꺼움을 느끼고, 그러다가 다시 목이 타오르는 듯한 욕정에 괴로워한다. 마지막 장면에선 목구멍으로 떡반죽 같은 쇠똥을 토하며 후련함을 맛본다. “돈 때문에 생활에 염려를 가졌던 내 신앙의 허상을 파헤친 꿈”이라는 나름의 해석까지 곁들여놓았다. 만 32살. 아버지는 생활의 궁핍과 인생의 여러 유혹 앞에서 번민했나 보다.
1967년! 이제야 내 출생의 비밀(!)에 눈을 뜬 느낌이다.


◆ 참고한 책
『김대중 자서전1』(김대중 지음, 삼인, 2010)
『한국근현대사 산책-1960년대편3』(강준만 지음, 인물과 사상사, 2004)
『한국만화 인명사전』(손상익, 한국만화문화연구원 편, 시공사, 2002)




1) 김성환 화백의 ‘고바우영감’은 1955년2월 <동아일보>로 시작해 <조선일보>(1980.9.11~)를 거쳐 <문화일보>(1992.10.1~2000년9.29)에서 14,139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단일 시사만화작가 연재작품으로는 세계기록이다. 안의섭 화백의 ‘두꺼비’는 1955년7월 <경향신문>으로 시작해 <조선일보>(1962.6.1~1963.2.26, 1966.9.6~1973.3.1), <동아일보>(1963.4.22~1964.8.9), <한국일보>(1973.7.6~1989.2.16), <세계일보>(1989.2.16~1991.12.6)를 두루 거쳐 <문화일보>(1991.12.6~1994.8.3)에서 마지막 시절을 보냈다. 안 화백은 1994년 문화일보 재직 도중 돌연사로 세상을 떠났다.

2) 청양 구봉광산 사건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김창선’이 아닌 ‘양창선’이라는 이름이 나온다. 99%가 그렇다. 한데 아버지가 스크랩한 <동아일보>의 사진설명엔 ‘김씨’로 돼 있었다. 사진 안의 친필사인에도 “여러분 감사합니다 김창선”으로 돼 있었다. 알고 보니 <동아일보>만 ‘김창선’으로 보도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인터넷을 더 검색하다 <동아일보> 2010년10월19일자에서 궁금증을 풀었다. 황해도 출신인 그는 1.4후퇴때 월남해 해병대에 입대했다. 입대 지원서류 취급자의 실수로 ‘양창선’으로 잘못 기재되었다는 풰 김창선씨의 주장이다. 고쳐달라고 했으나 “사회에 나가면 바로잡아질 테니 걱정말라”고 해서 그냥 넘어갔고 북녘 출신으로 본래 이름을 증언해 줄 사람이 없어 계속 ‘양창선’으로 불렸다고 한다. 한데 광산사고가 터지고 대통령 특명에 따라 청와대 관계자가 내려온 덕분에 일이 풀렸다. 이름을 바꾸는 것도 재판 없이 대통령 특명에 따라 이뤄졌다. 그는 ‘김창선’이라는 이름을 찾았지만, 여전히 그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는 곳은 <동아일보>를 포함한 몇 군데 뿐이다. 2010년10월 칠레 광부 구조사건으로 다시한번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린 김창선씨는 “양창선이 아니라고 정정해달라고 말하기도 지친다”고 했다.









#고경태 #박정희 #68
8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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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2012.02.02

'고바우 영감'과 '두꺼비'는 적지않은 사랑을 받았지요. 주저리 주저리 나열된 기사를 읽다보면 자칫 지루해지거나 또 핵심을 놓칠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만화나 만평식으로 언급해 준다면 그야말로 눈에 선명하게 들어오게 되지요. 그래서 요즈음에도 이러한 만화나 만평이 계속 사랑받는 게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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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꽃방

2011.11.28

아버님의 시가 참 인상적입니다.
예전의 네컷자리 만화는 정말 가릴것 없이 날카롭게 세상 돌아가는것을 보여주고 있는듯 하네요,그때 저 또한 아버지의 신문을 보며 제목만 읽거나 만화만 찾아 읽었던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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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전

2011.11.24

요며칠 FTA를 둘러싼 정치권의 움직임 그리고 국회의 결정에 대한 시민단체
항의 집회 그것에 대한 경찰의 비상식적인 물대포까지~~
밑에 현 우리모습에 분명 과거보다 나아진 점은 많다고 생각하지만
이에는 과거가 너무나 참혹했기때문에 가지는 견해이지만
자부심을 느낀다고 쓴 부분은 지금 써놓고보니 많이걸리는 대목이네요~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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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태

「한겨레」 토요판 에디터. 「한겨레21」「씨네21」편집장과 한겨레 esc 팀장을 지냈다. 지은 책으로 『글쓰기 홈스쿨』(2011)과 『유혹하는 에디터』(2009), 『직설』(공저, 2011)이 있다. 가족을 사골국물처럼 글감으로 우려먹는다는 비판에도 굴하지 않고 아버지 이야기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