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No’라고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해” - 커트니 러브의 홀(Hole)
로커(Rocker)라고 하면 대부분 남성적 이미지가 강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록 음악 자체부터 이미 남성적인 느낌이 짙을 뿐더러, 로커의 길로 나서는 여성의 수도 그리 흔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너바나의 리더 커트 코베인의 반려자로도 유명한 커트니 러브는 그 특유의 악녀 이미지를 잘 활용해 여성 로커의 지위를 얻은 몇 안 되는 여성 로커 중 한 명입니다.
글ㆍ사진 이즘
2012.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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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커(Rocker)라고 하면 대부분 남성적 이미지가 강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록 음악 자체부터 이미 남성적인 느낌이 짙을 뿐더러, 로커의 길로 나서는 여성의 수도 그리 흔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너바나의 리더 커트 코베인의 반려자로도 유명한 커트니 러브는 그 특유의 악녀 이미지를 잘 활용해 여성 로커의 지위를 얻은 몇 안 되는 여성 로커 중 한 명입니다. 커트니의 그룹 홀(Hole)의 대표작, < Love Through This >입니다.


홀(Hole) < Live Through This > (1994)

록 음악에 있어서 여성은 늘 남성의 뒷전에 물러나 있는 소외계층이었다. 여자라고 일렉트릭 기타를 메거나 드럼을 치지 말라는 법은 없었지만 록의 남성 우월주의나 남근성에 밀려 여성들은 그저 록 스타들을 쫓아다니는 그루피 아니면 우아하게 치장하고 달콤한 팝송을 부르는 ‘가수’로만 한정되었다. 물론 60년대 말의 재니스 조플린과 같은 위대한 예외가 있었고 이후 하트(Heart)나 여성들로만 짜여진 런어웨이스(Runaways) 등 적지 않은 여성 로커들이 출현했지만 역사적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70년대 말 펑크이래 상황은 조금 나아져 ‘펑크의 대모’ 패티 스미스를 위시하여 크리시 하인드의 프리텐더스, X 레이 스펙스, 수지 앤 더 밴시스 등 여성 로커들이 동시다발로 등장해 페미니즘을 주창했다. 여권을 수호하는 페미니즘은 이후 여성 록의 정신적 기반이 됐다. 따라서 펑크를 계승한 90년대 얼터너티브 록의 파고에 여성들이 대거 록 서클에 침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마침내 무대에 팽창한 음기(陰氣)는 전에 없던 ‘여성 록’의 열풍을 몰고 왔다.

그룹 홀(Hole)을 이끈 코트니 러브가 90년대에 개화한 여성 록의 정점에 서있는 인물이었으며 94년 그들의 앨범 < Love Through This >는 ‘여성이 들려주는 얼터너티브 록’의 으뜸가는 포효였다. 물론 대부분의 팬들은 이 앨범을 접하면서 먼저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을 떠올렸다. 코트니는 바로 커트의 아내였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앨범은 커트가 죽고 난 직후 발매되었다.

남편의 명성을 업고 나온 상업적인 음반이라는 의혹, 앨범을 혹시 커트가 만들어준 것 아니냐는 설이 난무했다. 나아가 코트니 러브는 커트를 죽음의 길로 몰고 간 ‘제2의 요코’라는 소리 없는 아우성도 퍼져 나왔다(시쳇말로 남편을 잡아먹은 아내?). 하지만 남자들 앨범 이상으로 당시 X세대 그런지 록의 정서를 잘 응축한 걸작이란 평을 받으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악의적 해석은 꼬리를 감추었다.

앨범 재킷에는 성 상품화를 조롱하듯 망가진 미스월드의 얼굴을 담았다. 속내의 음악 메시지도 절망과 분노로 가득했다. 또한 무엇보다 그것은 ‘망가진’ 코트니 자신의 스토리였다. 코트니는 하지만 그 처절한 사담(私談)을 모든 여성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 타당한’ 주제로, 이를테면 페미니즘을 살해하여 진정한 페미니즘으로 승격시키는데 성공했다.

뒤틀린 어머니의 사랑에 대해 노래하지만 낙오자계급에서도 페미니즘이 가능하다는 메시지가 담긴 「I think that I would die」, 여성의 대식(大食)증을 노래한 「Plump」, 강간을 다룬 「Asking for it」 등 대다수 곡들이 코트니의 얘기였지만 여성들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소재들이었다.

70년대 히피문화를 호흡한 부모 덕(?)에 어린 시절 우드스탁 페스티벌을 경험하고, 영국과 뉴질랜드를 돌아다니고, 스트립 쇼걸과 영화배우로도 뛰면서 그녀가 얻은 것은 엘리트에 대한 반발 그리고 여권을 해하는 남성 지배사회에 대한 반발이었다. 록이 하위의식의 실천적 장르임을 전제할 때 여성 로커로서 밑바닥 인생을 헤맨 코트니는 손색이 없을 뿐 아니라 최적격이었다.

사운드도 ‘정통 그런지’였다. ‘부드럽게 강하게’의 강약 반복으로 곡을 전개하면서 코트니는 전반에 걸쳐 허스키하고 부글부글 끓는 발화(發火)성 보이스를 뿌려대고 있다. 울부짖음이라도 응집력이 있었다. 또한 「Violet」 「She walks on me」와 같은 강한 펑크(punk) 계열의 곡들은 연주 하모니에 있어서 너바나에 밀리지 않을 만큼 사나웠다.

너바나 곡의 기타 리프를 빌린 듯한 「Plump」도 남편이 < Nevermind >를 만들 때의 대중 친화적인 전주 리프는 거세시키고 이전 인디 시절의 앨범 < Bleach >에서 구사한 원시적 스타일로 대체했다. 그 유사성은 미세한 차이로, 백지 한 장 차이로 너바나를 표절했다기보다 너바나와 손을 맞잡은 ‘얼터너티브 전선의 동지’라는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대중들은 여성이 들려주는 원형 펑크로, ‘분노한 패티 스미스의 딸’로 홀을 호의적으로 접수했다.

「롤링스톤」 「스핀」 「빌리지 보이스」 「뉴욕 타임스」등 유수의 언론이 코트니 러브를 커버 스토리로 다루거나 특집 게재하면서 이 앨범을 ‘1994년 최고의 앨범’으로 뽑았다. 미모와 대담함으로 코트니의 인기는 날로 상승해 1996년 「타임」으로부터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의 하나로 선정되었다. 이듬해에는 포르노 잡지의 사주를 영화화한 <래리 플린트>에 출연, ‘뉴욕 영화 비평가협회’가 주는 조연여우상을 수상해 ‘토탈 엔터테이너’로 비상했다.

1998년 4년의 긴 공백 끝에 내놓은 앨범 < Celebrity Skin >으로 코트니 러브와 홀은 얼터너티브의 옷을 벗어버리고 변화된 흐름을 수용해 화제를 모았다. 연주화음은 더 정교해졌고 멜로디 라인도 깔끔해졌다. 「뉴욕 타임스」를 비롯해 평단에서는 ‘코트니 러브가 새로운 기량을 들고 나와 대중적으로 호응을 얻을 수 있게끔 앨범을 꾸몄다’며 예술성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이미 철지난 얼터너티브 록의 호흡을 되돌리진 못했다. 어느덧 대중들의 관심은 뚝 떨어져 있었다. 어쩌면 팬들은 그녀를 그런지 시대가 낳은 ‘어둠의 딸’로만 보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시대가 ‘얼터너티브의 여전사’를 필요로 했을 때 바로 그녀가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얼터너티브에 물렸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가 있었어도 주목하지 않았다.


글 / 임진모(jjinmoo@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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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 #Hole #커트니 러브 #Live Through This #커트 코베인 #얼터너티브
3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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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네카르타

2014.02.27

살빼고 섹시미를 한껏 발산하며 락을 했던 커트 코베인의 전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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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h27zz

2012.10.23

락에는 뭔가 남성성이 녹아있는데, 그속에서 살아남았던 커트니 러브의 노래르 들어 보고 싶네요~ 근데.. 사실 락을 별로 좋아하는 타입은 아닌지라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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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냥

2012.10.21

남성이 주류인 로커의 세계에서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입지를 잘 알고 있던 커트니 러브. 망가진 자신의 모습도 이용할 수 있는 그녀는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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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