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하나, 황선우 “저희는 재미에 진짜 진지해요.”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는’ 김하나, 황선우 작가의 세 번째 공저 『하와이 딜리버리』. ‘일상에 바다를 끼워 넣고 싶다'는 마음으로 매일 소개한 915곡을 담은 음악 선곡집.
글 : 염은영 사진 : 표기식
2025.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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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살며 얻은 취향과 생활의 지혜로 일상의 전문가가 된 이들은, 삶의 유익을 적극적으로 나누는 일에 시간을 쏟고 있죠. 이들은 최고의 듀오, 팟캐스트 <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이하 <여둘톡>)를 진행하는 김하나, 황선우 작가입니다. 두 사람은 <여둘톡>을 통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물질과 비물질을 소개하는 것으로 ‘재미있는 삶을 살자’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런 두 사람은 사실 <여둘톡>을 시작하기 전부터 오래도록 해온 나눔이 있었는데요. 그것이 바로 『하와이 딜리버리』, 최근 책으로 출간된 두 사람의 플레이리스트입니다. 두 사람은 2017년부터 2021년까지 트위터 계정 ‘하와이 딜리버리’를 통해 천여 곡이 넘는 음악을 소개해왔습니다. “나중에 바닷가에서 칵테일바를 운영한다면, 거기에 어울리는 곡”을 선곡해보자는 콘셉트에 “우리의 노후 계획”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더해 음악 선곡을 쌓아온 것이죠. “지금 좋아하고 있는 것들을 노년에도 할 수 있다면”을 상상하는 것이 노후 계획이 될 수 있다고 믿으면서요. “인생의 방향을 옳게 설정해두고 가다 보면 잘 살”리라는 확신을 획득한 두 사람은 “즐거움이 동력이 되면 계속 걸어갈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이들을 쏙 닮은 『하와이 딜리버리』는 벌써 이들의 든든한 미래가 된 것 같은데요. 이 두껍고도 흥이 끊기지 않는 플레이리스트로부터 배우는 나이 드는 즐거움은, 『하와이 딜리버리』가 준비한 진짜 굿즈가 아닐까 합니다.




 키즈  사람의 인생 BGM’ 『하와이 딜리버리』

 

팝 키즈 두 사람의 인생 BGM’ 『하와이 딜리버리』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정말 기습 출간입니다. 어떤 예고도 없이 도착한 두 분의 세 번째 공저이고요. 출간 소감을 여쭙습니다.

선우 사실 ‘하와이 딜리버리’를 책으로 묶어낼 생각은 없었어요. 애초에 저희 두 사람의 즐거움을 위한 음악 수집 계정이었으니까요. 이 계정에서 소개할 곡의 콘셉트는 ‘나중에 바닷가에서 칵테일바를 운영한다면 거기에 어울리는 곡을, 하루 한 곡의 바다를 끼워 넣는 느낌의 음악으로 채워보자’라고 정하고 시작했는데, 저희에게는 놀이 같은 것이었어요.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이하 『여둘살』)에 ‘하와이 딜리버리’에 대한 에세이를 싣기도 했고, 동명의 트위터 계정(현재 팔로워 13,000명)이 알려지면서 이를 보고 책을 내보지 않겠냐는 제안도 받았었는데요. 저희 둘 다 각자 다른 책 준비로 바쁘기도 했고, 당시엔 그럴 생각이 잘 안 들기도 했어요.


그런데 지금 이렇게 기습 출간을 하게 된 건, 이 책을 가장 쿨하고 멋있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준비됐기 때문이었어요. 그분은 『여둘살』 초판을 함께 작업했던 배윤영 편집자님이세요. 최근 1인 출판사 아키노프를 시작하셨는데요. 그곳의 첫 책으로, 또 저의 첫 책이기도 한 『여둘살』을 멋지게 세상에 꺼내놓아주신 분과 『하와이 딜리버리』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거기에 『여둘살』을 편집 디자인한 강경신 디자이너님이 함께해주셨고요.

 

하나 우리의 즐거움을 위해서 4년 넘게 하루 한 곡씩 쌓아온 것은 눈으로 볼 수 없는 흐름 같은 것이었는데, 이렇게 두툼한 책으로 나오니 정말 뿌듯해요. 그리고 어떤 칵테일바를 상상하며 선곡하긴 했지만, 실제로 그 장소는 없잖아요. 그런데 세상에, 그 느낌을 담은 물리적 실체가 나오니까 왜 진작 책을 낼 생각을 안 했을까 싶기까지 했어요.

 

선우 만약 저희에게 “915곡의 음악을 골라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고 그 곡들을 소개하는 책을 써주세요" 하는 의뢰가 새로 들어온다면, 부담스러운 업무로 여겨져서 거절할 거예요.

 

책 디자인도 정말 과감해요. 표지는 보통 두꺼운 종이로 만드는데 그렇지도 않고, 게다가 제본 방식은 사철이에요. 이런 방식의 제작은 책 보관, 비용 문제 등을 생각하면 쉬운 선택은 아닐 거거든요.

하나 최근에 민희진 대표의 플레이리스트를 즐겁게 들었어요. 한 사람이 선곡해놓은 플레이리스트가 커다란 즐거움을 주는 걸 느끼다 ‘우리도 이런 플레이 리스트가 있잖아?’ 이런 이야기를 선우씨와 술 한 잔 나누며 하고 있었어요.

 

선우 게다가 우리가 훨씬 일찍 만들어뒀죠.(웃음)

 

하나 그러다가 ‘이거 묶어서 책으로 한번 내볼까’ 그랬더니 선우씨가 마침 아키노프라는 출판사를 만들고 첫 책을 고민하고 있던 배윤영 대표님을 떠올리면서 “같이 하면 어때?” 하는 거예요. 저는 “너무 좋다” 했죠. 그렇게 아키노프와 함께하게 되었고, 저희가 부탁한 단 한 가지가 있었는데 뭐였냐면 ‘책 디자인을 이렇게까지 한다고? 싶을 만큼 싶을 만큼 과감하게 해달라’였어요. 그런 가이드라인을 말씀드리면서 저희도 짜릿한 거죠. 두 분의 감각을 확신하니까 “하고 싶은 거 다 해보세요. 저희는 책이 좀 덜 나가도 상관없어요” 하고 말할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책을 다 만드시고 나서 배대표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저한테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전 이거 평생 팔 거예요. 오래오래 갈 책으로요.”(웃음)

 

‘시대와 세대를 막론하고 통할 수 있다’는 음악의 속성을 생각하면, 좋은 음악을 명확한 기준으로 선곡한 이 책은 누구에게든, 어느 시대에든 가닿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하나 맞아요. 어제까지 이걸 연재하다가 책으로 묶어냈다면 이런 확신이 덜 들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매일 소개했고, 지금은 2025년이잖아요. 그러니까 4년 묵힌 것인데, 이걸 책으로 내도 괜찮을까 싶어 다시 들어보는데도 정말 좋은 거예요. 4년이 지나도 이렇게 괜찮으면 14년이 지나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요.

 



최저의 에너지로 최고의 즐거움을 찾기

 

책 중간 중간 특정 일에 업로드하셨던 트윗 캡처 이미지가 함께 실리기도 했습니다. 작가님들의 특별한 주문이셨나요?

선우 그동안 이런 형식으로 글을 써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트윗에는 음악을 소개하는 글과 함께 음반 재킷이나 뮤지션의 스타일링, 그(들)의 느낌을 드러내는 사진 등을 담음으로써 많은 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거든요. 더불어 2017년부터 이 계정을 운영한 저희의 역사를 보여주기도 하면서, 글만으로는 표현되지 않는 뮤지션들의 느낌을 담은 시각 자료로 활용하고자 했어요.

 

하나 예를 들어 8월 8일 선곡 페이지를 보면, “더위가 한풀 꺾이고 부드러운 바람이 불 때면 이 노래가 생각납니다”라고 돼 있는데요. 원래 트윗에는 “오늘은 바람이 꽤 적절하게 불었습니다. 양떼구름이 떠 있고 부드러운 바람이 불 때면 이 노래가 생각납니다”라고 썼어요. 그러니까 그날에 대한 얘기인 거예요. 정말 그때만 쓸 수 있었던 이야기들이 담겨 있기 때문에, 그 트윗 캡처 이미지를 오랜만에 보면서 ‘그래, 이날 이렇게 썼었지’ 추억하게 돼요. 내용을 조금 바꾼 건, 8월 8일쯤이면 무더위가 지나고 살짝 바람이 바뀌는 때인 것 같아서였는데요. 어제만 하더라도 불볕더위가 가시지 않을 것 같았는데, 오늘은 정말로 바람이 조금 다른 거예요.

 

선우 오늘이 입추.(웃음) 그래서 오전에 에어컨을 틀지 않고, 창을 열어놓은 채 바람을 맞았거든요. 

 

하나 ‘날씨가 바뀌니 이런 음악이 당기네’ 하고 선곡했던 것인데, 음악으로 절기를 알게 되다니 참 신기해요.

 

2017년 2월 28일에 시작된 선곡 리스트는 2021년 4월 25일에 끝을 맺었습니다. 4년여에 걸친 기록인 만큼 그 목록이 너무도 방대해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고민이 깊었어요. 그런 생각을 하며 책을 읽어 나가는데 ‘어? 이건 이 계절에 더 어울리는데?’ 하는 곡이 있더라고요. 작가님 두 분은 어떠셨어요? 각자의 선곡에 이견을 제기해본 적이 있으셨나요?

선우 ‘하와이 딜리버리’는 음악으로 주고받는 대화이다 보니 계절감을 조금 다르게 느낀다 해도 ‘이 사람이 지금 이 곡이 듣고 싶구나’ 하면서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대신에 ‘딜리버리 느낌이라는 기준에서 벗어나는 곡이라 느껴지면 솔직한 의견을 전달하곤 했어요. 그렇다고는 해도 상대방이 강하게 원한다면 그렇게까지 반대할 이유는 없었고요. 결국은 우리 두 사람을 위한 것이니까. 콘셉트에 짓눌려 하고 싶은 걸 못 하게 되는 그런 희생을 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런 태도가 정말 좋다고 생각했어요. 뭔가를 하자고 정하면 거기에 압도돼 취지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서 여쭤보고 싶었어요.

선우 그렇게 안 했기 때문에 오래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하나 선우씨가 잔소리 되게 많이 했어.(웃음) 제가 종종 선우씨한테 했던 말은 “미친 곡이 하나씩 있어야 돼! 이런 것까지 넣는다고? 하는 게 하나씩 있어야 돼! 그럼 어때. 다음 날 멋있는 곡 올리면 되지. 그렇게 삶은 흘러가는 거니까”였어요. 

 

미친 곡이요? 그게 뭐였어요?

하나 결국 책에서 뺀 곡들이 몇 개 있어요, 도저히 책에는 못 넣겠다 싶어서. 다만 지금 언급은 못 하겠어요. 미친 곡이라고 해버렸으니.(웃음)

 

하와이 딜리버리’는 하나 작가님의 ‘마감력’이 추동한 프로젝트라고 알려져 있어요. 하지만 같이 하는 사람으로서는 매일의 할 일의 생기는 일이 반갑지만은 않았을 것 같기도 했답니다. 그래서 상대의 제안에 기꺼이 응하고 그 일을 4년 동안 지속할 수 있었다는 게 대단한 일로 느껴졌어요.

선우 해놓고 보니 저희에게 제일 좋았어요. 또 트위터 안에서 ‘하와이 딜리버리’의 팬들이 좀 생겼잖아요. 계정주가 저희라는 걸 밝히기 전부터 사랑을 많이 받았고, 운영자가 누굴까 궁금해해주시기도 했고요. 들어주시는 분들이 계시니 그것도 동력이 됐어요.

 

하나 사람마다 별로 힘들이지 않고 걸어갈 수 있는 나름의 길이 다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이건 아닌가 보다 싶으면 포기도 빠르거든요. 한번 해보려는 일에 있어 ‘온 힘을 다해 끝까지 걸어가겠어!’ 이렇게는 잘 안 해요. 대신에 우리가 매일매일 조금씩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하려는 노력은 더 많이 하죠. 그 뒤에는 최저의 에너지를 들이면서도 최고의 즐거움을 뽑아낼 수 있는 것을 찾아내고요. 그러면 즐거움이 동력이 되니까 계속 걸어갈 수 있는 거죠. 좋은 바람이 부는 숲길을 걸어가는 게 그 자체로 너무 즐겁잖아요. 그 길에 잠시 소풍도 즐기고, 낮잠도 자면 끝없이 걸어갈 수 있고요. ‘책을 내겠어!’라고 저 산꼭대기에 목표를 심어 놓고 한 발씩 올라간 게 아니라 과정 자체가 즐거움인 산책이었던 것 같아요.

 



최고의 듀오가   있는 

 

다만 <여둘톡> 방학 기간에 책 작업을 몰아서 하느라 힘드셨겠다 싶었어요. 

선우 팟캐스트 방학 기간 자체가 잠시 휴지기를 가지면서 책 원고에 집중하려는 목적이었어요. 팟캐스트를 매주 발행하면서는 책 막바지 작업을 병행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이 시간을 잘 활용해 책을 내고 또 팟캐스트로 돌아올 수 있어 다행이다 싶어요. 둘이 하루에 막 열두 시간씩 일하고 그랬는데... 막상 그때보다 책이 나오고 난 지금 힘들어요.(웃음)  『아무튼, 리코더』와  『하와이 딜리버리』가 한 달 간격으로 출간되면서 홍보 일정이 겹치는 바람에요.

 

하나 원고 집중 기간에는 주로 이런 식으로 지냈어요. 전날 밤 자기 전에 내일 아침 메뉴를 선정해요. 그리고 눈 뜨자마자 작업실로 보내요. 그럼 갈 수밖에 없죠. 고양이들 챙겨주고 나서 작업실로 출근해 아침 먹고 커피 내려 마시면서 일을 하고, 중간에 운동 갔다 와서 또 일을 하고… 몇 날 며칠을 집중해 일했는데, 좋았던 건 지난 4년간 모아둔 리스트를 꺼내서 듣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었어요. 다소 힘든 일정이었지만 ‘이거 오랜만에 듣네’ 하면서 일하니 재미있었어요.

 

실제 작업 기간 자체도 궁금했어요. 기습 출간이라고 하기에, 음악과 뮤지션에 관한 정보를 취합하는 과정이 무척 까다로웠을 것 같았거든요. 꽤 오랜 시간을 들이셨으리라 짐작했어요.

선우 한 달 정도 집중적으로 했어요.

 

엄청 금방 만드셨네요.

선우 왜냐하면 원고가 다 되어 있고, 유튜브 리스트에서 유실된 곡을 새로 찾아 넣는 등의 번거로운 작업은 편집자님께서 다 해주셨으니까 작업 속도가 빨랐어요. 뮤지션 이름이나 곡 제목 표기법, 그 당시 적었던 정보가 현재는 어떻게 달라졌는지 등 확인하는 시간은 들었지만요. 다행인 점은 둘이 나눠서도 하고, 챕터 사이사이에 수록할 글의 형태가 그동안 저희가 연습을 해둔 포맷이라 수월했어요. 실제로 서로 대화를 나누며 썼고요. 같이 밥을 먹고, 집에서 같이 고양이를 돌보고, 같은 시간에 출근한다는 것도 이미 호흡을 맞추는 일이잖아요. 그게 바탕이 된 상태에서 원고 작업을 같이 하는 것이고, 또 우리가 주고받았던 음악을 BGM으로 깔아놓고 일하다 보니 아마 다른 어떤 작가와 호흡을 맞추는 것보다 한 스무 배쯤 더 수월했으리라 싶어요. 의견 차이로 합의점을 찾는 데 있어 불필요한 의사소통도 없고요. 그래서 저희는 둘이 같이 일할 때 제일 효율적이고, 생산성을 크게 발휘할 수 있어요.

 

그런 면에서 ‘하와이 딜리버리’가 일찍이 짜임새를 획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두 분이 합의한 매뉴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선곡의 방향성, 트윗의 문체, 표기의 통일성 등을 명확히 해두셨으니까요. 어떤 일을 구상하고 착수하는 과정에서 두 분이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무엇인지요?

하나 저희 둘의 아주 중요한 주제는 뭐냐 하면 재미예요. 

 

선우 저희끼리 종종 그런 얘기를 해요. 한국 사람들은 삶을 이기기 위해서 사는 사람들처럼 사는 것 같다고요. 인생은 승부가 아닌데 말이죠. 그리고 재미를 추구하는 것에 있어서는 윤리적으로 잘못된 것, 지탄받아야 될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자기를 혹독하게 깎아서 뭔가를 성취해내는 게 존경할 만한 삶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하나 재미를 너무 경시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 저희는 재미에 되게 진지하거든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오솔길에 바람이 솔솔 불고 예쁜 풀과 나무가 있으면, 걷는 재미가 생겨서 멀리까지도 걸어갈 수 있잖아요. 그렇다면 그 재미는 동력이잖아요? 그러니 우리가 이 동력을 어떻게 쓸 수 있을지 가늠하고, 숙고하고, 무엇을 재미있게 생각하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재미있게 살아갈 수 있죠.

 

선우 마찬가지로 ‘하와이 딜리버리’의 리스트를 쌓아갈 때도, 우리가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그 재미가 너무 경박함으로 흐르지 않게 할 만한 톤을 만드는 게 중요했어요. 우리 계정의 톤과 매너를 정해야 재미를 계속 느끼며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막 달려가지 않고, 천천히 갈 수 있는 장치를 두고 싶었던 거예요. 

 

하나 『금빛 종소리』에도 그런 이야기를 써놨는데, “즐거움의 문제는 생각보다 심오하다”라고요. 

 

선우 요즘은 블로그, 유튜브 하나를 해도 수익 창출, 파이프라인 등의 목적으로 시작하는 사람들이 되게 많잖아요. 그런데 이런 건 부차적인 것이고, 일단은 그 자체에 재미를 느껴야 끝까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형식을 확실하게 정해두는 것에는 이런 면도 있어요. 저희 둘 다 되게 게으른 편이거든요. 집에서 고양이들이랑도 충분히 놀아야 하고, 각자 운동하고, 배우러 다니는 시간도 많죠. 이런 시간을 잘 확보해야 우리 삶이 건강하기 때문에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어떤 일을 할 때, 낭비를 최소화하는 데 신경 쓰는 편이에요. 그런 측면에서 합의된 포맷 세팅을 애초에 잘해두려고 해요.

 



    그러모은 플레이리스트는 우리의 자부심이 

 

『여둘살』을 읽으며 가장 충격적이었던 대목은 두 분이 ‘하와이 딜리버리’ 계정주였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아직도 그 부분을 읽다 입틀막했던 것이 기억나요. “이분들이 음악까지 가져가셨구나!”와 함께 든 마음은 나이에 대한 부러움이었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두 분의 경험을 따라잡을 수 없으니까요. 나이 차가 나는 멋진 선배들을 볼 때, 자연히 품게 되는 감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혹시 두 분에게도 그런 선망의 선배들이 있으셨나요?

하나 느낌이 조금 다른 것 같기는 해요. 선망의 선배들을 보며, 언제쯤 저렇게 여러 노하우와 단단함 같은 게 생길 수 있을까 하는 조급함은 있었지만요. 리스트 얘기로 다시 돌아가보면, 이 책에는 제가 열다섯 살 때 처음 들었던 곡이 들어 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제가 멋있게 생각했던 선배들은 그 노래를 모를 수도 있거든요. 제가 열다섯 살 때 그 감성으로 발견한 노래를 정말 좋아했고, 그 시절 많고 많은 노래 중 그 곡을 제가 발견했기 때문에 사랑하고, 오랫동안 제 자산처럼, 보물처럼 가지고 있는 거잖아요. 그건 제 시대 속에 살고 있는 저이기에 가능한 일이고요. 그런 게 모두에게 다 있지 않나요?

 

선우 나이 든 사람들이 그만큼의 경험과 연륜, 취향이 쌓일 수 있겠지만 아래 세대의 젊음이나 에너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 자체를 부러워하는 면도 분명히 있을 거예요. 서로가 서로에게 가지지 못한 것들을 더 크게 보는 것이겠죠.

 

하나 저희는 음악 페스티벌이 한국에 생겨나기 시작했던 때에 20대를 보낸 소위 ‘1세대’거든요. 그동안 음악을 좋아하고 듣는 사람들이 잘 경험해보지 못했던 것을 페스티벌을 오가며 즐길 수 있어서 정말 즐거웠죠. 한번은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에 갔는데, 머리가 허연 아저씨들이 캠핑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봤어요. 그것도 무대 앞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인 스폿이 아니라 노을과 음악을 딱 즐길 수 있는 자리를 잡고 레드 와인을 마시고 있었죠. 그 모습을 보는데 제게는 그분들이 그런 선배님들 같았어요. 제가 음악을 계속해서 좋아하고 그 마음을 놓지 않고 있으면 나중에 저렇게 멋있게 될 수도 있겠구나 했어요. ‘선배’라는 말에 저는 그분들이 생각나네요.

 

선우 제가 동의하지 못하는 말 중 하나가 ‘사람은 열여덟 살 때 들었던 음악을 평생 반복해서 듣는다’예요. 물론 어릴 때 들었던 음악들이 각인돼서 특정 장르를 좋아한다거나 노래를 따라 부른다거나 하겠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계속 새로운 음악을 찾아 듣는 건 태도나 마음의 문제인 것 같거든요. 몇 살이 되었든 새로운 음악에 열려 있고, 계속 찾아다니면서 좋은 음악을 좋아할 준비가 된 사람들은 그렇게 사는 거고, 일찌감치 취향을 정해 닫아놓고 그 속에서 지내는 사람들은 그렇게 사는 것 같아요. 이런 건 인생의 선택, 나이로만은 설명될 수 없는 부분이겠죠.

 

하나 요즘은 음악을 찾아 듣는 데 좋은 도구들이 많잖아요. 샤잠이라든가, 사운드하운드라든가. 요새 저희는 이 작업을 마치고 난 뒤에 또다시 그 병이 도졌는데, 재미있게 옷을 입은 사장님이 있고, 연달아 좋은 음악이 나오는 가게에 가면 거기서 음악을 잘 들어보고 수집하는 거예요. 이렇게 새로운 헌팅 도구와 함께 나름의 발품을 팔아서 음악을 채집하는 과정이 참 좋아요. 이야기하면서 갑자기 생각났는데, 제가 볼리비아에 갔을 때 일이에요. 티티카카 호수 근처에 카페 하나가 있었는데, 미국에서 여행 왔다가 눌러앉아서 살게 된 사람이 운영하는 곳이었어요. 그 당시에는 샤잠이 없었는데, 카페에 흘러나오는 곡이 너무 좋은 거예요. 분명히 내가 이 목소리를 아는데 처음 들어본 곡이고… 이 곡을 꼭 알아야겠기에 주인에게 물었더니 ‘마이클 맥도널드’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수첩에 적어왔던 곡도 여기 들어 있어요.

 

선우 진짜 옛날 사람 같다.(웃음) 

 

하나 (웃음)

 

선우 플레이리스트 대유행 이전 시대에 만든 책이기 때문에 자부심을 느끼는 면도 큰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스포티파이 같은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이 음악을 추천해주는 알고리즘이 탁월한데요. 저희가 ‘하와이 딜리버리’를 할 때는 AI의 알고리즘을 이용하지 않고 인간이 한 땀 한 땀 골라서 음악을 소개했던지라…(웃음) 그러니까 저희는 한 땀 한 땀의 마지막 세대랄까요. 

 

하나 스포티파이는 정말 귀신 같은 추천을 하는데, 그래서 들으면 ‘와, 좋다’, ‘오, 이것도 좋네’ 이런 마음이 이어지지만 ‘미친 곡’은 나오지 않아요. 알고리즘 기반의 음악 추천 플랫폼은 취향이라고 판단한 것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곡만 해주기 때문에 아무래도 사람이 추천해주는 것만큼 박력 있지는 않죠.

 



반백 년을 살았다 너무 든든하지 않나요?

 

하와이 딜리버리’ 계정을 보는 맛이 있었던 게 알짜 정보가 집약돼 있어서였거든요. 왜냐하면 너무 좋은 노래를 어딘가에서 듣고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해뒀는데, 정작 제목이랑 가수도 모르고 해둘 때가 많아서요. 듣고 싶을 때 정작 ‘그 곡이 뭐였더라?’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좋았어요.

선우 하루 한 곡을 소개하는 것이다 보니 뮤지션이나 곡에 대한 정보를 찾아야 했는데, 몰랐던 내용을 발견하기도 하고, 30년 만에 이 노래 가사가 이런 뜻이었어?’ 했던 적도 있어요.(웃음)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인디 뮤지션을 소개할 때는 좀 어렵긴 했어요. 정보가 진짜 없어서요. 검색해서 나오는 몇 안 되는 정보 가지고 글을 써야 했는데, 요즘은 또 챗GPT에 물어볼 수 있잖아요? 또 역시나 챗GPT 없던 시절에 한 땀 한 땀… (웃음)

 

하나 당시 트윗에는 140자 제한이 있었어요. 그 적은 분량 안에 이 뮤지션은 어느 정도로 유명할까? 설명 없이 그냥 이름만 써도 알까?’ 등 선택적 정보를 제공해야 했죠. 이런 건 저희가 연구한다고 해도 알 수 있는 게 아니고, 그냥 음악을 들으면서 살다 보니 어떤 정보를 취사선택할 것인지 자연스레 판단이 섰던 것 같아요. 글을 쓰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지만 140자 안에 무엇을 걸러내고, 무엇을 남겨 쓸 것인지 고민하는 시간은 꽤 들었던 것 같아요.

 

선우 우리가 무엇에 대해 글을 쓴다고 할 때, 자기 검열을 하게 되잖아요. ‘내가 이 분야에 대해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얘기를 해도 될까’ 하면서, 사실은 내 안에 쌓여온 것들이 충분히 있음에도 지나친 겸손으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단 말이에요. 그런데 요즘 하는 생각이 ‘내가 50년 가까이 살았고, 이 일상이 쌓여 나를 일상의 전문가로 만들어준 부분이 분명히 있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하나씨도 어디 가서 이제 취미가 뭐냐고 질문을 받으면 ‘독서와 음악 감상’이라고 하거든요.

 

하나 모범답안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독서와 음악 감상.(웃음)

 

선우 그러니까 우리가 음악을 로틴(lowteen) 시절부터 들었단 말이에요. 열한 살, 열두 살때부터는 카세트테이프를 사고 그랬으니까요. 그렇게만 따져도 우리가 음악을 한 35년쯤 들은 거잖아요. 그럼 음악에 대해 우리가 들어온 시간이 있고, 쌓아온 경험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얘기할 수 있지 않나 싶은 거죠. 

 

하나 저는 내년이면 50이고, 선우씨는 내후년에 50이거든요. 방금 선우씨도 “한 50년 살아보니…”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이게 진짜 엄청 든든한 느낌이 있어요. 

 

선우 “내가 50년이나 살았는데 이 얘기도 못 해?” 이런 게 생겨요.(웃음) 

 

하나 저희 엄마가 예전에 그런 얘기 했거든요. 당신은 사회생활도 짧게 했고 그냥 애 둘 키우면서 집에서만 살았는데, 그동안 내내 집에서 책을 읽다 보니 50대 초반쯤 되어 자기 안에서 심지 같은 게 자라나 있는 느낌이 들었다고, 배짱이 두둑한 그런 마음이 생겼다고요. 이제 우리가 그 상태에 근접해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냥 즐거워서 취미 생활로 한 거지만, 그걸 놓치지 않고 계속해왔다는 것만으로도 심지가 자란 것 같죠. 저희가 요새 툭 하면 하는 말이 “우리 이제 뭐 했다 하면 30년이야”예요. “살아온 걸로 치면은 반백 년이야.” 이런 말 너무 든든하지 않나요?

 

하와이 딜리버리’ 계정에 제가 좋아하는 곡이 소개되려나 매일 궁금해하곤 했어요. 제 마음의 주파수와 맞는 트윗이 올라왔을 때는 너무 짜릿했고요. 두 분의 선곡 과정에서 서로를 전율하게 했던 기억이 있으시다면요.

선우 많죠. 저희 둘의 음악 취향이 세대가 비슷한 만큼 듣고 자란 음악들이 공통적일 수밖에 없잖아요. 고등학교 때부터는 슬슬 취향이 갈라지더라고요. 저는 막 록이나 백인 음악 같은 걸 들었다면, 하나씨는 힙합, 그루브가 강한 흑인 음악을 주로 들었어요. 대학생이 돼서는 그 격차가 더 커졌고요. ‘하와이 딜리버리’를 하면서 각자의 음악 선곡을 취합하다 보니 서로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선명하게 알게 됐어요. 이 일이 각자의 음악 취향 차이를 발견하는 데 도움을 줬죠. 제가 좋아하는 곡들의 특징을 떠올려보면 아름다운 선율이 있고, 하나씨가 좋아하는 곡들은 비트가 있고, 리드미컬하죠. 하나씨가 클래식을 재미없어하는 이유도 덕분에 구체적으로 알게 됐어요.

 

하나 그래서 처음에 이 리스트를 쌓아갈 때는 선우씨의 선곡에 의아할 때도 많이 있었어요.(웃음)

 

선우 왜 미친 곡이 아니어서?(웃음)

 

하나 ‘이 곡이 칵테일바와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요소는 뭘까’ 그런 생각을 주로 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선우씨가 고른 곡을 집중해서 들어보려고 했고, 그런 과정이 4년쯤 되니 처음 선곡했던 곡들을 다시 들어보면 너무 좋은 거예요. 학습이 되었던 거죠.

 

선우 이게 AI가 아닌 인간이 하는 일의 특징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를 받아들이면서 감응하기 시작하면 어떤 부분에서는 동화되는 것 같아요.

 

하나 난 진짜 그게 기억이 나거든. ‘선우씨가 그리고 있는 칵테일바는 내가 그리고 있는 것과는 느낌이 꽤 다르구나’ 하고 생각했던 거. 그런데 지금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어.

 



우리의 노후 계획 ‘하와이 딜리버리

 

하와이 딜리버리’의 다른 이름은 ‘우리의 노후 계획’입니다. 이토록 낭만적인 노후 계획이 있을까 싶어요. 지금 대부분 몰두해 있는 삶의 가치는 부동산, 주식 등으로 설명되는 숫자인데요. 숫자를 셈하기 바쁜 이 세상을 사는 우리에게 셈 없는 계획의 유익이 무엇인지 두 분께 여쭤보고 싶었어요.

하나 우리가 셈이 없어?(웃음)

 

선우 이분은 셈이 좀 없어요. 부산에 칵테일바 차리면 대박 날 것 같지 않아?를 셈이라고 생각하는 정도예요.(웃음) ‘하와이 딜리버리’에 대해 처음 얘기할 때를 떠올려보면, 저희 둘 다 부산 출신이고 물론 서울에서의 삶이 훨씬 길어진 상태지만 여전히 서울이 차갑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어요. 서울은 집값도 비싸고, 인구 밀도도 너무 높고, 각박하고요. 실수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팽팽한 긴장의 연속이라 이렇게 살아가는 게 맞나 하는 생각마저 종종 든단 말이에요. 물론 어릴 때는 이 생각이 더 깊었어요. 그때는 무조건 여기서 살아남아야 하고 적응해야 한다는 생존 미션에 경도돼 있었는데, 이제는 다른 삶도 있지 않을까를 생각할 수 있게 된 거죠. 그건 여유가 생겼기 때문에 가능한 거겠죠? 저희가 그래도 각자 일해서 이곳에 자리를 잡았고, 말하자면 서울이라는 도시가 강요하는 정상성의 삶 밖에 살아도 괜찮고, 다른 길이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기 때문일 테고요. 


저희는 어릴 때 둘 다 바닷가에서 자랐던 게 사람의 내면에 굉장히 크게 자리하고 있다는 걸 공감하거든요. 서울이 좀 답답하다고 느낄 때가 있고, 언젠가 바닷가 도시에서 느린 속도로 살아가도 좋지 않을까 이야기하곤 했어요. 그러니까 이런 생각 자체가 노후 계획일 수가 있는 거예요. 말하자면 그동안 내가 국민연금을 얼마 납부했으니 노후에 다달이 얼마씩을 받고, 고정비를 지출하고 남은 적은 돈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를 계산하는 데 급급한 게 아니라 정말 내 삶의 큰 방향을 스케치해보는 거죠.


그러면 지금 삶의 조건들을 달리 바꾸는 상상을 했을 때, 우리가 지금 좋아하는 것들 중 몇십 년 후에도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은가에 대답해보는 것이 노후 계획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어차피 둘 다 숫자엔 약하니까 재테크를 하겠답시고 하루에 막 두 시간씩 주식 창을 들여다보고, 그런 책을 읽어서 공부하는 것보다 우리 본업을 잘하는 게 재테크라고 생각하고요. 그럴 시간에 우리 일을 더 착실하게 잘하는 게 재정에 훨씬 도움이 된다고 믿는 편이거든요. 그러니까 비슷한 거죠. ‘인생의 방향을 옳게 설정을 해두고 가다 보면 잘 살고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거죠.

 

하나 노후 계획을 꼭 노후를 위한 계획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희는 이미 4년 넘게 '하와이 딜리버리’를 통해 노후 계획을 실천하면서 살았고, 그러다 책이 되었고, 이게 또 우리한테 영향을 미칠 테니까 셈의 관점으로 봐도 이미 뽑을 걸 다 뽑았어요. 노후 계획이라는 존재로 현재 일상의 좋은 혜택을 다 받은 거죠. 그리고 이 경험을 품고 살아가다 보면 그것이 씨앗이 되어서 다른 방향으로 우리의 노후가 펼쳐져 있겠고요.


저희가 몇 년째 첫째 고양이가 아파서 매일매일 수액을 주는지라 둘이 같이 여행을 떠난 지 벌써 여러 해가 됐어요. 요즘은 이런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지금 함께 사는 이 고양이들과 언젠가 헤어지고 나면 어디 붙박이지 말고 돌아다니면서 살아보자고요. 우리가 하는 일은 마이크만 있으면 되니까요. 이를테면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한 달을 살면서 오늘은 리우의 음식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할 수도 있는 거죠. 이렇게 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이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서울에 붙박여 살아야 한다는 마음이 조금 연해지는 거예요. 우리의 터전은 마이크니까요. 우리의 터전은 저 아파트가 아니라 어디든 우리가 들고 떠날 수 있는 마이크인 거죠. 이렇게 생각하면 삶은 훨씬 더 유동성을 갖게 되지 않을까요?

 

선우 저희도 사실 노년에 대해 아직은 잘 모르지만,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무료입장이 65세부터인데 얼마 안 남았단 말이에요. 그렇게 생각하면 노후라는 게 그렇게 먼 훗날이라거나 지금과 엄청 다른 일상이라거나는 아닐 것 같은 거예요. 그런데 여전히 많은 사람이 갖고 있는 노후 개념은 한 회사를 정년 때까지 다닌 후의 삶, 그러니까 우리 부모님 세대가 하는 생각 같아요. 우리는 훨씬 더 오래 살게 될 거고, 고용 형태도 크게 달라져서 새로운 노동 형태에 대한 연착륙이 필요할 것 같단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노년에도 일할 수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 할지, 가능하다면 지금 내 삶에서 가져갈 수 있는 건 무엇이 될지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왜냐하면 대부분 ‘악기 하나 배워 보고 싶은데, 혹은 그림을 배워 보고 싶은데’를 말하면서 동시에 ‘은퇴하면 해야지’ 하거든요. 사실 ‘지금 못 할 이유는 뭘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시간이 없다는 말로 미루는데, 좋아하는 것은 시간을 내서 할 수 있어야 하는 거죠.

 

그렇다면 두 분에게 음악은 왜 이렇게 좋은 것이 되었을까요?

선우 지금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까 생각하게 된 건데, 삶에 꼭 필요한 게 아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숫자로만 삶을 채우면 인간다울까요? 물론 그것만으로도 너무 즐거운 사람들이 있겠죠. 어쩌면 인간의 물리적인 삶의 조건엔 음악이 포함되지 않아요.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더, 인간의 영혼을 위해 음악이 필요한 것 아닐까요.

 

하나 하지만 흑인 노예들은 극한의 노동을 견디기 위해, 살기 위해 노래를 불렀단 말이에요.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음악이라는 게 사는 데 굉장히 필수 불가결한 것일 수도 있어요. 또 다른 면으로 생각하면, 어떤 사람들은 색채에 엄청 빠져들기도 하고, 음식에 빠져들기도 하고, 저희는 어쩌다 보니 음악에 빠져드는 사람이었던 거죠. 저희가 급속도로 친해진 데는 음악이 정말 컸어요. 예전에 한 음악 교수님께 들은 얘기인데, 20대 초반이 인생에서 가장 음악을 많이 듣는 시기라더라고요. 저는 대학 때 음악 동아리도 하고 그랬는데, 그때 같이 듣던 친구들이 지금까지 음악을 좋아하거나 듣는 경우는 많지 않아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죠. 그때 음악을 듣던 환경, 지금의 환경이 달라진 이유가 제일 클 거고요. 그런데 저희 같은 경우는 음악을 계속 즐겁게 들었고, 둘이 만났더니 시너지가 더 생겨서 음악 이야기를 하고, 음악 공연을 보러가고, 페스티벌을 다니게 되었어요. 그게 인생의 기억이 되어 선순환이 일어나니 반백 년을 살아오는 동안 음악은 저희에게 무척 필요한 것이 되었고요. 


그래서 좋은 것 같아요. 음악을 계속 잘 듣고 싶고, 또 이제 음악책까지 냈으니 저희 삶이 또 새롭게 꾸며지겠죠. 아, 서울사이버음악대라는 뮤지션으로서의 삶도요.(웃음)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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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기식

사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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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은영

쓰고 엮고 매만집니다. 더불어 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