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돌의 도발적 매력! 가인이 거둔 가장 큰 수확은… 外 나비, 3호선 버터플라이
19금 뮤직비디오로도 화제를 뿌린 바 있죠. 스모키 화장을 지우고 좀 더 앳된 모습으로 돌아온 가인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분위기는 훨씬 야릇해진 것 같네요. 이 주의 앨범, 10월 마지막 주의 메인은 그녀의 장점을 잘 살린 두 번째 솔로 미니앨범, < Talk About S >입니다.
2012.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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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 뮤직비디오로도 화제를 뿌린 바 있죠. 스모키 화장을 지우고 좀 더 앳된 모습으로 돌아온 가인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분위기는 훨씬 야릇해진 것 같네요. 이 주의 앨범, 10월 마지막 주의 메인은 그녀의 장점을 잘 살린 두 번째 솔로 미니앨범, < Talk About S >입니다. 시원한 가창력을 자랑하는 가수 나비의 신보와 시와 음악을 결합한 독특한 음악을 들려주는 3호선 버터플라이의 신보도 함께 소개해 드립니다.
가인 < Talk About S >
※ 아이유는 아이유고, 가인은 가인이다.
로엔은 아이돌과 아티스트 사이에 있는 경계선 제거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타진해 왔다. 10대들의 기호를 맞추면서도, 트렌디라는 허울 좋은 진부함보다는 작곡가 진들의 오리지널리티를 중심에 둬 왔다는 것이 그 증거다. 이 과정에서 일렉트로니카와 가요의 황금비율을 제시한 브라운 아이드 걸스와 1990년대의 영웅들을 21세기로 소환해 낸 아이유는 성공의 일례가 되었지만, 써니힐이나 피에스타 같은 틴 팝 지향성 그룹의 경우 과한 음악적 정성이 오히려 가장 큰 수요층에게 어필할 수 있는 포인트를 상쇄시켜 버리기도 했다.
이러한 시기에 선보인 가인의 신작은 여태까지 보여 왔던 일련의 과정이 가수 자체의 캐릭터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수단이었음을 본격적으로 드러낸다. 타이틀곡인 「피어나」는 이를 가장 뚜렷하게 느낄 수 있는 곡인데, 기본 노선은 「좋은 날」과 「너랑 나」임에도 그녀만이 가지고 있는 느낌을 이끌어내며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센스가 일품이다. 후렴구를 거치며 유사함에 대한 의심은 어쩔 수 없이 확신이 되지만, 도입부의 펑키함과 보컬에서 느껴지는 성숙한 음색이 자연스럽게 대중의 시선을 가인으로 집중되게끔 한다. 이쯤 되면 단순히 ‘좋은 노래’가 아닌 ‘그만이 소화할 수 있는’ 노래라는 느낌으로 작업에 임하고 있음이 어렴풋이 느껴진다. 그리고 이러한 프로듀싱은 앨범 전체를 휘감고 있다.
어쿠스틱 기타를 잘라 일렉트로니카의 소스로 사용한 정석원의 「팅커벨」 역시 그가 만들었던 아이유의 「비밀」과 비교했을 때 또 다른 재미를 발견하게 한다. 소녀가 응어리진 첫사랑을 꺼내놓는 순수한 발라드와 외로운 밤에 이성을 유혹하는 관능적 일렉트로니카 튠의 대비. 이 장면에서 본인의 색깔을 뚜렷이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창작자들의 남다른 센스임을 목격하게 해준다.
이처럼 요즘 인기 있는 작곡가들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뮤지션의 기용 자체가 단순히 주류와는 다른 방향성을 가지기 위한 것이 아닌, 각 가수의 아이덴티티 확립을 소구하다 보니 찾게 된 방법론이라는 것에 무게가 실린다. 아이유의 앨범에도 참여했던 이민수와 정석원, 윤종신이라는 크리에이티브 집단이 가인에게는 180도 다른 결과물을 안겨주며 솔로로서의 커리어를 단단히 다져주었다는 것이 그 효과를 반증하고 있다.
이를 받아들이는 그녀의 유연성도 한 몫하며 어떤 장르의 음악이라도 본인의 캐릭터로 수렴 가능한 범용성을 획득했다는 것이 그간 두 작품이 일구어낸 가장 큰 수확이다. 「돌이킬 수 없는」과 「피어나」는 장르상으로 큰 상이함을 가지고 있을지언정, 그 모든 것이 가인이라는 인격 안에서 펼쳐지고 있음을 효과적으로 설득해내는 과정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시선」의 농후한 섹시함도, 「Catch me if you can」의 그루브있는 발랄함도 어색해 보이지 않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이처럼 신의 흐름을 배제하고 온전히 ‘인물’ 자체에 초점을 맞춰 정체성을 확립해가는 로엔의 프로듀싱은 확실히 안정권에 접어든 듯하다. 소속 뮤지션들에게 공통점은 있을지언정 정체성의 교집합은 느껴지지 않는 덕분이다. 아이유는 아이유고, 가인은 가인인 것이다.
나비(Navi) < Real Love >
「I love you」, 「잘 된 일이야」로 대중에 이목을 끈 여성 가수 나비가 직접 프로듀싱한 미니 앨범을 들고 돌아왔다. 그간 전자 비트를 가미하거나, R&B 느낌이 충만한 발라드를 불렀던 것에 반해 이번엔 어쿠스틱 악기를 중점으로 꾸려 음향에서 전작과의 차별을 두었다. 제작자 이현승이 그녀를 처음 대면한 장소가 ‘라이브 재즈 클럽’이었다는 점을 참조한다면, 이번 음반은 평소 나비가 지향했던 음악 분위기에 좀 더 다가간 앨범이다.
첫 프로듀싱임에도 방향이 확실하여 좋다. 가사는 ‘사랑’이란 주제로 풀어나갔고, 소리는 어쿠스틱 밴드에 집중했다. 갈색 톤으로 중심을 잡은 커버의 색상과 평소 애절한 음색을 들려줬던 목소리까지 합쳐본다면, 앨범은 절로 가을이란 단어를 연상시키게 한다.
발군의 발성을 자랑하는 가창력은 여전히 곡을 장악했다. 록발라드만큼 강한 사운드인 「이 거리에」, 「놀라워라」, 「길에서」와 같은 전개의 발라드 「가지마」, 관악기까지 동원되어 빅밴드를 연상시키게 하는 「소설같은 사랑」 등 색깔이 조금씩 달라짐에도 가수는 말끔히 소화하니, 프로듀서를 떠나 ‘가수의 기본’을 지켜내는 그녀의 능력이 데뷔작 < Hello >(2011)에 이어 다시 한 번 검증되는 순간이다.
귀에 감기는 선율을 제공한 자작곡들은 「사랑비」의 이현승, ‘감성파장’의 멤버 ‘를’의 지원 속에서도 ‘뮤지션’의 존재로서 한 몫을 담당해낸다. 가수는 물론이고 아티스트로서의 능력까지 겸비했음에도 유독 계절에 맞춘 곡들이 쏟아져 나온 2012년 가을 가요계에서 약진하는 모습을 보지 못해 아쉬울 뿐이다. < 불후의 명곡 >을 통해 이미 장점은 노출되었고, 남은 건 「I love you」를 능가할 히트송의 제작만 남은 상황. 소속사란 테두리가 아닌, 외부 용병과 접촉이 한 번쯤은 필요하다.
3호선 버터플라이 < Dreamtalk >
‘꿈’은 매일같이 접하는 말이지만, 최근 ‘꿈 이야기’를 하거나 ‘꿈을 꾸는 사람’은 상당히 감소한 듯하다. 이건 ‘꿈’을 허무맹랑하게 취급하거나, ‘꿈을 꾸는 행위’ 즉 ‘잠을 자는 행위’를 게으름과 연관 지어 멸시하는 ‘현대인의 습성’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3호선 버터플라이의 신작 타이틀(어쩌면 주제가 될)은 익숙하면서도 반갑다. 일관성이나 규칙 없이 불쑥 튀어나오는 꿈의 속성은 신보의 13개의 곡들에게도 해당된다. 게다가 현실과 닮았으면서도 어딘가 기묘하게 뒤틀린, 그래서 신비로운 무의식과도 맞닿아있다. 사이키델릭한 어지럼증과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짙은 심연도 ‘꿈의 대화’의 특질 중 하나일 것이다. 앞으로의 글의 진행도 음악의 순서에 따라 조금은 들쑥날쑥함을 미리 사과드린다.
재생버튼을 누르면 그동안 성기완이 골몰했던 여러 단상들이 「스모우크핫커피리필」에서 실연된다. 그 키워드를 잠시 추려보면 ‘발음’, ‘모듈’, ‘소리벽지’다. 그는 최근 시집에서 ‘ㄹ’의 발음에 대해 관심을 두었는데, 이 노래도 「스모우크핫커피리필」이라는 발음-그러니까 이 낱말들은 어딘가 차갑고 세련된 기운이 서려있다. 게다가 멤버들 목소리와 전자음이 하나씩 쌓이면서 ‘다발 → 레이어 → 모듈’을 구축하며, 이를 거대한 소리벽지로 감싸는 작업이 4분 30초속에 담겨있다. 이처럼 몇 가지 단어의 나열만으로 ‘뜨거운 커피가 있는 깊은 밤 안개 속’을 목격하는 일은 대단히 감격스럽다.
이 앨범의 즐거움은 헤드폰이나 이어폰을 사용해야 비로소 발견할 수 있다. 「꿈속으로」는 앨범타이틀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난 곡으로, 전주부터 청각을 자극시킨다. 비트와 보컬은 안마를 하듯 왼쪽 오른쪽을 오가며 고막을 두드리고, 이 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최면에 걸리는 것처럼 현실과는 점점 멀어지게 된다. 연속성이 없는 꿈속처럼 중간지점의 변주도 갑작스럽다. 보컬이 어느 틈새로 빨려들다가도 갑자기 환해지고, 성기완의 중얼거림 이후 독특한 후렴구(쭈릅쭛쭈뤄)가 등장해 밀치듯 다음 씬(Scene)으로 전환된다. 할머니의 빙의까지 듣고 있노라면 어느새 밑바닥까지 아득하게 떨어져 내려간다. 그동안 가사를 통해 이미지를 상상하게 만드는 음악은 많았지만 이토록 섬뜩하게 감각을 반응케 하는 곡은 드물다.
전작 「김포쌍나팔」과 마찬가지로 재즈와 노이즈의 활용도 빼놓지 않았다. 특히 「니가 더 섹시해 괜찮아」와 「J Say」가 그러하다. 「니가 더 섹시해 괜찮아」는 스캣으로 시작해, 보컬 중간마다 사소한 노이즈들을 끼우고, 그 노이즈는 어느새 비트로 변환되며 연주로 확장된다. 「J Say」는 재지한 베이스를 중심으로, 보컬을 이정표 삼아, 여러 노이즈들이 풍경으로 끼어든다. (보컬의 안내에 따라 길을 걷는 기분으로 들으면 유쾌하다. 이 때 베이스는 발자국 소리로 상상하기도 했다.) 산책길은 멀쩡하게 존재하다가 노이즈로 인해 갑자기 폭발하거나 붕괴하면서 돌발적인 재미를 제공한다.
더욱이 가사와 보컬, 연주의 싱크로율이 상당히 높다. 「니가 더 섹시해 괜찮아」는 꽃을 ‘피어나’게 해서 속을 훤히 보여주지 않는다. 지를 듯 지르지 않는 보컬과 앙큼한 속삭임(안돼, 컴투미 등)은 여물어 터질 듯한 꽃망울처럼 농염하다. 사실 가장 섹시한 것은 다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보여줄 듯 보여주지 않는 아찔함이 아니던가. 「헤어지는 날 바로 오늘」은 잔뜩 잠긴 보컬로 시작해 ‘가지 말라고’ 애원하는 서러움, 결국 무너져 내리는 감정을 정밀하게 묘사한다. 이 때 마음의 굴곡에 따라 건반은 진눈깨비처럼 흩날리고 기타는 가사와, 보컬 곁에서 크게 복받쳐 운다.
남상아의 보컬은 한껏 넓고 깊어졌다. 때때로 경직되고 무겁게 느껴졌던 노래는 「너와 나」와 「Hello」에서 본격적으로 힘을 빼고 유연하게 바뀌었다. 이건 전 EP < Nine Days Or A Million >에서도 예고된 바 있다. 김남윤의 디테일한 레코딩도 앨범을 듣는 큰 기쁨이다. 특히 「향」은 밸런스 감각이 두드러진다. 오버더빙 중 한 목소리는 마치 향의 연기처럼 아득하게 흩뿌려놓았다. 퍼즈가 잔뜩 끼어 늘어지는 사운드와 공허한 보컬도 조화롭다. 이런 세심한 공정은 고도로 계산되기보다는 직관적인 능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 개의 향의 재가 툭 목을 꺾을 때” 자연적으로 우리 눈에서 눈물이 툭 꺾인다.
“우리 모두 음악을 듣더라도 사실 소리만 듣는 게 아니라 다른 마음들을 듣는 거잖아. 그런 통합적인 느낌이 참 중요한데 별로 얘기되는 것 같지 않다.”-성기완 (씨네21 2009 인터뷰)
「제주바람 20110807」은 바람의 소리를 직접 채집했다. (참고로 2011년 8월 7일 제주도 날씨는 무이파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흩뿌리고 바람이 많이 불었다) 긴박한 바람을 좇는 마음의 소리는 불안하고 불온하다. 제주바람은 이 앨범에서 가장 강렬하다. 이것이 거대한 태풍의 소리라서, 한 순간을 포착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바람의 소리는 음악이 될 수 있을까, 소리와 음악은 무엇이 다른가, 하는 음악 존재에 대한 생각까지 휘몰아친다.
마지막은 「끝말잇기」다. 때때로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가는 상황에서 흘러나오는 엔딩 곡은 전체 분위기와는 조금 동떨어진 경우가 있다. 그것은 마치 “이것은 철저히 영화였습니다. 자! 이제는 정신을 추스르고 집으로 돌아가세요!”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의미는 관련이 없지만 같은 글자로 꿰어진 단어들의 임무도 유사하다. 결국 ‘끝말’은 ‘3호선 버터플라이’며, 이것은 이 앨범의 운명적인 종착역처럼 보인다. 13년을 달려온 밴드다 보니 (그 속도와는 상관없이) ‘연륜’이라는 단어를 떼어 낼 수가 없다. ‘연륜’이라는 것은 몸으로 체득한 상태, 그러니까 지도와 어플 등을 사용하지 않아도, 어디로 갈지, 어떻게 갈지 알게 된 그 상태가 아닐까. 이 앨범은 그 연륜의 바퀴를 타고 우리 앞에, 지금 막 정차했다.
가인 < Talk About S >
※ 아이유는 아이유고, 가인은 가인이다.
로엔은 아이돌과 아티스트 사이에 있는 경계선 제거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타진해 왔다. 10대들의 기호를 맞추면서도, 트렌디라는 허울 좋은 진부함보다는 작곡가 진들의 오리지널리티를 중심에 둬 왔다는 것이 그 증거다. 이 과정에서 일렉트로니카와 가요의 황금비율을 제시한 브라운 아이드 걸스와 1990년대의 영웅들을 21세기로 소환해 낸 아이유는 성공의 일례가 되었지만, 써니힐이나 피에스타 같은 틴 팝 지향성 그룹의 경우 과한 음악적 정성이 오히려 가장 큰 수요층에게 어필할 수 있는 포인트를 상쇄시켜 버리기도 했다.
어쿠스틱 기타를 잘라 일렉트로니카의 소스로 사용한 정석원의 「팅커벨」 역시 그가 만들었던 아이유의 「비밀」과 비교했을 때 또 다른 재미를 발견하게 한다. 소녀가 응어리진 첫사랑을 꺼내놓는 순수한 발라드와 외로운 밤에 이성을 유혹하는 관능적 일렉트로니카 튠의 대비. 이 장면에서 본인의 색깔을 뚜렷이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창작자들의 남다른 센스임을 목격하게 해준다.
이처럼 요즘 인기 있는 작곡가들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뮤지션의 기용 자체가 단순히 주류와는 다른 방향성을 가지기 위한 것이 아닌, 각 가수의 아이덴티티 확립을 소구하다 보니 찾게 된 방법론이라는 것에 무게가 실린다. 아이유의 앨범에도 참여했던 이민수와 정석원, 윤종신이라는 크리에이티브 집단이 가인에게는 180도 다른 결과물을 안겨주며 솔로로서의 커리어를 단단히 다져주었다는 것이 그 효과를 반증하고 있다.
이를 받아들이는 그녀의 유연성도 한 몫하며 어떤 장르의 음악이라도 본인의 캐릭터로 수렴 가능한 범용성을 획득했다는 것이 그간 두 작품이 일구어낸 가장 큰 수확이다. 「돌이킬 수 없는」과 「피어나」는 장르상으로 큰 상이함을 가지고 있을지언정, 그 모든 것이 가인이라는 인격 안에서 펼쳐지고 있음을 효과적으로 설득해내는 과정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시선」의 농후한 섹시함도, 「Catch me if you can」의 그루브있는 발랄함도 어색해 보이지 않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이처럼 신의 흐름을 배제하고 온전히 ‘인물’ 자체에 초점을 맞춰 정체성을 확립해가는 로엔의 프로듀싱은 확실히 안정권에 접어든 듯하다. 소속 뮤지션들에게 공통점은 있을지언정 정체성의 교집합은 느껴지지 않는 덕분이다. 아이유는 아이유고, 가인은 가인인 것이다.
글 / 황선업(sunup.and.down16@gmail.com)
나비(Navi) < Real Love >
첫 프로듀싱임에도 방향이 확실하여 좋다. 가사는 ‘사랑’이란 주제로 풀어나갔고, 소리는 어쿠스틱 밴드에 집중했다. 갈색 톤으로 중심을 잡은 커버의 색상과 평소 애절한 음색을 들려줬던 목소리까지 합쳐본다면, 앨범은 절로 가을이란 단어를 연상시키게 한다.
귀에 감기는 선율을 제공한 자작곡들은 「사랑비」의 이현승, ‘감성파장’의 멤버 ‘를’의 지원 속에서도 ‘뮤지션’의 존재로서 한 몫을 담당해낸다. 가수는 물론이고 아티스트로서의 능력까지 겸비했음에도 유독 계절에 맞춘 곡들이 쏟아져 나온 2012년 가을 가요계에서 약진하는 모습을 보지 못해 아쉬울 뿐이다. < 불후의 명곡 >을 통해 이미 장점은 노출되었고, 남은 건 「I love you」를 능가할 히트송의 제작만 남은 상황. 소속사란 테두리가 아닌, 외부 용병과 접촉이 한 번쯤은 필요하다.
글 / 이종민(1stplanet@gmail.com)
3호선 버터플라이 < Dreamtalk >
‘꿈’은 매일같이 접하는 말이지만, 최근 ‘꿈 이야기’를 하거나 ‘꿈을 꾸는 사람’은 상당히 감소한 듯하다. 이건 ‘꿈’을 허무맹랑하게 취급하거나, ‘꿈을 꾸는 행위’ 즉 ‘잠을 자는 행위’를 게으름과 연관 지어 멸시하는 ‘현대인의 습성’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3호선 버터플라이의 신작 타이틀(어쩌면 주제가 될)은 익숙하면서도 반갑다. 일관성이나 규칙 없이 불쑥 튀어나오는 꿈의 속성은 신보의 13개의 곡들에게도 해당된다. 게다가 현실과 닮았으면서도 어딘가 기묘하게 뒤틀린, 그래서 신비로운 무의식과도 맞닿아있다. 사이키델릭한 어지럼증과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짙은 심연도 ‘꿈의 대화’의 특질 중 하나일 것이다. 앞으로의 글의 진행도 음악의 순서에 따라 조금은 들쑥날쑥함을 미리 사과드린다.
이 앨범의 즐거움은 헤드폰이나 이어폰을 사용해야 비로소 발견할 수 있다. 「꿈속으로」는 앨범타이틀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난 곡으로, 전주부터 청각을 자극시킨다. 비트와 보컬은 안마를 하듯 왼쪽 오른쪽을 오가며 고막을 두드리고, 이 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최면에 걸리는 것처럼 현실과는 점점 멀어지게 된다. 연속성이 없는 꿈속처럼 중간지점의 변주도 갑작스럽다. 보컬이 어느 틈새로 빨려들다가도 갑자기 환해지고, 성기완의 중얼거림 이후 독특한 후렴구(쭈릅쭛쭈뤄)가 등장해 밀치듯 다음 씬(Scene)으로 전환된다. 할머니의 빙의까지 듣고 있노라면 어느새 밑바닥까지 아득하게 떨어져 내려간다. 그동안 가사를 통해 이미지를 상상하게 만드는 음악은 많았지만 이토록 섬뜩하게 감각을 반응케 하는 곡은 드물다.
전작 「김포쌍나팔」과 마찬가지로 재즈와 노이즈의 활용도 빼놓지 않았다. 특히 「니가 더 섹시해 괜찮아」와 「J Say」가 그러하다. 「니가 더 섹시해 괜찮아」는 스캣으로 시작해, 보컬 중간마다 사소한 노이즈들을 끼우고, 그 노이즈는 어느새 비트로 변환되며 연주로 확장된다. 「J Say」는 재지한 베이스를 중심으로, 보컬을 이정표 삼아, 여러 노이즈들이 풍경으로 끼어든다. (보컬의 안내에 따라 길을 걷는 기분으로 들으면 유쾌하다. 이 때 베이스는 발자국 소리로 상상하기도 했다.) 산책길은 멀쩡하게 존재하다가 노이즈로 인해 갑자기 폭발하거나 붕괴하면서 돌발적인 재미를 제공한다.
더욱이 가사와 보컬, 연주의 싱크로율이 상당히 높다. 「니가 더 섹시해 괜찮아」는 꽃을 ‘피어나’게 해서 속을 훤히 보여주지 않는다. 지를 듯 지르지 않는 보컬과 앙큼한 속삭임(안돼, 컴투미 등)은 여물어 터질 듯한 꽃망울처럼 농염하다. 사실 가장 섹시한 것은 다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보여줄 듯 보여주지 않는 아찔함이 아니던가. 「헤어지는 날 바로 오늘」은 잔뜩 잠긴 보컬로 시작해 ‘가지 말라고’ 애원하는 서러움, 결국 무너져 내리는 감정을 정밀하게 묘사한다. 이 때 마음의 굴곡에 따라 건반은 진눈깨비처럼 흩날리고 기타는 가사와, 보컬 곁에서 크게 복받쳐 운다.
“우리 모두 음악을 듣더라도 사실 소리만 듣는 게 아니라 다른 마음들을 듣는 거잖아. 그런 통합적인 느낌이 참 중요한데 별로 얘기되는 것 같지 않다.”-성기완 (씨네21 2009 인터뷰)
「제주바람 20110807」은 바람의 소리를 직접 채집했다. (참고로 2011년 8월 7일 제주도 날씨는 무이파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흩뿌리고 바람이 많이 불었다) 긴박한 바람을 좇는 마음의 소리는 불안하고 불온하다. 제주바람은 이 앨범에서 가장 강렬하다. 이것이 거대한 태풍의 소리라서, 한 순간을 포착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바람의 소리는 음악이 될 수 있을까, 소리와 음악은 무엇이 다른가, 하는 음악 존재에 대한 생각까지 휘몰아친다.
마지막은 「끝말잇기」다. 때때로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가는 상황에서 흘러나오는 엔딩 곡은 전체 분위기와는 조금 동떨어진 경우가 있다. 그것은 마치 “이것은 철저히 영화였습니다. 자! 이제는 정신을 추스르고 집으로 돌아가세요!”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의미는 관련이 없지만 같은 글자로 꿰어진 단어들의 임무도 유사하다. 결국 ‘끝말’은 ‘3호선 버터플라이’며, 이것은 이 앨범의 운명적인 종착역처럼 보인다. 13년을 달려온 밴드다 보니 (그 속도와는 상관없이) ‘연륜’이라는 단어를 떼어 낼 수가 없다. ‘연륜’이라는 것은 몸으로 체득한 상태, 그러니까 지도와 어플 등을 사용하지 않아도, 어디로 갈지, 어떻게 갈지 알게 된 그 상태가 아닐까. 이 앨범은 그 연륜의 바퀴를 타고 우리 앞에, 지금 막 정차했다.
글 / 김반야(10_b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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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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