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이면 코카콜라를 훔쳤을까?
인권이라고 하면 어렵다. 적어도 쉽지 않다. 그런 인권에 대해서 보다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국가인권위원회와 출판사 창비가 주관하는 인권영화제가 서교동 인문카페창비에서 열린다. 2013년 2월부터 6월까지 매월 셋째 주 목요일에 열리는 이 행사는 영상매체를 통해서 어려운 인권을 보다 쉽게 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글ㆍ사진 정준민
2013.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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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시간의 주제는 탈북과 이주였다. 관람한 영화는 정지우 감독의 <배낭을 멘 소년>과 강이관 감독의 <이빨 두 개>였다. 두 영화는 탈북 영화이면서 동시에 청소년 영화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영화 관람을 마치고 정지우, 강이관 감독과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탈북 청소년, 소재의 선택이 궁금하다

관객: 탈북자 중에서도 많은 계층이 있는데 왜 하필이면 청소년을 대상으로 했는지 궁금합니다.

강이관: 지금까지 단편 두 개와 장편 하나를 청소년과 관련해서 찍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세 작품 모두 주인공이 중학생 2학년 남자아이였습니다. 왜 자꾸 그 시기를 영화로 만드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기억도 하면서 정체성도 확립했던 시기가 바로 중학교 시절이었습니다. 그 시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만, 잘 되지 않아 계속 재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인권 영화를 만들면 일반적으로 다양한 계층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도록 열어두고 있습니다. 특정한 주제를 드릴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많은 이야기 중에서 왜 북에서 온 청소년에 대한 영화를 만드셨습니까?

정지우: 하고 많은 이야기 중에서 왜 북에서 온 청소년에 대한 영화를 만들게 되었는지, 그 순간의 기억은 가물가물합니다. 하지만 너무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처음부터 무언가를 알아서 영화를 만들었다기 보다는,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서 탈북 청소년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모호하게 접근을 했지만, 영화를 만들어 가면서 보다 분명하게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강이관: TV에서 탈북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뉴스에서 북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마다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인터뷰도 해야 되고 자료 조사도 해야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마침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제안이 들어왔고, 이번 기회를 통해서 탈북자를 만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부터 탈북 청소년에 대한 영화를 만들려는 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성인 탈북자에 대한 영화를 만들려고 했고, 탈북 청소년은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진행자: 호칭 문제가 참 어렵습니다. 예전에는 일괄적으로 탈북자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다 DJ 정부가 들어오면서 새터민으로 호칭이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탈북자들은 그렇게 불리는 걸 싫어했습니다. 여기가 새터면 북한은 헌터냐며, 우리를 대상화해서 부르지 말아달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MB 정부가 들어오고 북한 이탈 주민이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에서 사용되는 용어를 보면 정치적인 함의가 있습니다. 알게 모르게 단어가 대상화 되어 사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배낭을 멘 소년>의 정지우 감독에게 묻는다

관객: <배낭을 멘 소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소년과 소녀가 코카콜라를 훔치는 장면이었습니다. 왜 그 많은 물건 중에서 하필이면 코카콜라를 훔쳤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코카콜라가 미국의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것 같은데, 제 생각이 맞습니까?

정지우: 소녀는 노래방에서 일을 했지만 임금이 체불된 상태였습니다. 체불된 임금을 되돌려 받고 싶었지만 방법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체불된 임금을 되돌려 받기 위한 수단으로 코카콜라를 훔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탈북자가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영화로 표현해 보고 싶었습니다. 코카콜라는 말씀 하신 대로 미국의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많은 음료수 중에서 코카콜라를 사용한 것이 참 계면쩍습니다. 다른 음료수로 바꿀까도 생각해보았지만, 막상 바꾸려고 하면 무엇으로 바꿀까 난처한 것도 사실입니다.

관객: <배낭을 멘 소년>에서 “내가 남한 아이들 보다 잘하는 건 이 오토바이를 타는 것 밖에 없어”라고 했던 소년의 대사가 인상 깊었습니다. 하지만 그 소년은 오토바이를 타다가 죽었습니다. 감독님이 무엇을 의도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정지우: 제가 인터뷰를 했던 당시에 탈북 청소년이 많이 했던 일은 배달과 주유소 일이었습니다. 특별히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일입니다. 배달을 하면 오토바이를 타게 되는데, 오토바이를 타다 보면 답답한 마음을 풀 수 있는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과격하게 타는 아이도 많았고, 실제로 오토바이를 타다가 죽은 탈북 청소년도 있었습니다. 탈북 청소년도 학교에 가긴 하지만 정규 수업을 따라가는 건 벅차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정상적인 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들도 절반 정도는 정규 수업에 따라가지 못한다고 하니, 탈북 청소년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오토바이를 더 빨리 타다가 죽은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영화로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관객: <배낭을 멘 소년>에서 말을 할 수 있지만, 말을 참는 소녀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소녀가 처음으로 한 말이 북한에 가야 된다는 말이었을 때 충격이 컸습니다. 탈북을 했지만 남한에서 적응하기 힘들어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정지우: 말을 다르게 하는 것, 차이가 있는 걸 다르다고 인식하는 게 아니라 열등하다고 인식합니다. 그렇게 말하면 우리의 영어 발음은 어떻습니까? 서양인과 비교하면 열등한 영어 발음입니다. 그런 시각을 아직 거두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탈북자도 열등하지 않고 인간적인 자존감이 있다는 걸 영화로써 표현해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인터뷰한 아이들 중에 사내 아이 네 다섯 명이 함께 내려온 경우가 있었습니다. 당시는 북한에 심각한 흉작이 들어 국경 관리를 일부러 느슨하게 하던 시기였습니다. 중국에서 돈을 벌어서 북한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그 아이들은 중국에 있다가 남한으로 내려올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북한으로 들어가 부모님에게 하직인사를 하고 중국으로 다시 건너가 남한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은 따뜻한 남쪽나라에 내려가고 싶어서 남한에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공해서 이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열망이 컸습니다. 그 사실이 저에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방적인 우리의 관점에서는 모두 같은 탈북자로만 보입니다.





<이빨 두 개>의 강이관 감독에게 묻는다

관객: <이빨 두 개>에서는 주로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북한 인권을 표현하고 싶었는지 궁금합니다.

강이관: 명확한 메시지를 줄 생각은 없었습니다. 각각의 등장인물에 감정이입을 하면서, “내가 저 상황이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끔 만들고 싶었습니다. 아이의 입장과 엄마의 입장 그리고 선생님의 입장이 다 다릅니다. 만약에 남한 아이 둘이 부딪혀서 이빨 두 개가 부러졌다면, 모르긴 몰라도 더 많은 걸 요구했을 겁니다. 북한 엄마에게 임플란트를 해달라고 강하게 요구하지 않을 걸 보면 남한 엄마는 그만하면 선한 사람입니다. 북한 엄마는 문제가 없을까요? 아마 북한에서 이런 일이 생겼다면 적당한 수준에서 보상을 해주었을 겁니다. 나는 북한에서 왔으니깐 잘 모른다면서 뒤로 물러나고 있습니다. 반면에 남한 아빠는 이 문제에서 발을 빼고 있습니다. 특별히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북한에 대해서 관심이 있지도 않습니다. 이런 태도의 한계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영화를 만들 때와 정지우 감독님이 영화를 만들 때와는 상황이 다릅니다. 정지우 감독님이 영화를 만들 때만 해도 대사관의 담을 넘어 탈북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영화를 만들 때는 제 3국을 거쳐서 탈북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탈북의 형식도 변하고 탈북의 인식도 변합니다. 지금 탈북을 주제로 영화를 만들면 어떤 소재를 다룰지 궁금합니다.


관객: 현재 탈북 청소년의 교육은 대안 학교에서 많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규 교육에서 탈북 청소년을 얼마나 흡수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더 나아가 탈북 청소년을 받아들이기 위한 대안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강이관: 영화를 찍기 위해서 인터뷰도 많이 해봤지만 어렵습니다. 대안은 전문가에게 맡겨야 할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는 인권 문제에 대해서 개인에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합니다. 많은 수의 탈북자가 넘어오고 있지만 국가적으로 대안이 없습니다. 하나회에서 3개월 동안 교육을 시킨 다음에 손을 놔버립니다. 국가에서 사람을 받았으면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있습니다.

탈북 청소년을 대안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도 사실이지만, 민간 자본에 의지하기 때문에 생기고 사라지기를 반복합니다. 대다수의 탈북 청소년을 가르치는 건 종교 학교입니다. 제 3국에서 한국으로 넘어올 때 기독교 단체가 큰 역할을 합니다. 그 과정에서 탈북자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종교를 기독교로 가지게 됩니다.





인권 영화는 어떻게 하면 볼 수 있는가?

관객: 일반인은 인권 영화를 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디로 가면 인권 영화를 볼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정지우: 지금은 천만 관객 영화가 쏟아지는 한국 영화의 부흥기입니다. 반면에 많은 관객이 찾지 않는 한국 영화를 보기가 너무 어려워졌습니다. 지나치게 편중되고 있습니다. 한국 영화 시장이 세계 10위 권이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이 상태가 지속되면 위험합니다.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대기업 자본에 아부해서 장편영화 한 편 더 찍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 딜레마에 빠질 때 마다 새장에 갇힌 기분이라 아주 힘이 듭니다. 대안도 딱히 없습니다. 이런 질문을 들을 때 마다 울컥합니다. 결국 여러분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다른 관점의 영화를 찾는 수 밖에 없습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강이관: 정지우 감독님 말씀에 다 공감합니다. 다르게 이야기하는 영화가 점점 밀려 독립영화, 예술영화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자본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영화관에 12개의 관이 있지만 걸리는 영화는 3개에서 4개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관객들이 영화를 찾으면 영화관에서는 영화를 걸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의 적극적인 요구가 필요합니다.

진행자: 과거에는 예술을 통제와 억압의 수단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국가에서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해서 우려를 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대기업 자본 아래에서 영화를 만드는 건 어렵기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영화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고분분투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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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을 멘 소년 #이빨 두 개 #정지우 #강이관 #인권영화제
4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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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꼬

2013.05.30

인권영화, 영화인들의 관심이 절실한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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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stw

2013.03.11

불편해도 집단에서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그 끈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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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kaist

2013.03.10

요즘 극장에서 배급사에 따라 보기 힘든 영화들이 많은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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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민

어쩌다 보니 글을 쓰고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