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9일 금요일 KT&G 서대문타워에서 예스24, 상상Univ., 열림원 주최로 프랑수아 를로르(이하 를로르)의 상상북토크가 열렸다. 를로르는 ‘꾸뻬 씨 여행’ 시리즈를 쓴 저자로, 프랑스에서 정신과 의사로도 활동했다. 다양한 환자를 치료하면서 깨달은 현대 사회의 문제와 이에 대한 처방을 제시한 게 ‘꾸뻬 씨 여행’ 시리즈다. 이 시리즈는 성인을 위한 동화라는 평을 받았다. 최근 KBS 달빛프린스에 출연한 배우 이보영이 『꾸뻬 씨의 행복 여행』을 추천하면서 이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를로르는 2010년 서울국제도서전 이후 3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그를 직접 보기 위해 모인 150여 명의 독자가 자리를 꽉 채웠다. 이날 행사는 저자의 강의와 낭독 그리고 질의응답 순으로 진행되었다. 허희 문학평론가가 사회를, 최미경 통역가가 저자의 말을 한국어로 바꿔 독자에게 전달했다.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를로르는 청중에게 인사를 건넸다.
“어제 한국에 도착했는데, 매우 행복한 상태다. 꾸뻬(소설 속 주인공) 씨도 아마 이 정도의 행복을 느끼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제 프랑스 문화원에서 있었던 행사에서는 여성 독자만 있어,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오늘 남자 독자도 있어 안심했다.”
한국 사람, 프랑스 사람보다 근로시간 많지만 행복해지는 방법은 있다
그는 행복과 사랑에 관해 각각 이야기했다. 참고로 이날 행사에서 말한 내용은 『꾸뻬 씨의 행복 여행』, 『꾸뻬 씨의 사랑 여행』에도 담겨 있다. 저자는 먼저 행복을 논했다. 그가 책에도 썼듯, 행복을 한 단어, 한 문장으로 정의할 수는 없다. 행복은 다양한 형태로 찾아온다. 책에는 23가지가 제시되지만, 이날 행사에서는 크게 4가지를 소개했다.
첫째, 행복은 활동으로부터 온다. 활동은 노동일 수도, 취미일 수도 있다. 기원전 4세기에 활동했던 아리스토텔레스가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라는 개념으로 행복을 정의했다. 에우다이모니아에서 핵심은 ‘자유’다. 노동으로 행복이 가능하지만, 이때 노동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어야 한다. 한국인이 프랑스인보다 노동시간이 많지만, 이점을 염두에 두면 일하면서도 행복해질 수 있다. 즉,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행복하다.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르면, 노예는 행복할 수 없다.
둘째, 행복은 관조에서 온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펼친 논지와 다소 상반되는 견해로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테투스가 주장했다. 그는 인간이 자유롭다고 하더라도 주변의 여건을 제어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외부로부터 오는 불행과 불운을 개인이 바꿀 수는 없으므로 인식이 중요하다. 를로르는 에피테투스의 주장이 그의 개인적인 배경과 관련이 있다고 덧붙였다. 에피테투스는 노예로, 그가 모신 주인은 악독했다고 한다.
셋째, 행복은 현재를 감사하는 데에서 온다. 기독교적 사고관, 에피쿠로스의 주장과 맞닿아 있다. 현재 누리는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면 행복해진다. 를로르가 보기에 프랑스인이 대체로 여기에 해당한다. 불행히도 지금 프랑스는 경제성장이 더디고 재정적 여유가 없어 점점 이러한 모습이 줄고는 있다.
넷째, 즐기면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축제, 연애, 소비 등이 행복과 이어진다. 이 대목에서 를로르는 싸이의 ‘강남 스타일’ 열풍을 예로 들었다. 이런 행복은 짧은 순간에 절정에 오르는 경험이지만 지속적이지는 않다.
를로르는 “균형 잡힌 삶을 산다면 이 4가지를 차례로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젊을 때는 파티나 놀이, 소비에서 행복(4번째)을 느낀다. 좀 더 나이가 들어서는 직업에서 만족감(1번째)을 얻는다. 가정이나 직장에서 존경받는 위치에 오르면 현재에 감사(3번째)한다. 노년기에는 생의 유한성을 인정하고 세상과 거리를 두면서 세상사를 관조(2번째)하게 된다.
불행해지지 않고 사랑하는 법
저자는 다음으로 사랑을 이야기했다. 사랑은 행복을 줄 수도, 불행을 줄 수도 있다. 사랑 때문에 불행해진다는 말이 이상하지만, 사랑앓이로 병원을 찾는 환자가 많다. 를로르는 “환자는 많은데 그 어떤 심리학 교과서나 정신의학 교과서에도 사랑병 환자를 치유하는 법이 안 나온다.”라고 말하며 고충을 토로했다. 그만큼 사랑을 지식으로 접근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저자가 정리한 사랑병 증세는 크게 5가지다. 결핍, 죄의식, 분노, 자기비하, 두려움이 그것이다. 증상은 순서대로 발생하지 않는다. 하루에도 여러 증세가 뒤죽박죽 섞인 상태로 사람을 괴롭힌다. 『꾸뻬 씨의 사랑 여행』에 등장하는 주인공도 이런 감정을 두루 겪는다. 상대방이 안 보이면 결핍감을 느끼고 이는 그리움으로 이어진다. 관계가 잘못 될 때는 상대방에 했던 나쁜 짓이 떠올라 죄의식에 사로잡힌다. 상대방이나 나 자신을 향한 분노가 타오를 때도 있다. 나 자신을 향한 분노는 자기 비하로 이어진다. 현재 하는 사랑을 다시는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떨기도 한다. 사람마다 사랑병을 앓는 형태는 다양하지만, 보통 사랑병을 치유하는 것은 ‘시간’이라고 를로르는 말한다.
이로써 저자가 준비한 이야기가 끝났다. 이어서 사회자인 허희 문학평론가가 준비한 질문을 공개했다. 그는 “우리가 팜므파탈이라 부르는 현상이나 김동리의 소설 등에서 나타나듯, 극단적인 미를 추구하면서 사람이 파괴될 때가 있다. 어떻게 하면 이런 아름다움을 잘 승화할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를로르는 “어둠, 악이라 느껴지는 곳에 끌릴 때가 있다. 이 악을 선으로 바꾸겠다고 다짐하지만, 실패한다. 보통 젊을 때 이런 실수를 많이 한다. 나는 나이가 들면서 선한 사람을 찾게 되더라. 오늘 청중 중에는 젊은 사람이 많으니, (나는 못하겠지만) 어둠을 밝은 곳으로 꺼내려는 시도를 많이 하라.”라고 답했다. 현실적인 대답을 들은 많은 독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를로르가 책 내용 중 일부를 낭독한 뒤 마이크는 관객석으로 넘겨졌다.
인류는 하나
소중한 가족, 친구가 있어도 인생은 외롭고 길다. 외롭지 않게 사는 방법이 있을까.
질문을 보면 우울증 징후가 느껴진다. 사람이 슬퍼할 수는 있어도 이유 없이 슬프고 무기력하다면 우울증이다. 예전에는 사람 만나는 게 즐거웠는데 지금은 귀찮다? 우울증을 의심해 봐야 한다.
한국 부모들은 자녀가 안정적으로 살기를 원한다. 대학에 가고, 큰 회사에 가는 삶 말이다. 그런데 나는 안정적이지 않아도 좋으니 도전하며 살고 싶다. 조언을 부탁한다. 한국 사회를 어떻게 보는지도 알려 달라.
이런 질문에 답하는 데 부담이 크다. 질문 속에 여러 가지가 섞여 있는데 우선 한국사회를 이야기하자면, 지금 한국에서 기성세대는 가난을 극복했다. 극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경제대국을 만들었다. 이를 위해서 부모세대는 열심히 일했다. 오로지 일만 했던 부모세대에 비해 자식세대는 선택할 수 있는 게 다양하다. 양측이 품은 생각 모두 타당하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능력을 파악하고 현실과 맞춰 가야 한다는 점이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자신이 그것을 할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
한국에서는 쌍용차 사태 때 정신과 의사들이 해고당한 노동자를 상담하고 치유해줬다. 혹시 이런 경험이 있는가.
비슷한 사례는 있지만 똑같지는 않다. 우선 프랑스는 한국이나 일본보다 직장에서의 연대감이 떨어지는 편이다. 자신이 다니는 회사에 애착이 없고, 회사에 머무는 시간도 줄어드는 추세다. 물론 그렇다고 해고당했을 때 상처가 적다는 의미는 아니다. 프랑스는 여전히 마르크스주의가 강해서 집단 해고에 노동자는 분노한다. 공장을 파괴한다거나 사장을 감금하는 식이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 내가 노동자를 상담한 사례는 없다. 대신 승객에게 폭행당한 운전사나 자살을 목격한 지하철 운전사를 상담하고 치료한 적은 있다.
정신분석, 심리학을 독학하느라 책을 읽는데 서구에서 나온 이론은 나에게 안 맞는 것 같다.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환자를 치유한 경험이 있나. 문화적 배경에서 오는 차이를 상쇄할 만한 보편적인 이론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인간이 가진 감정은 보편적이다. 감정의 보편성은 이미 다윈도 주장했다. 감정은 얼굴에 드러난다. 즐거울 때, 화났을 때, 공포를 느꼈을 때 드러나는 표정은 인종, 종족에 상관없이 똑같다. 다만 문화에 따라 감정을 억압하기도 한다. 남자는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된다는 게 대표적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어떤 사람이 자살했고, 자살하기 전 극도로 우울했더라도 주변 사람이 모를 때가 많다. 사회가 감정 표현을 억누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류는 다른 점보다는 같은 점이 많다고 본다.
질의응답이 끝나고, 를로르는 독자와 기념촬영을 하고 책에 사인하며 이날 행사를 마무리했다.
- 꾸뻬 씨의 사랑 여행 프랑수아 를로르 저/이재형 역 | 열림원
『꾸뻬 씨의 사랑 여행』은 프랑스의 정신과 전문의이자 작가인 프랑수아 를로르의 베스트셀러이면서 이미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아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꾸뻬 씨의 치유 여행 시리즈’ 후속작이다. 이번 여행에서 꾸뻬는 사랑 때문에 힘들어하는 이들을 위해 ‘사랑’의 비밀을 찾아 또 한 번 깨달음의 여정에 오른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를 무대로 꾸뻬를 둘러싼 사건들이 전편보다 더 흥미롭고 생동감 있게 펼쳐진다.
손민규(인문 PD)
티끌 모아 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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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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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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