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이 궁금합니다.
글쟁이에게 작품이란 골방에서 혼자 낳은 아기 같은 존재입니다. 게다가 저의 첫 장편소설이라서 그런지 ‘산후우울증’ 같은 게 찾아왔어요. 남자가 뭘 안다고 그런 얘기를 하냐 하겠지만, 비유적으로 그렇다는 말입니다. 대학 선생 노릇을 하고 있는지라 학기말 성적처리로 바빴고, 이제는 성적 이의 신청에 시달릴 차례입니다. 글쓰기와 교수 행위를 병행하다보니까 서로 부딪치는 문제가 많지만, 어느 하나를 부차적으로 놓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글을 먼저 생각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죄짓는 것이고, 아이들을 생각하다보면 글이라는 본령을 놓치기 십상이니까요.
늘 벼랑입니다. 하나를 쓰고 나면 또 허공에 매달려 있는 느낌입니다. 공중에 다리를 놓고 있는 느낌이랄까. 또 디딤돌을 찾아야겠지요. 거기에 매달려 살다보면 비루한 생도 조금 더 연장할 수 있겠지요.
『여행의 기술』이라는 제목으로 책이 이미 나와 있는 상황이라, 제목을 고민했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이 제목을 고집하신 이유가 있다면.
알랭 드 보통의 동명의 책이 있습니다. 같은 서명을 써도 될까 망설였지만, 그대로 쓰기로 했습니다. 책 제목은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누구에게나 태어나면서 타의에 의해 이름을 부여받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인터넷에 ‘여행의 기술’이라고 검색을 해도 그 사람 책에 대한 정보에 묻혀버립니다. 사실 이것조차도 이미 예상했던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제목을 붙였을까요.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記述(description)과 技術(technique)의 중의성을 노린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은 자폐아 아들을 둔 아버지가 생의 막다른 지점에서 아들과 7번 국도를 따라 여행을 떠나는 이야깁니다. 소설에서 여러 차례 동반 자살을 암시하고 있지만, 여행의 과정을 통해 “하나의 길은 세상의 모든 길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또 다른 길을 향합니다. 이렇게 記述된 여행이 생의 여러 지점을 연결하는 하나의 技術이었던 것입니다.
이 소설을 쓴 계기가 있었나요.
이 작품엔 실제 제 생의 많은 부분들이 침윤되어 있습니다. 작고 약한 몸으로 평생 억척스럽게 일을 해야 했던 어머니, 상징적으로 이미 죽어버린 아버지, 집안의 빈자리를 채우며 나를 먹이고 입혔던 누나, 그 안에서 시름시름 앓듯 살아온 나, 그리고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내 아들.
책 맨 뒤에 실려 있는 ‘작가의 말’의 첫 문장. “죽지 않으려고 이 글을 썼다.”는 말은 듣는 이에 따라서는 엄살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정말 죽지 않기 위해, 조금 더 살아가기 위해, 살아갈 이유를 찾기 위해, 이 글을 쓴 것입니다. 살아가는 일은 누구에게나 아프고 고된 일입니다. 나그네가 어디서 영원한 안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여행은 생의 상징입니다. 7번 국도를 따라 가는 여행길에 점점이 놓여 있는 상처의 지도가 생의 풍경이라면,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그 로드무비는 계속됩니다. 우리는 모두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걷는 나그네이지요.
작품의 배경이 7번 국도입니다. 7번 국도는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손꼽히는데, 작품의 배경을 7번 국도로 설정한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작가님과 7번 국도와의 인연, 특별한 게 있을까요.
7번 국도는 푸른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길입니다. 그러나 그 길은 외로운 길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4차선 도로가 시원하게 뚫려 있지만, 얼마 전만 해도 좁다란 2차선 길이 굽이굽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우리 국토의 여윈 등줄기를 매만지듯 그 길을 달리다 보면, 양 옆으로 놓인 푸른 바다와 높은 산은, 막막하고 답답하고 외로운 정서를 부조합니다. 너무도 아름다워서 죽고 싶은 곳이 바로 그곳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7번 국도 변에 있는 소읍 같은 도시인 강릉은 제 청춘의 유적이기도 하고, 포항은 해병대 장교였던 형에게 잠시 얹혀있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7번 국도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젊은 날의 한때를 보냈고, 그럴수록 생은 더 후미진 곳으로 나를 이끌어가게 되었지요. 태어나자마자 떠나버린 서울은 고향일 수 없고, 대학원 공부를 위해 다시 올라간 그곳에서의 삶은 지독하게도 가난하고 고단했습니다. 이 시절을 단편 「에움길」에 은유적으로 그려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래도 물귀신처럼 내 발목을 잡고 놓아 주지 않고 있는 곳은 강릉입니다. 남들은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산다고 부러워하지만, 가족들을 이곳으로 끌고 왔을 때는 절망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직장을 얻었고 그 덕으로 입에 풀칠하고 살고 있으니, 외로움조차도 때에 따라선 황홀합니다. 서울과 그 언저리에 모여 사는 다른 글쟁이들과는 달리, 내가 있는 곳은 한없이 낮은 생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곳입니다. 여기서 제 생의 자리를 짚어본 것이 바로 장편 『여행의 기술』이고, 그 압점들을 연결하는 여행을 Hommage to Route7이라는 부제에 담았습니다.
7번 국도와 함께 대학, 강단이 소설을 지탱하는 공간인데요. 한국 대학, 특히 국문학과 역사학을 비롯한 인문학이 구조적 위기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실제 강단에 서는 입장에서 어떻게 느끼나요?
인문(humanity) 혹은 인문학(humane studies)이란 말이 수식어처럼 번져나가고 있지만, 우리의 현실은 인문이라는 사유 없이도 잘만 돌아가고 있어요. 기업에서도 인문, 광고에서도 인문, 예술에서도 인문, 정치에서도 인문, 교육에서도 인문, 다 인문이라는 말을 붙이고 있지만, 정작 거기에 인문의 본령은 없습니다. 대학에서도 인문은 그저 교양수준에서 받아들이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자기계발서와 같은 허접한 수신서에도 인문이라는 레테르를 달고 있으니, 가히 역겨운 수준이지요. 사회는 비인문학적으로 질주하는데, 인문 운운하는 것은 인문이라는 것이 그저 레시피의 한 양념 그 이상도 아하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대학생들도 인문학이라고 하면 무슨 인생담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네, 좋은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하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자기에게 정작 중요한 것은 스팩, 취업 등일 뿐입니다. 고민하려 하지 않고, 방황하려 하지 않고, 어른들이 가르쳐준 대로 안정된 직업과 직장이라는 좁은 문을 향해 질주합니다. 그러니 다수의 패배자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고, 이들은 사회적인 동맥경화를 일으키며 만년 준비생으로 젊은 날을 소비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시나 소설은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강의실에서 문학을 이야기하면 약빠른 아이들은 토익문제를 풀거나 자격증 수험서를 펼쳐놓습니다. 강의는 ‘올림픽 정신’인지 ‘참가’에만 의의를 두는 것이지요. 종종 학생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비효용적 혹은 비실용적 독서를 하라!” 젊은 날, 생의 본질에 대해 혹독하게 답을 구하려는 노력없이, 잔재주만 익혀 사회에 나가면, 거대한 노름판 같은 사회에서 돈 놓고 돈 먹기만 하다가 죽게 되니까, 본질을 물어야 된다고 말입니다. “글의 이치, 곧 문리(文理)를 터득하면 여러분의 생이 보다 살찌고 두터워집니다.”라는 말도 쓸데없이 덧붙이지만, 아이들에겐 역시 스팩이 가장 중요할 뿐이고, 대학 입장에서도 취업 잘 되는 과가 효자입니다.
이 지경에서 인문이라는 말이 참 구차스럽고 안쓰러울 뿐입니다. 직업적으로는 실용에 봉사해야 하지만, 전공적으로는 문사철을 말해야 하는 내 자신이 타락한 안수집사 같다는 생각입니다. 인문학을 한번 믿어봐, 라고 떠벌이면서.
소설 속에서 ‘죽음’, 그것도 자연사가 아닌 죽음이 자주 등장합니다. 현대사회에서의 죽음, 어떻게 보나요?
참으로 거창한 질문입니다. 요즘 시대가 ‘자살을 권유하는 사회’이고 보니, ‘술 권하는 사회’가 지금보다 조금 더 나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대부분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입니다. 빚더미에 앉게 된 가장이,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해고 노동자가, 인생사의 부침에 시달리던 연예인이, 학업성적에 좌절한 학생이, 친구들의 왕따를 견디지 못한 아이들……. 많은 이들이 이렇게 속절없이 우리 곁을 떠납니다. 어쩌다가 세상이 이 지경이 되었냐고 우리는 한탄합니다. 그러면서도 나만은, 내 자식만은 괜찮겠지 하며 살아갑니다.
물론 누구나 반드시 죽게 되어 있습니다. 인생은 바로 그 죽음이 버티고 있기 때문에 숭엄한 것이지요. 나는 죽음 때문에 생이 불안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실존주의에서 말하는 죽음에의 자각을 바탕으로 미래로 나아간다는 ‘기투’라는 개념이 나에게 조금의 지적 감동도 주지 못한 것은, 죽음은 언젠가 담담히 받아들이면 되는 것으로 생각해왔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죽음이 갑작스럽게, 그것도 자의에 의해 결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죽을 의지로 살아야지, 하는 말은 삶에 절망한 자에게 아무런 위안도 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오죽했으면 죽었을까, 라는 말이 더욱 설득력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이 지배하고 있는 사회에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사지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다시 우리는 인문의 본령을 재호출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 ‘설국열차’에서 예외적인 누군가는 창 밖에 눈이 녹기 시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챕니다. 광폭하게 달리는 열차를 멈추고, 기차 밖으로 나가 땅을 딛을 수 있기 위해서, 우리는 내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눈이 아니라 체제 밖을 응시하는 시선이 필요합니다.
『잘 가라, 미소』도 그랬지만 『여행의 기술』도 어두운 소설인데요. 본인의 글쓰기를 두고, 갈수록 뻔뻔해지는 세상에 맞서 자신의 글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고 표현했습니다. 이런 창작관이 지금도 유효한지요.
이 어둠이 내가 배운 문학의 자리입니다. 문학은 언제나 재앙의 기억을 형상화합니다. 아도르노(T. W. Adorno)는 『미학이론』에서 예술은 “세계의 어두운 것과 죄악을 자신의 내부에서 수용”하며 “세계로부터 받은 고통의 흔적”을 떠맡는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고통의 언어’입니다. 고통(suffering)은 문학이 갖는 비합리적 자리입니다. 어둠이 있다면 이를 극복하고 광명으로 나아가려 하는 것이 합리적이지요. 그러나 문학은 어둠을 더욱 깊은 어둠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어둠이 사라지기를 희원합니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부정의 변증법과 통합니다.
사이비 예술은 도저한 절망의 자리에서도 뭔가 달콤한 희망이 있는 것처럼 포장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문학은 강한 부정의 정신에서 출발합니다. 먹을 것이 넘쳐나도 배고프다고 외치는 사람이 진정한 시인이라고 했습니다. 주린 자는 반드시 있을 것이고, 그 젖과 꿀이 재앙 그 자체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를 보세요. 겉으로 볼 때는 어디에 빈곤의 흔적이 있습니까? 어디 더러운 곳이 있습니까? 그것을 보기 위해서는 빌딩 뒷골목을, 폐수가 흐르는 맨홀 뚜껑을 열어야만 하지요.
사람들은 나에게 말합니다. 재미있고 유쾌한 얘기를 쓰라고, 그래서 널리 읽히고, 드라마로 영화로 대박이 날 작품을 쓰라고 말입니다. 모르겠습니다. 그런 재주가 있는 사람은 그렇게 쓰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내 문학의 밑자리는 그렇게 화려한 파티를 부정합니다. 예쁜 케이크와 고급 와인과 고상한 웃음이 나는 불편합니다.
창작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소하나요?
나는 어딘가에 쉽게 빠지는 체질입니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상황이든 그것을 운명적으로 느끼고 그것과 사귑니다. 다재다능하거나 잡기에 능한 사람은 절대 아닙니다. 음식으로 말하면 섞어 먹는 것을 싫어합니다. 가령 맥주가 당기면 몇 달 동안 맥주만 마시고, 소주가 당기면 계속 그것만 찾습니다. 정신없이 한 상 차려 놓은 것보다 일품요리가 더 좋습니다. 스파게티가 당기면 어디 가나 그것만 찾고, 회가 당기면 그것만 먹으려 합니다. 편식이 심하고 쉽게 홀릭(holic)이 되는 스타일입니다. 이렇게 하나에 빠지면 일정 기간 잘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과도한 열정이 여기에 소비되곤 하는데, 이런 것이 일상이나 창작의 압박감을 견디게 해 줍니다.
원고청탁을 받는 것은 자발적인 채무자가 되는 일입니다. 소설 창작뿐만 아니라 평론도 겹하고 있어서, 한 계절에 적어도 서너 편 이상의 글을 써야 하는 형편입니다. 글을 쓸 때는 절대 담배를 물지 않습니다. 산만해질 뿐만 아니라 집중도 잘 되지 않습니다. 손을 깨끗이 씻고 정갈한 마음으로 몇 시간이고 앉아 있습니다. 화장실 가는 것도 귀찮아서 물도 잘 마시지 않습니다. 한 번 글을 쓰면 밑을 봐야 한다는 생각에 끈질기게 책상에 앉아 있습니다. 오직 글에만 빠져 있는 것입니다. 이런 집착이나 편집의 상태가, 현실의 나를 망각하게 해주니까 그것 자체로 탈출구가 됩니다.
그 사이 사이, 나는 걷습니다. 출퇴근할 때도 일부러 걷고 시내버스를 타며 사람들과 거리를 구경합니다. 지구 끝까지라도 갈 기세로 하염없이 걷습니다. 차오르는 슬픔이 있어도, 걸으면 그 마음이 엷어집니다. 걷는 건 나에게 하나의 기도(祈禱)입니다. 내가 사는 곳은 동쪽으로 걸어가면 늘 푸른 바다와 만날 수 있습니다. 바다는 먹물 같은 내 슬픔을 무한정 받아줍니다. 여기서는 바다가 친구고 어머니고 스승입니다.
2013년 기억에 남았던 일은?
첫 장편 소설을 세상에 내놓았다는 것이 가장 큰 일입니다. 그리고 다시 벼랑에 섰다는 것이 그 두려움의 시작이겠지요.
2014년 계획이 궁금합니다.
내년에는 모든 일을 다 잘 하겠다 생각하지 말고, 일의 경중을 두어야겠다 싶습니다. 평론 작업은 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좀 인색해져야겠다고 생각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소설 창작에 쏟아붓고자 합니다. 인생에는 늘 때가 있는데, 지금이 아니면 소설을 많이 남기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더 넓은 타자들의 세계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그리하여 사유의 넓이와 깊이를 얻어가는 기쁨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습니다. 나를 파먹는 자학이 아니라 넓은 공감으로 이해로 나아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마도 그 역사적 연원을 캐는 작업에 보다 큰 공을 들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맥락에서, 식민지 시대의 한 단면을 우리 시대의 현실과 맞세우고 연결짓는 작업을 하려고 합니다. 특히 1930년대의 사회사를 집중적으로 공부하여, 그 시대의 본질을 2000년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현실 앞에 데려오려 합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본질적으로 20세기의 상흔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2014년이 가기 전에 또 하나의 장편이 나올 수 있을 겁니다. 북한의 김정남이 아니라 작가 김정남이 먼저 떠오를 수 있는 날이 오려면 아직도 멀었습니다. 묵묵히 걸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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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