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능의 법칙> 살의 에로와 삶의 애로, 그 사이
수다스럽지만 시끄럽지 않고, 고민을 얘기하지만 고통스럽지 않다. <관능의 법칙>은 그렇게 40대 여성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40대 여성=중년’이라는 흔한 공식 대신 40대이지만, 여전히 여성이고자 하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녹여낸다. 나이와 상관없이 매력적인 조민수, 엄정화, 문소리의 매력으로 영화는 충분히 볼만한 이야기로 거듭난다.
글ㆍ사진 최재훈
2014.02.18
작게
크게

<싱글즈>


영화의 제목처럼 관능을 기대하고 극장을 찾은 사람들에게 이 영화, 그다지 관능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넋이 나갈 만큼 구질구질한 현실을 딛고 선 사실적인 이야기도 아니다. 노골적인 대사와 중년 여성이라면 공감할 만한 에피소드를 배치해서 솔직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 주인공이 이끌어가는 각각의 이야기들은 새삼스럽거나 특별하진 않다. <관능의 법칙>은 충분히 설득 가능한 수준에서 40대 여성들이 바래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상상(섹스 혹은 연애, 사랑보다 더 진한 우정)을 그 기본에 깔고 있는 일종의 판타지다. 2003년 29세 여자들의 삶과 섹스를 다룬 영화 <싱글즈> 이후 10년, <싱글즈>의 권칠인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전작의 주인공 엄정화 때문에 <싱글즈>의 후일담처럼 보이는 <관능의 법칙><싱글즈>의 2편이라고 봐도 무관할 정도로 특정한 나이대의 여성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다양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여성’을 이야기 한다. 의도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싱글즈>의 고 장진영의 헤어스타일을 한 채 작은 빵집을 운영하는 조민수를 보고 있자면, 디자이너에서 레스토랑 매니저로 좌천되었던 <싱글즈>의 주인공 나난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저돌적으로 보이지만 여린 커리어 우먼 엄정화의 캐릭터 역시 크게 변하지 않았다.


관능과 관록, 그 사이


수다스럽지만 시끄럽지 않고, 고민을 얘기하지만 고통스럽지 않다. <관능의 법칙>은 그렇게 40대 여성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40대 여성=중년’이라는 흔한 공식 대신 40대이지만, 여전히 여성이고자 하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녹여낸다. 나이와 상관없이 매력적인 조민수, 엄정화, 문소리의 매력으로 영화는 충분히 볼만한 이야기로 거듭난다. 케이블 방송국 PD인 신혜(엄정화)는 오랜 연인이 어린 직장 후배와 바람을 피우고 결국 결혼까지 한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고, 설상가상 외주 제작사 막내 PD와 원 나이트를 하고 만다. 하룻밤 즐겼다고 생각했는데, 이 아이 지나치게 저돌적이라 부담스럽다. 주유소 사장 부인인 미연(문소리)은 사랑을 유지하는 방법이 지속적인 섹스라고 생각한다. 미연의 남편은 비아그라를 복용해 가면서 욕구를 채워주느라 고역을 치른다. 큰 딸과 함께 사는 해영(조민수)은 중년의 성재(이경영)와 연애를 하지만 딸 때문에 마음껏 즐길 수가 없다. 해영은 성재와의 결혼을 꿈꾸지만, 성재는 주춤거린다. 새롭게 시작될 수도 있는 어린 연인과의 연애는 왠지 다른 목적이 있을 것 같아 의심스럽고, 미연에게 남편의 사랑은 그저 지켜야 할 의리 혹은 예의가 되어버렸다. 해영에게 사랑은 남들 같은 것이면 좋겠는데, 성재는 틈을 주지 않는다.



앞서 말한 것처럼 <관능의 법칙> 속 이야기는 새롭지 않다. 세 명의 여자와 세 명이 남자가 얽힌 이야기는 마치 의도한 것처럼 도식적인 수순으로 예상하는 딱 그대로 이어진다. 일과 사랑, 섹스와 배신, 결혼 생활의 불륜과 이혼 요구, 그리고 병마와 해피엔딩에 이르는 순서도 예측 가능하다. ‘관능’의 새로운 법칙을 따르진 않지만 여성 버디 영화들이 보여주었던 여러 가지 법칙은 예외 없이 잘 지켜내고 있다. 이 지점이 <관능의 법칙>의 한계인 동시에 장점이 된다. 즉, 이야기는 새롭지 않지만, 내 주위의 누군가에게 벌써 일어났거나 일어날 법하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낼 수는 있다는 것이다. 독신이거나, 누군가의 엄마이거나, 누군가의 아내가 마치 삶의 정체성이 되어버린 40대 여성들에게 신혜, 미연, 해영으로 대표되는 캐릭터들은 나이를 먹어도, 어떤 처지에 있어도 여성들은 사랑받는 여자이고 싶어 하고, 또 그런 모습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세 여자의 든든한 후원군인 세 남자의 각기 다른 매력을 보는 것도 <관능의 법칙>을 보는 여성관객에겐 매력적인 일일 것이다. 간만에 멜로 연기로 돌아와 중년 남성의 든든한 매력을 보여준 이경영, 능청스럽지만 미워할 수 없는 이성민, 그리고 연하남의 멋진 몸과 순수한 매력을 보여준 이재윤 등도 소란스럽지 않게 극 속에 녹아들어 있다.


흔히들 세상에 미혹되지 않는다는 의미의 ‘불혹’을 더 이상 세상이 유혹하지 않는 40, 불혹이라고 농담을 하곤 한다. 하지만 지나온 세월이 관록이 된 그 나이, 마치 나를 지탱해주는 유일한 탈출구가 ‘사랑’인 것처럼 행동하는 그 순간에도 여전히 그들을 지탱해주는 것은 가족이라는 든든한 울타리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으로 서로를 품고 핥아주는 ‘우정’이라는 버팀목이라는 사실과 그 믿음을 응원하는 시선은 따뜻하다. 이로서 <관능의 법칙>은 연애의 관능을 그린다기 보다 우정의 관록으로 서로를 품는 버디 영화로 그려지는 셈이다. 40대 여성의 이야기가 반가운 만큼, 여주인공들이 당당하게 주연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영화가 드문 요즘, 40대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의 돌발성 때문에 얻게 되는 기쁨만큼, 여전히 매력적인 세 배우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관능의 법칙>은 충분히 볼만하다. 우리의 세 여주인공의 관심사는 자신을 치장하고 꾸미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친구, 애인과 나, 나와 자식, 그리고 그 사이의 우리이다. 간만에 명품과 화장품, 옷과 장신구의 얘기를 하지 않는 여성 영화라서 남성들도 큰 부담 없이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이 영화, 기대만큼 뜨겁진 않지만 소소하고 따뜻해서 부담이 없다.


함께 보면 좋을 여성 영화들


<델마와 루이즈>


<처녀들의 저녁식사>

여성 버디 영화의 정점을 찍었던 선구적인 작품은 1991년 리들리 스콧 감독의 <델마와 루이즈>이다. 평범한 두 여성이 총을 든 범죄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려낸 슬프고 아련하면서도 후련했던 영화였다. 1995년 박철수 감독의 <301, 302>는 거식증과 폭식증에 걸린 두 여자의 기묘한 유대관계를 그린 실험적인 영화였다. 1998년 임상수 감독의 <처녀들의 저녁식사>는 세 여자의 섹스와 삶을 솔직하게 그렸는데, 90년대 당시 섹스를 그토록 당당하게 표현하는 처녀들이 드물었기에 꽤 화제가 된 작품이었다. 2011년 여성영화로서는 드문 흥행성공을 이뤄낸 강형철 감독의 <써니>는 복고의 감수성 속에 여전히 유효한 여성들의 진한 우정을 그려냈다. 곧 개봉을 앞둔 션 베이커 감독의 <스타렛>은 할머니와 포르노 여배우의 믿기 힘든 우정을 그린 영화로 호평을 자아냈다.


[관련 기사]

-엄정화 “<관능의 법칙>에서 당돌한 연하남과 사랑에 빠져요”
-문소리 “20대는 일이 우선이었지만 지금은 사랑이 먼저죠”
-조민수 “19금 영화 <관능의 법칙>, 수위 높아요”
-<관능의 법칙> 30,40대 여성 관객에게 통할까?
-사극, 원작, 19금… 키워드로 보는 2014 한국영화 기대작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관능의 법칙 #권칠인 #싱글즈 #엄정화 #문소리 #조민수
3의 댓글
User Avatar

샨티샨티

2014.02.19

2월이 가기 전 꼭 보려는 영화 관능의 법칙입니다. 연령대가 비슷하여서인지 중년 여성의 진솔한 삶의 일면을 엿볼 수 있을 것 같네요.
답글
0
0
User Avatar

kimhun

2014.02.19

싱글즈를 재밌게 봐서 기대되는 작품이네요. 언제 한번 보러 가야 겠어요.
누구랑 보러 갈지는 조심스러워 지네요.
답글
0
0
User Avatar

가로등아래서

2014.02.18

개인적으론 관능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 영화네요
답글
0
0
Writer Avatar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