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아 “나에게 서재란, 옷 갈아입는 작업실”
배수아 작가는 최근 장편소설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를 출간했다. 꿈속에 입장하는 것처럼 입구는 알 길이 없고, 출구는 막무가내로 나가고 싶지 않은 것처럼 좀체 보이지 않는다. 작가는 술술 읽힌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고, 이제 어렵다는 말은 조롱처럼 들리기도 한다고 했다. 이름을 바꾸어서 낼 걸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또 이해 받고도 싶고 이해 받고 싶지 않기도 하다. 중요한 건 누구의 이해를 받느냐이다.
글ㆍ사진 문은실
2014.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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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기 때는 행복했어요. 안데르센 동화를 참 많이 읽었어요. 그런 동화를 좋아했어요. 민속성을 살린 동화보다는 인생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내는 동화, 작가의 상상력에 기대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동화가 좋았어요. 안데르센의 『그림 없는 그림 책』 『눈의 여왕』 같은 동화는 굉장했어요. 특히 『눈의 여왕』 은 성인이 읽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최고의 판타지예요. 엘리너 퍼전의 『보리와 임금님』 도 어린 시절에 되풀이해서 읽은 책으로 기억에 남아요.”

“유년기 때 행복했다면 청년기에는 불행했어요. 지금은 청년기 때보다는 행복해요. 불행했던 청년기에 무슨 책을 읽었을까? 책을 안 읽었어요. 그래서 불행했나?(웃음) 저는 소설가 지망생 시기가 딱히 없었어요. 인터넷에 떠도는 얘기가 맞아요. 타이프 연습하다가 소설을 쓰게 됐어요. 청소년, 청년기에는 문학이 재미없는 건 줄 알았거든요.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는 것,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 과정이라는 생각에 재미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어렸을 적에 읽었던 책들이 제 등단 시기를 지배했지요.”



책을 읽지 않아 불행했던 청년기, 어쩌면

“이번에 새로 낸 소설은 볼프강 바우어의 희곡집에서 많이 영감을 얻었어요.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고,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어디에 있는가, 어디로 가는가’ 하는 문제를 소설과는 다르게 전달하는 방식이 인상 깊었어요. 히다야트라는 이란 작가의 『눈먼 부엉이』 라는 책도 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초현실적으로 일관하는 책인데, 한동안 도저히 놓여날 수가 없었어요. 알을 깨고 날아오르게 하는 책이 있잖아요. 그런 종류의 책이었어요. 네루다의 45번 소네트에서 ‘하루’라는 말에 꽂힌 게 이번 소설을 쓴 계기도 됐구요. 이렇게 빚진 책과 글들이 있네요.”

“요즘 관심사라면 번역이에요. 제가 소설가니까 부업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아니에요. 운이 좋아 좋은 텍스트들을 만났고 할수록 빠져들어요. 그중에 막스 피카르트의 책을 작업 중인데, 이 작가 책 중에 최승자 시인이 번역한
『침묵의 세계』 라는 책이 있지요. 이 사람의 사색은 쉽게 소비되고 쉽게 감명을 주는 아포리즘이 아니에요. 『인간과 말』 이라는 책을 보면 깔끔하게 똑 떨어지는 아포리즘이 아닌 응시가 있어요. 종교적 색채가 있는 책인데, 저는 종교가 없어요. 모든 종교가 하는 말이 진리 같아서 종교를 가질 수 없어요(웃음).” “최근에 본 영화로 <한나 아렌트>가 기억에 남아요. 한나 아렌트의 전기영화는 아니고 그녀 인생의 어떤 한 시기를 에피소드로 다룬 영화예요. 홀로코스트 얘기가 나오고, 흥미롭게 본 영화예요. 라스 폰 트리에의 <멜랑콜리아>는 처음에는 좀 지겨웠는데 나중에 가면서 흥미진진해졌어요. 불특정 혜성하고 충돌해서 지구가 망하고 어쩌고 하는 얘긴데, 세상의 종말 얘기 중에서 가장 매혹적이었어요.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희생><거울>도 너무너무 사랑하는 영화예요. 전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10년 전?, 아니면 몇 년 전에 봤는데, 친구들이 유행 다 지나고 뭐 하냐고 비웃지 뭐예요(웃음). 타르코프스키의 유명한 영화가 많지만 저는 <거울>에 애정이 가장 많이 가요. 저한테는 시간 개념이 특이하게 흘러가는 면이 있어요. <희생><거울> 같은 영화를 보면 제게 딱 맞는다는 느낌이 있지요.”



감명을 주지 않는 아포리즘이 좋다

“책을 고르는 기준은, 우선 잘 안 보게 되는 종류나 분야의 책은 넘어가고요(웃음). 일본 소설이나 미국 소설에는 별로 손이 안 가는 편이에요. 차라리 장르 소설은 좋아하지요. 독일 소설이 좋기는 좋은데 재미가 없다는 단점이 있어요(웃음). 그런데 『눈먼 부엉이』 를 읽으면서 국적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것도 이게 물경 1930년대 소설이에요. 하지만 모든 소설을 다 읽을 수는 없으니까 고르기야 하지요(웃음). 좀 전에 말한 독일문학으로 돌아가 보면, 아주 좋아하는 작가로 제발트가 있어요. 특히 『토성의 고리』 는 글 자체가 좋아요.”

“서재요? 서재가 있어야 이름을 짓지 않겠어요?(웃음) 그냥 집인데, 저는 학교 다닐 때부터 도서관, 독서실 가는 게 싫었고 집에 있는 게 좋았어요. 흠, ‘옷 갈아입는 작업실’ 정도로 할까요? 몇 년 전에 한 인터넷 카페에 ‘옷 갈아입는 번역가’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 적이 있는데요. 제게는 어떤 옷을 입고 작업하는지가 너무 중요해요. 집에서 일한다고 후줄근하게 입기 싫다는 차원을 넘어서, 순전히 저 옷을 입으면 오늘 작업이 잘 될 것 같아, 하고 산 옷이 있을 정도예요. 한번은 밖에 입고 나다기는 그렇고, 잠옷으로 입기에는 뻣뻣하고 불편할 것 같은 옷을 보고 저 옷은 글 쓸 때밖에는 못 입겠다고 산 적이 있어요. 그런 식이에요. 한창 작업을 하다 보면 무슨 옷을 입었는지 까먹는데도, 그렇게 하게 돼요. 그래서 ‘옷 갈아입는 작업실.’”

배수아 작가는 최근 장편소설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를 출간했다. 꿈속에 입장하는 것처럼 입구는 알 길이 없고, 출구는 막무가내로 나가고 싶지 않은 것처럼 좀체 보이지 않는다. 작가는 술술 읽힌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고, 이제 어렵다는 말은 조롱처럼 들리기도 한다고 했다. 이름을 바꾸어서 낼 걸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또 이해 받고도 싶고 이해 받고 싶지 않기도 하다. 중요한 건 누구의 이해를 받느냐이다. “잘 읽혔으면 하면서도 전작 두 권이 지향했던 부유하는 성향에서. 가벼움에서는 약간 벗어나고 싶었어요. 부유하는 상황에서도 가라앉는 것, 거기에서 남은 무거움에 기대어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명사의 추천

 

눈의 여왕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저/김양미 역/규하 일러스트 | 인디고(글담)

안데르센 동화를 참 좋아했어요. 어린 마음에도 인간의 어두운 세계가 드러나는 책이 좋았던 것 같아요. 물론 이 책은 어른이 읽어도 최고의 판타지를 제공해주지만요.








침묵의 세계

막스 피카르트 저/최승자 역 | 까치(까치글방)

피카르트의 사유는 팬시상품 같은 아포리즘이 아니에요. 꼭 무언가를 깨우칠 필요도 없고 가르침을 받을 필요도 없어요. 반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








찬란한 오후 외 4권

편집부 편 | 성균관대학교출판부(SKKUP)

연극을 보는 것이 아니라 희곡집을 보면서 느끼는 감상이 있어요. 우리의 사연을 소설과는 다르게 전달하는 방식에 매혹되고는 하지요. 특히 볼프강 바우어의 희곡을 읽으면 그렇습니다.








토성의 고리

W. G. 제발트 저/이재영 역 | 창비

제가 추천 글을 썼을 정도로 좋아하는 책이고, 좋아하는 작가예요. 책 한 권을 읽는다고 오늘이, 내일이, 어제가 달라지나요? 이 책도 그래요. 그럼에도 그저 달라지게 만드는 책.








거울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마가리타 테레코바, 이그나트 다닐체프, 알라 데미도바 | 마루 엔터테인먼트

처음 보고 나서 몇 번을 더 봤을까요. 타르코프스키 영화에서처럼 흘러가는 시간개념이 참 좋습니다.







멜랑콜리아

라스 폰 트리에 감독/커스틴 던스트, 샤를로뜨 갱스부르, 키퍼 서덜랜드, 알렉산더 스카스가드 | 조은

처음에는 좀 지루한가 싶더니 갈수록 흥미진진했던 영화예요. 세상의 종말을 다룬 영화 중에 이만큼 매혹적인 영화는 없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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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3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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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당

2014.03.17

다소 생소한 책을 언급해 주셔서 관심이 더욱 가네요. 꼭 읽어봐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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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daler

2014.02.27

독일 소설이 좋은데 재미가 없다? ㅋㅋ 어떤 매력이 있는지 궁금한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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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asuna

2014.02.26

너무나도 재미있게 잘 봤으며, 주위사람들에게 이 기사 내용을 추천해 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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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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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

소설가이자 번역가.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서 이화여대 화학과를 졸업했다. 1990년대에 등장한 젊은 작가 가운데에서도 그녀는 독특하다. 이화여대 화학과에 입학한 배수아는 국어 과목을 아주 싫어했다. 그러던 어느 날 20대 후반으로 접어들었다는 자의식으로 인해 소설을 쓰게 됐다. 1993년 서점에서 단지 표지가 이쁘다는 이유로 우연히 집어든 문학잡지 [소설과 사상]에 「천구백팔십팔년의 어두운 방」이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취미로 글을 쓴다고 말하는 그녀에게서 문학적 엄숙주의는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그의 문장은 당혹스럽고 생경하며 파격적이다. 배수아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불온하고 불순한 이미지에 둘러싸여 있다. 한결같이 사회로부터 소외당한 늦된 아이들이며 주로 스무살 안팎의 주변적 존재이다. 이들은 사회규범에 적응하지 못하고 진화를 거부하는 인물이며 '스스로 선택한' 이상한 인물이다. 이러한 인물들의 신세대적 일상을 파고들며 신세대적 일상에 숨어 있는 존재의 어둠과 불안, 삶의 이중적 풍경에 대한 감각적 묘사로 일관하다. 체험과 사실성이 강조되던 우리 문학사에서 배수아는 은폐된 존재의 어둠을 탐사하며 독특한 개성을 갖춘 신세대 작가로 성장해왔고, 이제는 미적 성숙의 단계를 완성해가고 있다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는 이지적이면서 자기 주장이 강한 문체를 통해 남녀관계의 속물성을 파헤치고, 독신녀의 시선을 통해 보여지는 경제ㆍ섹스ㆍ결혼관ㆍ자기세계에 대한 솔직하고 쿨한 느낌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 사람의 첫사랑』에서 주인공들은 모두 사회로부터 버림받거나 스스로 추락중이다. 그들의 배후에는 일탈과 파격, 섬뜩한 비애가 차갑게 펼쳐져 있다. 세기말의 쓸쓸함과 밀봉된 희망, 피학적인 아픔이 한꺼번에 만져지는 작품이다. 『붉은 손 클럽』은 외형의 독특함을 넘어, 단자화된 관계에 상처받으면서도 결국 또 다시 사랑을 선택하는 인간의 심리, 사랑의 대상을 향한 비이성적 감성들, 일상에 물든 관계의 지리멸렬함을 포착해 내는 배수아의 섬세한 감성과 날카로운 시선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배수아의 감각적이고, 이미지적인 글쓰기가 잘 나타나 있다. 『심야통신』은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그녀 특유의 감각 더듬이로 포착하고 있는 창작집이다. 배수아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고 아무것에도 감동하지 않는 일상인의 내부에 꿈틀거리는 목마름과 허기를 이야기한다. 그녀는 후기 산업사회의 일련의 징후를 상징하고 허무주의적 인간형과 이미지와 기호로 점철된 우리 세대의 문제적인 서사 형식을 보여주면서 자기만의 자리, 자기만의 소설을 탄생시켰다. 『철수』는 인간 존재 안의 어둠과 생의 운명적인 폭력 속으로 더 한층 깊이 탐사해 들어가는 배수아 소설의 불온한 매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섬뜩한 생의 이면을 보아버린 자의 어둡고 서늘한 내면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이바나』는, 소설 속의 '나'가 외국 여행 중에 산 중고 자동차의 이름이다. 또, '그녀'로 불리는 이바나는 여행기를 편집하는 편집자에겐 신비의 여성이다. '이바나'는 어느 도시의 이름이기도 하고, 어느 지방에선 흔한 이름이기도 하다. 자신의 단편집 말미에, 배수아는 '나에게 제목이란 면상의 흉터와도 같아서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이 치명적이다. ...... 지금 나는 왜 모든 소설은 예외 없이 제목을 필요로 하는가 회의스럽다.' 고 말했다. 가장 짧은 제목이 가장 좋은 제목이라고도 했는데, 이 소설의 제목 '이바나'는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는 이 '이바나'는 내내 소설 속 화제의 중심인데 비해,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모두 뭉개져 있다. 나, K, B, 산나, Y...... '죽기 전까지는 대도시를 빠져나갈 수 없는 사람들', 그들이 견디는 불면의 밤을 섬뜩하게 그리고 있다. 이 외에도 『어느 하루가 다르다면, 그것은 왜일까』, 『뱀과 물』, 『밀레나, 밀레나, 황홀한』, 『멀리 있다 우루는 늦을 것이다』, 『동물원 킨트』, 『이바나』,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당나귀들』, 『독학자』, 『훌』, 『에세이스트의 책상』, 『북쪽 거실』, 『올빼미의 없음』, 『서울의 낮은 언덕들』,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등을 썼다. 산문집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 창작집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그 사람의 첫사랑』 등과 장편소설 『랩소디 인 블루』, 『부주의한 사랑』, 『붉은손 클럽』 등이 있다. 또한 몸을 주제로 한 에세이 『내 안에 남자가 숨어 있다』를 펴냈다. 역서로는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 프란츠 카프카의 『꿈』, 로베르트 발저의 『산책자』, W. G. 제발트의 『현기증. 감정들』, 『자연을 따라. 기초시』,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의 골드문트』, 『데미안』 등으로 2003년 한국일보문학상, 2004년 동서문학상을 수상했다. 사데크 헤다야트의 『눈먼 부엉이』,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 프란츠 카프카의 『꿈』, 로베르트 발저의 『산책자』,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달걀과 닭』과 『G. H. 에 따른 수난』 등이 있다. 전통 소설의 인물과 이야기 중심에서 벗어나 어떻게 서술 자체가 이야기를 만들어가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인 「무종」을 통해 2010년 제34회 이상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하였으며, ‘월요일 독서클럽’ 회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독특한 문체와 색깔로 열혈 독자군을 거느려 왔던 그녀는 이제 사유하는 문장의 힘으로 새로운 독자들과도 만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