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심리학자 심영섭 “고통은 일종의 시그널”
영화는 허구이지만 때론 실제보다 삶을 더 생생하게 드러낸다. 영화가 삶을 침범해올 때, 삶은 어느덧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현장이 되어버린다. 『지금 여기, 하나뿐인 당신에게』는 우리가 직면한 무수한 갈등이 영화 속으로 미끄러지는 그 순간에 시선을 맞춘다.
글ㆍ사진 권지민
2014.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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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1일, 홍대 카톨릭 청년회관에서는 영화평론가이자 심리학자 심영섭의 『지금 여기, 하나뿐인 당신에게』 출간 기념 행사가 열렸다. 심영섭은 ‘심리학과 영화를 두루 섭렵했다’는 의미를 지닌 가명이다. 저자는 사랑, 고통, 관계 등 우리가 마주하는 익숙한 문제의 실마리를 영화 속에서 찾는다. 국내에 처음으로 ‘힐링시네마’ 분야를 도입하며 『영화 치료의 이론의 이론과 실제』란 책을 펴낸 후, 다양한 내담자들을 치료하며 강의와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저자는 영화가 어루만지는 삶의 지점들을 함께 나누며 개인의 고통을 분담하고자 한다. 삶이 뜻대로 되지 않아 절망에 빠져있거나 상실이 온몸을 휘감듯 아픈 이들에게 저자가 건네는 힐링시네마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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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 영혼의 순례』, 『심영섭의 싸이콜로지』, 『대한민국에서 여성 평론가로 산다는 것』 이후 오랜만에 책을 펴냈다. 


처음 치료책을 쓰다가 6년 만에 낸 대중서이다. 『지금, 여기, 하나뿐인 당신에게』는 상냥하게 쓰고 싶었다. 세상이 그간 내게 친절했다고 생각한다. 이 친절한 세상에 마치 선물 같은 존재를 만들고 싶어 쓰게 되었다. 좋은 영화는 영혼에 놓는 주사라고 생각한다. 회복의 여정에서 함께할 수 있는 영화가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썼다.


오랜 시간 영화치료, 사진치료 기법으로 내담자를 치료하고 계시다. 정확히 힐링시네마란 무엇인가?


힐링시네마에 대한 오해가 있다. 영화만 본다고 해서 무조건 치유가 될 수 없다. 사람마다 개인변인이 있고, 치료자도 중요하다. 감정의 증폭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인지적인 통찰 없이 영화를 보고 끝내면 그저 소비되는 것에 불과하다. 개인의 특별한 정서 경험이 필요하다. 인지적 경험이 필요하고 삶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보여준다.


“지금 행복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바로 대답하는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다. 사람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행복의 원형을 충족시키기는 어렵다.


지금 행복하십니까?” 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바로 대답하는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다. 그만큼 행복의 원형 그대로 산다는 건 드물고 불가능에 가깝다. 이를테면 4인 가족이 행복하려면 누군가는 희생해야한다.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는 돈 버는 기계처럼 일을 해야 하고, 아이들은 경쟁구도 안에서 열심히 공부에 매진해야 한다. 이상적인 행복의 상은 어쩌면 희생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일정한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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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고통의 이유를 모를 때 가장 고통스


독자들은 먼저 영화 <노인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한 장면을 함께 감상했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치유를 주는 영화를 덧대어 고통, 갈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영화 속 주인공 안톤쉬거는 별다른 원한의 이유 없이 살해를 감행한다. 저자는 안톤 쉬거가 무서운 까닭을 이유 없는 악마로 정의한다. 왜냐하면 소시오패스는 치료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벌을 피하고 싶을 뿐이지, 책임을 지거나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안톤쉬거는 하나의 은유이다. 그는 혼돈(Chaos)이다. 한 마디로 고통의 구체적인 이유가 없을 때 굉장히 힘들어진다. 우연이란 악마의 방문을 받는다는 것이다. 자연 안에는 악마적인 속성이 있다. 그것을 검은 흑조라고 한다. 자연은 유전자의 이동에 관심이 많다. 가임기에는 보호해주다가 그 기간을 벗어나는 버려버리는 경향을 띈다.” 


시지포스의 노동이 끔찍한 저주인 것은 무의미한 노동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의미가 없을 때 가장 고통스럽다. 그렇다면 고통이 다가왔을 때, 인간은 그대로 고통을 당하기만 할까? 인간은 강건함을 추구하거나 방어기제를 택한다. 전형적인 방어기제는 부인, 왜곡, 투사, 행동화, 전치, 억압 등이 있다. 이를테면 강건함을 선택한 엄마는 아이를 마리오네트처럼 통제하고 길러낸다. 이런 환경에서 길러진 아이들은 프레질(fragil)한 상황에 처하면 완전히 부서진다.”

 

“인간의 고통에 대항하는 미묘한 모습들을 잘 보여주는 영화가 <오! 수정>이다. 여자 주인공의 이름은 수정이다. 수정 가능한 기억에 관한 이야기이다. 두 남자가 수정을 향해 달려간다. 마지막에 처녀성을 주기까지의 과정이다. 인간이 얼마만큼 현실을 다르게 받아들이고 기억하는지를 보내준다. 무의식이 행하는 방어기제를 지각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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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이란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짊어지고 시작한 것


고통의 이유 없음을 받아들이고 나누어야한다. 거기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저자는 <잠수종과 나비>의 한 장면을 독자들에게 보여주며, 고통의 의미에 대해 고찰해보았다. 이 영화는 눈 하나만 깜빡일 수 있는 처지에 놓인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그가 움직일 수 있는 건 오로지 눈 하나 뿐이지만, 수십만 번 깜빡여서 책을 만들어낸다. 잠수종은 육체, 나비는 육체가 가둘 수 없는 영혼을 의미한다.  


“다시는 자기 연민을 느끼지 않기로 한다, 내 눈 말고 나를 마비시키지 않기로 한다. 기억과 상상만이 잠수종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난 뭐든지, 누구든지, 어디든지 상상할 수 있다.” - 영화 <잠수종과 나비> 中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낡아진다. 하지만 육체는 늙어도 영혼은 그렇지 않다. 그는 육체에 갇혀있는 우리의 본질적인 상황을 보여준다. 그는 부인, 의료진, 주변인들에게 끝까지 유머를 놓지 않고 영혼의 삶을 이어나간다. 그는 고통의 이유 없음을 받아들이고 시간을 충만하게 보낸다. 스스로 의미를 부여해야 하며 삶을 살아내고야 만다.” 


고통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그 순간, 고통은 고통이 될 수 없다. 가장 끔찍한 상황이 지나가고 난 후 사람은 자란다. 고통의 당사자가 된 순간, “아픈 만큼 성숙 해진다”는 말은 무의미해진다. 위안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폭력적으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불구하도 우리는 고통을 뚫고 삶으로 다시 들어 가야한다. 저자는 고통에 의미가 부여되는 순간, 고통이 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고통은 우리가 인간이라는 자각을 끊임없이 발견하게 만드는 일종의 시그널이다. 고통과 정면 승부할 때, 고통에게 강펀치를 날릴 때, 우리 영혼에는 비로소 아주 단단한 나무의 심 같은 것이 생겨난다. 그리고 그 심이 있는 사람들은 인생의 수많은 파도 속에서 나무의 껍질 같은 것이 다 벗겨져 나가도, 결국 살아남아 어딘가에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된다. 또한 고통은 마음의 관절 같은 것이다. 먼지가 중력의 근원이 되어서, 우리를 다시 땅에 발붙이게 하는 것처럼 고통은 삶을 재해석하는 원천이 되어, 다시 삶에 정착하게 만든다.” (『지금, 여기, 하나뿐인 당신에게』 233쪽) 


“<쇼생크 탈출>에서 감옥은 머무르는 게 되는 곳이다. 여기서 구속은 일종의 은유이다. 내가 일정 부분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희망을 만난다. 인생의 고통을 당하는 것은 열정 때문이다. 현실에 비어있는 여백, 폐허 같은 것들은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일 때 외상 후 성장이 일어난다. 가장 끔찍한 상황이 지나가고 난 후 사람은 자란다. 종교적으로 말하면 초월이 된다.”


“인간은 마찰을 가하게 되면 굳은살이 생긴다. 고통은 없앨 수 없지만, 고통을 가지고 살아남을 수 있다. 박완서 선생님은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을 잃고 나서 『한 말씀만 하소서』을 쓰셨다. 우리는 불행한 일을 마주할 때 자연스럽게 ″왜 하필 나일까?″라는 원망의 물음표를 던진다. 박완서 선생님 역시 절망 속에서 사람들의 위로가 다 가식으로 보이고 신을 원망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오랜 시간 고통 후의 깨달음은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지?’라는 질문을 하면서 신과의 대결을 접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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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o, 후회하지 않기 위해 우리가 하는 취소의 방어기제를 뚫고서, 오늘 한 번 더 ‘좀 더 나은 실수’를 했다고, ‘좀 더 나은 선택’을 했다고 믿으며 나를 후회하지 않고 흘려보낸다. 시인 황지우의 말대로 삶의 유일한 후회는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이기에.” (『지금, 여기, 하나뿐인 당신에게』202쪽) 


“생각해보면 실수가 참 많다. 안하려고 하지만 또 해도 하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요즘 세상은 나만 뭘 잘해도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믿지 못하면 누구를 믿겠는가. 내가 지금 잘못했지만, 내일은 조금 더 나은 실수를 하자고 마음먹는다. 오히려 먼 훗날에는 실수의 박물관을 세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뭐든지 내가 선의를 다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적을 만났을 때 무시하거나 제거하지, 공격할 필요가 없다. 제거가 안 되면 무시해버리면 된다. 인생은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은 늘 고통과 갈등 안에 있고 피할 수 없다. 에너지 뱀파이어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인생의 연료가 새버린다. 용서는 나를 위해하는 것이고, 내 에너지를 거두는 것이다. 공격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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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하나뿐인 당신에게』는 다양한 정서의 결을 지닌 힐링시네마 안에서 각자의 고민을 들여다보는 책이다. 저자는 이날 독자들에게 내밀한 이야기들을 고백하며, 모두가 고통의 삶 속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지기를 희망했다. 고통이 어느 날 갑자기 삶을 방문하더라도 가끔은 깨어져도 좋을, 안티프라질(Antifragile)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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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하나뿐인 당신에게 심영섭 저 | 페이퍼스토리
『지금, 여기, 하나뿐인 당신에게』는 영화를 모티브로 인생의 다양한 모습들과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고민들 - 사랑과 관계, 불안과 강박, 가족 문제 등-을 들여다보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책으로, 자기 성숙과 관계의 성장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위한 인생 어드바이스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고민하는 인생에 관한 27가지 물음들을 하나씩 짚어보면서 자신의 잠재력과 믿음, 관계의 회복을 위한 길로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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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민

세상 속의 작은 샛별로 빛나고 싶은 꿈이 있어요. 고로 어떤 멜로디,서사, 리듬을 지니고 어느 하늘에 떠야할지 만들어가는 여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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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섭

영화 평론가이자 심리학자, 상담가. 심영섭 아트테라피 대표. ‘심영섭’이라는 이름은 영화 평론상 수상 당시 그녀가 스스로 지은 것으로서 ‘심리학과 영화를 두루 섭렵했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최근까지 대학에서 상담심리학을 가르쳤으며, 심리학, 영화, 예술, 인문학을 접목한 예술 치료와 기업 강의, 저술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1966년 서울 생. 서강대학교 생명공학과를 거쳐 고려대학교에서 심리학 석·박사 과정을 졸업한 뒤, 백병원 신경정신과 등에서 공부했다. 영화광 부모님을 둔 덕에 운명적으로 생후 1개월 때부터 지금껏 대략 만 편 정도의 영화를 보았다. 1998년 [씨네21] 평론상을 수상한 이래, 김기덕 박찬욱 홍상수 등 다양한 감독들에 관한 논란이 담긴 영화 평론문을 발표해왔다. 왕성한 호기심을 기반으로 인간이든 영화든 포장을 뜯고 속을 보는 것에 능한 그녀의 통찰력은 특히 심리학을 위시한 인문학과 영화 사이에 징검다리를 놓는 데 일조하고 있다. 2003년 국내에 처음으로 힐링 시네마 개념과 영화 치료, 사진 치료를 소개하여 [영화 치료의 이론과 실제]란 책을 펴냈으며, 영화 치료, 사진 치료 학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그녀의 영화 치료와 사진 치료 기법은 청소년, 성매매 여성, 가족, 부부 치료 등 다양한 상담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또한 삼성, 현대자동차, 포스코 같은 국내 굴지의 기업에서 영화를 활용한 리더십, 커뮤니케이션, 창의성, 혁신 분야의 비전 시네마 강의도 진행하고 있다. 펴낸 책으로는 평론집 『영화 내 영혼의 순례』 『심영섭의 시네마 싸이콜로지』 『대한민국에서 여성 평론가로 산다는 것』이 있으며, 번역서로는 『시네마 테라피』 『사진 치료 기법』 『열정의 시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