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0일, 『그가 그립다』 북 콘서트가 열렸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5주기를 맞아 진행된 이 날 행사엔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시민들이 몰려 그에 대해 다시 추억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되기에 앞서 미리 준비된 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동영상이 먼저 시민들을 반겼다. 살아있을 때의 모습이 담긴 그 동영상을 보고 더러 눈물을 훔치는 시민들도 발견할 수 있었다. 얼마 전 일어난 세월호 참사와 공권력의 무능함을 직접 두 눈으로 본 국민들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다. 이러한 분위기를 이어, 연사 대표로 나선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제안으로 세월호 참사와 아직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들, 그리고 곧 있을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5주기를 맞아 묵념이 진행됐다. 다시 만나지 못할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이 섞인 시간이었다.
다시 만나지 못할, 그러나 여전히 그리운 사람
유시민: 세월호 사고는 우리들에게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준 것 같습니다. ‘책임이 있다면 누구에게 얼마만큼의 책임이 있으며, 우리 각자는 내 몫의 책임을 얼마나 감당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도 던져준 것 같고요. 대통령부터 평범한 시민들까지 모두가 따질 것은 따지되, 자기 몫의 책임을 먼저 생각해야 마땅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이날 북 콘서트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문학평론가 정여울, 아동문학 작가 노경실, 카피라이터 정철 네 명의 연사와 수많은 시민들의 참여가 함께 어우러져 진행되었다. 『그가 그립다』 에는 정치인뿐 아니라 작가, 카피라이터, 배우, 이발사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필자로 참여했다. 이에 대해 유시민은 책이 나오게 된 배경에 대해 먼저 설명했다.
유시민: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 안에는 다양한 동아리들이 있습니다. 특히 문학동아리에서 주동이 되어서 ‘서거 5주기 추모집을 만들어보자.’ 이야기가 나와서 노무현재단과 상의해서 만들게 되었습니다. 꽤 다양한 분들께서 필자로 참여해주셨고, 최대한 다양하고 들쭉날쭉한 글들을 실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제 개인적 입장에서 볼 때는 김갑수 선생님의 말이 재미있었습니다. “되는대로 살자. 노무현도 없는데. 종편에 나온다고 욕하지 말자.” (웃음) 그럼 책이 나오게 된 경위는 제가 설명했고, 노경실 선생님께서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쓰셨는지 들을 수 있을까요?
노경실: 저는 노 대통령님과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습니다. 그래도 굳이 인연을 따지자면 노 씨란 거죠. 보통 이런 책을 내면 청소년 작가들은 참여를 잘 안 하게 되는데 불러주셔서 감사하게도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노무현 정신이 어른들에게 갑자기 일깨워진 종소리가 아니라,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도 전달할 수 있는 역할을 할 작가들이 많이 나오길 바랍니다.
이날 북 콘서트는 웃기는 노무현, 감동적인 노무현, 화나는 노무현 세 주제와 시민들이 직접 작성한 질문지로 진행되었다. 네 명의 연사들과 시민들은 자신이 각각 생각하고 기억하는 노무현의 모습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노경실: 저는 대통령님 코 후비는 모습 이런 것들도 참 웃겼어요. 그리고 본인이 어린 시절을 묘사하면서 “지금은 울퉁불퉁하고 못생겼지만 어렸을 땐 동그랗고 하앴다”라고 하셨을 때 얼마나 사랑스럽고 웃기던지요. 사실 시골 뙤약볕에서 뛰놀던 아이가 하야면 얼마나 하얗겠어요. 대통령님께서 지니신 그 유년시절의 순수한 착각이 사랑스러웠고 사람은 다 똑같구나 생각했죠.
유시민: 지금 생각해도 웃기는 얘기가 있어요. 취임식 전날이었어요. 제가 밤을 꼬박 새우고 오전에 사우나에 갔거든요. 오전 열 시니까 사우나에 사람이 얼마 없어요. 그런데 갑자기 몸이 정말 좋은 남자 둘이 들어오더라고요. 그런데 이 친구들이 탕엔 안 들어오고 샤워기 밑에서 얼쩡얼쩡하는 거에요 씻지도 않고. 그때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어디서 많이 뵌 분이 들어오더라고요. 그게 노 대통령님이셨어요. 제가 나중에 경호원 실에 물어봤더니 그때 경호원들이 참 난감해했다고 하더라고요. 내일이 취임식인데 사우나를 들어가시니까 경호를 안 할 수 없잖아요 그런데 사우나에서 다 벗고 경호한다는 게 전례가 없는 거에요.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참 웃겨요.
시민: 개인적으로 동영상을 보고 웃었던 기억이 있는데요. 대통령님께서 “저희 손녀딸 엄청 예쁩니다.” 하시길래 저는 정말 ‘엄청 예쁜가 보다’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고 나서 대통령님께서 “제 얼굴 보면 아시겠죠?” 하시더군요. 정말 빵 터졌습니다.
유시민: 그러면 이제 감동적인 얘길 해볼까요?
정여울: 제가 아는 분께서 노무현 대통령님께서 재임 중이실 때 칼럼을 쓰신 적이 있어요. 그때 분위기가 모든 오피니언 리더들이 좌우를 가리지 않고 대통령님에 대해 비판적인 말을 쏟아내던 사나운 시기였어요. 그때 그분이 쓰신 글이 노 대통령님을 어느 정도 옹호하던 내용이었던 거에요.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님께서 그분께 쌀하고 술을 보내셨대요.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람이 사람한테 그런 따뜻한 선물을 줄 수 있구나.’ 하면서도 한편으론 가슴이 아팠죠. 얼마나 외로우셨으면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는 사람한테 쌀이랑 술을 보내셨겠어요.
정철: 노무현 대통령님이 당선되셨을 때 갑자기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이유를 알 수는 없었는데. 그래서 제가 왜 이런 감정이 들까 생각해봤어요. 생각해보니까 노무현 대통령님이 제게 이렇게 묻는 것 같더라고요. ‘너 지금 그대로 살아도 되니?’ 사실 저 같은 광고쟁이들은 직업 특성상 남을 밟고 나가야 하거든요. 경쟁 PT를 하고 남을 제치고 선택 받아야 해요. 그런데 그런 삶에 대해 제가 회의를 가지게 됐고,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런 것도 고민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살다 보면 두 갈래의 길이 나올 때 ‘노무현 대통령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유시민: 그러면 이제, 노무현 대통령님을 생각하면 화가 나는 것들을 한번 이야기해 볼까요?
정철: 예전엔 노무현 카피라이터라는 말을 듣고, 이어서 얼마 전엔 문재인 카피라이터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대통령님께서 돌아가신 날엔 저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나 ‘나는 개새끼입니다’라는 글을 썼어요. 이런 글들을 쓴 이후에는 광고도 들어오지 않고 약속되어있던 강연이 하루 전에 취소 되는 일이 많았어요. 그런 점들이 화가 나요.
정여울: 노무현 대통령은 제가 처음으로 응석 부리고 싶었던 분이었어요. 그 외의 대통령은 다가가기 힘들었었는데 노무현 대통령님은 제 말을 잘 들어 주실 것 같은 친근감이 들어 마음속으로 늘 편안했고 믿음이 갔죠. 우리에게는 두려움 없이 사랑할 수 있는 분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람 받는 그분을 미워하는 당시의 정치계에 너무 화가 나요. 하지만 저는 더 이상 화만 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정치가 아니더라도 생활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함으로써 이러한 분노를 창조적인 힘으로 표출했으면 좋겠습니다.
유시민: 참여정부 시절에는 늘 화가 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 너무 부당한 공격만을 받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님은 약점은 많았지만 좋은 분이었어요. 대학도 안 나왔지만 아는 것도 많고 품격 있는 분이었어요. 사람을 사랑할 줄 알고 마음을 소통할 줄 알고 자기 잘못이 있을 대 그걸 깨닫고 인정하고 고치려고 노력한 분이에요. 지금 생각해도 너무 분한 것은 이런 분이 죽었다는 거죠. 사적인 분노인 동시에 공적인 분노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세월호 사건의 원인은 부정부패라고 생각해요. 원과 상식에 어긋나는 반칙과 편법. 그게 부패잖아요. 왜 우리 국민들은 마음으로 소통하는 사람들은 내버려두고, 저렇게 물질에 대한 욕망을 노골적으로 자극하고 타인의 고통에 마음으로 감응할 능력이 없는 사람을 좋아할까 화가 나요.
이날은 행사 직전 시민들이 직접 작성한 질문지에 대해 네 명의 연사들이 대답하는 시간도 가졌다. 다양한 질문들 속에 시민들이 공통적으로 얻길 원했던 답은,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Q. 20년 뒤에는 노 대통령님이 교과서에서 어떤 평가를 받으실까요?
정철: 보통 노 대통령님을 좋아하는 분들을 보면 40~50대가 많아요. 그런데 오늘 보니까 20대 분들이 발언을 많이 해주셨어요. 그러니까 젊은 친구들이 노무현 대통령님을 다시 보게 되고, 공부하게 되고, 거기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현상을 저는 이 자리에서 봤다고 생각하고요. 그렇게 되면 아마 20년 후에는 역사교과서의 표지가 노란색이 되지 않을까요? (웃음)
Q. 악한 자에게 맞서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더 큰 악이 되어야 하나요 아니면 소신을 지키고 살아가야 하나요?
정여울: 사실 저도 항상 고민하는 문제거든요. 저는 어릴 때는 악에 저항하는 영웅들은 따로 있다고 생각했어요. 말 그대로 특별한 힘이 있는 영웅들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모두가 가진 힘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는데요. 바로 약한 사람들이 저항할 때 강한 사람들이 긴장한다는 사실이에요.
유시민: 제가 어느 책에서 봤는데요, 한 학생이 질문했어요 “선생님 착한 사람이랑 나쁜 사람이랑 싸우면 누가 이겨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말해준 답이 “힘센 사람이 이기지.” 였어요. 우리는 착한 가운데 힘이 세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착하다는 것은 타인의 고통에 감응하는 능력이 있다는 거에요. 전 보수와 진보의 구분은 바로 이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응 능력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의 고통에 마음이 아플 줄 아는 사람은 진보가 되는 거고, 그걸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은 보수가 되는 거죠. 오히려 계급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느덧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지 5년이 되어간다. 작가 노경실의 말처럼, 어느새 우리들은 그 기억을 잊고 새로운 고민거리를 안고 날마다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지난 5년이 그리움이 더 커지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 시간 동안 우리들은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왔다.
최근 일련의 사건사고와 겉으로 드러나는 부정부패들로 국민들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국민소득이 3만 불을 넘긴 지 오래고 다른 국가들이 부러워하는 경제발전을 이룬 나라. 그러나 이런 나라에서 여전히 채울 수 없는 목마름과 마음의 허기짐을 느끼는 국민들. 이런 때일수록 더욱더 그리운 것은 경제발전이나 복지 증진과 같은 현상적 발전보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기본적인 정이나 사랑. 타인의 고통에 함께 아파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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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그립다 유시민,조국,정여울 등저 | 생각의길
유시민, 조국, 정철, 신경림, 정여울, 노경실 등 『그가 그립다』에 담긴 스물 두 명의 메시지는 한 젊은이의 영혼 앞에 민낯으로 부르는 소박한 합창. 안될 것을 알지만 그른 것에 대항하는 용기, 인간에 대한 예의와 가치를 수호하는 정의로움, 사람을 위해 불의를 참지 않겠다는 자신의 소신을 관철시키려 했던 사람, 노무현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의 삶과 정신 속에서 찾아낸 희망의 불씨는『그가 그립다』 속에 스물두 가지의 빛깔로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우리 곁에 없지만, 여전히 우리 곁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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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이날 콘서트에 갔었는데 웃고 울고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다양한 분위기를 느낀만큼 현재와 미래에 대한 충만한 기대와 의지를 채웠습니다
이 글을 보며 다시 한번 그때의 기분을 떠올려보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