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디와 오마주를 나누는 기준은 무엇일까? 이번 원고를 쓰기 전에 아주 깊이, 차근차근 생각했다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는 않았다. 대신 검색해 봤다. 원작을 비틀 의도가 강하다면 패러디고, 존경하면 오마주라고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패러디와 오마주 사이의 경계가 모호한 작품이 꽤 많다. 세상에는 절대적인 선도, 절대적인 악도 존재하지 않는 것과 무관하지 않으리.
프랑스 만화가 빈슐뤼스가 그린 『피노키오』가 그런 작품이다. 제목에서 보듯,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거짓말 하면 코 길어지는 그 피노키오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패러디 작품 중 일부는 ‘이 작품은 무엇 무엇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만약 상관이 있다면 우연한 일치일 뿐, 절대 연관 짓지 말아 주세요.’라는 문구를 넣어 비틀어주는 효과를 극대화하기도 하지만, 이 작품은 처음부터 이렇게 시작한다.
이 이야기는 카를로 콜로디의 동화에서 매우 자유롭게 따왔다.
여기서 ‘매우 자유롭게’라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어로 ‘매우 자유롭게’를 어떻게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 표현으로 작가가 의도한 바는 분명해졌다. 동화 『피노키오의 모험』을 매우 자유롭게 비틀겠다는 것. 작품을 본 독자라면 알겠지만, 이때 빈슐뤼스가 비틀고자 하는 건 카를로 콜로디의 주제의식은 아니다. 그보다는 동화적 인물을 동화로 읽어낼 수 없는 현시대가 비판하는 대상이다. 왜 동화적 인물을 동화로 읽어낼 수 없을까?
『피노키오의 모험』이 나온 19세기라고 사정이 달랐겠느냐만 - 19세기는 유럽 내부에서는 계급 모순이 극심해진 시기였고, 지구 차원으로 보자면 백색제국이 식민지를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경쟁했던, 꽤나 비열했던 시기였다 - 21세기에도 나무가 인간으로 변한다는 동화적 환상을 실현하기에는 현실이 너저분하다. 빈슐뤼스의 작품 『피노키오』가 그리는 21세기는 추악하기까지 하다.
먼저 등장인물부터 지저분하다. 원작에서 온화한 할아버지였던 제페토는 『피노키오』에서 탐욕스러운 발명가로 나온다. 그는 군수업체에 조달할 목적으로 피노키오를 만들었다. 피노키오는 병기였던 셈. 피노키오 안에서 사는 지미니는 바퀴벌레다. 그렇다. 인간이 가장 무시하고 천대하는 바퀴벌레. 피노키오가 모험하며 만나는 일곱난쟁이는 인신매매범. 그밖에 등장하는 엑스트라도 거지, 부랑아 등 도시빈민 일색이다.
병기 피노키오가 지나간 곳에는 어김없이 유혈이 낭자하다
자연스레 작품의 배경도 어둡다. 폐기물로 오염된 바다, 악취 나는 지하도, 숨 막힐 듯 답답한 공장 등. 상쾌한 장소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속고 속이고, 한쪽이 한쪽을 억압하고 파괴하며 살아간다. 이쯤 되면 『피노키오』의 결말이 궁금해지지도 않는다. 분명 해피엔딩으로 끝난 『피노키오의 모험』 과 달리 세드엔딩이겠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결말을 완전히 공개할 수는 없고, 해석의 여지를 남겨둔 열린 결말이라는 점 정도만 밝혀 두기로 하자. 어쨌든 글의 처음에서 말했던, ‘절대적인 선도 절대적인 악’도 없다는 사실을 결말에서도 드러낸 작품이다.
별로 궁금해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고백할 게 하나 있다. 이 글은 초고와 수정에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곤 하나, 실은 그렇게 많이 고치지 않은 최종 원고 사이에 거리가 멀다. 원래 초고의 방향은 이랬다. 제페토와 피노키오 간 관계는 중동에서 기원한 유대-기독교의 유일신 창조 신화로부터 딴 모티브다, 이런 설정은 근대로 오면 자본과 노동 간 관계로 바뀐다, 거짓말 하면 코가 늘어나는 피노키오는 전근대에서 근대로 이행할 때 상부구조 차원에서 자본주의 형 인간을 훈육하기 위해 나타난 시도로 볼 수 있다, 빈슐뤼스의 작품은 이러한 동화 피노키오의 신화에 도전하며 모더니티에 균열을 가하는 포스트모던한 작품… 이라고 쓰려 했다.
다양한 인물과 사건으로 얽혀 있는 『피노키오』에 포스트모던한 면이 있긴 하다
글을 끝내기 전에 내가 생각하네 맞는지 확인하려는 마음으로 『피노키오의 모험』과 원작자인 카를로 콜로디에 관해 찾아 봤다. 내가 완전히 착각했다는 걸 발견했다. 『피노키오의 모험』은 원래 해피엔딩으로 기획된 게 아니었다. 피노키오가 나무에 목이 매달려 죽는 게 결말이었다. 이는 애초부터 콜로디가 이야기를 동화로 기획한 게 아니어서였다. 편집자의 요청으로 이야기 전개가 바뀌었고, 결국은 피노키오가 인간으로 바뀌는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된다.
이런 저런 사정을 감안하고라도, 다시 본 『피노키오의 모험』에는 동화라고만은 보기 어려운 이야기가 많다. 동화에서도 도둑은 등장하고, 피노키오는 인간의 욕망에 따라 위기를 여러 차례 겪는다. 이는 어려서는 가난했고, 성인이 되어서는 쿠스토자 전투에 참가하는 등 죽음에까지 내몰렸던 카를로 콜로디의 생애사와도 관련 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삶은 팍팍하니까.
책과는 다소 상관이 없지만 최근에 다시 들은 인기 동요 <피노키오>도 가사가 지극히 현실적이라 놀랐다. 가사는 이렇다.
피아노 치고 미술도 하고 영어도 하면 바쁜데 너는 언제나 놀기만 하니 말썽쟁이 피노키오야 - 동요 <피노키오> 중
이 가사에 이어지는 내용은 나는 사교육 받느라 힘든데, 놀기만 하는 피노키오가 부러우니 엄마 아빠 꿈 속에 나타나 너의 삶을 보여 주렴, 정도다. 한국의 사교육 광풍을 에둘러서도 아니고, 정면으로 비판하는 동요 아닌가!
예나 지금이나, 어른에가나 아이에게나 삶은 팍팍한가 보다.
- 피노키오 빈슐뤼스 글,그림/박세현 역 | 북스토리
세상에서 가장 다크한 피노키오가 나타났다. 카를로 콜로디(Carlo Collodi)의 아동문학 작품 『피노키오의 모험』을 성인 취향의 작품으로 완벽하게 바꿔놓은 『피노키오 Pinocchio』는 애니메이션 〈페르세폴리스〉를 원작자인 마르잔 사트라피(Marjane Satrapi)와 함께 감독했던 뱅상 파로노가 ‘빈슐뤼스’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작품이다. 그는 미국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에서 영감을 얻어 그것을 자기 스타일대로 블랙 유머를 가득 넣어 비틀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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