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지 않은 곳에
문득, 훌쩍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니? 매일 걷던 그 길이 지루해지고, 지하철을 타는 내내 답답함이 밀려올 때 말이야. 그런 순간은 결코 예고해 주는 법도 없이 찾아오지.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선 슬며시 네게 말을 건네는 거야. 결코 오래 머무르지도 않아. 그저 잠시 너를 스쳐갈 뿐이야. 그런 날에는 인터넷을 하고 TV를 봐도 집중이 되지 않아. 책조차 손에 잡히지 않겠지. 차라리 바닥에 누워 천정을 바라보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왼쪽에 태양을 그려보고, 다른 쪽 구석에는 달을 그리는 거야. 너는 한쪽으로 누워 해를 볼 수도 있고, 달을 바라보며 저 너머를 상상할 수도 있어. 불을 껐지만 전등은 아직 희미하게 빛나고 있지. 흐린 날의 별자리처럼. 소방헤드는 북두칠성이야. 스프링클러를 연결하면 쌍둥이자리를 그려낼 수 있을 거야. 그러다 너는 이렇게 읊조릴 지도 모르겠다. ‘별이 총총한 하늘이 갈 수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들의 지도인 시대, 별빛이 그 길들을 훤히 밝혀주는 시대는 복되도다.’
가만히 숨죽이고 있으면, 커튼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게 느껴질 거야. 창문이 조금 열려 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된 거지. 밤은 늦었고 새벽이면 추울 테니 창문을 더 여는 건 저어하게 돼. 그렇다고 닫자니, 틈새로 불어오는 그 바람이 이렇게 달콤할 수가. 기억해보면, 유월의 밤바람은 언제나 너를 설레게 했어. 지난여름을 간직하며 지구 한 바퀴를 돌아온 그 바람 말이야. 넌 창문을 닫으려다 그대로 둬. 저 캄캄한 밤하늘에는 언제나 바람이 불고 있었나보다. 너는 그제야 그 사실을 기억해낸거지.
어쩌면 문득이라는 말은, 작은 틈새로 불어오는 한줌의 바람인지도 모르겠어. 고작 커튼을 두드릴 정도지만, 너는 바다를 그리워하겠지. 그런 순간은 문득, 찾아오니까. 깊은 밤 그곳의 노래를 들으러 가자. 멀지 않은 곳에 달을 따라 걷는 길이 있고, 너머에 바다가 있어.
슬로우를 지나
아무도 없는 파란 새벽에
차가운 바람 스치는 얼굴
불안한 마음과 그 설레임 까지
포기한 만큼 넌 더 이상 쓰러지지 않도록
또 다른 길을 가야겠지만 슬퍼하지는 않기를
새로운 하늘 아래 서있을 너 웃을 수 있도록
모던락 밴드 ‘마이 앤트 매리(My Aunt Mary)’의 <공항 가는 길>을 알게 된 건 아주 오래전이지만, 이 노래를 즐겨 듣게 된 건 최근에 들어서야. 부산 해운대 달맞이 언덕의 초입에는 작은 펍이 있어. 간판도 없는데다가 아파트 1층에 있으니, 숨어 있다는 말이 어울릴까. 그보단 숨겨져 있다는 표현이 낫겠다. 의외로 천정이 높고, 조명은 말없이 벽면이나 테이블을 비추며, 솔방울이 접시 위에 담겨 있는 곳. 캔버스나 서핑보드에 그려진 글자는 이곳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알 수 있게 해. 슬로우(Slow). 그곳에는 ‘아들’이라는 고양이가 있었어. 지금은 볼 수 없지만 나는 그 고양이의 얌전한 걸음걸이를 기억해. 꼬리를 세우고 의자 위에서 기지개를 펴던 모습을, 바 테이블 위를 우아하게 걸어가던 모습을. 이 가게의 주인이자, ‘아들’의 아빠이자, 손님들을 편안한 미소로 반겨주는 그는 ‘마이 앤트 매리’의 드러머야. 그가 선곡한 음악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모든 게 느려지는 기분이야. 슬로우는 시간에 저항하는 가장 멋진 말이 아니겠어.
추리문학관을 너머
나는 언젠가 <편지 쓰는 작가들의 모임>에서 주체하는 ‘작가들의 편지 낭송회’에 참석한 적이 있어. 장소는 부산 달맞이 언덕의 추리문학관에서였지. 추리문학관이야 독서를 하거나 글을 쓰기 위해서 몇 번 가본 적이 있지만, 이 건물을 개관한 김성종 소설가를 직접 본 것은 그날이 처음이야. 나는 그가 『여명의 눈동자』를 썼다는 것과 한국최초로 본격적인 ‘추리문학’을 연 소설가라는 것만 아는 정도였어. 추리 문학의 대가 김성종 소설가를 비롯하여, 나의 은사인 함정임 소설가, 마르께스의 내면을 읊어주던 송병선 교수, 오페라의 유령처럼 가면을 쓰고 나타난 박형섭 교수, 모델처럼 선이 멋진 정영문 소설가, 진행을 맡은 김다은 소설가의 편지를 육성으로 들을 수 있었어. 작가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건 멋진 일이지. 그런데 김성종 소설가의 편지는 지금까지도 나의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치듯 일렁이고 있어.
그건 전쟁에 관한, 그 시절의 고난과 생존에 대한 이야기였어. 나를 비롯한 추리 문학관에 있던 모든 청중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이 선생이 들려주는 편지에 귀를 기울였어. 선생의 목소리는 거칠지만 울림이 있었어. 이따금 안경을 올려 쓰기도 하고, 기침을 하려 마이크를 멀리 하기도 했지. 선생은 그리운 어머니에게, 배고픔을 견디던 형제들에게, 끝끝내 견디지 못해 죽음을 맞이한 어린 막내에게, 그를 차가운 얼음산에 묻었던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를 차분하게 읽어나갔어. 무섭고, 참혹하며, 안타까운 이야기였지. 마이크를 쥔 손은 점점 떨려왔고, 후에는 편지를 든 손마저 떨고 있었어. 청중석에서 울음이 먼저 터져 나왔을까. 선생은 그만 말을 멈추었어. 누구도 재촉하는 눈빛을 보낼 수 없었어. 그가 안경을 벗고, 손수건을 들어 눈물을 닦고, 숨을 두어 번 몰아쉬고, 다시 마이크를 들 때까지, 그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어. 견디기 힘든 고백이었어. 김성종 소설가는 우리에게 그 편지를 끝까지 읽어주었지.
달맞이 언덕은 안개가 짙어. 늘 그런 건 아니지만 해무가 낮게 깔릴 때면 바다는 자취를 감추곤 해. 그런 날에는 달맞이 언덕의 중턱에 위치한 추리문학관이 떠오르곤 해. 안개처럼 가려져 있는 추상의 형체에 접근하여 종국에는 나의 내면을 바라보는 일. 나는 그것이야 말로 그 날의 편지였다고 생각해. 그건 문학일까, 바다일까. 어차피 둘은 비슷한 걸.
청사포로 가는 길
해운대 문탠로드 숲길을 따라 30분 정도를 걸으면 청사포가 나와. 해운대 백사장에서는 40분 정도가 걸리겠다. 원래 청사포(靑蛇浦)는 푸른 뱀의 포구란 뜻이었어. 옛날 이 포구에는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남편을 기리며 망부송이 된 여인이 있었다고 해. 어느 날 푸른 뱀이 나타나서 그 여인을 용왕이 있는 곳까지 안내를 해줬다나. 지금은 모래 사(沙)로 바꾸어 청사포(靑沙浦)로 쓰고 있어. 물이 얼마나 맑기에 모래가 청록 빛을 간직한다는 이름이 붙게 된 걸까. 조류가 세고 영양도 풍부해서 미역 양식이 유명하기로 소문이 난 곳이기도 하지. 활어와 세꼬시(뼈째로 썰어먹는 회)는 어떻고. 장어구이와 조개구이는 더 말할 것도 없지.
청사포에서는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어. 밤이 오면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 사이에 환하게 뜬 달도 두 눈에 담을 수 있지. 바다 위를 잔잔하게 수놓은 은결과 파도의 일렁임을 간직한 곳이야.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풍경은 오래된 집들의 낮은 담장이야. 소인국을 방문한 걸리버가 된 기분이라니깐. 포구 한편에 자리한 색색의 컨테이너 박스도 인상적일 거야. 이전에는 없었던 가건물인데, 해녀와 포구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라고 해. 바다에서 건진 싱싱한 해산물을 사갈 수도 있고, 맛볼 수도 있는 거지. 해녀 할머니들은 청사포를 평생 지켜온 사람들이야. 30년 전만해도 물질해서 캔 해산물을 직접 동여매고 해운대 시장으로 나가야 했어.
달맞이 언덕은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 전이었고, 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가 없었어. 가파른 산길로만 다닐 수밖에 없었지. 해산물이 20~30kg가 든 대야를 들고 산을 탄다는 건 거의 불가능했어. 하루에 두 번 정도만 오가는 버스를 이용하자니 해산물은 신선도가 떨어져버려. 어쩔 수 없이 할머니들은 동해남부선의 철길로 걸어 다니기 시작했어. 야생동물들도 지나가지 않는 그곳을 겁도 없이 걸어 다닌 거야. 열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면 얼른 숲으로 숨어 있어야 했지. 그 길이 아니었다면 힘들게 캔 해산물을 제값에 팔 수 없었을 거라고 해. 지금은 동해남부선을 이전해서 일반인에게도 그 길이 개방 되었어. 청사포를 관통하던 기차 소리는 과거 속으로 사라져버렸지만.
태풍 매미가 왔을 때는 청사포의 모든 집들이 허물어질 정도였어. 포구 전체가 날벼락을 맞은 셈이지. 그때부터였을까, 청사포는 태풍이 오기 전이면 배를 도로 위로 올려둬. 태풍 예보가 떨어지면, 배들은 마치 질서정연하게 주차된 차처럼 도로 한편으로 옮겨지는 거야. 상상이 돼? 크레인이 바다에 정박한 배를 들어올리고, 지게차가 배를 이동시키는 장면을. 그 즈음은 금어기 기간이기도 하겠지만 포구로써는 손실이 큰 셈이야.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성난 바다야 말로 이곳 사람들에게는 가장 큰 재앙이니깐. 포구 가운데에 있는 당산나무에서 제를 지내며 포구의 번성과 안녕을 기원해. 그렇게 하나의 목소리로 작고 아름다운 포구를 지켜온 거야. 활기차고 힘찬 포구가 그곳에 있어. 바로 언덕 너머에 말이야.
문득, 훌쩍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니? 매일 걷던 그 길이 지루해지고, 지하철을 타는 내내 답답함이 밀려올 때 말이야. 그런 순간은 결코 예고해 주는 법도 없이 찾아오지.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선 슬며시 네게 말을 건네는 거야. 결코 오래 머무르지도 않아. 그저 잠시 너를 스쳐갈 뿐이야.
여행이란 문득이라는 말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아. 천천히, 아주 느리게,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안개 속에 숨어 있는 자신의 내면을 추리하듯 찾아가는 거지. 그렇게 걷다가 무심결에 바다를 만난다면, 그보다 더 좋을 데가 어디 있겠어. 달빛이 청사포 바다를 비추고 있어. 언덕 너머로, 숲길 사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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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은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
씨네필
문학청년
어쿠스틱 밴드 'Brujimao'의 리더.
정원선
2014.09.11
inee78
2014.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