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에게 관심과 사랑을
기생충은 흥미진진한 세상을 우리에게 보여주지만, 그 세상을 엿볼 기회는 별로 없다. 제대로 된 정보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 그런 와중에 EBS 다큐멘터리 <기생寄生, PARASITE>이 그 세상을 생생한 영상과 함께 담아내어 기생충들의 흥미진진한 생활, 진화적 동반자로서의 중요성, 앞으로의 가능성 등을 그려내었다.
글ㆍ사진 박성웅,서민,정준호 등
2014.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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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붐이 돌아왔으면 좋겠다’


항상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다. 사라진 기생충이 실제로 사람들을 다시 감염시켰으면 좋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기생충에 대한 관심이 그때만큼 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하는 말이다. 사람 기생충이 사라져 감에 따라 기생충에 대한 관심도 함께 시들해졌다. 1971년 기생충 박멸협회의 첫 장내기생충 조사에서 84%의 감염률을 보이던 나라가 ‘13세 아동에게 3.5m 길이의 촌충이 발견되었다’는 것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며 주요 신문사와 TV 뉴스에 대서특필되는 곳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제 기생충은 ‘이런 기생충 같은 놈!’처럼 욕으로나 찾아볼 수 있다. 아직도 수수께끼로 가득하고 흥미진진하며, 가능성 또한 무궁무진한 기생충이 소외되고 괄시받는 세상이 안타까울 뿐이다.


지구상 생물의 약 절반 가량이 기생생활을 하고 있다. 기생충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면, 지구 생명의 절반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 된다. 기생충은 단세포 생물부터 조류 같은 복잡한 생물들까지 거의 대부분의 생물군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기생생활을 통해 다양한 생물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기생충은 생태계를 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또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생명의 시작부터 함께 해온 생활 방식이며, 마찬가지로 인간의 시작과 진화 과정 하나하나를 함께 해왔다. 진화의 주요한 원동력이 되었던 기생충이 없었다면 성性도 없었고, 진화의 역동성은 훨씬 낮았을 것이며, 인류 역사의 많은 부분 또한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을 것이다. 기생충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역사의 흐름을 재조명해주기도 하고, 진화의 과정이나 생태계의 조절 등을 반영하는 좋은 지표 생물이 되기도 한다. 말 그대로 기생충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생물과 역사를 다듬어 왔다.

 

기생


하지만 기생충이 과거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기생충은 단순히 질병이나 흥밋거리로서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많은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최근에는 구두충Acanthocephalan(머리에 가시가 달려 주로 물고기에 기생하는 기생충)의 가시 모양을 흉내내어 접착제 없이 붙일 수 있는 상처 치료용 패치가 개발되기도 했고, 뒤에서 다루겠지만 알레르기성 질환을 치료하는 치료제로서의 가능성도 보이고 있다. 기생충을 이용한 친환경농법도 선보이고 있고, 또 생태계의 오염 정도를 측정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기생충은 흥미진진한 세상을 우리에게 보여주지만, 그 세상을 엿볼 기회는 별로 없다. 제대로 된 정보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 그런 와중에 EBS 다큐멘터리 <기생寄生, PARASITE>이 그 세상을 생생한 영상과 함께 담아내어 기생충들의 흥미진진한 생활, 진화적 동반자로서의 중요성, 앞으로의 가능성 등을 그려내었다.

 

기생충을 무조건 나쁘고 박멸되어야 할 존재로 그리지 않았기에, 기생충에 대한 오해를 풀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아 기생충 연구자이자 애호가로서 무척 기뻤다. 하지만 제한된 방송시간 탓에 기생충의 모든 이야기들을 담아낼 수는 없었다. 또 한 컷의 영상을 촬영하기 위해 탐구했던 시간들, 자료들, 수많은 뒷이야기들을 다 보여줄 수는 없었다. 이 책에서는 다큐멘터리에서 미처 다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들을 담아 보았다.


첫 장에서는 기생충이란 무엇인가를 다룬다. 기생충의 정의, 기생생활의 시작, 기생충과 진화의 역사, 또 기생충학의 역사를 다룬다. 두 번째 장에서는 기생충이 숙주에게 미치는 영향을 자세한 예를 통해 알아본다. 특히 숙주 조종이라는 주제를 통해 연가시나 기생 따개비 등 숙주의 행동을 극적으로 변화시켜 영향을 미치는 기생충의 모습을 살펴본다.

 

세 번째 장에서는 기생충과 숙주의 경쟁을 살펴본다. 숙주도 항상 무력하게 당하기만 하지는 않았다. 얼룩말의 얼룩 같은 외형적 변화부터 성의 탄생이나 겸상적혈구빈혈 같은 유전적 변화까지 모두 기생충에 대항하여 만들어진 방책이었다. 네 번째는 기생충과 인간의 대결, 그리고 동반자로서의 공존까지 살펴본다. 천연두와 말라리아를 통해 기생충이 인류의 역사에 미쳐온 영향을 살펴보고, 기생충을 이용한 각종 질병의 치료까지 알아본다.


기생충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나쁘지만도 않으며 오히려 좋은 효과를 낼 수도 있다는 것, 세상에 무조건 나쁜 것은 없으며 꼭 흑백으로 나눌 수만은 없다는 것, 그리고 무조건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라졌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도 보여준다. 독자들이 이러한 기생충의 역설을 통해 세상을 조금은 다르게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다큐멘터리, 그리고 이 책을 통해 기생충에 대한 오해를 풀고 그 기기묘묘한 매력에 흠뻑 빠져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생충은 인간과 그 어떤 생물이나 애완동물들보다도 오랫동안 함께 해온 동반자들이다. 또한 그 기묘하고 흥미진진한 삶을 보면 다른 귀엽고 아름다운 생물들만큼이나 충분한 관심과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존재들이다.

“기생충에게 관심과 사랑을!”


『기생』저자 일동

 

 



 

기생 : 생명진화의 숨은 고리 박성웅,서민,정준호 등저 | MID 엠아이디
기생충이란 무엇일까. 기생은 숙주에게 그 삶을 의지하게 된 단순한 퇴화가 아니며, 진화의 긴 역사를 통해 엄혹한 자연의 선택을 받아온 삶의 방식이다. 또한 생명 40억년의 역사에서 ‘기생’이 없었다면 지구상의 생명체는 미토콘드리아 이전 단계에서 그대로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기생충은 그저 하찮고 더러운 생명체, 혐오와 박멸의 대상이 아니라 생명과 인류 진화의 파트너로서 필요불가결한 존재이다. 생명체의 가장 큰 적임과 동시에 생명 진화의 원동력이 되어 준 기생, 독자는 이 오묘한 관계 속의 역사를 들여다보며 기생과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키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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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 #기생충 #서민 #EBS #EBS 다큐프라임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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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당

2014.06.11

다소 껄끄러운 소재이지만 그래도 흥미진진하게 기생충에 대한 오해와 진실 규명이 될 듯 싶어 자못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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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웅,서민,정준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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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서울대학교 의학과를 졸업하고, 1998년 같은 대학에서 기생충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의대 졸업 후 “21세기엔 기생충의 시대가 온다”는 교수님의 말에 넘어가 기생충학을 전공했다. 새천년이 밝았는데도 기생충의 시대가 오지 않는 것에 당황해 저술과 방송 등 여러 분야를 집적대다가 결국 유튜브에 정착했다. 조회 수를 위해 쌍수를 한 끝에 구독자 십만의 유튜버가 됐다. 의사가 진료에만 전념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만화 ‘쇼피알’ 스토리 작가로 참여했다.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기생충학교실 교수다. 세간에는 기생충학자로 기생충을 사랑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대한민국 1% 안에 드는 개빠로, 셰퍼드에게 머리를 물린 이후에도 개빠로서의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았다. 개를 좋아한다는 장점 하나로 역시 개빠인 아내와 결혼에 성공했고, 현재 6마리의 페키니즈를 모시며 살아가는 중이다. 한겨레신문에 ‘서민의 춘추멍멍시대’를 연재하고 있다. 『서민의 개좋음』은 이 세상의 모든 개들에게 바치는 헌사다. 지금까지 쓴 책으로는 기생충을 소재로 한『마태우스』, 『대통령과 기생충』, 『서민의 기생충 열전』 등이 있고 독서와 글쓰기, 정치에 관한 책으로 『서민의 독서』 『서민적 글쓰기』 『서민적 정치』 등이 있다. 오랜 진화의 결과 기생생활을 하게 된 기생충에 대해선 한없이 너그럽지만, 다른 이의 고혈을 빠는 소위 인간 기생충에겐 단호하다. 윤지오의 사기 행각을 고발하는 『윤지오 사기극과 그 공범들』을 쓴 것도 그녀가 한국으로 소환돼 죗값을 받기를 바라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