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핑] 어쩔 수 없이 밀려남에 고하다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는 주인공 만수가 정리해고되며 시작하는 영화입니다. 사회 변화와 구조의 폭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밀려나는 인간과 비인간의 이야기를 담은 책 7권을 소개합니다.
글: 채널예스
2025.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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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스』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 저/최필원 역 | 오픈하우스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 수가 없다>의 원작소설.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액스, 취업에 관한 위험한 안내서> 역시 이 책을 원작으로 삼았다. 제지회사에 다니는 평범한 샐러리맨 버크 데보레는 어느 날 회사로부터 정리해고를 당한다. 데보레가 실직에서 살인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특유의 뒤틀린 블랙 유머로 그려낸다. 재취업을 위한 살인 활극 위로 드리워진 자본주의 사회의 그림자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필경사 바틀비』

허먼 멜빌 저/공진호 역 | 문학동네

 

자본주의의 집약체인 월 스트리트 한 가운데서 조용하고 음울하게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법률사무소에 출근한 지 사흘째인 필경사 바틀비다. 고용주인 변호사는 그를 해고하고 사무실에서 내쫓으려 하지만 바틀비는, 물론 안 하는 편을 선택한다. 자본과 권력의 공기가 답답해 콱 숨을 참고 싶어지는 어느 날, 이해할 수 없었던 바틀비의 완강한 버팀이 문득문득 떠오를 것이다.

 



『산 자들』

장강명 저 | 민음사

 

취업, 해고, 구조조정, 자영업, 재건축 등 2010년대 한국 사회의 노동 현실을 10편의 단편 소설로 엮었다. "“해고는 살인이다.” 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도장 공장 옥상에 걸렸다. 해고는 살인이었으므로 그들은 ‘죽은 자’들이었고, 해고자 명단에 오르지 않은 사람은 ‘산 자’가 되었다."(「공장 밖에서」 중에서)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누군가를 밀어내거나, 밀려나야만 유지되는 현대사회의 비극을 또렷하게 응시하는 책.

 



『모든 것은 영원했다, 사라지기 전까지는』

알렉세이 유르착 저/김수환 역 | 문학과지성사

 

역사 속으로 사라진 소비에트 마지막 세대의 이야기다. “소비에트연방에서 무언가가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모든 게 영원할 거라는 인상이 있었죠”라는 첫 문장과 제목만 읽어도 이 책이 주목하길 요청하는 역설의 장면을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저자인 유르착은 좀 더 흥미롭고 중요한 역설을 하나 더 제시한다. 영원할 거라 믿었던 시스템의 붕괴로 충격에 빠진 사람들이 한편으로는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채 이미 체제 붕괴에 대비해 왔다는 점이다. 기존 담론이 간과해왔던 소비에트 마지막 세대의 역동성과 주체성을 포착해 내며 출간 이후 큰 주목을 받았다.

 



『세일즈맨의 죽음』

아서 밀러 저 | 민음사

 

번쩍이는 차, 집, 가구, 전도유망한 아들들, 그리고 세일즈맨으로서 차곡차곡 쌓이는 실적. 대공황이 오기 전까지 누구보다 행복했던 세일즈맨 윌리 로먼의 인생에 불황과 함께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다. 현대 사회에서 평범한 한 사람이 내몰릴 수 있는 비극은 무엇일까. 무너진 아메리카 드림 속 허망한 꿈을 좇는 소시민을 통해 물질 만능주의와 인간 소외, 생명의 존엄성을 그린, 20세기를 대표하는 희곡.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

김진희, 박소영, 오규상, 이재임, 최현숙, 홍수경, 홍혜은 저 | 후마니타스

 

지하철 역사나 공원에서 여성 홈리스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를 작업했던 홈리스행동 생애사 기록팀은 비가시화된 여성 홈리스의 자리를 쉬이 지나치지 않는다. 그곳에 누군가 머물고 있을 테고, 보이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에는 여성 홈리스를 사회로부터 한 번 더 격리시키는 폭력과 소외의 구조가 드러난다. 하지만 이렇게만 말하면 책에 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셈이나 마찬가지다. 거리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며 체득한 삶의 전략과 흔적, 활동가와 맺는 입체적인 관계성, 기존 방식으로는 담기지 않는 여성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몸을 바꾸어 가는 글쓰기 방식까지, 말하고 듣는 여자들이 이야기를 함께 살아내며 적어낸 기록이기 때문이다.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에 관한 책』

캐스파 헨더슨 저/이한음 역 | 은행나무


인간은 줄곧 이 지구를 독점하고 있다는 오만에 빠진다. 이 책은 우화 속 상상의 동물처럼 느껴지지만 실재하는 존재들을 지구 구석구석을 뒤져 끌어 올린다. 저편으로 밀어냈던 존재들이 선명해지면서 역설적으로 인간의 욕망, 이기심, 발자취, 그 결과들을 비추게 된다. 다른 존재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우리의 세계는 분명 더 커진다. 그리고 바깥의 존재들과 함께 사는 방법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 기사 제목은 임수연 영화 저널리스트가 유튜브 ‘임수연의 배산임수’에서 <어쩔수가없다>를 다루며 소개한 다음 내용에서 차용했습니다. “염혜란 배우가 인터뷰에서 <어쩔수가없다>를 ‘밀려남’에 관한 영화라고 말씀해주신 표현이 너무 좋았습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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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스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 저/<최필원> 역

출판사 | 오픈하우스

세일즈맨의 죽음

<아서 밀러> 저/<강유나> 역

출판사 | 민음사

필경사 바틀비

<허먼 멜빌> 저/<하비에르 사발라> 그림/<공진호> 역

출판사 | 문학동네

산 자들

<장강명>

출판사 | 민음사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

<홈리스행동 생애사 기록팀> 기획

출판사 | 후마니타스

모든 것은 영원했다, 사라지기 전까지는

<알렉세이 유르착> 저/<김수환> 역

출판사 | 문학과지성사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에 관한 책

<캐스파 핸더슨> 저/<이한음> 역

출판사 |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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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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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행동 생애사 기록팀

양동 쪽방촌 재개발로 주민들이 쫓겨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쪽방촌 주민들의 목소리를 전하고자 홈리스행동·빈곤사회연대 활동가들과 홈리스야학 교사들이 뭉쳤다. 첫 책으로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를 썼고, 그간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여성 홈리스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이 책을 기획했다. 앞으로도 우리 사회 빈곤 계층이 직접 증언하는 삶을 듣고 쓰려 한다. 남대문로5가 쪽방촌 주민 강성호, 권용수, 김강태, 김기철, 문형국 이석기, 이양순, 장영철, 해피인 서울역 신종호 위원장, 홈리스행동 이동현 활동가. 강성호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부터 노숙을 시작해 오랫동안 서울역 과 병원을 오가는 생활을 지속하다 현재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 양동 쪽방에 살고 있다. 권용수는 두 차례 철거와 강제 이주에도 67년간 양동 쪽방을 지키며 살고 있다. 김강태는 14년간 외항선을 타며 젊은 시절을 보냈고, 가족의 배신과 IMF 외환위기를 동시에 겪으며 서울역 거리 생활을 시작했다. “ 누울 자리 ”를 찾아 장애인 시설, 돼지 농장, 양계장 등 전국 곳곳 을 누비다 2017년부터 양동 쪽방에 살고 있다. 김기철은 1976년에 상경한 이후 쭉 서울역 근처에서 생계를 꾸려 왔다. 딸 은영이 장애인 시설로 가게 되면서 가족과 이별하고 지금 은 양동 쪽방에 살며 딸과 함께 살 날을 기다리고 있다. 문형국은 3 년 전 류머티즘으로 중국집 프라이팬을 더 이상 들 수 없게 되면서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었고 양동에 전입신고를 했다. 이석기는 오랫동안 임금 체불에 시달리며 염전에서 일하다 탈출한 후 2019년, 양동 쪽방촌에 첫 ‘내 집’을 갖게 됐다. 이양순은 가정 폭력을 피해 집을 나온 후 서울역을 배회하다 만난 “아저씨”와 쪽방촌에 자리를 잡았다. 장영철은 열세 살 때 걸어서 상경한 후 줄곧 거리와 쪽방을 오가며 지냈으며, 양동 쪽방에는 2017년부터 살고 있다. 신종호는 2019년부터 해피인 서울역 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매주 양동을 방문해 도시락을 전한다. 이동현은 대학 때부터 줄곧 주거 빈곤 현장에서 활동해 왔다. 현재는 홈리스행동에 상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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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

1933년 미국 뉴욕 주의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6세 때부터 올버니에 있는 가톨릭계 학교를 다녔고, 1950년 플래츠버그의 챔플레인 대학에서 수학하다가 미 공군에 지원하여 2년 동안 복무하였다. 이후 지금은 뉴욕주립대학교로 바뀐 빙엄턴의 하퍼 대학에서 학업을 계속하였다. 10대 시절부터 꾸준히 글을 써왔던 그는 200번도 넘는 고배를 마신 끝에 1954년 SF 소설 및 미스터리 픽션 매거진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1958년 스코트 메리디스 에이전시에서 프리리더로 일하며 46편의 단편을 집필하였고 그중 27편을 지면에 발표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1960년 첫 번째 장편소설 『머서네리 The Mercenaries』를 발표하며 전업작가로 활동할 것을 선언한 그는 지난 2008년 12월 작고하기까지 48년 동안 리처드 스타크, 앨런 마샬, 새뮤얼 홀트 등 다양한 필명으로 활동하였고, 로렌스 블록과 함께 셀던 로드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범죄소설, 특히 코믹 케이퍼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존재로 군림하였고, 역사소설, 미스터리 소설, SF 소설, 심지어 레즈비언 로맨스 소설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고 백 권도 넘는 작품을 발표하며 대중문학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세 부문에 걸쳐 에드거 상을 세 번이나 수상한 두 명의 작가 중 하나이기도 한 그는 1993년 미국 미스터리작가협회로부터 미스터리 작가 최고의 영예인 ‘그랜드마스터’ 칭호를 수여받았다. 2008년 12월 31일 아내이자 작가인 애비게일 웨스트레이크와 함께 멕시코에서 휴가를 즐기던 중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사망하였다. 『뉴욕을 털어라(원제 The Hot Rock)』는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가 남긴 대표작으로, 1970년 출간된 이래 40여 년 동안 영미 문단에서 호평을 받아온 추리소설계의 전설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특히 한없이 소시민적인 안티히어로 ‘도트문더’는 끊임없이 후속작 출간과 영화화 작업으로 이어지며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 작품은 1972년 피터 예이츠 감독에 의해 로버트 레드포드, 조지 시걸 주연으로 영화화되어 수많은 웃음과 연민, 공감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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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밀러

1915년 미국 뉴욕 출생. 빵집 배달원, 자동차 부품 회사 점원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쳐 미시건 대학에 재학하면서 극작 활동을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뉴욕 연방 연극 프로젝트에 참여해 라디오극과 드라마 대본을 집필했다. 1944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행분의 사나이』가 평단의 호평에도 공연 나흘 만에 막을 내렸으나, 1947년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퓰리처 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 작품은 2년 동안 742회 공연되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연극계 최고의 걸작’이라는 평을 받았다. 입센의 작품을 각색한 『인민의 적』(1950), 세일럼 마녀재판을 소재로 쓴 『시련』(1953) 등은 당시 미국의 매카시즘 열풍에 대한 비판으로 받아들여졌고, 그 때문에 반미 지식인으로 몰려 법정에 서기도 했다. 1956년 영화배우 마를린 먼로와 결혼함으로써 주목을 받았으나 1961년 이혼, 이듬해 오스트리아 출신의 사진작가 잉게 모라스와 재혼했다. 1964년 『추락 이후』와 『비시에서 생긴 일』을 발표하고 1983년 베이징 인민극장에서 『세일즈맨의 죽음』을 연출했으며, 자서전 『시간의 굴곡』(1987)을 출간하는 등 말년까지 집필과 연극 관련 활동을 쉬지 않았다. 2005년 코네티컷의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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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먼 멜빌

미국의 소설가. 1819년 무역상이던 아버지 앨런과 어머니 머라이어의 둘째아들로 뉴욕 파르 거리 6번지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유복하게 보냈지만 13세 때 가세가 기울어 학업을 중단한다. 그때부터 멜빌은 은행이나 상점의 잔심부름, 농장일 등을 전전한다. 20세에 처음으로 상선의 선원이 되어 바다로 나간 그는 22세에 포경선을 타게 된다. 이때 항해를 하면서 얻은 경험은 그의 작품의 주요 소재가 된다. 이후 포경선의 선원과 미 해군이 되어 5년 가까이 남태평양을 누볐다. 포경선에서 탈주해 마르키즈 군도의 식인종과 함께 보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첫 작품 『타이피Typee』(1846)로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작가의 길로 들어선다. 바다 생활을 담은 『오무Omoo』 (1847)에 이어 발표한 『마디』(1849)에는 철학적 논의들을 담았지만 평단의 차디찬 반응에 멜빌은 다시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다. 바다에서의 모험으로 돌아가 『레드번』(1849), 『하얀 재킷』(1850)을 발표하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바틀비, 월 스트리트의 한 필경사 이야기Bartleby, the Scrivener: A Story of Wall-Street』(1853)는 1856년 다른 중단편들과 함께 『회랑 이야기The Piazza Tales』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대표작 『모비 딕Moby Dick or The Whale』(1851)조차도 그 실험적인 형식으로 인해 혹평에 시달린다. 그는 작가로서 큰 인기를 얻지 못했고, 뉴욕 세관의 감독관 자리를 얻어 근무했다. 그래서 소설 창작은 접고 시 창작에만 몰두했다. 남북 전쟁을 그린 『전쟁 시와 전쟁의 양상』, 종교적 장시 『클라렐』, 그리스와 이탈리아 여행의 인상을 담은 『티몰레온』이 그때의 시집들이다. 마지막 소설 『선원 빌리 버드 인사이드 스토리Billy Budd, Sailor: An inside story』를 원고로 남긴 채, 1891년 9월 심장 발작으로 세상을 떠났다. 에이해브 선장이 머리가 흰 거대한 고래에 도전하는 내용을 다룬 『모비 딕(백경)』은 멜빌의 대표작으로,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으나 작가 하수에 인정받은 작품이다. 이 소설은 포경선 선원들의 생활을 생생하게 그리는 한편, 악·숙명·자유의지 등의 문제에 대한 철학적 고찰까지 담고 있다. 그의 다음 작품인 『피에르』는 전작처럼 경험에 입각한 해양 이야기에서 탈피하여, 시골의 부유한 평민 집안의 외아들 피에르가 이복누이 이사벨을 구하려다가 빠져 들어간 비극적인 삶을 그리고있다. 이 작품은 캘비니즘적 그리스도교 사상에 의지하면서도 때로는 그 범주를 넘은 견해를 제시하여 인간심리의 착잡함을 비유적·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당시의 독자들에게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이 역시 오늘날에 와서 더욱 각광받는 부분이 되었다. 근대적 합리성을 거부하는 철학적 사고, 풍부한 상징성이 뭍어나는 작품을 쓴 하먼 멜빌. 살아생전에는 단순한 해양 탐험 소설을 썼다과 평가되었을런지 모르지만 1920년대에 극적으로 재평가되었고, 현대에 와서는 친구 N.호손과 더불어 인간과 인생에 비극적 통찰을 한 상징주의 철학적 작가로,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작가의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