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산문집은 맑은 장국 같다. 화려한 색을 뽐내지 않지만 어떠한 맛보다 진하고 정직하다. 때때로 많은 글을 읽으면 소화 불량이 찾아온다. 하나, 정호승 시인의 글은 읽고 있노라면 금세 마음이 건강해지는 것 같다. 올해로 등단 41년, 11권의 시집을 펴내면서 시인은 틈틈이 독자들에게 산문집을 선물했다. 시로 담기 어려운 이야기, 놓친 마음들을 성실한 관찰을 통해 산문으로 전했다.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는 정호승 시인이 지난 2년 반 동안 <동아일보>에 ‘정호승의 새벽 편지’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칼럼에 새로운 글을 더해 엮은 책이다. 제목만으로도 선물이 되고, 위안이 되는 책. 정호승 시인은 “어둠 속에는 빛이 있다. 빛이 있기 때문에 어둠이 있고 어둠이 있기 때문에 빛이 있다”며, “우리도 마찬가지다. 내가 있기 때문에 당신이 있는 게 아니라, 당신이 있기 때문에 내가 있다”고 말했다.
고통 또한 인간의 본질이자 숙명이다. 비를 피하기 위해 황급히 어느 집 처마 밑으로 들어갔다고 해서 하늘에서 비가 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비가 오는 것은 원래 하늘의 본질이다. 하늘이 늘 푸르기만 하다면 그것은 하늘의 본질이 상실된 것이다. 내가 고통이 없기를 바라듯 하늘이 푸르게 개어 있기를 바라는 것일 뿐, 지금 하늘이 맑게 개어 있다 해도 언젠가는 또다시 바람이 불고 비가 오게 마련이다. 바람이 없으면 내 인생이라는 연을 날릴 수 없다. 내 인생이라는 연을 날리기 위해서는 강한 고통의 바람이 필요하다. 연을 제대로 날리기 위해서는 바람이 강하게 불어와주어야 한다. 지금도 내 손엔 어릴 때 연을 날리며 강한 바람과 맞서던 연줄의 팽팽한 기운이 다시 솟는다. (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 365쪽)
내가 사랑을 선택하며 살아왔는가
일간지에 ‘정호승의 새벽 편지’를 연재할 때, 많은 독자들이 작가님의 글을 여러 번 곱씹어 보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편집자 분께 들은 이야기인데요. 어떤 독자 분은 칼럼을 복사해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눠줬다고 하더라고요. 고마운 일입니다.
작가님은 집필실 책상 위에 ‘토성에서 본 지구’ 사진을 붙여 놓으셨다고요. 고통스러울 때마다 그 사진을 보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신다고.
그 사진을 볼 때마다 마음의 위안을 얻어요. 우주의 크기를 생각하면 지구는 얼마나 작고, 그 지구 속에 사는 나는 얼마나 또 작은가, 그러니 욕심내지 말고 주어진 상황 속에서 잘 받아들이며 열심히 살겠다는 생각을 해요. 욕심이 적으면 적을수록 고통도 적어진다는 평범한 사실을 깨닫게 하죠.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금세 찾을 수 있어요.
최근에 새롭게 붙인 사진은 없나요?
렘블란트 그림 중에 ‘돌아온 탕자’라는 작품이 있어요. 용서에 관한 그림이죠. 성서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에 관한 그림인데, 헨리 나우웬이 쓴 책 『탕자의 귀향』 표지 사진이기도 해요. 이 책 첫 페이지를 보면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관계가 힘들 때, 미움을 선택하지 말고 사랑을 선택하라”는 말을 하죠. 우리는 누구나 관계 속에서 살잖아요. 관계가 설정되지 않는 삶은 없죠.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도 결국 관계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맞아요. 제목에서 알 수 있겠지만, 모두가 내가 있기 때문에 당신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반대죠. 제가 한 산사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풍경 달다」라는 시를 쓴 적이 있어요. 바람이 부니까 풍경 소리가 무척 아름답게 나더군요. 풍경이 과연 누구 때문에 이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었을까요? 바람 때문이죠. 바람도 자기 존재에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었던 건, 풍경이 있어서 입니다. 이처럼 풍경과 바람의 관계는 사랑의 관계에요. 관계가 힘들 때마다 ‘내가 사랑을 선택하며 살아왔는가’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내가 풍경이라면, 바람이 없이는 아름다운 소리를 내지 못할 것을 생각해보면 무엇을 소중하게 여겨야 할지를 깨닫게 돼요.
제목만으로도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책인 것 같습니다.
책에도 썼지만, 인도 출신 예수회 신부 앤서니드 멜로가 쓴 우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남자가 연인의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더니, 연인이 “누구냐”라고 대답했습니다. 남자는 “나야 나”라고 답했는데 여자는 “돌아가라, 이 집은 너와 나를 들여놓는 집이 아니다”라고 했죠. 남자는 몇 달 동안 연인의 말을 곰곰 생각하다가 다시 문을 두드리고는 같은 질문에 “너야 너”라고 답합니다. 그러자 금세 문이 열렸죠. 너와 나의 관계는 하나지, 둘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당신이 있기 때문에 내가 있는 것, 구분되는 관계가 아니라 하나라는 걸 의미하죠. 우리는 어둠을 보면서 빛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항상 빛 속에는 어둠이 있고, 어둠 속에는 빛이 있죠. 우리가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관계가 사실 하나의 통합된 관계라는 걸, 독자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에 대한 깊은 성찰
우리는 인생을 말할 때, 흔히 마라톤 경주로 비유합니다. 끝은 가봐야 안다는 거죠. 일등이 끝까지 일등이 되라는 법도, 꼴등이 꼭 일등이 되지 못하라는 법도 없습니다. 그런데 작가님은 인생은 결국 ‘여행’과 같은 것이라고 말하셨습니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길을 걸어가는 산책자나 여행자라고요.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했을 때는 “나중 되는 자가 먼저 될 수 있다”는 교훈을 가져다 줍니다. 맞는 이야기이고 좋은 교훈이죠. 하지만 마라톤은 결국 경주이고, 경주라는 건, 서로 순위를 다투는 거죠. 저는 또 하나의 마라톤의 의미를 생각해보길 권합니다. 인생은 시합이 아니니까요. 인생이 시합이라면 경쟁이 되고 이겨야 하는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어떻게 가느냐의 과정입니다. 목표지향적인 삶이 아니라 경로지향적인 삶이 중요한 까닭이죠. 경쟁을 해야 하면 우리는 쉬지 않게 됩니다. 지름길로 가려고 하고 타자에 대한 배려도 하지 못하죠. 사랑이 부재된 승리지향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하지만 과정을 지향하면 일단 시합을 안 합니다. 여유를 가지고 쉴 수도 있고 되돌아갈 수도, 다시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어디를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중요하지, 가야 할 그 곳이 중요한 것이 아니지요.
인생에서 가장 길고 지난했던 시간은 언제였나요?
보통 20대가 시간이 가장 안 간다고 말합니다. 누구에게나 그럴 거예요. 그건 인생을 준비하는 기간이기 때문이에요. 대개 20대 때 인생을 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20대 때 준비가 부족하면 30대, 40대가 힘들어집니다. 왜냐면 30대, 40대는 책임이라는 게 생기는 나이이기 때문이죠. 사람의 본질 속에는 책임이 있는데, 준비가 부족하면 자신이 책임져야 할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산문집에 러시아로 떠나는 아들에게 쓴 편지를 담기도 하셨는데요. 20대 때, 가장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남이 한다고 해서 따라갈 필요는 없어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하고 싶은지, 무엇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준비하는 기간이 길다고 너무 초조해 할 필요는 없어요. 다만, 어떤 시점에서는 준비의 기간이 끝나야 하죠. 무엇을 하기에 충분할 만큼 완벽할 때는 없기 때문에 어느 시점에서는 행동을 해야 해요. 이 행동이 어떤 사람에게는 30대가 될 수도 있죠. 인생에서 속도는 큰 의미가 없어요. 특히 20대 때는 더욱이 의미가 없죠. 기성세대로서 젊은 세대를 볼 때, 안타까운 건 방향을 제대로 찾지 못하는 모습을 볼 때에요. 새들은 바람이 가장 강하게 불 때 집을 짓지 않습니까? 20대는 고통스러워도 기초공사를 짓는 기간이기 때문에 그 고통, 힘듦을 잘 견뎌야 해요.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으면, 그 고통이 고통으로만 다가오진 않을 겁니다.
요즘 유독 많이 생각하는 것들은 무엇인가요?
나이 들어가고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요. 물리적인 나이를 먹어 가면서, 인생은 정말 시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리적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이잖아요. 물리적 시간을 내가 어떻게 절대적인 시간으로 만들어가느냐, 이것이 저의 과제입니다. ‘내가 얼마나 노력을 하면서 살았냐’를 생각해보면 후회되는 부분이 많아요. 남은 인생의 시간이라도 절대적인 시간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후회가 되는 일이 많나요?
많죠(웃음). 담배를 피운 일도 후회가 되고 또 열심히 더 공부하지 못한 것, 책을 더 열심히 읽지 못한 것도 후회가 됩니다. 더 깊게, 넓게 생각하지 못하고, 남을 많이 사랑하지 못하고 나를 너무 많이 사랑한 일도 그렇고. 후회되는 일은 많죠.
그렇다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은 어떤 결단이었나요?
시로부터 버림 받지 않으려고 열심히 매달리면서 살아온 일이죠. 사실 내가 시를 선택한 건 아니에요. 시가 나를 선택해서 시인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었는데, 무척 감사한 일입니다. 시와 산문을 쓸 수 있는 기회와 능력이 주어진 것만큼, 더 큰 감사는 없어요.
결국 시를 쓰는 것도 노력하는 일
어릴 적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호승이는 시인이 되면 시를 잘 쓰겠다”는 칭찬을 받은 일이 있다고 하셨는데요. 시인이 된 일에 있어 큰 계기가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깊게 남았죠. 선생님의 칭찬이 계기가 돼서 교내 백일장에도 나가게 됐고요. “우리 반에서는 누가 백일장을 나갈까?” 선생님이 물었을 때 아이들이 모두 저를 추천해줬어요. 선생님의 칭찬을 반 친구들이 다같이 들었으니까요. 사실 저는 중학교 2학년 때까지만 해도 백일장이 뭔지 잘 몰랐어요. 백일 동안 어디를 가는 건 줄 알았죠(웃음).
선생님의 칭찬 한 마디가 인생의 새로운 길을 열어줬다고 생각해도 될까요?
그렇죠. 선생님의 한 마디가 없었다면 제가 시에 재주가 있다는 걸 몰랐을 겁니다.
요즘은 스승과 제자 사이의 교류가 과거에 비해 줄어들었습니다. 멘토 열풍이 다소 꺾이긴 했지만, ‘지금 세대는 멘토를 돈으로 사고 있다’는 이야기도 하고요. 학교에서 이뤄지는 사제 간의 끈끈한 정이 예전 같지만은 못한 것 같습니다.
우리사회에 많은 직종이 있는데, 초중고등학교 교사라는 직종은 그 가운데서도 정말 소중한 자리라고 생각해요. 어떤 부분에서는 성직과 같은 부분이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죠. 교직은 아이들의 맑은 영혼을 책임지는 일이에요. 부모가 집에서 돌봐줄 수 없는 사회성, 인간관계를 학교에서 배우잖아요. 선생님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한 학생만이 지니고 있는 놀라운 개인성을 발견해주고 칭찬해줘야 한다는 거예요.
‘가장 아름다운 체벌’이라는 제목으로 신문에 기사가 나기도 했죠. 전남 광주의 한 중학교 선생님은 지각생들에게 벌을 주는 대신, 시를 외워오라는 숙제를 내줘서 감동을 주기도 했습니다.
네. 그것도 국어과 교사도 아니고 사회과 교사시더라고요. 선생님들은 본의 아니게 학생들에게 체벌의 형태를 갖춰야 할 때가 있는데, 그 선생님은 매를 드는 대신 시를 외우게 하는 벌을 주셨죠. 저도 늘 생각합니다. 꼭 국어 교사가 아니더라도 아이들에게 시를 많이 읽게 하고 외우게 하면 참 좋겠다고요. 지금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만나보면 시를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시기에 학교에서 정지용, 윤동주, 김소월의 시를 경험하게 해야 하는데, 6학년 때까지 동시 세계에만 갇혀 있다가 중학교에 가서 갑자기 한국 현대시를 시험의 방법으로 만나니까 시와의 만남이 불행해요. 한국문학을 더 많이, 깊이 있게 경험해야 아이들이 언어영역에서 자기를 표현하고 드러낼 수 있는 능력들이 발전하지 않을까, 싶어요.
작가님께서는 국문과 말고 다른 전공을 생각해본 적이 없으신가요?
대구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는데 고3이 됐을 때, 서울에 있는 대학에 다니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가정형편이 서울로 유학을 보낼 상황이 아니었죠. 그런데 마침 경희대학교에서 전국고교생현상모집으로 문예대학생을 뽑았어요. 한 번 도전이나 해봐야지 싶어, ‘고교문예의 성찰’이라는 제목으로 평론을 썼는데 당선이 됐습니다. 당시에 발간된 문예지를 계속 읽고 있었으니까, 평론이 무엇이냐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는 있었죠. 제가 작가로서는 글을 쓸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고등학생이 쓴 시를 가지고는 써볼 수 있을 것 같아 평론을 쓴 거죠. 그래서 무시험으로 총장장학금을 받고 입학할 수 있었어요.
올해로 등단 41년을 맞이했습니다. 시가 잘 쓰여지는 순간이 있나요?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시가 내게로 왔다”고 고백했죠. 물론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도 그런 경험을 간혹 합니다. 하지만 결국 시를 쓰는 것도 노력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무리 메모를 많이 하고 가슴속에 시가 많다고 해도, 시를 쓰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시가 될 수 없습니다. 흔히들 “내가 살아온 인생을 소설로 쓰면 책 몇 권을 써도 모자라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소설입니까? 직접 쓰지 않고서는 소설이 될 수 없죠. 시를 쓰는 일도 사는 일과 똑같습니다. 노력을 해야죠. 내가 시를 찾아가는 일이지, 시가 나에게 찾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삶도 그렇습니다. 나에게 어떤 긍정적인 인생의 길이 한 번에 주어지진 않습니다. 찾아가다 보니, 또 다른 길이 생기고 인생의 좋은 행로를 만나게 되는 거죠. 시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속 고쳐 쓰다 보니까, 내가 생각하지 못한 어떤 한 행이 나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거예요. 하지만 그건 주어졌다기보다는 내가 찾아간 거죠.
내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가치 있는가
결국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행복과 불행의 총량은 같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행복을 잘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같은 일을 겪어도 덜 행복해 하고 더 불행해 하는 사람이 있는데요.
똑같은 고통을 당해도 어떤 사람은 그 고통 속에서 희망을 바라보고, 다른 어떤 사람은 고통 속에서 절망을 바라보죠. 고통은 동일하나 고통을 느끼는 건 동일하지 않은 거죠.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는 이야기가 있는 거죠. 저는 행복을 생각할 때, 꽃 향기를 떠올립니다. 라일락 향을 좋아하는데, 길을 걷다 라일락 향이 나면 발걸음을 늦추고 향을 맡습니다. 그렇게 오래 있다 보면 어느 순간 향이 나지 않습니다. 왜 향이 안 나냐? 생각해 보면, 향이라는 건 한 순간 스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계속 좋다고 해서 계속 향을 맡으면, 그건 냄새가 되고 질립니다.
행복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순간에 내가 느끼는 것이지 계속 주어지는 건 아닙니다. 제가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를 냈을 때, 기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그 기쁨이 계속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첫 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 얼마나 더 기뻤을까요? 지금도 그 순간을 잊지 못하지만, 그 순간의 기쁨이 평생 지속되면 저는 감당할 수 없을 겁니다. 그 지속되는 기쁨 때문에 죽을지도 모르죠. 기쁨은 그 순간 사라지기 때문에 나에게 존재할 수 있는 겁니다. 사라지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거죠. 그 순간의 기쁨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 하고 있는 일이 일치하는 사람이라고 하셨는데요. 작가님도 해당되는 것 같습니다.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은 시인으로서의 삶을 사는 거예요. 현재 글을 쓰면서 시인으로서의 삶, 넓게는 작가로서의 삶을 살 수 있고 살고 있으니까 저는 행복한 사람이죠.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하길 원하지만, 모든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저도 인생의 어느 한 순간에 과감한 결단을 했습니다. 직장생활을 열심히 하다가 40대 초반에 시인으로 살겠다고 결심했죠. 그 때는 무척 두려웠습니다. 또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고생도 했어요. 하지만 그런 결단을 하게 해준 운명적 존재에 대해 감사합니다.
작가님이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었을 때, 고 최인호 작가님이 격려를 해주며 “시인이 소설가가 되려면 열심히 쓰는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셨다고요. 다시 한 번 소설을 집필할 계획은 없나요?
소설은 못 쓸 것 같아요. 동화를 쓰고 싶어요. 아이들이 읽는 동화도 좋겠고 어른이 읽어도 좋은 동화도 쓰고 싶어요. 산문은 시 정신의 연장선에서 이뤄지는 하나의 결과물인데, 이번 책과 같은 산문과 동화, 동시도 쓰고 싶어요. 서사구조가 필요한 소설이라는 장르는 아마 제 인생의 시간이 부족해서 쓰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해요. 시를 좀 더 바람직하게 쓸 수 있는 그런 능력과 시간이 부여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미리 쓴 나의 버킷리스트’도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서울을 무작정 떠나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 하셨는데, 혹시 시도를 하셨나요?
(웃음). 아직 실행하지 못했어요. 그 글을 쓰고 나서 보니까 굉장히 관념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구체적으로 썼지만 사실은 관념적이지 않나, 쓰면서도 반성을 했어요. 아마, 버킷리스트를 다시 써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도 공개할 수 없는 개인적인 버킷리스트를 써보려고 해요.
독자들이 다양한 동기로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를 읽게 될 텐데요.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대하면 좋을까요.
내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가치 있는지에 생각해보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법정스님이 “사람은 때때로 홀로 있을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셨는데요. 고독의 영역, 자기 혼자만의 시간이 정말 소중하다는 걸 알고, 조용한 가운데서 이 책을 한 번 펴보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 정호승 저/박항률 그림 | 해냄
이 책은 《동아일보》에 연재한 「정호승의 새벽편지」원고 일부에 새로 쓴 산문을 더하여 총 71편의 글과, 자연을 통해 내 안의 자아를 바라보는 교감의 순간을 한 편의 시처럼 그림에 담아내는 화가 박항률 화백의 그림 29점이 함께 실려 있다. 삶이라는 큰 주제를 시인의 눈으로 바라보도록 만든다. 가게 주인의 짧은 인사말에 따스한 이웃의 정을 찾아내는 「당신은 어떻게 사랑하고 있는가」에서는 우리가 아직 사랑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 「가장 소중한 선물」에서는 선물을 사 오지 못해 미안해하는 형에게서 그저 곁에 있어주어 감사한 마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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