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데라 씨, 존재의 가벼움이란 무엇인가요?
예스24와 민음사가 주최하는 ‘2015 세계문학 고전학교’의 두 번째 강의가 서울 논현동 북티크에서 열렸다. ‘카프카’의 삶과 작품세계를 주제로 다뤘던 지난 강의에 이어, 두 번째 강의의 주인공은 보헤미아의 작가 ‘밀란 쿤데라’였다. 지난 달과 마찬가지로 이날 강연 역시 ‘로쟈’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이현우 서평가가 맡았다.
글ㆍ사진 지예원
2015.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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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가 열렸던 지난 4월 23일, 마침 이날은 대문호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가 사망한 날에서 유래된 ‘세계 책의 날’이기도 했다. 강연은 밀란 쿤데라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중심으로, 밀란 쿤데라의 삶과 그의 소설에 나타난 작품세계를 다루는 시간으로 이어졌다. 이현우는 먼저 이달의 주인공인 작가 밀란 쿤데라에 대한 소개로 문을 열었다.

 

“먼저 작가 소개부터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작가의 삶과 작품을 연관 지어서 읽고, 이해하는 것을 꺼려하는 작가가 바로 밀란 쿤데라입니다. 예전에는 인터뷰도 자주했는데 지금은 그런 것들을 상당히 기피하고, 대외적으로 자신을 거의 노출하지 않는 작가입니다. 쿤데라가 29년생인데, 몇몇 작품들은 나중에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를 대비해서 사전예방조치 차원에서 쓰였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사후에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해석하는 데에 있어서 대비책을 마련한 것이죠. 쿤데라는 싫어하는 일이지만 그가 죽으면 개인적 사생활이나 삶의 이력이 들춰질 것이고,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쿤데라의 작품들이 새로운 방식과 해석으로 다시 읽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쿤데라는 사실 처음에 시인으로 출발했고 세 권의 시집을 낸 이력이 있다. 하지만 쿤데라 자신은 그 사실 자체를 굉장히 싫어하고 드러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고 이현우는 말했다.

 

“쿤데라는 시인으로서의 경력뿐만 아니라 20대 초반의 경력도 세탁하고 싶어해요. 개인적으로 그의 처녀작인 『농담』도 경력 세탁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쿤데라는 삶은 다른 곳에 같은 작품에서 시인을 등장시키는데, 아무래도 20대 초반은 괜히 우쭐한 상태에서 자신과 세상을 대등하게 놓으려고 하는 것이 가능한 나이잖아요. 쿤데라도 그런 시기를 겪기는 했지만 그 시절을 미성숙한 경험이라든가 행동으로 치부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작품 『삶은 다른 곳에』는 시인에 대한 자서전 형태이지만 자신의 미숙한 시절에 대한 반성까지 포함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알려져 있다시피 쿤데라는 1968년 프라하에서 있었던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가 진압되고, 정치적으로 탄압받는 경험을 겪고 그 후 프랑스로 망명하게 되어 1981년에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다.

 

“작가가 국적을 바꾸는 경우가 드문 일은 아니지만, 쿤데라는 언어까지 바꾸게 되어서 『불멸』까지만 체코어로 썼고 『느림』, 『정체성』, 『향수』 등 그 이후 작품들은 불어로 썼습니다. 그런데   언어를 바꾼 이후의 작품들은 분량이 좀 짧습니다. 기존의 작품들과는 스타일과 구성에 변화가 있는데 저는 쿤데라가 다른 작가로 탄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밀란 쿤데라에게 소설이란?


이현우는 쿤데라가 소설에 대해 어떤 생각과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 소개하면서 그와 관련된 쿤데라의 에세이 몇 가지를 언급했다.

 

“쿤데라의 에세이는 『소설의 기술』부터 『배신당한 유언들』, 『커튼』, 『만남』까지 국내에 총 4권이 나와있습니다. 『소설의 기술』 안에 첫 번째로 ‘세르반테스의 절하된 유산’이라는 에세이가 있는데 여기에 쿤데라가 소설가로서 소설 장르의 역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고대문학은 운문부터 시작됐고 그것을 배경으로 산문문학이 진화하게 됩니다. 산문문학의 한 갈래로서 소설은, 엄밀히 정의하자면 세르반테스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르반테스가 근대소설의 효시라고 불리는 이유는 그가 중세의 ‘로망스’ 시대를 끝냈기 때문입니다. 쿤데라 자신이 세르반테스와 함께 소설의 아버지라며 높게 평가하는 또 한 명의 작가는 프랑스 중세 말의 작가 라블레입니다. 라블레가 문학에서 보여주는 소설적 인간관이 있는데, 그는 형이하학적인 인간의 예를 보여줍니다. 인간은 먹고 싸는 존재라는 것이 라블레가 내리는 인간의 정의인데, 쿤데라는 이것을 아주 좋아합니다.”

 

쿤데라 문학의 중심 키워드 중 하나로 저속한 예술이나 그러한 취향을 일컫는 말인 ‘키치’를 들 수 있다. 쿤데라는 그 의미를 상당히 확장시켜, 키치는 그의 소설 미학의 키워드로까지 나아간다.

 

“쿤데라 식의 유머는 고상한 의미의 기저에 있는 저급한 것과 형이하학적인 것, 이 두 가지를 다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배제하는 일을 쿤데라는 혐오합니다. 키치란 인간 존재의 본질에서 똥을 저속하다고 여기고 배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쿤데라는 그러한 허위 의식이 어떻게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귀결되는가를 즐겨 다룹니다. 이러한 것이 철학적 이해와 다른, 인간에 대한 소설적 이해입니다. 철학에서 먹고 싸는 인간은 빠져있습니다. 소설이 철학보다 똑똑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면 이것들을 포함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우거나 은폐하지 않고 다 다루는 것이 소설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평소 쿤데라는 체코라는 국적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지 않았고, 그래서 스스로를 보헤미안이라고 불러왔다. 그는 소설만이 자신의 유일한 집착 대상이라고 얘기한 바 있다. 자신은 소설가 이외에 다른 어떤 소속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쿤데라는 자신의 에세이를 통해 소설적 ‘인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설은 독자에게 어떤 앎과 진리를 제공해주고, 그렇기 때문에 소설이 가치를 지닌다는 것이다.

 

“인식은 보증된 앎입니다. 왜 재미없는 소설까지도 읽을 가치가 있는가. 보통 사람들은 소설을 무언가 알기 위해서 읽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쿤데라는 소설만이 제공할 수 있는 인식을 소설이 우리에게 던져준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소설이 인간의 실존에 대해서 가장 잘 알려준다고 말했습니다. 즉 소설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알려주기 때문에, 재미 삼아 읽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기 어렵더라도 참고 읽어야 한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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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뿐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다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안에는, ‘영원회귀 사상’이 나타난다. 우리가 이미 겪었던 일이 어느 날 그대로 반복된다면? 그리고 그 반복 역시 무한히 반복된다면? 이현우는 쿤데라가 영원회귀를 어떻게 다루는지 보기 전에 먼저 니체의 영원회귀에 대해 다룰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니체가 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총 4부로 되어있는데 그 중에서도 영원회귀는 뒷부분에 나옵니다. 니체는 먼저 초인에 대해서 말하고, 중간 부분에서 영원회귀에 대한 내용을 이야기합니다. 초인은 다른 말로 주인, 즉 자신이 결정하고 지배하는 사람입니다. 영원회귀는 똑같은 것이 반복되는 것인데 니체를 연구하는 학자들 가운데 일부는 이것을 무시합니다. 말이 안 된다는 이유로 니체의 핵심사상에서 배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니체는 영원회귀에 대해 말하면서, 시간은 무한하고 이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유한하다고 생각했기 무한한 시간의 지평 속에서 이 세계가 언젠가는 반복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것을 대단한 발견이라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놀라워합니다. 영원회귀는 자기 의지와 관계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초인과 상충합니다. 주권성과 자연세계의 인과원리가 서로 충돌하는 것이죠. 니체는 주인인 내가 정해진 운명을 원하고 긍정한다고 말하면서 양립할 수 없는 둘의 충돌을 해소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니체의 최종 철학이 ‘운명애’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회귀를 통해 삶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영원회귀가 허구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갖는 의의는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영원회귀가 왜 나왔는지를 생각해보면, 삶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계속 반복되어야 하고 일회적인 삶이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보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돌이켜보면 정말 한 순간인데, 한번 지나가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죠. 바로 영원회귀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준 것입니다. 영원회귀라는 말이 등장하자마자 우리의 삶은 왜소해지면서 우리는 그것을 성찰의 대상으로 삼는 것입니다. 쿤데라는 일회적인 삶의 무게를 재보고자 했고, 그것을 영혼과 육체, 무거움과 가벼움으로 연관시켜 말합니다.”

 

 

무거움과 가벼움,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쿤데라가 보기에 영원회귀 사상이 역으로 주장하는 바는, 한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삶이란 그림자에 불과하며 아무런 무게도 갖지 않는 무의미한 삶이라는 것이었다. 쿤레라는 독자들에게 묻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무거움인가, 아니면 가벼움인가. 이현우는 소설 속의 구성 방식이나 주제 배치 등을 통해 쿤데라가 암시하고 있는 일종의 답안이 있다고 말했다.

 

“소설의 주인공인 토마시가 수많은 여자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은 가벼움에 속합니다. 반대로 한 여자와 오래 사는 것은 무거움에 속합니다. 쿤데라는 토마시가 처해있는 상황을 통해서, 이 주제를 놓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그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보여줍니다. 독자로 하여금 학습할 수 있게 하는 것이죠. 이 작품에서 결국 토마시가 가벼움에 속하는지 무거움에 속하는지 구별하는 것은 약간 애매합니다. 그것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쿤데라의 선택이기도 합니다. 쿤데라는 중간적인 것을 선택하는데 이러한 선택은 작품의 구성 상에서 두 주인공을 구제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이미 두 주인공이 죽었다는 이야기가 작품 앞부분에 나오기 때문에 독자들은 이미 그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있습니다. 대신 작품의 결말은 가장 행복한 한 때를 보내고 있는 토마시와 테레자를 보여주는 시점에서 끝이 납니다. 즉, 작가는 이들의 삶을 구제한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죽은 것으로 소설이 끝나면 순차적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니까 조금 더 현실적이겠지만, 이 소설의 결말은 쿤데라의 트릭인 것입니다.”

 

그들의 죽음은 사실 가벼웠지만, 쿤데라는 그들이 행복했던 시점에서 소설을 마무리하면서 일시적으로 그 가벼움에서 조금 벗어나게 한다. 가벼움에 무게를 부여하는 것. 이것이 쿤데라의 선택이었다. 단지 배치만 바꿨을 뿐인데 그들의 삶은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에서 의미를 갖게 된다.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의 진동. 오직 한 번뿐인 삶을 살 수 있다면 어느 쪽이 옳은 것인가? 둘 중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에 대한 가치판단은 우리의 몫이 아니며 바로 그것이 영원회귀 사상이 던져주는 메시지라는 말을 전하면서, 밀란 쿤데라와의 유익했던 만남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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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저/이재룡 역 | 민음사
체코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밀란 쿤데라의 대표적인 장편소설로, 다양한 지적영역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우연히 서로 만났다가 사고로 함께 죽는 테레사와 토마스. 그들의 운명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결정들과 우연한 사건들과 어쩌다가 받아들이게 된 구속들의 축적이 낳은 산물에 불과하지만 죽음을 향한 그 꼬불꼬불한 길,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의 완만한 상호간의 파괴는 영원한 애매함을 드러내 보이려는 듯 어떤 내면의 평화를 다시 찾는 길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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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쿤데라 #고전 #세계문학
2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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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ineo

2015.05.14

한번 참석해 보고싶은 깊은 자리일것 같습니다. 기사를 읽는 것만으로도 그자리에 있는듯하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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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개비

2015.04.30

유익한 만남에 함께 한 것 같네요. 꼼꼼하고 깔끔한 기사로 유익한 자리에 함께 할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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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예원

재미있는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책과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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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

1929년 체코의 브륀에서 야나체크 음악원 교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밀란 쿤데라는 그 음악원에서 작곡을 공부하고 프라하의 예술아카데미 AMU에서 시나리오 작가와 영화감독 수업을 받았다. 1963년 이래 「프라하의 봄」이 외부의 억압으로 좌절될 때까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운동'을 주도했으며, 1968년 모든 공직에서 해직당하고 저서가 압수되는 수모를 겪었다. 『농담』과 『우스운 사랑』 2권만이 쿤데라가 고국 체코에서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농담 La Plaisanterie』이 불역되는 즉시 프랑스에서도 명작가가 되다. 그 불역판 서문에서 아라공은 "금세기 최대의 소설가들 중 한 사람으로 소설이 빵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임을 증명해주는 소설가"라고 격찬한바 있다. 2차대전 후 그는 대학생, 노동자, 바의 피아니스트(그의 아버지는 이미 유명한 피아니스트였다)를 거쳐 문학과 영화에 몰두했다. 그는 시와 극작품들을 썼고 프라하의 고등 영화연구원에서 가르쳤다. 밀로스 포만(Milos Forman), 그리고 장차 체코의 누벨 바그계 영화인들이 될 사람들은 두루 그의 제자들이었다. 소련 침공과 '프라하의 봄' 무렵의 숙청으로 인하여 그의 처지는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의 책들은 도서관에서 제거되었고 그 자신은 글쓰는 것도 가르치는 것도 금지되는 역경을 만났다. 1975년 그가 체코를 떠나 프랑스로 왔을 때 "프라하에서 서양은 그들 스스로가 파괴되는 광경을 목도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1975년 프랑스로 이주한 후 르네 대학에서 비교문학을 강의하다가 1980년에 파리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의 유명한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작가는 어떤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테레사와 토마스는 우연히 서로 만났다가 사고로 함께 죽는다. 그들의 운명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결정들과 우연한 사건들과 어쩌다가 받아들이게 된 구속들의 축적이 낳은 산물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죽음을 향한 그 꼬불꼬불한 길,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의 완만한 상호간의 파괴는 영원한 애매함을 드러내 보이려는 듯 어떤 내면의 평화를 다시 찾는 길이기도 하다. 그 배경에는 60년대 체코와 70년대 유럽을 뒤흔들어놓은 시련이 깔려 있다. 지금은 멀어져버린 체코이지만 쿤데라의 작품 한복판에 주인공인 양 요지부동으로 박혀 있는 체코, 실제로 존재하는 나라라기보다는 신화적이고 보다 보편적인 나라, 유적과 멀리 떨어져 있는 거리 때문에 오히려 더욱 그 본질이 더 잘 보이는 듯한 그 나라. 변함 없는 성실성과 배반, 현실과 꿈,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찢겨진 존재들의 복합성, 그리고 또한 둘로 쪼개진 세계와 유럽의 드라마와 작가의 근원적 정신질환의 원인은 체코에 있었다. 밀란 쿤데라는 프랑스로 망명 후 소설가로서의 성공에 대해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변화가 너무나 급작스러웠던 게 사실입니다. 1968년까지 나는 체코 국내의 소설가였을 뿐 아무것도 외국어로 번역된 것이 없었으니까요. 그 뒤에 작품들이 더러 번역이 되긴 했습니다만 체코 안에서 작가로서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지요. 그래서 나는 프랑스를 작가로서의 조국으로 선택한 겁니다. 내 책들이 먼저 나온 곳은 파리였고 나로서는 그 상징적 의미를 매우 귀중하게 여기고 있어요." 밀란 쿤데라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에 대한 개념이다. 지혜의 그물망이 촘촘하게 얽혀 있는 그의 작품으로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농담』『생은 다른 곳에』『불멸』『사유하는 존재의 아름다움』『이별』『느림』『정체성』『향수』 등이 있다. 그의 작품들은 거의 모두가 탁월한 문학적 깊이를 인정받아서 메디치 상, 클레멘트 루케 상, 유로파 상, 체코 작가 상, 컴먼웰스 상, LA타임즈 소설상 등을 받았다. 미국 미시건 대학은 그의 문학적 공로를 높이 평가하면서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1978년에 출간된 『이별』은 유럽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이탈리아 문학상 프레미오 레테라리오 몬델로 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이별』은 현대의 살아있는 신화라고 할 수 있다. 시간과 공간 속에 놓인 우리의 삶을 마치 모자이크처럼 정교하게 수놓으면서 사랑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시인, 소설가, 희곡작가, 평론가, 번역가 등의 거의 모든 문학장르에서 다양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으며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작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다. 이외에도 『향수』와 오늘날 현대 소설이 지닌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의의를 쿤데라만의 날카로운 시각과 풍부한 지식, 문학에 대한 끝없는 열정으로 풀어 낸 에세이집 『커튼』등 다수가 있다. 국내외 많은 독자를 거느린 세계적 작가 밀라 쿤데라는 2023년 7월 12일 향년 94세로 별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