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인기 있는 카페들을 소개하는 책들이 쏟아져 나온 적이 있다. 그런데 요즘은 퍽 보기 힘들다. 책에 실린 카페들이 하나 둘씩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트렌드에 뒤쳐지면 사라지는 게 카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카페들. 비결은 뭘까?
카페는 책 같은 존재
6년째 서울 마포구 서교동을 지키고 있는 에디토리얼 카페 비플러스. 맞은편에는 출판사 ‘문학과지성사’가 있었는데 이사를 갔고, 곧 문학동네 임프린트에서 독립한 출판사 ‘북하우스’가 들어올 예정이다. 비플러스는 ‘BOOK 플러스 ’의 준말이다. 기자와 저술가, 도서 및 IT 컨텐츠 개발자로 두루 활동해온 김진아 비플러스 대표가 “책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든 카페다.
“처음에는 커뮤니티 공간처럼 시작했어요. 이름도 ‘에디토리얼(editorial)이잖아요. 사무실에 책이 너무 많이 쌓여서 고민을 하던 중에 친구가 사무실을 합쳐서 큰 데로 이사를 가자고 제안을 했어요. 그 때는 카페가 메인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관심사가 음식, 요리, 술이 되면서 책에도 영향을 받고 있어요. 예전에는 주로 인문서를 냈는데, 요즘은 『위스키 대백과』 같은 실용서도 개발해요.”
6년 전만해도 서교동, 합정동 부근에 상가가 많지 않았다. 카페가 이면도로에 있기 때문에 한갓졌는데 최근 홍대 근방에 출판사들이 많아지면서 북카페도 덩달아 늘었다. 비플러스는 오픈 초기 때부터 ‘주간다실, 야간살롱, 상시서점’이라는 콘셉트로 운영되고 있다. 주간에는 커피와 차를 팔고, 야간에는 술을 판다. 책은 늘 볼 수 있다.
“시간대별로 색깔을 다르게 운영하고 있어요. 주로 커피와 차를 마시는 손님들이 많지만 번역자 모임이나 책 출간 기념 저자와의 만남 같은 행사가 열리기도 해요. 카페가 20평이 채 넘지 않아서 테이블 수가 많지 않지만, 단골의 친구가 단골이 되는 경우가 가장 많은 것 같아요.”
비플러스에 들어서면 벽면을 가득 채운 책이 한눈에 보인다. ‘이 달의 신간’ 코너에는 비플러스가 매달 선정한 좋은 책을 소개하고, 비플러스 직원들이 재밌게 읽은 책들을 눈에 띄게 비치해놓았다. 북카페의 책들이 인테리어 소품이 된다면 무의미하다. 다행히 비플러스 책장 안의 책들은 손때가 많이 묻어 있다.
“책을 꺼내서 읽는 분들이 꽤 많아요.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보는 경우보다는 자료가 필요할 때 오셔서 읽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처음 카페에 오셨을 때는 어떤 책이 있나 쭉 둘러보시고, 두 세 번 오셨을 때 책을 꺼내서 읽으시더라고요. 책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이 오시기 때문에 저희도 예민하게 책을 선정하려고 해요. 이상한 책은 안 꽂아요. 좋은 책, 보여줄 만한 책을 꽂죠. 몇 천 권 정도 되는 것 같은데, 카페 사무실 안쪽에는 이만큼의 책이 더 있어요.”
최근 에디토리얼 카페 비플러스는 8페이지짜리 타블로이드판 매거진을 만들었다. 직원들이 글부터 사진, 편집, 디자인까지 모두 맡아 비플러스에서 판매하는 여러 가지 맥주 이야기를 담았다. 카페를 단순히 음료만 파는 공간으로 여기지 않고, 새로운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곳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에는 ‘북플 책플리마켓’을 열기도 했다. 집에서 잠자고 있는 책을 새 주인에게 찾아주는 행사였다.
“카페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가 카페의 내용과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해요. 직원들에게 우리가 만드는 음식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최대한 공부를 많이 하게 유도해요. 공부한 내용들이 비플러스 메뉴에 반영되도록 하고요. 카페는 책 같은 존재라고 생각해요. 책을 통해서 얻는 교양, 재미와 마찬가지로 카페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대화나 내용들이 우리 영혼에게 주는 영향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카페를 점점 책을 만드는 느낌으로 대하게 되는 것 같아요.”
비플러스는 회원제를 운영한다. 회원으로 가입하면, 구매액의 일정액이 마일리지로 쌓인다. 현재까지 회원이 약 2천여 명이다. 회원 신청서에는 ‘최근에 구입한 책 3권’을 적는 칸이 있다. 비플러스 직원들은 새로 가입하는 회원들의 얼굴을 익히려고 이름을 외운다.
김진아 에디토리얼 카페 비플러스 대표
카페로 승부를 걸었다
김진아 비플러스 대표는 “카페로 승부를 했기 때문”에 북카페로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화려한 인테리어나 지인 장사, 좋은 입지로 승부를 걸었다면 진작에 사라졌을지 모른다. 특히 서교동은 매일매일 카페가 생기고 사라지는 동네다.
“좋은 음식을 팔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지금도 직원들이 메뉴 개발을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고요. 비플러스의 메뉴 70% 이상이 크리에이티브한 메뉴에요. 사실 처음에는 카페가 이렇게 힘든 일인지 몰랐어요. 책을 공유할 공간이 필요해서 카페를 열었던 건데, 열고 보니 카페가 전문직이더라고요. 카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때까지 3년이 걸렸어요. 좋은 직원들을 만나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비플러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우유 얼음과 커피 얼음을 반반씩 넣은 ‘아이스 큐브 라떼’와 시원하고 달콤한 아이스 밀크티 ‘샬롯의 여름’, ‘에밀리의 아침’ 등이다. 계절마다 새로운 메뉴를 개발해 선보이는데, 요즘에는 숙성시킨 레몬과 크림치즈로 굽는 레몬치즈케이크, 초콜릿을 듬뿍 넣어 굽는 브라우니, 리코타치즈, 푸딩 등 디저트 메뉴들도 폭넓게 인기를 모으고 있다. 물론, 모두 직접 만들어내는 음식들이다.
김진아 대표는 ‘손님은 왕’을 외치진 않는다. 그보다 먼저 직원들에게 목표 의식을 심어준다. 김 대표는 “요식업이 발전을 못하는 이유가 매일 똑같은 일을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제가 직원이라도 새로운 메뉴라도 배울 수 있는 곳, 자극을 줄 수 있는 곳으로 옮기고 싶을 거예요. 요식업이 갖고 있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직원들에게 새로운 메뉴 혹은 업그레이드 된 카페의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요구해요. 넉넉한 회사가 아니라 직원들이 기획하는 모든 걸 구현할 수 있게 지원하진 못하지만, 이 공간에 대한 책임과 권리를 함께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 대표로서의 소망이자 목표에요."
카페 직원들이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으면 손님은 덩달아 행복해진다. 공간이 주는 힘이다. 책을 보러 갔다가 괜스레 기분이 좋아져서 나오는 곳, 비플러스. 직원들이 즐거워 보이는 까닭이 카페 주인의 철학에 있었다.
김진아 비플러스 대표가 추천하는 책
위스키 대백과
데이비드 위셔트 저/주영준 역 | 금요일
처음 카페를 시작하고서 가장 뼈저린 깨달음은 '카페는 전문직이다'. 커피에도, 술에도, 그 물성이 만들어진 배경과 역사, 과학과 미학, 사회적 경향에 이르기까지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특히 '양주는 비싼 술, 그래서 우리는 소주를 마시지' 식의 음주문화권에서 살아온 내게, 위스키의 향미와 종류는 어떻게 변별되며 그것이 서양 사회와 역사를 어떻게 반영하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은 충격적이었다. 그 덕분에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게 된 이 책, 지금 대한민국 사회에서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싱글몰트위스키 교과서다.
접속 1990
김형민 저 | 한겨레출판
느끼는 감정은 비슷해도, 그걸 설명해내는 방대한 지식과 글 솜씨는 격이 달라서 그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게 되는 저력의 필자, 김형민. 역사와 다양한 사회 문제를 자유자재로 넘나들어 온 그가 1990년 한국 사회의 풍경을 생생하게 그려낸 『접속 1990』. 요즘 젊은이들은 물론이고, 선배 세대들에게마저 1990년대는 (TV 덕분인지) 꽤 로맨틱한 기억으로 채색된 듯한데, 그 내면의 속살은 또 얼마나 재미진지 한번 만나보시라.
아무래도 싫은 사람
마스다 미리 글,그림/박정임 역 | 이봄
긴 시간을 내기 어려울 때는 만화책 한 권이 꽤 요긴한 독서거리가 되고는 하는데, 좋아하는 작가로야 우라사와 나오키나 아다치 미츠루나 윤태호나 김규삼이나 뭐 셀 수도 없이 많지만, 요즘 누가 추천을 부탁해오면 마스다 미리의 『아무래도 싫은 사람』을 내미는 경우가 많아졌다. 우리를 정말 괴롭히는 작고 사소한 문제들을, 극적으로 과장하는 대신 천천히 한마디씩 풀어내는 마스다 미리의 화법은 그 자체로도 마음을 정화해주는 느낌인 데다가, 사회생활에 닳아버린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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