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음의 공포에 삶의 욕구로 반응했습니다.
삶의 욕구는 낱말의 욕구였습니다.
오직 낱말의 소용돌이만이 내 상태를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낱말의 소용돌이는 입으로 말할 수 없는 것을 글로 표현해냈습니다.”
―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문
헤르타 뮐러는 “응축된 시정과 산문의 진솔함으로 소외계층의 풍경을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200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독일어권 문학에서 주변부를 차지하는 소수자이자 동구권에서 망명한 작가로서, 적통의 독일작가는 아니지만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고 독일에서 활발하게 논의되는 작가이다. 그녀는 떠나온 조국 루마니아의 독재체제와 독재의 폭압에 상처를 입고 신음하는 사람들, 체제를 이루려는 사람들의 경직성에 대해 여과 없이 그려냄으로써 개인과 사회, 사회와 국가 체제 사이에 놓인 긴장의 역학 관계를 뚜렷이 형상화한 작가로 평가 받는다.
1953년 8월, 헤르타 뮐러는 독일어를 모국어로 쓰며 독일의 전통과 문화를 유지하고 있는 루마니아 바나트 지역 니츠키도르프에서 태어났다. 티미쇼아라대학에서 독일, 루마니아 문학을 공부했으며, 대학시절부터 목가풍의 사랑이나 자연의 신비를 노래한 시를 썼다. 졸업 후에는 1977년부터 1979년까지 기계공장의 번역가로 일했는데, 차우세스쿠 독재정권 치하에서 비밀경찰의 끄나풀이 되어달라는 요구를 거부해 해고됐다. 해직 후 표현의 자유를 추구하는 루마니아 독일계 작가들의 단체에 참여하다가 전업작가로 등단했으며, 1982년 온갖 방해와 검열을 겪으면서 15개의 짧은 이야기로 구성된 첫 연작소설 『저지대』를 선보인다. 이 작품은 아이의 시선을 통해 분석적이고 환상적인 언어로 소수계 독일 민족이 살아가는 시골마을의 숨막힘, 유년시절의 공포를 그려냈다.
하지만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루마니아 독재를 비판하는 발언을 한 뒤에는 루마니아에서 출판활동을 금지 당했고, 87년 마침내 독일로 망명했다. 독일로 떠나기 위해 허가를 기다리는 동안 쓴 작품 『여권』에서는 자신의 실제 경험에 비추어 출국허가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기다림의 연속으로 고통 받는 망명 대기자들의 내면 풍경을 세밀하게 그려냈다. 망명 후 베를린에 거주하면서는 계속해서 고향 바나트 지역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소수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한 채 독재를 비판하는 작품을 써왔다.
주요 작품으로는 루마니아 비밀 경찰의 숨막히는 억압과 이로 인한 언어상실의 두려움을 그린 『악마는 거울 안에 있다』(1991), 독재정권 정보부의 감시 하에 있던 여교수를 등장시켜 독재 치하의 공포를 그려낸 『그 여우는 당시 이미 사냥꾼이었다』(1992), 차우세스쿠 독재체제에 살았던 다섯 명의 젊은 루마니아 이야기로 독일 내 여러 문학상을 휩쓴 대표작 『초록 자두의 땅』(1994), 우크라이나 강제노역장으로 이송된 17살짜리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숨그네』(2009)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 등이 있다.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던 민간인들이 유배되었기 때문에, 나는 집단적 죄과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 시기에 민간인들이 차출되었고, 아주 나이 어린 사람들, 자기 손으로 아무런 죄를 짓지 않은 열일곱 살짜리도 포함되었다. 나치 독일의 범죄가 없었다면 유배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언제나 염두에 두어야 할 요소다. 그런 일이 맑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경우는 없으니까.” - 헤르타 뮐러 (노벨 재단 인터뷰 中)
『마음짐승』,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에서 그려진 세계는 우리에게도 너무나 친숙하다. 모든 독재자들은 그들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거의 같은 도구를 사용한다. 그 독재자가 유럽 출신이든 아시아 출신이든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출신이든 그리고 그들의 이데올로기가 무엇이든 간에 그들이 사용하는 도구는 같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고통 역시 같다. - 허수경(시인)
헤르타 뮐러 대표작
저지대
헤르타 뮐러 저/김인순 역 | 문학동네
헤르타 뮐러의 데뷔작으로, 작가 자신이 나고 자란 루마니아 바나트의 시골 정경을 몽환적이고 초현실적인 이미지에 담아낸 소설집이다. 1982년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의 크리테리온 출판사에서 처음으로 출간되어 헤르타 뮐러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지만, 총 열아홉 편이 실린 원래의 온전한 모습으로 세상의 빛을 보기까지는 삼십여 년의 지난한 세월을 겪어야 했다. 「저지대」는 어린 소녀를 일인칭 화자로 내세워 시골 마을의 풍경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답답하고 경직된 일상을 묘사한다.
숨그네
헤르타 뮐러 저/박경희 역 | 문학동네
2차대전 후 루마니아에서 소련 강제수용소로 이송된 열일곱 살 독일 소년의 삶을 충격적이고 강렬한 시적 언어로 밀도 있고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인간의 숨이 삶과 죽음 사이에서 그네처럼 가쁘게 흔들리는 것을 상징하는 『숨그네』는 철저히 비인간화한 상황 속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인간 삶의 한 현장을 섬뜩하면서도 아름답게 포착해낸다. 루마니아 독재 치하에서 비밀경찰에 협조를 거부하며 독일로 망명한 헤르타 뮐러가, 자신처럼 망명한 시인이자 실제 수용소 생존자인 오스카 파스티오르의 구술을 토대로 작품을 썼다.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문학적 증인”이라는 찬사를 받은 헤르타 뮐러의 2009년 대표작이다.
마음짐승
헤르타 뮐러 저/박경희 역 | 문학동네
함께 전후 전체주의의 공포를 생생히 묘사한 소설로 작가의 개인사가 고스란히 반영된 작품이다. 차우셰스쿠 지배하의 루마니아를 벗어나는 데 성공한 주인공 '나'와 에드가가 떠나온 고향이 담긴 사진들을 바라보며 기억을 더듬는 장면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숨그네』와 『저지대』를 읽은 독자들이라면 짐작할 수 있듯 ‘마음짐승’이라는 제목은 작가의 조어이다. 어릴 적에 할머니에게서 들었던 자장가에서 착안한 이 제목은 내일을 알 수 없는 삶 속에서 거대하고 흉물스런 발톱을 세우며 불안해하는 자아의 그림자이자 상처 입고 그늘진 초상의 다른 이름이다.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
헤르타 뮐러 저/김인순 역 | 문학동네
헤르타 뮐러가 루마니아에서 독일로 망명하기 일 년 전인 1986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당시 독재정권의 공포에 시달리며 서구세계로의 이주를 기다리던 독일 소수민들의 내면풍경을 압축적으로 그려낸 장편소설이다. 차우셰스쿠 독재정권이 독일 소수민에 대한 탄압의 강도를 높여가던 시기를 배경으로 인간으로서의 품위와 상식, 도덕과 정의 대신 탐욕과 뇌물, 술수와 불법이 판을 치고 갖은 뒷거래가 횡행하는 당시 상황을 촘촘하게 담아냈다.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
헤르타 뮐러 저/윤시향 역 | 문학동네
예리한 현실감각과 풍자적인 사회비판, 전체주의에 대한 거센 저항의 의지를 담은 헤르타 뮐러 의 장편소설이다. 작가는 스파이 역할에 대한 비밀경찰의 제의를 거절했다가 온갖 고초와 수모를 겪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전체주의라는 이데올로기 속에서 운명을 빼앗기고 꿈속까지 파괴된 사람들의 암울한 초상화를 그려 보인다. 루마니아 차우셰스쿠 독재정권-공포와 핍박으로 가득 찬 '잿빛의 시대'를 섬세하게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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