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광복 70주년을 맞아 무대에서도 우리 역사를 다룬 작품들이 잇따라 공연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한 작품이 바로 극단 관악극회의 제4회 정기공연 <헤이그 1907>인데요. 우리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웠던 1905년 을사늑약 체결부터 이 부당함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1907년 헤이그에서 열린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특사가 파견돼 활약하기까지의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기자는 당시 헤이그 특사로 파견된 이준, 이상설, 이위종 열사 가운데 극중 이위종 선생 역을 맡은 박재민 씨를 인터뷰하기 위해 서울 대학로 동양예술극장을 찾았는데요. 세련된 연출과 간결하면서도 상징적인 연기, 절망스러운 분위기 속에서도 곳곳에 배치된 위트에 일단 놀랐습니다. 그리고 역사 속의 이위종 선생만큼이나 무대 위 박재민이라는 배우도 낯설다는 생각에 당혹스러웠는데요. 무대 위 이위종 선생 모습 그대로인 박재민 씨를 직접 만나봤습니다.
“저희 배우들도 이번에 준비하면서 보니까 모르는 게 너무 많더라고요. 이준 열사는 많이들 알고 계신 것처럼 우리나라 최초의 법관이고 헤이그에서 순국하셨죠. 이상설 선생이 특사단의 단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천재로 불리더라고요. 우리나라 최초의 교과서를 만들기도 했고요. 이위종 선생은 조선에서 태어나 지금으로 치자면 외교관인 아버지 이범진 선생을 따라 프랑스, 영국, 미국, 러시아 등에서 자랐기 때문에 조선 2천만 국민 중에 유일하게 외국어에 능통한 사람이었다고 해요. 사실 어려서부터 외국에서 자랐으면 조국을 생각하는 마음이 그렇게 크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이범진 선생의 가르침이 컸기 때문에 목숨을 내걸고 독립운동에 매진하지 않았나. 굉장히 멋진 세 분의 조합이었죠.”
연극을 보고 있자니 선조들이 겪은 치욕에 울분과 설움이 느껴지면서 동시에 역사를 너무 모른다는 생각에 부끄러웠습니다. 그런데 박재민 씨는 출생지가 미국인데 이런 감정이 느껴졌을까 궁금하더군요.
“이위종 선생이 여섯 살에 조선을 떠나셨다고 하는데, 저는 여섯 살에 한국에 들어왔어요. 미국에서 태어나서 영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하고 자주 드나들면서 좋은 추억이 많지만, 저는 한국 사람이라는 생각이 굉장히 강해요. 처음 한국에 들어올 때는 코리아가 어디에 있는지 몰랐어요. 유치원 선생님이 지구본에서 찾아주시는데 너무 작은 거예요. 주위 사람들도 한국을 모르고, 자긍심을 느끼지 못한 상태에서 10대를 보냈는데, 성인이 되면서 한국 역사를 배우고 직접 탐방을 다니면서 선조들의 발자취가 와 닿더라고요. 특히 2002년 월드컵 때 대한민국에 대한 갈증이 많이들 풀렸잖아요. 태극기를 들고 다니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게 됐고, 오히려 더 열심히 한국사를 공부한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작품도 더 공감이 가요.”
최근 기사를 보니까 이위종 선생의 후손 세 분이 한국 국적을 취득했더라고요.
“네, 굉장히 반가우면서도 마음이 아팠어요. 이위종 선생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도 불명확하거든요. 돌아가신 날짜가 100년도 안 됐는데 그런 역사가 보존되지 않는다는 게 마음 아프죠. 그리고 이위종 선생은 저와는 반대잖아요. 조선에서 태어났을 뿐 어려서부터 해외에서 살았는데, 한번쯤은 ‘조선을 위해서 이렇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지 않았을까요? 만약 미국이 그런 경우라면 제가 미국에서 태어났다고 그렇게까지는 못할 것 같아요. 황제의 명을 받고 그 일에 동참했다는 것만으로도 대대로 존경받을 만하죠.”
<헤이그 1907>은 관악극회 작품이고, 이순재 씨가 예술감독을 맡으셨네요.
“연극에 관심이 있거나 관련 분야에서 종사하시는 분들이 주축이 돼서 만든 극단인데, 서울대 출신만으로 구성되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이순재 선배님은 사실 연출이 아니면 연출에 전혀 개입하지 않으세요. 대신 ‘너희 대사가 이런 시대적인 배경이 있다’면서 예전 상황이나 직접 경험하셨던 것들을 알려주시죠. 선배님과는 5~6개 작품을 같이 했는데, 굉장히 존경해요.”
그런데 박재민 씨는 공연장을 찾는 관객들에게는 익숙지 않은 배우입니다. TV 예능프로그램 출연에 이른바 ‘몸짱’, 비보이 등등 굉장히 다채롭게 활동하고 계신데요.
“직업이 불명확한, 방송인이죠(웃음). 이것저것 많이 했어요. 고등학교 때 비보이 관련 행사 사회를 보면서 데뷔했는데, 2008년에 영화를 찍으면서 연기도 했죠. 그런데 연기에 크게 뜻을 두지는 않았어요. 저는 예능에 관심이 많았고, 대중과 가깝게 호흡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초반에는 더 망가지고 오버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대중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방법 중에 연기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2013년부터는 연기에 전념하고 있어요. 아직 제가 유명한 배우는 아니잖아요. 보통 연극에서 드라마, 영화로 가시는데 저는 거꾸로 영화에서 드라마, 연극으로 다시 뿌리를 다지고 있죠.”
넓고 화려하고 활발하게 활동하다 작은 무대가 갑갑하지는 않나요?
“제 성향에는 맞아요. 매체는 쌍방향 소통이 아니라 일방적이잖아요. 연극을 하면서 가장 좋은 점은 관객들의 숨소리, 핸드폰 소리, 심지어 하품 소리까지 다 들을 수 있다는 거예요. 저는 아직도 2G 휴대전화를 사용해요. 방송하는 사람들은 상대의 눈을 쳐다보면서 대화하는 법을 알고 있는 기능인이라고 생각하는데, 요즘은 다들 스마트폰을 보잖아요. 방송인들도 더 이상 사람의 눈을 보고 대화하지 않아요. 그래서 이런 아날로그적인 무대가 저한테는 맞는 것 같아요.”
최근에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해 기부도 하셨던데요.
“저희는 물건을 생산하지는 않잖아요. ‘나’라는 상품을 팔아서 대중이 낸 돈을 받는 건데, 이 상품에 대해 누가 가격을 책정하는 걸까요? 저는 방송인들이 굉장히 고소득자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필요한 것보다 많이 받은 것은 일정 부분 환원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나름의 철학이 분명한데, 성격은 어떠세요?
“글쎄요, 내향적이에요. 인사는 친숙하게 하지만 쉽게 친해지지는 않고, 연예인 친구도 많지 않아요. 그리고 굉장히 보수적이고 가리는 것도 많아요. 소개팅, 미팅은 한 번도 안 해봤고, 담배도 안 피워봤고, 클럽도 안 가봤어요(웃음).”
연극무대에 선다는 것 자체가 연기에 욕심이 있다는 얘기일 텐데, 앞으로 대중과 교감하면서 감동을 줄 수 있는 일, 좀 더 명확한 지향점이 생겼을까요?
“멀리 내다보지는 않았지만, 일단 배우의 길을 걷고 싶어요. 곧 TV 시트콤에 들어가고, 소속사와 계약도 할 것 같은데 그러면 당분간은 매체 연기에 집중하지 않을까. 그런데 장기적으로는 배우라는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감동을 줄 수 있는 방송인이 되고 싶어요. 연기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활동, 예능, 일상적인 모습에서도요.”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30대 중반으로 접어들고 있는데,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요?
“저는 인생이 ‘추억 만들기’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너무 힘들지만 언젠가 뒤돌아봤을 때 재밌다고 생각되는 건 다 하거든요. 30대에는 더 많은 추억을 만들고 싶고, 궁극의 행복은 멋진 가장이 되는 거예요. 예전에 사실무근의 결혼기사가 터져서 저를 유부남으로 아는데(웃음), 좋은 사람 만나서 멋진 가정을 꾸리고 싶어요.”
무대 위에서 흘러간 역사는 되새김의 시간을 갖습니다. 역사 속의 인물들도 지금의 시점에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새 생명을 얻죠. 잊힌 이준 열사를 다시 떠올리게 하고,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이상설, 이위종 열사를 재조명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들 역시 또 다른 생명을 얻게 되는데요. NG도, 편집도 없는 아날로그 자체의 무대 위에서 배우 본연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으니까요. 연극 <헤이그 1907>을 통해 박재민 씨를 만난 관객들 역시 TV로 봐왔던 무언가 화려하고 떠들썩한 방송인이 아니라 끊임없이 세계의 문을 두드리며 대한제국의 독립을 외쳤던 이위종 열사로 분한 새로운 배우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세련된 연출과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이는 연극 <헤이그 1907>은 9월 6일까지 대학로 동양예술극장 2관에서 공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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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