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창비와 예스24가 매달 두 명의 시인과 함께 하는 ‘詩詩한 시인들의 詩詩한 이야기’ 행사, 9월의 詩詩한 시인은 시집을 비롯 동화책, 동시집 등 다방면의 책들을 출간한 시인 이정록이었다. 알려진 대로 이정록 시인은 현직교사다. 그의 이야기는 그에 딱 어울리는 만큼 힘이 있고, 흥미로웠다. 이정록 시인은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되기 전, 어머니에 관한 일화를 들려주며 독자들의 기다림을 달랬다.
시골에 계신 어머니의 전기세를 내는 시인은 전기세로 어머니의 생활을 엿본다. 몸이 안 좋으시면 전기세가 많이 나간다. 밤에 TV 켜놓고 주무시고, 잠이 안 오니까 불 켜놓고 무언가 하시는 게다. 편안하시면 일찍 불 끄고 주무시니 전기세가 적게 나온다. “고향집 전기가 어머니의 무릎, 신경통의 통점을 밝히기 위해 쓰였다”는 것이다. 시인의 말은 그 자체로 시가 되는 듯했다.
지난 9월 10일 홍대 D.play 카페에서 있던 시시한 시읽기 이정록 시인과의 만남은 유병록 시인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이정록 시인은 먼저 “추석 명절이 끝나면 아이들의 주머니에 있는 용돈을 빨아들여보자”는 마음으로 동화책을 출간할 예정이라는 말로 웃으며 근황을 전했다.
시인은 전방위로 활동한다. 시집 외에 동시집, 그림책, 동화책부터 최근 청소년시집까지 꾸준히 발표했다. 교사로도 오래 활동한 시인에 대해 “참 부지런하시다”고 말한 유병록 시인이 물었다. 그런 에너지가 어디서 나올까?
“왜 이렇게 됐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가만히 되돌아보면, 좋아서 한 것 같아요. 한문 교사기 때문에 작품 활동에 부담이 없죠. 그냥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했어요. 미리 글을 써놓은 편인데요. 『의자』라는 시집을 낼 때도 마지막까지 좋은 시 서너 편은 남겨놓고, 이런 식이에요. 동화나 동시도 누가 써달라는 게 아니니까요. 즐거워서, 좋아서, 재미있어서 하는 일이어서 그런 것 같아요.”
학교에서 시인을 가장 많이 보는 사람은 수위 아저씨라고 했다. 주말에도 학교에 가서 글을 쓰기 때문이다. 자신을 “천하의 놀쇠”라고 표현하면서 “잠시라도 즐겁지 않으면 하루가 불행한 것 같”다며 “매일, 즐기면서 하는 것이 제 에너지의 근원”이라고 설명했다.
고향이 준 선물
첫 시집 『벌레의 집은 아늑하다』에는 시인의 고향 충남 홍성에 있는 ‘황새울’이라는 곳이 등장한다. 시인에게 고향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곳은 어떤 곳인지 물었다.
“누구나 고향에 대한 자긍심, 콤플렉스가 있을 것 같아요. 남들도 다 그런 줄 알았는데, 중학교 2학년 때 전기가 들어왔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매우 귀중한 자산이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합니다. 어렸을 때 본 만화, TV에 대해 얘기하면 저는 할 말이 없어요. 한편으로 그랬기 때문에 초등학교 6년, 중학교 2년은 완전히 전기 없는 세상에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작은 인디언의 숲 속에 살았던 거죠. 자전거도 만들어서 탔으니까요. 또 각종 새의 맛을 다 압니다. 다 먹어봤습니다. 책으로 보는 자연물이 아니라 실제 부딪쳐서 몸에 육화된 사물들, 자연물들, 추억들을 갖게 된 것은 고향이 준 매우 좋은 선물인 것 같아요.”
한편 고향은 무겁다. 덥석 들어가지지 않는다. “근원적 고통을 만들어준” 곳이기 때문이다. 친지들의 죽음을 본 곳, 아버지의 약봉지를 십 년 넘게 나르던 곳, 듣지 말아야 할 욕까지도 모두 들었던 곳이 고향이다. 시인은 이런 고향 ‘황새울’을 제목으로 한 연작시를 썼다. 이에 관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연작시가 모두 스물세 편인데요. 번호 없이 한 이유가 있어요. 그 동네가 스물세 가구였어요. 어느 집 이야기를 더 높고, 빠르고, 좋게 할 수가 없어 번호를 안 달았어요. 번호를 달다보니 정일이 아저씨는 들어가는데 두현이 아저씨는 안 들어갔다, 이래요. 그래서 제목을 다 없애버리고 공평하게, 동등한 위치를 갖게 하려고 ‘황새울’이라고만 했어요.”
호텔도 아니고 여관도 아니고
주머니 탈탈 털어 여인숙에 들었을 때,
거기서 내가 솜털 푸른
네 콩 꼬투리를 까먹고 싶어
태초처럼 마음 쿵쿵거릴 때,
슬프게도 나는 농사를 생각했다
묻지도 않았는데, 어머니와 함께
농사짓지는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제 잠 좀 자자고 옆방에서 벽을 찰 때에도
나는 농사가 싫다고 말했다
네가 꼬투리를 붉게 여미고 살풋 잠이 들었을 때에도
밭두둑 콩처럼 살기는 싫다고
슬픈 억척이 싫다고 나는 말했다
(『의자』수록 「여인숙에서의 약속」 일부)
시집 『의자』에 수록된 시 「여인숙에서의 약속」을 낭독한 시인은 “이 시는 여기 나온 그대로입니다. 제가 열여덟 살에 아내를 만나 호시탐탐 아내를 노릴 때, 돈이 없어서 여인숙을 들어가게 됐는데요. 그 여인숙이 베니어합판으로 벽이 되어 있었어요. 그 어떤 짓도 하기 어려운 곳이었죠. 우리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자꾸 벽을 치는 거예요. 그곳에서 손만 꼭 잡고 이 따위 얘기만 하고 끝났습니다.”라며 시에 얽힌 일화를 전해주었다.
가난하고 힘든 어린 시절의 기억. 그것은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시인의 문학 세계에 중요한 자양분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시인은 “시를 쓸 때는 그게 좋은 건지 몰랐”다며 최근 동화책에 쓴 자신의 어린 시절 직접 겪은 에피소드들을 떠올리며 이렇게 소재가 되어주는 추억들에 고마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보다 어른들 독자다 더 많아요. ‘실버문학’입니다.(웃음)”
시인의 어머니, 시인의 삶
어머니가 던진 말 한 마디가 시가 된다고 했던 시인인 만큼 그에게 어머니의 영향 또한 지대할 것이다. 이에 대해 물었다.
“우리 어머니를 화자로 놓고 이 땅의 많은 이야기들을 바꾼 겁니다. ‘이야기가 있는 곳으로 내 귀가 간다’는 말을 드린 적이 있는데요. 글 쓰고자 하는 화두를 본능 앞에 놓고 살게 되면 그런 게 보이는 것 같아요. 글이 있는 곳, 글이 있는 사람, 글이 있는 식당. 누가 봐도 보이겠죠. 「역전 쌀 상회」라는 시가 있습니다. 천안역 바로 옆에 정말 일제강점기 때의 쌀 상회가 있어요. 나무 판 위에 쌀자루가 쌓여 있고, 앞에 있는 은행나무에 구멍 난 리어카가 쇠사슬로 묶여 있어요. 그 은행나무가 다른 은행나무에 비해 크기가 작거든요. 궁금하잖아요. 그러니까 계속 그 앞에서 얼쩡거리고 노는 거예요. 그런 집을 발견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해요. 데리고 가요. 나중에 시를 복사해서 보여줘요. 지금은 ‘보성족발’을 열심히 다닙니다.”
유병록 시인은 “보통 사람에게는 어머니가 한 명인 것도 참 좋은 일인데 시인에게는 여러 명의 어머니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말”라고 감상을 전했다. 시인의 두 번째 낭독시는 바로 「엄니의 화법」이었다.
추석 맞아
장발에 파마하고 고향에 내려갔더니,
너는 농사도 안 짓는 애가
왜 검불은 이고 댕기냐? 하신다
글도 안되고
이러저러 마음 시려서 몇달 만에
머리 깎고 다시 찾았더니,
나라 경제가 어렵다 하드만, 그새
농사채 다 팔아먹었냐? 하신다
(『정말』수록 「엄니의 화법」 일부)
시인의 교사 생활에 대해 궁금증이 일었다. 산문집 『시인의 서랍』에서 시인은 “발품 없는 교육은 가짜다”라고 적은 적도 있다. 그는 어떤 교사인가?
“저는 한때 교사는 학생들과 상담하는 건 줄 알았어요. 그런데 상담을 하고 ‘이게 진짜 네 길이야’라고 해서 끌고 간 아이들이 다 불행해요. 연극반을 9년 했는데요. 그래서 연극영화과 간 아이들이 있어요. 제일 불행해요. 문예반을 또 오래 했어요. 거기 신춘문예 출신도 있긴 해요. 그런데 대부분 아직도 골방에서 글 쓰고 있어요. 교사 생활 30년 됐는데요. 상담하지 않는다, 아이들의 운명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어요. 무엇이 될 것이다, 무엇이 되면 잘될 것이다 라고 하지 않는다고요. 어차피 우리는 다 잘 안 되죠. 또 욕 안 하고, 매 안 들고요. 학교에 잘하는 분들 많이 계시죠. 그게 정말 잘하는 것이냐에 대해서는 회의가 들어요. 옆 반과 비교해서 우리 반이 더 나아야 하고, 다른 교사에 비해서 내가 좋게 비춰져야 하고요. 그것보다 저는 이거 하나는 잘해요. 수업하는 게 즐거워요.”
시인은 교단을 무대로, 학생들을 관객이라고 생각한다. 수업시간 동안 관객들을 감동시키고 그들에게 무엇을 줘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고 시인은 말했다. 또 시인은 “선생님은 수업하고 업무만 없으면 진짜 할 만합니다”라는 뼈있는 농담을 던졌다. 선생이 수업을 싫어하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수업이 얼마나 즐거운지에 대해 말하는 이정록 시인은 천생 선생이자 시인이다.
동시집, 동화는 병원이다
세 번째 낭독시는 동시 「아니다」였다. 이 시는 아이들에게 무척 인기가 많다. 시는 동요로도 만들어져 불리기도 한다. 시인은 “이렇게 자식이나 제자가 코앞에서 말하면 선생님이나 부모님은 기분 나쁘겠지만 일부러 ‘아닙니다’라고 하지 않고 ‘아니다’라고 했어요”라며 당당한 아이들의 목소리를 상상케 했다.
채찍 휘두르라고
말 엉덩이가 포동포동한 게 아니다.
번쩍 잡아채라고
토끼 귀가 쫑긋한 게 아니다.
아니다.
꿀밤 맞으려고
내 머리가 단단한 게 아니다.
(『콧구멍만 바쁘다』수록 「아니다」 전문)
시, 동시를 함께 읽으니 궁금증이 생겼다. 시인은 최근 청소년시까지 쓰기 시작했는데 이것들의 차이는 어떤 것일까? 차이가 있을까?
“차이는 잘 모르겠고요. 쓰는 과정에서의 마음이 있잖아요. 그런 건 확실히 다른 것 같아요. 시집 엮을 때가 어렵고요. 동시집이나 동화는 약국이나 병원 침대에 가까워요. 휴식, 위로, 위무 쪽에 가깝고요. 산문집이나 시집은 교통사고나 상처에 가까워요. 고통의 상처를 헤집어서 진물이나 핏물을 찍어 쓰는 것이 시나 산문이라면 그 상처를 꽃으로, 이슬로, 별빛으로, 순수한 마음으로 위무하고 감싸주는 게 아동문학이고 동시인 것 같아요. 뒤늦게 아동문학을 시작했는데 정말 잘했다고 생각해요.”
시인은 글을 쓰려는 사람들에게 박목월, 정지용, 백석, 한용운 등과 같은 옛날 작가들처럼 시도 쓰고, 동시도 쓰고, 소설, 시나리오 등을 모두 쓰라고 조언했다. “내가 원하는 불교든 민족정신이든 포교를 위해서는 필요하다면 때로 동시를 이용해서, 경전 번역을 이용해서, 시를 이용해서 쓰는 겁니다. 틀만 바뀌지 그 밑의 정신은 같은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두려움 없이 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라며 이야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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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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