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클래식 음악’이라고 할 때, 흔히 바흐(1685~1750), 모차르트(1756~1791), 베토벤(1770~1827)을 떠올린다. 이들을 줄여서 ‘하모베(하이든ㆍ모차르트ㆍ베토벤)’라고 하기도 한다. 그 위로 올라가면 14~16세기 르네상스기의 음악이 있고, 16~18세기에 걸쳐 유럽에 분포했던 다양한 스타일의 바로크음악이 있다. 류트 연주자 고종대는 우리가 모르던 악기와 음악들이 세상에 많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가 연주하는 다양한 류트(lute)류의 악기들만 알아도, 우리는 세상에 수많은 음악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어떤 악기들을 보유하고 있나요?
클래식 기타 두 대, 바로크 기타 한 대, 스페인 민속 음악을 연주할 때 쓰는 플라멩코기타 한 대, 11현 알토기타 한 대, 르네상스류트 두 대, 바로크류트ㆍ테오르베ㆍ아치류트를 각각 한 대씩 갖고 있어요. 다 연주합니다.
어떤 계기로 이 악기들을 접하게 되었나요?
아치 류트나 테오르보가 희귀한 악기다보니 류트나 테오르보 연주자로 많이 알려져 있는 편이에요. 그런데 원래 직업은 클래식 기타리스트입니다. 중학생 시절부터 기타를 배웠어요.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통기타였죠.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클래식 기타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고 동아리에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대학 시절의 동아리 활동으로 쭉 이어진 거고요.
대학교에서는 사회과학을 전공하셨던데요.
기타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동아리 연합회 행사라든지 전공자들이 함께할 기회가 있었는데요, 이를 통하여 여러 선생님께 배울 기회가 있었어요. 사실 그때까지 그다지 잘하는 게 없었는데 ‘이럴 바에야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보자!’라면서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학부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둔 2000년에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테움으로 유학을 갔습니다(*모차르테움은 모차르트를 기리기 위하여 1841년에 설립된 기관으로 음악학교ㆍ기념관ㆍ오케스트라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클래식기 타 공부하러 유학을 갔네요.
클래식기 타로 디플롬(Diplom) 과정에 입학했는데, 이곳에서 류트를 만났습니다. 처음부터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시대악기(period instrument, 고악기) 연주’라는 과목이 학교 내에 신설되면서 르네상스 음악을 접하게 되었고, 클래식 기타와 한 가족에 속하는 류트를 접하게 된 것이었죠.
류트 류의 악기는 한국에서도 흔치 않은데요, 어떤 것을 배웠나요?
석사 과정에선 류트를 중심으로 공부했어요. 1주일에 3~4회의 대외 연주활동을 해야 해서 독주보다는 앙상블 위주로 수업을 받았어요. 모차르테움이 있는 잘츠부르크에는 주립극장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합창ㆍ미사ㆍ오라토리오(17∼18세기에 가장 성행했던 대규모의 종교 극음악) 반주를 많이 했고, 리코더 같은 바로크 악기 수업에도 반주자로 참여했어요.
전통을 중시하는 유럽인들이 볼 때, 클래식 음악의 변방국의 한국인이 유럽의 오래된 전통이 녹아 있는 류트나 테오르보를 전공하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았을 것 같은데요. 예를 들어, 파란 눈의 서양인이 가야금을 하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어떻게 보면 비파처럼 생긴 게 류트예요. 그래서 중국 악기냐고 물어보는 이들도 많았습니다(웃음) 제가 또 동양인이니까요. 그들도 클래식 기타는 알아도 테오르보나 류트는 잘 몰라요. 흔히 말하는 바흐ㆍ모차르트ㆍ베토벤 등 ‘일반적인’ 클래식음악을 듣는 이들이 많고, 테오르보나 류트처럼 오늘날의 오케스트라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악기는 한국만큼 모르는 것이죠. 그래서 생소한 악기로 대접하는 건 유럽이나 한국이나 매한가지예요.
류트 류의 악기를 다루는 연주자라서 재미있다고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연주를 위해 제가 보는 악보에는 다양한 표기가 있어요. 음표와 이음줄 같은 아주 기본적인 것만 표기한 작곡가가 있는 반면, 연주자가 활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까지 상세히 표기한 친절한 작곡가가 있어요. 여기서 연주자의 고민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아티큘레이션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등등(아티큘레이션은 연속되는 선율을 보다 작은 단위로 구분하여, 각 단위에 어떤 형태와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것이다). 예전에 선생님이 “어떤 틀, 예를 악보 같은 틀 안에서만 놀지 말고, 틀 밖으로 튀어 나가보라”고 하셨어요. 이러한 것이 음악에 재미를 더하는 지점이거든요. 어떤 선율이 포르테(세게 연주하라는 표시)에 이어 크레셴도(점점 크게)로 진행된다고 치죠. 그 부분을 반복해서 연주할 때는 포르테와 크레셴도의 순서를 바꿔서 해보는 거예요. 악보 속의 음악을 해석하고 재해석해보는 거죠. 카운터테너(가성으로 소프라노의 음역을 구사하는 남성 성악가) 필립 자루스키가 작곡가 몬테베르디(1567~1643)의 곡을 부른 게 있는데요, 그 곡에는 규칙적인 박자의 반주가 나와요. 그런데 이 반주 부분을 재즈 리듬과 스윙으로 바꿔서 연주하더라고요. 이런 해석과 시도들이 보통의 클래식 음악과 다른 재미를 주는 것 같아요.
‘바소 콘티누오(basso continuo)’ 기법이라는 게 있습니다. 바로크 시대에 유행한 연주형태로, 선율에 ‘즉흥적’으로 화음을 붙여 연주하는 것을 일컫는 것인데요.
그것을 구성하는 오르간, 쳄발로, 첼로, 류트가 색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음악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즉흥이니 다양한 시도는 필수적이죠. 연주를 앞두고 연습 시 각자의 역할과 성격이 바뀌고, 심지어 공연을 바로 앞둔 리허설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아주 자연스러운 거죠.
어떤 즉흥과 해석의 가능성을 말씀하시는 거죠? 류트나 테오르베보는 주로 바로크음악을 연주하는데요. 바로크음악을 놓고 ‘정격연주(Authentic Performance)’라는 말을 주로 사용하곤 합니다. 이 말은 작곡가들이 당시에 작곡하면서 염두에 뒀던 악기는 물론 그 연주 방식대로 재현해야 한다는 뜻으로, 바흐(1685~1750)의 음악은 바흐 시대의 악기와 연주 방식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격연주라는 말의 어감에서 ‘격식’이나 ‘규격’, 교과서적인 게 떠오르곤 하는데, 바로크음악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즉흥’은 어떤 의미를 갖나요?
사실 ‘정격연주’는 말은 좀 재미없게 들려요. 그 말과 함께 사용하는 ‘원전연주’라는 말도 비슷하죠.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당시의 음악을 들었던 사람들은 현재 아무도 살아 있지 않아요. 정격연주에는 그 시대를 ‘재현’해야 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오늘날에 연주되고 있는 이상 지금의 관객에게 ‘재미’를 줄 수 있는 변수와 요소도 확실히 집어넣어야 해요. 평정심을 유지하는 성인군자라고 해도 감정의 기복이 있잖아요. 음악의 틀에서 벗어나는 게 아니라, 그 틀을 넓혔다가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해석과 시도의 ‘확대’는 과거의 음악을 요즘 시대에 맞게 들려주기 위한 고민이기도 하죠. 이에 반해 ‘축소’는 음악이 지닌 법칙을 보다 엄격하게 적용한다는 것이고요. 그런데 이러한 ‘확장’과 ‘축소’의 시도는 사실 본국인 유럽에선 가능하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불가능한 경우가 많아요. 아직 우리는 그 기본적인 ‘틀’에도 익숙하지 않으니까요.
이러한 즉흥적인 기법도 학교 수업을 통해서 길러지나요?
반복해서 훈련할 뿐이죠. 즉흥이라 해도 악보에 표기된 부분에 어느 정도 의존하기도 하고요, 다른 연주자에 의해 새로운 요소가 들어가면 진행이 순식간에 달라지기에 순간적인 고민도 많이 해야 하고, 그러한 감각도 있어야 합니다. 사실 학교 수업만으로는 충족되지 않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연주기회가 많아서 그런 훈련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즉흥연주는 어떻게 보면 ‘순간적인 작곡’ 이라고도 할 수도 있습니다. 혹시 바로크류트, 아치류트, 테오르보를 위한 곡을 쓰기도 했나요?
클래식 기타곡을 작곡할 순 있지만, 바로크류트나 테오르보를 위해선 해보지 못했어요. 유학 시절에 작곡 공부를 하던 분이 저에게 클래식 기타를 배워서 15분 분량의 소나타를 작곡한 적이 있었어요. 클래식 기타가 지닌 가능성을 잘 표현한, 매우 좋은 곡이었어요. 유학 시절에 저의 스승님도 새로 작곡된 곡이나 현대음악을 초연한 적이 많으시죠. 그런 모습을 보면서 새롭게 태어난 음악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하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 비틀즈의 음악들을 바로크 류트로 연주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갖고 있어요. 클래식음악에는 ‘조곡’(=모음곡)이라는 게 있잖아요. 예를 들어, 바흐의 무반주 첼로를 위한 모음곡은 몇 개의 곡이 한데 모여서 된 것인데요, 저도 일명 ‘비틀즈 조곡’을 만들어 바로크음악 풍의 리듬에 맞춰서 연주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사람들에게 낯선 악기를 알리는 데에는 대중적이고 부가적인 아이디어들이 있어야 하거든요.
현재 우리가 즐겨 듣는 오페라는 대부분 19세기에 이탈리아에서 태어나고 성행한 작품이 많아요. 2015년에 서울시오페라단이 초연한 <오르페오>(1607년 작곡)는 바로크 시대를 대변하는 작곡가 몬테베르디의 오페라를 처음으로 국내에 선보인다는 점에서 큰 화제였습니다. 그때 중간마다 직접 연주한 테오르보 소리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오르페오>도 바로크음악이나 당연히 바소 콘티누오가 나옵니다. 당시에 음악감독이었던 정경영 교수(한양대)는 저에게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보라”고 했어요. 음악에서 테오르보나 류트의 색감이 필요하다고 할 때, 제가 유럽에서 경험했던 것을 떠올리며 어울릴 것 같은 즉흥연주를 넣었죠. 한국이 바로크음악과 연주 문화에 굉장히 처져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 공연을 위해 모인 음악가들의 연주는 유럽에 준하는 수준이었다고 생각해요.
바로크음악에서는 일본이 강국으로 대접받는데요, 일본의 사정은 어떤가요?
오스트리아 유학 시절에 일본에서 유학 온 학생들을 통해서 그들의 연주와 문화를 알 수 있었죠. 정말 연주를 잘해요. 저뿐만 아니라 그 어떤 평론가가 그들의 연주를 들어도 ‘정말 잘한다!’라고 할 겁니다. 그런데 (개개인의 차이겠지만) 제가 볼 때는 윤기가 좀 없는 것 같아요. 인간적이라고 해야 할까?
본인이 생각하는 ‘좋은 연주’란 무엇인가요?
음악을 통하여 무언가를 ‘제시’하는 것이 좋은 연주라고 생각해요. “이 음악은 이것이니까, 이렇게 들어라”기보단, 또는 흠 잡히지 않는 연주, 완벽한 연주보다는 ‘여유’가 있는 연주를 들려주고 노력하죠.
테오르베나 아치류트가 록이나 팝에도 쓰인 적이 있나요? 예를 들어, 보수적인 성격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도 스콜피온스와 함께 공연하면서 창단 118년 만에 처음으로 대중음악과 호흡을 맞추기도 했는데요.
싱어송라이터 스팅이 영국에서 영국 작곡가 존 다울랜드(1563~1626)의 마드리갈(르네상스 시대와 바로크 시대에 작곡된 세속적인 성악곡)을 불렀다고 하더라고요. 주로 바로크음악에 사용하기에 대중음악과 호흡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재밌는 예를 몇 개 들자면, 잭 플린이 출연한 영화 <걸리버 여행기>(2010)에서 소인국 사람들의 록밴드가 나오는데 그 기타 주자가 일렉트릭 류트를 연주한다든지, 영화 <세상의 모든 아침>(1991)에 테오르보가 잠시 나오기도 하죠. 아! 2012년에 걸그룹 AOA의 티저에 지민이 류트를 들고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악기가 지닌 색감에 대한 차이와 그 차이를 크게 듣고 인식할 수 있는 사람들이 류트 류의 악기들이 지닌 아름다움을 인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의 계획을 알려주세요.
앞에서 테오르보나 아치류트에 대해서 많이 얘기했지만, 저의 본업은 클래식기타리스트입니다. 일단 클래식 기타에 많은 정성을 기울여야겠지요. 몇 년 전부터 류트 종류의 악기와 르네상스ㆍ바로크음악을 알리기 위해 여러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연극과 음악이 함께 하는 프로젝트예요. 작년에 아라리오뮤지엄 내의 공간소극장에서 <프로젝트 셰익스피어>를 한 적이 있어요. 카운터테너와 연극배우가 함께 나와 셰익스피어(1564~1616)의 대사를 낭송하고 그에 맞는 곡을 연주했죠. 관객들이 처음 접하는 낯선 음악에 집중을 덜 해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연극과 음악 속에 녹아들 수 있도록 만들어보았어요.
16세기와 17세기에 활동한 셰익스피어도 바로크 시대에 활동한 연극인이니 바로크음악을 연주하는 악기와 궁합이 잘 맞겠습니다.
연극에 사용하는 배경음악의 비중이 높아졌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현재 준비하고 있는 공연은 작곡가 몬테베르디 역의 배우로 출연하여 그의 내면과 시기, 질투 등의 감정을 음악과 어우러지는 낭송으로 표현하는 것이죠. 그리고 앞서 말씀드린 11현 알토 기타도 국내에 연주자가 거의 없기 때문에 보다 열심히 알리고자 합니다. 제작자로부터 한 대 받아서 올 초부터 열심히 연습하고 있습니다. 이 악기도 주로 르네상스와 바로크음악을 연주하죠. 그리고 기타리스트로서의 아이디어도 있는데, 자전적인 이야기에 픽션을 더해서 ‘기타리스트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합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콘트라베이스』가 떠오르는군요. 많이 기대하겠습니다.
송현민
음악평론가로 음악 듣고, 글 쓰고, 음악가들을 만나며 책상과 객석을 오고간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공부했고, ‘한반도의 르네상스’를 주장했던 음악평론가 박용구론으로 제13회 객석예술평론상을 수상했다. 월간 <객석>을 중심으로 취재 및 집필 활동을, KBS 1FM에서 방송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