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의 히잡 가수, 유나(Yuna)
여자 밥 딜런이 어반 알앤비를 부르는 것처럼 관조적으로 힘을 빼고 한 걸음 떨어져서 감정이입을 최소화한다.
글ㆍ사진 이즘
2016.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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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교가 국교인 말레이시아에서 서구의 유행 음악을 하는 여가수는 저항이나 도발의 상징으로 비추어질 수 있지만 다행히도 말레이시아는 중동의 이슬람 원리주의 국가들과는 달리 종교와 여성의 사회 활동에 대해 비교적 탄력적이다. 그래서 히잡을 쓰고 무대에서 노래하는 유나의 모습은 신선하며 이는 자신의 뿌리를 거부하지 않으려는 그의 의지로 투영된다.

 

말레이시아는 영국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영어권 문화에 대해 흡수력이 빠른 편이다. 유나의 노래들도 영국과 미국의 대중음악을 깊숙이 받아들인 결과물이다. 이 자신만만한 여가수의 노래에는 말레이시아의 색깔이나 향기의 존재를 감지할 수 없을 만큼 2000년대 팝의 트렌드가 과감하게 농축되어 있다. 인디팝과 포크, 그 위에 살짝 덧입혀진 일렉트로니카까지, 이전 그의 노래에는 최근 각광받고 있는 음악 요소가 전진 배치되어 있었지만 이번 음반 는 알앤비로 채색했다. 유나의 음악적 표현력이 단편적이고 얕지 않다는 것을 입증한다.

 

하지만 유나는 잘난 체하는 일부 알앤비 여가수들처럼 무작정 내지르지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마치 자기 이야기가 아닌 듯 무심하게 가사를 내뱉는다. 여자 밥 딜런이 어반 알앤비를 부르는 것처럼 관조적으로 힘을 빼고 한 걸음 떨어져서 감정이입을 최소화 한다. 그러면서도 인디팝과 포크, 알앤비를 아우르는 힘, 이것이 에 소용돌이처럼 빠져드는 마력이다. 첫 곡 「Mannequin」부터 유나는 그 특유의 관점을 주입한다. 을씨년스런 겨울의 감성을 머금은 「Lanes」도 유나의 이번 음반의 색깔을 대표하는 트랙이다.

 

클럽에서 이성에게 추파를 던지기 좋은 「Crush」에서 호흡을 맞춘 어셔는 여성의 키로 노래하며 관록을 증명한다. 다른 가수들과 달리 유나는 그에 밀리지 않으려고 감정을 과잉하지 않고 오히려 훌륭한 조연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서있다. 대선배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양보하는 겸손한 결정이다. 유나는 후반부로 흐를수록 흑인음악의 농도를 짙게 칠했다. 1990년대 뉴질스윙을 재현한 「Places to go」와 알앤비 보컬 트리오 에이치 타운의 1993년도 히트곡 「Knockin’ da boots」의 드럼 사운드가 연상되는 「Poor heart」, 혼성 알앤비 그룹 그루브 씨어리의 1995년도 탑 텐 싱글 「Tell me」처럼 다가오는 관능적인 어반 알앤비 넘버 「Time」까지, 유나는 데뷔 전부터 마음에 품어왔던 흑인음악에 대한 애정을 아껴두었다가 마지막에 풀어놓았다.

 

유나의 이번 음반은 2016년 상반기에 발표된 앨범들 중에서 대중성과 음악성을 고루 만족시키는 양질의 작품이지만 세계 대중음악의 변방인 말레이시아 출신이라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진 못할 것이다. 그러나 대중문화는 나라와 인종을 넘어선다. 싸이가 그것을 증명하지 않았던가.

 


 소승근(gicsuck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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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 #이슬람 #히잡가수 #말레이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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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