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번역원이 주최하는 <2016 서울국제작가축제> 참가작가 릴레이 인터뷰의 다섯 번째 주자는 소설가 배수아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작가는 졸업 후 7급 공무원 생활을 했다고 한다. 외국에 가 본 적 없이, 공항에서 여권에 도장 찍어주는 일을 하다 홀연히 베를린으로 떠났다. 독일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 채로 독일 유학길에 올랐던 작가는, 이제 작가 겸 독일어 번역가로 왕성한 활동 중이다.
여행하고 싶은 것을 사람의 본능으로 여기는 소설가 배수아. 가보았던 이국의 땅 중 '서울'과 가장 흡사한 곳은 어디였나요?
겉모습이 흡사해 보인 곳은 중국이나 미국의 도시였어요. 정확히는 미국 대도시의 차이나 타운. 정신 없이 붉은색 간판, 들뜬 관광객들, 넘쳐나는 일회용품들, 일요일 아침 중국인 빵집을 가득 채운 채 즉석 복권을 긁고 있던 중국인 남자들의 무리가 잊히지 않더군요. 하지만 도시 자체의 유사함이 아니라 저 자신이 가장 깊은 피의 끌림을 느낀 곳은 몽골의 알타이였습니다.
소설가이자 독일어 번역가로서, 왕성한 저작활동을 하고 계신데요. 그러면 여행 외에 소설가 배수아에게 문학적 영감을 주는 활동이나 대상은 무엇인가요?
저는 당연히 문학에서 가장 큰 영감을 받습니다. 그 다음이 사람이에요. 종종 그 둘은 저에게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을 때가 많아요. 문학은 사람이어야 하듯이, 사람 또한 문학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저에게는 세상이 의미가 있어요.
소설집 『올빼미의 없음』은 독특한 제목이 눈길을 끕니다. ‘없는’ 상태를 명사 ‘없음’으로 표현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명사형은 강한 효과를 주기 때문에 좋아하는 편입니다. 한국어에서는 잘 활용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사용해보고 싶기도 하구요. 무엇보다도 그 작품의 느낌을 가장 잘 말해준다고 생각했어요. 그렇다면 설사 없는 말이라 해도 만들어서 쓸 수가 있죠.
장편소설 『철수』의 제목을 참 마음에 들어하셨다는 인터뷰 기사를 본 적 있습니다. 『철수』의 영어 번역출간본의 제목은 『Nowhere to Be Found』인데요. 아무래도 한국인 대표 이름 ‘철수’를 적절한 영어로 옮기는데 고민이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영어제목은 마음에 드시는지요?
사실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한국어로 번역해서 보면 좀 신파조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하지만 원제 『철수』로 갈수는 없었어요. 제목을 변경하는 문제는 영어권 독자들의 감성으로 생각해서 결정해야 할 테니 역자분과 편집자에게 맡기기로 한 거죠.
최초의 단편이 워드 연습을 하다가 탄생했다는 여담은 굉장히 유명합니다. 타자 연습을 하면서 동시에 소설 쓰기를 하셨다는 건가요? 그렇다면 선생님의 글쓰기는 빠르게, 그리고 치열하게 쏟아내는 방식이라고 생각해도 될까요?
최초의 단편을 쓸 때, 나는 하나의 문장 뒤에 따라오는 다음 문장에 대해서 전혀 미리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 단편은 오직 문장이 스스로 다음 문장을 만들었지, 내가 의도적으로 구상하고 만든 이야기가 아니예요. 물론 그건 신선한 경험이었고, 저의 초기 단편들은 대개 그런 식으로 탄생했죠. 하지만 이제는 조금 바꿔보고 싶어요. 저는 여전히 즉흥성을 사랑하지만 사람을 진정으로 놀라게 하는 건 무책임한 즉흥성이 아니라 “고밀도의 즉흥성”이라고 생각해요. 내 즉흥성을 강하게, 앗! 찔하게 만들고 싶어요.
시, 소설, 서평을 아우르는 종합 문예지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활동하시는 문예지에 가까운 시일 내에 소개하고 싶은 외국문학이 있다면요?
저는 기회가 된다면 독일의 시들을 소개하고 싶어요. 여성 시인들의 좋은 작품들이 많은데, 번역시 시장이 움츠러들어서 그런지 전혀 번역이 되지 않고 있는 듯해요. 시 자체도 좋아야겠지만, 특히 한국어로 번역되었을 때 음악성과 문학적 효과가 살아날 수 있는 시들을 고르고 싶어요. 얼마 전에는 일본 작가 '이노우에 야스시'의 시를 중역으로 번역해서 실었는데 신선한 경험이었고 평도 긍정적이었어요. 신생 잡지의 좋은 점은 이런 저런 실험을 시도해 볼 수 있다는 거예요. 최근에는 한국에 미번역된 제발트의 짧은 산문을 실어서 기뻤어요. 소스라치게 아름다운 산문이죠.
청춘의 가난에 대해 많이 이야기 하십니다.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고, 소외된 존재인 ‘청춘’은 그럼에도 누군가의 ‘인생의 리즈 시절’일 것입니다. 우리의 청춘을 조금 더 멋지게 회상할 수 있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청춘을 멋지게 회상하기 위해서는 회상하지 않는 것이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웃음). 청춘은 항상 지금 이 자리에서 실시간으로 느껴야 합니다. 청춘에는 과거형이 없다고 생각해요.
“번역은 가장 내밀한 독서”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한국독자들이 한국문학을 독서할 때, 번역 외에 어떤 방식의 독서법을 추천하시는지요?
제가 생각하는 진짜 독서의 모습은 한 작가에 대한 전작주의입니다. 책을 읽고 흥미로운 줄거리가 마음에 들었지만 그 작가의 다른 작품을 찾아 읽고 싶은 생각이 없다면 그건 독서라기보다는 단순히 하나의 문학상품을 소비한 행위라고 생각해요. 독서는 그런 점에서 음악과 비슷합니다. 우리는 어느 연주자의 음반을 따라가며 듣습니다. 그것은 곧, 음악에 대한 그의 해석뿐 아니라 그가 선곡한 목록도 자신의 음악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와도 같아요. 문학에는 이야기뿐 아니라 세계관과 언어관, 삶의 철학이 항상 병행합니다. 그리고 한 작가의 그것은 세월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는 것도 당연해요. 그런 식으로 독자는 작가의 탄생과 영광, 몰락과 잊힘, 그리고 죽음까지도 함께 하는 것입니다. 글은 곧 작가의 삶이자 작가 자신이니까요. 전 컴필레이션 음반은 좋아하지 않아요. 킴필레이션 책도 마찬가지예요. 라운지 음악이나 라운지 문학이란 느낌이 들어요. 물론 모든 독자는 자신에게 맞는 독서방법을 택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저에게 굳이 추천을 청하신다면 이렇게밖에 대답할 수가 없을 것 같네요(웃음).
외국문학을 한국어로 옮기는 번역가로서, 자신의 작품을 해외에 번역 출간하는 작가로서의 이중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계시다고 볼 수 있는데요. 국내작가와 해외작가가 소통하는 <서울국제작가축제>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음, 저는 서울에 살지 않아서, 개인적으로는 도심 한가운데서 일주일을 지내는 것이 새로운 기분이라서 좋아요. 그리고 각자의 작품을 무대 공연으로 만드는 작업도 흥미로웠어요. 저는 문학작품이 공연으로 만들어지는 것에 관심이 많아서요. 사실 작가들끼리 직접 대화를 하는 것보다 이런 형태의 변형을 통해서 다른 작가의 작품을 다차원적으로 느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알기로 이런 식의 문학 축제는 거의 없으니까요. 다만 너무 많은 작품들이 한꺼번에 진행되다 보니 개별 공연의 예술적 완성도 보다는 피상적인 차원의 보여주기에 그칠까 걱정되기는 해요.
서울국제작가축제
'2016 서울국제작가축제'가 9월 마지막 주, 대학로에서 그 막을 연다. 축제 준비가 한창인 8월의 어느 날. 설렘으로 잠을 설치는 소풍 전야처럼, 9월의 작가축제가 문득 궁금해진다. 작가축제에서 만나 볼 작가들의 릴레이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iuiu22
2016.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