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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 왜 감기만 걸리면 귀가 아픈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유스타키오 관(기억하시나요? 코와 목이 만나는 지점에 귀로 올라가는 길이 있습니다. 이 길을 따라가면 중이, 즉 가운데귀로 통합니다)이 막히기 때문이라고 했지요. 유스타키오 관이 막히면 가운데귀는 폐쇄된 공간이 돼 버립니다. 진공 상태가 되면 그 공간에 물이 차고, 세균 감염이 일어나면 중이염이 생기는 겁니다.
어떨 때 중이염을 의심해야 할까요?
중이염이 생기면 어떤 증상이 있을까요? 당연히 귀가 아프지요. 그리고 열이 납니다. 감기처럼 바이러스가 아니라 세균 감염이 많기 때문에 제법 고열이 납니다. 열나고 아픈 것만도 괴로운데 귀에 물이 찼으니 웅웅거리며 잘 안 들리겠지요? 생각해보세요. 어른도 답답하고 성가실 텐데 아이들은 아직 세상이 낯설잖아요. 얼마나 당황스럽고 겁이 나겠어요? 그러니 울고 보챕니다. 귀를 잡아당기기도 합니다. 어린이들은 열이 나면 잘 먹지 않죠? 토하고 설사하는 일도 많고요.
감기에 걸리면 코와 목에 제일 먼저 염증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코나 목에 감기가 생긴 후 바이러스들이 유스타키오 관으로 진격해서 문제를 일으키기까지는 며칠 걸립니다. 그래서 중이염의 전형적인 스토리는 이렇게 됩니다. 감기 걸려서 코를 훌쩍거리고, 열도 좀 나고, 기침도 좀 하다가 낫는가 했더니 갑자기 고열이 치솟으며 엄청 보채고 안 먹고 토합니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귀를 들여다보고 엄숙하게 선언합니다. “급성 중이염입니다.”
항생제를 꼭 써야 할까요?
이론상 바이러스 중이염이라면 항생제를 쓰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이러스만으로 위와 같이 전형적인 경과와 증상을 나타내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급성 중이염이라면 일단 세균성으로 생각합니다. 항생제를 쓰는 것이 원칙이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급성 중이염은 어린이에게 항생제를 처방하는 가장 흔한 원인입니다. 어떤 항생제를 얼마나 오래 쓸 것인지는 상당히 복잡한 문제입니다. 일단 아이의 나이를 고려해야 하고요. 얼마나 열이 나고 보채는지, 잘 먹는지를 봐야 합니다. 평소 건강 상태와 전에 중이염을 얼마나 자주 앓았는지, 중이염이 한쪽에만 왔는지, 양쪽 모두 문제인지에 따라서도 달라지고, 심지어 부모가 아이를 얼마나 신경 써서 볼 수 있는지도 고려해야 합니다. 그러니 항생제 치료는 의사 선생님께 맡기세요. 인터넷에서 몇 가지 얘기를 듣고 항생제를 쓰자고 하면 공격적으로 따지는 부모들이 많다고 합니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태도입니다.
항생제를 쓰기 시작했다면 두 가지 문제를 생각하세요. 첫째, 일단 썼다면 증상이 좋아지더라도 정해진 날짜를 채워서 쓰세요. 일찍 끊어버리면 재발하기도 쉽고, 항생제 내성균도 잘 생깁니다. 둘째, 급성 중이염의 표준 항생제 치료 기간은 5-10일입니다. 그런데 충분히 항생제를 써서 세균이 다 죽고, 아이도 잘 놀고 아무 이상이 없는데 여전히 가운데귀 속에 물이 남아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유스타키오 관이 아직 열리지 않은 거지요. 이런 상태를 장액성(漿液性) 중이염이라고 합니다. ‘가운데귀에 맑은 물이 고여 있는 상태’라는 뜻입니다. 한때는 물이 완전히 빠질 때까지 항생제를 쓰기도 했지만, 이때는 항생제를 쓰지 않고 지켜보는 것이 원칙입니다. 따라서 10일을 많이 넘겨 계속 항생제를 쓰고 있다면 한번쯤 다른 의사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왜 자주 재발하나요? 예방할 수는 없을까요?
아이들은 저마다 생김새도 다르고 키와 몸무게도 다르지요. 유스타키오 관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스타키오 관이 유난히 좁고 구불구불하며 수평에 가까운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 항생제 치료를 해서 세균이 다 죽은 뒤에도 유스타키오 관이 뚫리지 않습니다. 가운데귀에 맑은 물이 고여 있는 상태, 즉 장액성 중이염이 계속되는 거지요. 장액성 중이염에는 항생제를 쓰지 않는다고 했지요? 그런데 이런 물은 세균에게는 맛있는 먹이입니다. 어떻게든 침입하려고 애를 쓰기 때문에 다시 세균 감염이 일어나기 쉽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예, 열이 나고 귀가 아픈 일이 반복됩니다. 이때는 다시 급성 중이염이 된 것이므로 항생제를 써야 합니다. 중이염이 자주 반복되면 아이는 물론 부모나 치료하는 의사에게도 적지 않은 스트레스가 됩니다.
이럴 때 해볼 수 있는 방법은 1) 폐렴과 독감 접종을 합니다. 중이염의 주 원인균은 폐렴구균이며 폐렴 접종은 폐렴구균에 대한 접종입니다. 폐렴 접종을 해도 중이염은 줄지 않는다고 합니다만(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만, 좀 어려운 얘기이므로 통과!), 다른 병도 예방할 수 있으므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자는 거지요. 독감은 일반 감기보다 합병증을 훨씬 많이 일으키므로 예방접종을 권합니다. 2) 높은 산이나 비행기에서 귀가 막히면 하는 것처럼 코를 잡고, 입을 꼭 다물고 힘껏 숨을 내쉬는 일을 반복합니다. 이걸 어려운 말로 이관통기법(耳管通氣法), 또는 발살바(Valsalva)법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에게는 중이염 운동이라고 설명하고 풍선을 불게 하거나, 주사기에서 바늘을 빼고 거꾸로 물게 한 후 힘껏 불어서 피스톤을 움직이게 합니다. 칭찬을 해주면 취미를 붙여서 잘 합니다. 하루 4번, 식후와 자기 전에 시키세요. 단, 풍선은 쓰고 난 후 아이들 손 닿지 않는 곳에 잘 치워두어야 합니다. 질식할 위험이 있으니까요. 3) 당분간이라도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세요. 감기는 물론 중이염의 빈도도 현저히 줄어드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규모가 작은 어린이집으로 옮기는 것도 방법입니다. 4) 유스타키오 관이 정 뚫리지 않는다면 다른 쪽에 구멍을 내서 물이 흘러나오게 할 수 있습니다. 즉, 고막에 작은 구멍을 내고 통기관을 삽입하는 것입니다. 작은 수술이지만 안전합니다.
모든 방법이 효과가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행히 중이염 때문에 귀가 안 들리거나 언어 발달이 늦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어린이를 키울 때 가장 좋은 점은 아무리 골치 아픈 문제라도 아이가 커가면서 저절로 좋아진다는 점입니다. 유스타키오 관은 성장하면서 점점 넓어지고, 똑바로 펴지고, 수직에 가까워집니다. 지금 아무리 중이염에 시달려도 언젠가 추억이 될 날이 옵니다. 따라서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때가 언제냐구요? 대부분 5세가 넘으면 중이염이 잘 생기지 않습니다. 시간은 우리 편이라고 믿고 조금 느긋하게 기다려봅시다. 고민한다고 사정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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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철(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대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소아과 전문의가 되었다. 2005년 영국 왕립소아과학회의 ‘베이직 스페셜리스트Basic Specialist’ 자격을 취득했다. 현재 캐나다 밴쿠버에 거주하며 번역가이자 출판인으로 살고 있다. 도서출판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의 대표이기도 하다. 옮긴 책으로 《원전, 죽음의 유혹》《살인단백질 이야기》《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존스 홉킨스도 위험한 병원이었다》《제약회사들은 어떻게 우리 주머니를 털었나?》 등이 있다.
lyj314
2017.01.11
책사랑
2017.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