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간 후 수염이 살짝 솜털 같이 나기 시작하고, 샤워를 하고 난 후에 엄마에게 어떻게든 팬티를 벗은 몸을 보여주지 않으려 한다. 슬쩍 보면 성기 근처로 털이 나기 시작하는 것 같다. 아기 같던 목소리의 톤이 점점 낮아지고, 혼자 방문을 닫고 있는 시간이 늘어난다. 이때부터 엄마와 아빠는 조금씩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혹시 야한 동영상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침에 깨워도 일어나지 않던 아이가 갑자기 새벽에 샤워를 하고, 벗은 속옷을 빨래통에 자발적으로 넣는 일이 발생해도, ‘아, 애가 드디어 부지런해졌구나’라는 기쁨과 동시에 ‘몽정이나 자위’에 대한 생각이 부모의 마음에 먼저 떠오르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이때 엄마는 아들에게 무슨 말을 할 지 난감하다. 아빠도 도대체 아이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모르니 어디서부터 접근을 할 지 난처할 때가 많다. 같은 남자라도, 내 아이 문제라면 또 다른 얘기이기 때문이다.
당사자인 아이 또한 하루가 다르게 벌어지는 몸의 변화가 뭘 의미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몸과 마음의 변화가 속속들이 일어나는데, 그게 좋기도 하고 낯설어서 어떨 때에는 불쾌한 기분도 들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과거의 아이가 아닌 성인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들어갔는데 이때 무엇을 생각하고, 또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 또 부모는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을까? 혹은 이야기를 하기 남사스럽다고 느낀다면 책 한 권 획 던지면 될 만한 것이 없을까? 그렇다고 너무 가르치려 들지 않았으면 좋겠고, 몸에 좋은 훈계조의 이야기나, “소년이여 꿈을 가져라”는 식의 붕뜬 이야기, “공부나 열심히 해라” 혹은 “인생 뭐 있어! 하고 싶은 거 해!”라는 식의 이야기도 별로다.
사실 나도 내 아이가 중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조금씩 마음 준비를 하고 있지만, 파워포인트를 켜놓고 성교육을 포함해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할 생각을 하니 여러모로 장벽을 느끼고 있는 참이었다.
이런 궁금증과 부모의 난감함을 쉽고 편하게 해결해 줄 책이 한 권 내 눈에 들어왔다. 제임스 도슨이 쓰고, 스파이크 제럴이 그림을 그린 『소년이 된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영국에 살면서 학교를 순회하며 10대에게 따돌림, 성, 음주와 관련한 교육을 하며 관련 연구를 하는 작가다. 평소 아이들과 직접 만날 기회가 많아서 그런지 이야기가 생생하고 구체적이었다. 비록 제목은 ’소년이 된다는 것‘이지만 사실상 내용은 소년이 남자가 되는 과정에 필요한 마음가짐과 태도, 그리고 이성 관계와 성 행위를 할 때 가져야 할 금과옥조를 담고 있다.
시작은 성정체성에 대한 방향성을 분명히 정하고 들어간 것이다. 솔직히 나는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게이, 레즈비언, 트렌스젠더는 모두 병이나 비정상성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사실 생물학적 성과 성정체성의 차이로 인해 전환치료를 받는 사람들을 괴물로 보지 말고 용기 있는 행동을 하는 것으로 보라는 것, 모두가 동등한 인간으로 보자고 한다.
다음, 본격적으로 소년이 남자의 세계에 발을 담그면서 겪는 힘든 일을 소개하기 시작한다. 남자들의 사회에서 서열이 생기고, 그 안에서 나름의 포지션과 역할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동물원’에 비유해서 각각을 동물로 묘사해서 느긋한 사자, 꽥꽥 소리지르는 개코원숭이, 재수없는 족제비, 다수의 개성 없는 양, 존재도 몰랐을 대벌레로 이름을 붙였는데, 그 표현이 절묘하다. 이런 묘사를 바탕으로 나는 지금 누구인지 어떤 역할인지를 생각해보게 한 후, 우두머리인 사자는 절대 놀라지 않는데 반해 개코원숭이는 조금만 놀라도 시끄럽게 굴고 고추를 흔들어대지만 실제로는 불안을 표시할 뿐 이라고 설명한다. 사자는 고추를 흔들면서 호들갑을 떨지 않아도 스스로 안전하다는 것을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데, 그 이유는 사자 자신이 자신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러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너를 사랑하게 하려면 너 자신을 먼저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청소년을 상담해온 사람으로서 이 책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 자신감과 용기를 내서 남과 다른 나만의 나가 되기 위해 개성을 가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래 압력 때문에 그저 남들과 똑같아지는 것은 복제 양이 되는 것과 같고, 우~하고 몰려다니는 들쥐가 될 뿐이다.
“좋아하는 것을 즐기고, 좋아하는 옷을 입어. 유행을 선도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따라다니는 사람이 되지 마”라고 저자는 조언한다. 실제 이 과정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할지에 대해서는 잘 설명하고 있고 나 또한 전적으로 동의하는 부분이다.
이제 여자를 사귀는 것, 성과 관련한 부분에 대한 실제적인 조언을 한다. 멋있게 보이는 것의 1번은 깨끗한 것, 좋은 냄새, 깔끔한 면도로 완성되는 외모 관리다. 이 책에는 면도하는 법, 옷을 잘 골라 입는 법 (하물며 소년들이 제일 난처해 하는 옷 필수 아이템까지도 소개한다. 면 티셔츠, 데님 소재 바지, 단정한 신발, 가벼운 자켓 등..요 정도 일단 갖춰서 돌려 입으면 최소한 추레해 보이지는 않는다고), 문신과 피어싱에 대한 저자의 조언이 있다.
이렇게 매우 구체적이라는 것이 이 책이 마음에 쏙 든 두 번째 이유였다. 10대에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호기심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애정을 가진 어른의 사심 없는 충고가 곁들였다. 사춘기 이후의 2차성징으로 인한 성적인 호기심과 성욕의 증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지나친 죄책감을 갖지 말 것을 알려준다.
야한 동영상을 볼 수 있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진짜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은 절대 아니고, 이걸 보는 것이 무슨 천벌 받을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명심할 몇 가지가, 성교육 자료도 아니고, 판타지일 뿐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야동과 달리 피자배달부는 피자만 배달하고 그냥 갈 뿐 주인 여자와 무슨 엄청난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포르노와 달리 진짜 섹스를 하게 된다면 콘돔은 꼭 끼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무엇보다 현실에서 남자와 여자가 성관계를 할 때 만일 여자가 “안돼”라고 말하면 그건 멈추라는 말이니 포르노에서처럼 강제로 해서는 그 순간 성폭행이 된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무엇보다 관계를 한다면 그것에 대해 서로 대화를 하라고 조언을 한다. 이런 현실적인 이야기를 사실 부모는 직접 하기 어렵다. 주제를 피하게 되고, 겁만 주기 일쑤다. 그러니 소년은 본능적인 충동이 올라오면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대화를 통해 궁금증을 해소하고, 포르노와 같은 야한 동영상을 보면서 학습을 하며 그것이 진짜라고 믿기 쉽다. 이럴 때 이와 같은 책이 중요한 기능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여성의 브래지어를 벗기는 방법, 콘돔을 끼는 방법, 키스를 잘 하는 방법, 성병의 증상과 징후가 무엇인지, 데이트에 대화를 하는 법, 좋은 남자친구의 자세, 데이트 폭력의 위험성 등등 시시콜콜한 디테일까지 포함하고 있다. 비록 영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현재 우리나라 청소년의 현실에 맞춰보면 너무 앞서나가는 얘기들이 대부분이라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부모들이 십대를 바라보고 상상하는 것보다 실제 아이들은 더 많은 것을 궁금해하고, 이미 알고 있고, 혹은 이미 매우 많은 것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라고 할 까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아이는 벌써 멀리 가있을 수 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상한 상상과 친구들끼리 나눈 정보, 인터넷에서 본 신뢰할 수 없는 정보를 사실로 믿기 전에 미리 이런 책을 소개하고 읽어보라고 툭 머리맡에 던져 보는 것은 어떨까?
p.s 소녀들은 어떻게 하냐고? 이 출판사에서 『소녀가 된다는 것』이라는 같은 장르의 책이 시리즈로 출간되어 있다.
소년이 된다는 것 제임스 도슨 글/스파이크 제럴 그림/방미정 역 | 봄나무
거뭇거뭇한 수염이 나기 시작한 십 대 소년들의 주체할 수 없는 성과 성관계에 관한 깊은 호기심을 직접적면서도 대담하게 파헤친다. 영국의 성교육 전문 교사이기도 한 저자 제임스 도슨은 오랜 시간 사춘기 아이들을 만나고 이야기해 온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때로는 옆집 형처럼 때로는 단호한 선생님처럼 사춘기 주의 사항들을 알려 준다.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언강이숨트는새벽
2017.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