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둑해진 밤, 어떤 사람이 홀로 바에 들어간다. 약간의 고민과 슬픔 그리고 돈을 가지고서. 이 고민과 슬픔은 보통 일 또는 사랑이라는 두 가지 경우로 수렴한다. 이럴 경우, 대부분의 바텐더들은 말하기보다는 듣는 데에 집중한다. 섣불리 조언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귀 기울여 듣고는 가장 필요한 몇 마디를 건넬 뿐이다. 책바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때로는 상황에 알맞은 책을 권하기도 한다. 연인과의 사랑 문제로 가장 먼저 권하고 싶은 책은 아무래도 알랭 드 보통의 소설이다.
그의 소설 『우리는 사랑일까』의 원제는 ‘The Romantic movement’다. 제목 그대로, 두 남녀의 연애의 시작부터 끝까지 어떤 과정으로 흘러가는지를 다룬 소설이다. 명확히 다른 성격을 가진 주인공들이 서로에게 왜 그렇게 말과 행동을 했는지 생각의 알고리즘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자연스레 과거와 현재의 연애에 대해 여러 생각이 떠오르도록 만든다.
남자 주인공 에릭은 이성적인 성향으로, 장소, 사람, 직업 등 대부분의 요소를 최대한 자신의 뜻대로 제어하려 한다. 반면 앨리스는 감성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이 칭하는 그녀의 별명은 몽상가다. 이들을 건축가로 비유하자면, 에릭은 건물의 무게를 여러 기둥에 분산시키는 '지성파 건축가'이고 앨리스는 모든 무게를 기둥 하나에 집중시키는 '낭만파 건축가'다. 즉, 에릭은 기둥 하나에서 사고가 나더라도 전반적인 구조가 무너지지 않지만, 앨리스는 기둥 하나가 무너지는 순간 모든 건물이 무너져버리는 스타일인 셈이다.
둘은 어느 파티에서 우연히 만났다. 첫 만남부터 서로에게 끌려 함께 밤을 보냈고, 이내 사귀기 시작했다. 어느 연인이나 그러듯이, 처음에는 서로의 장점만이 극대화되어 보인다. 또 자신이 가지고 있지 못한 부분을 상대방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서로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달라서 장점으로 느껴졌던 부분이 그저 차이가 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차이는 서로에게 이해를 구해야 하는 상태에 다다르기도 한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었을 때, 에릭과 앨리스는 따뜻함을 찾아 카리브해로 여행을 떠난다. 푸른 바다가 바로 앞에서 보이고, 파도가 밀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을 참이다. 그 때 에릭이 앨리스에게 ‘피나콜라다’를 건네고 함께 마신다.
"으으음, 이 칵테일은 환상적인데요. 지금까지 마셔본 피나콜라다 중에 최고예요. 당신 것도 괜찮아요?"
"네, 좋아요. 그런데 좀 달착지근하네요."
"그래요? 정말? 아닐 텐데."
"나한테는 그런데요."
"전혀 달지 않은데. 딱 맞는데."
"어쨌거나…..."
앨리스의 이마에 생각의 주름이 새겨지자, 에릭이 관심을 보였다.
"무슨 일이에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생각 중이에요."
책 속에서 에릭과 앨리스의 평가가 갈린 '피나콜라다'는 럼을 베이스로 하여, 코코넛 밀크와 파인애플 주스를 넣고 얼음과 함께 갈아서 만든 칵테일이다. 슬러시처럼 잘게 갈아진 칵테일을 한입 쭉 빨면, 기분 좋은 달콤한 맛에 아빠 미소가 절로 나온다. 남미의 푸에르토리코에서 시작된 피나콜라다는 따뜻한 해변과 가장 잘 어울리는 칵테일 중 하나인데, 실제로 휴양지에 가면 연인들이 사이 좋게 마시는 모습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피나콜라다는 사랑스러운 느낌을 주기 때문에, 마시는 상황상 예상보다 ‘ 조금 더 달든 혹은 덜 달든’ 크게 신경 쓰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아니, 무조건 맛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족한 에릭과 달리, 앨리스는 계속 달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알 수 있다. 앨리스는 피나콜라다가 아니라 지금 상황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었다. 사실, 앨리스는 아쉬웠던 점을 계속 묵혀두고 있었고, 에릭은 끝까지 알아채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 상황은 비단 에릭과 앨리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나를 포함하여 수많은 남녀들에게 적용되는 문제다.
많은 연인들이 커뮤니케이션에서 애로사항을 겪는다. 서로에게 솔직함을 요구하지만, 어느 선까지 솔직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너무 솔직하면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 있을 것 같고, 적당히 감추면 상대방을 기만하는 느낌이 든다. 그러다 보니 갈등이 조금씩 피어 오른다. 상대방을 위해서 한 말이, 오히려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상황도 발생한다. 이 책을 읽으며 지난 연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스스로에 대한 칭찬보다는 반성의 비중이 높았다. 훗날, 내가 결혼에 '성공'하게 된다면 이 책의 역할이 작지 않을 것 같다. 어찌하였든 나는 책을 읽은 뒤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변할 필요가 있다고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따뜻한 나라의 해변으로 여행을 한다면 첫 잔은 피나콜라다다.
재료
화이트럼, 코코넛밀크, 파인애플 주스, 갈아진 얼음, 파인애플 등의 과일
만들기
1. 셰이커에 화이트 럼 1.5oz, 코코넛 밀크 1oz, 파인애플 주스 3oz를 넣는다.
2. 얼음을 가득 채우고 신명나게 셰이킹을 한다.
3, 섞인 칵테일을 와인 글라스에 넣고, 그 위에 갈아진 얼음으로 가득 채운다.
4. 파인애플이나 오렌지 등의 과일로 장식한 후 빨대를 꽂는다.
정인성(Chaeg Bar 대표)
바와 심야서점이 결합해 있어 책과 술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공간인 책바(Cheag Bar)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더운 날, 누군가와 갈등이 생긴다면 스트레스가 생길 수밖에 없겠죠. 이 뜨거운 더위와 갈등을 식혀주는 책 한 잔을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