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은 없다
『가시괴물의 비밀』이라는 동화책이 있다. 우리 집 애가 좋아하던 동화책인데, 애한테 밤마다 읽어주면서 나도 덩달아 좋아하게 됐다.
글ㆍ사진 권용득(만화가)
2017.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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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중순, 애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 3학년 남학생 개똥이(가명)가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 자신의 장난감이 망가졌는데, 개똥이는 장난감을 망가뜨린 범인으로 2학년 여학생 말순이(가명)를 지목했다. 개똥이와 개똥이 친구들은 말순이를 추궁했고, 말순이는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고 잡아뗐다. 그러자 개똥이와 개똥이 친구들은 말순이를 학교 뒤편의 으슥한 장소로 데려가 공포분위기를 조성했고, 말순이는 기어이 울음을 터뜨렸다. 말순이는 주변에 있던 다른 친구들의 도움으로 그 자리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때마침 말순이 할아버지가 우는 말순이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가려고 했지만, 아이들은 말순이를 끈질기게 괴롭혔다. 이 사실이 말순이 어머니에게 알려지면서 학교폭력위원회(이하 학폭위)가 소집됐다. 그리고 말순이를 괴롭혔던 아이들 중에는 우리 집 애도 있었다. 애는 총 네 명의 가해자 중 한 명이었다.


여러 증언을 교차 확인한 결과 우리 집 애는 말순이를 학교 뒤편으로 데려가면서 말순이의 팔짱을 꼈고, 어떤 아이는 화분의 지지대로 쓰이던 막대기를 개똥이에게 건네며 개똥이의 가해 행위를 부추겼다. 그 막대기가 물리적인 폭력에 사용되진 않았지만, ‘애들끼리 놀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대충 넘어갈 일은 아니었다. 학폭위가 소집된 게 당연했고, 마누라와 나는 우리 집 애의 가해 행위를 다른 아이들의 가해 행위와 엄밀히 구분하지 않기로 했다. 애가 그와 같은 집단적인 가해 행위에 가담하는 것은 물론 방관한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잘못인지 먼저 깨닫길 바랐다. 자신의 잘못을 다른 아이들의 잘못과 구분하지 않길 바랐다. 하지만 학폭위의 절차는 생각보다 한심했다. 대체 무엇을 위한 학폭위였는지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아쉬운 점이 한둘이 아니다.


해당 사건이 학폭위로 넘어가면서 담임 선생님이나 학부모들은 더 이상 사건에 개입할 수 없었다. 아이들은 학폭위를 주관했던 선생님께 당일 있었던 일을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진술했지만, 그 누구도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는지 알려 주지 않았다. 아이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학교생활을 이어갔고, 엉뚱하게도 말순이는 학교와 연계된 Wee센터에서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순이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설령 말순이가 개똥이의 장난감을 망가뜨렸다고 해도), 왜 말순이만 상담을 받고 다른 아이들에게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 걸까. 나는 일단 말순이의 피해 회복을 위해서라도 아이들에게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는지 충분히 알려 주고 말순이에게 사과를 하도록 하면 어떻겠냐고 학교 측에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학교 측은 그럴 경우 갈등이 더 커질 수 있다며 학폭위의 연락을 기다려 달라고만 했다.


잠자코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사건이 빨리 종결되길 바랐던 건 아니다. 마누라와 나는 우리 집 애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할까봐 걱정이 됐을 뿐이다. 때문에 학폭위가 소집된 기간에는 애에게 TV 시청과 게임을 금지시켰고, 학교를 마치자마자 귀가하도록 했다. 애한테는 꽤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건 마누라와 나도 마찬가지였다. 평소에는 알아서 잘 놀던 애를 단속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다고 애한테 반성만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마누라와 나는 한 달 가까이 애와 줄곧 붙어 지냈고, 애는 고맙게도 우리의 요구를 군말 없이 잘 따라줬다. 반면 개똥이는 우리처럼 개똥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개똥이는 어머니와 단 둘이 살았고, 개똥이 어머니는 개똥이의 일과를 살뜰히 챙길 만큼 여유롭지 못했다. 말하자면 개똥이 주변에는 개똥이가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는지 알려줄 만한 어른이 없었다.


나는 개똥이에게 왜 그랬는지 물었다. 학폭위를 주관했던 선생님은 개똥이에게 말을 걸거나 사건에 관해 묻지 말라고 몇 번이나 당부했지만, 개똥이를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개똥이는 아끼던 장난감이 망가져서 속상했다고 했다. 자신보다 약한 친구를 괴롭히면 안 되는 줄 알지만, 속상한 건 어쩔 수 없었다며 울먹였다. 즉, 해당 사건을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보자면, 개똥이는 장난감이 망가진 게 속상했고, 다른 아이들은 속상한 개똥이를 도와주려고 했고, 다른 아이들에게는 말순이의 아픔보다 개똥이의 아픔이 우선이었던 셈이다. 그게 잘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아이들은 그게 큰 잘못인 줄 모를 수 있다는 얘기다. 심지어 개똥이는 학폭위의 조사가 더디게 진행되는 과정에서 말순이 탓을 하기 시작했고, 자신 역시 피해자라고 생각했다. 혹자는 그런 개똥이를 파렴치한 가해자라고 할 수도 있겠다. 개똥이가 아무리 어려도 따끔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일 수도 있겠다. 다 좋다. 그런데 거듭 말하지만, 그 파렴치한 가해자인 개똥이는 자신이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는지 깨닫지 못했다. 아무도 얘기해 주지 않았으니까. 무엇보다 개똥이는 자신을 향한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을 예민하게 알아차렸다. 개똥이는 말순이가 미울 수밖에 없었다.

 

『가시괴물의 비밀』이라는 동화책이 있다. 우리 집 애가 좋아하던 동화책인데, 애한테 밤마다 읽어주면서 나도 덩달아 좋아하게 됐다. 동화책의 내용을 간단히 얘기하자면, 다람쥐들이 사는 밤나무 숲속마을에는 오래 전부터 공포의 대상이 있었다. 그 공포의 대상은 강 건너 소나무 숲에 사는 가시괴물이었다. 가시괴물에 대한 두려움보다 가시괴물의 정체가 더 궁금했던 다람쥐들은 강을 건너기로 했다. 소나무 숲에서 가시괴물의 그림자를 발견한 다람쥐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런데 가시괴물은 사나운 괴물이 아니라 귀엽게 생긴 고슴도치였다. 오히려 고슴도치가 다람쥐들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만다. “꺄아아악! 큰꼬리괴물이다!” 라며.


『가시괴물의 비밀』은 두려움의 근원에 관한 다소 교훈적인 얘긴데, 나는 학폭위가 그 동화 속 다람쥐들보다 용기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학폭위는 오로지 아이들의 가해 행위에만 관심이 있었다. 정작 말순이의 피해 회복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뉘우칠 줄 모르는 개똥이를 알려고 하지 않았다. 개똥이를 향한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학폭위 전담 경찰관은 말순이 어머니가 요구하지도 않은 보상금부터 얘기했다. 그나마 해당 사건은 다른 학교 폭력 사례에 비해 큰 불화 없이 원만하게 마무리된 편이다. 가해자로 지목된 아이들은 학폭위가 끝난 뒤에야 각자 반성문을 쓰고 몇 시간씩 상담을 받았다. 학부모들도 몇 시간씩 상담을 받고 말순이 어머니와 따로 얘기할 시간도 가졌다. 말순이 어머니는 말순이가 다행히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당분간 말순이에게 접근할 수 없게 됐다. 마누라와 나는 애에게 학폭위의 그 징계를 이해시키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학교가 무지막지하게 넓다면 서로 마주치고 싶어도 못 마주치겠지만, 안타깝게도 학교는 그만큼 넓지 못했다. 학년이 달라도 종종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애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우리 집 애와 개똥이는 학폭위의 징계를 어기고 말았다. 도서관에서 마주친 말순이를 도저히 모른 척 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아이들은 말순이에게 미안하다며 용서를 구했고, 말순이는 괜찮다며 아이들을 용서했다고 한다. 누가 시킨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어른들은 서로 아는 척 해봐야 좋을 게 없다며 금지한 일이었다. 이 자리를 빌려 말순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우리는 누구든지 살면서 서로에게 때로는 괴물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그 괴물을 적대시할 수도 있고, 주변의 여론을 동원해 그 괴물을 사냥할 수도 있다. 합법적인 수단을 통해 그 괴물을 자기 인생에서 내쫓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말순이는 뜻밖에도 그 괴물과 다시 친구가 되기로 했다. 나는 살면서 그보다 큰 용기를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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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위원회 #학교폭력 #가시괴물의 비밀 #학교
4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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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r2008019

2017.07.31

어른들이 오히려 애들한테 좀 배워야겠네요. 사건 당사자(학생)한테 집중하지 못하고 사건을 일로만 처리하려고 하니 저모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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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1083

2017.07.30

좋은글 잘읽고갑니다. 자신의 아이가 가해자라면 어떻게 해야할지 현명한 조언이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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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글

2017.07.29

칼럼 제목이 너무 좋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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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득(만화가)

영화 <분노>에 이런 대사가 나와요. “자기 생각을 일단 글로 쓰는 놈이야.” 영화 속 형사들이 발견한 살인범의 결정적 단서였는데, 제 얘긴 줄 알았지 뭡니까. 생각을 멈추지 못해 거의 중독 수준으로 글쓰기에 열중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주로 술을 먹습니다. 틈틈이 애랑 놀고 집안일도 합니다. 마누라와 사소한 일로 싸우고 화해하고를 반복합니다. 그러다 시간이 남으면 가끔 만화도 만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