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듣기 좋게, 말하고 쓰는 게 중요해요
여전히 세상은 어렵게 말해야 인정을 해주는가? 일상의 작은 것들을 말하는 것은 중요치 않은가?
글ㆍ사진 엄지혜
2017.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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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고 책 읽는 시간을 좋아했어요. 그래도 내가 문학에 소질이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아주 잘 쓰는 것 같진 않아요(웃음). 다만, 말이나 글을 쓸 때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기 좋게 말하고 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기 생각을 최대한 정리하고 속으로 끌어내서 말하는 게 좋죠. 제 글을 보면 대부분 어려운 말이 없어요. 즉각적,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말을 쓰려고 노력해요. 그래서 문학적으로 매력 있는 글은 아닌 거 같아요(웃음).”


서천석 인터뷰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글은 편안한 글이다. 한 템포 쉬어가는 글. 여러 입장을 두루 살피는 글. 여백이 살짝 있는 글. 나는 트위터를 하지 않는데, 트위터는 감정적인 글들의 집합소이기 때문이다. 짧은 글은 아무래도 즉흥적이다. 쉽게 쓰고 쉽게 지울 수 있는 글은 유효기간이 짧다.

 

사회초년생 시절, 홍보회사에서 짧게 일했을 때 나는 사람을 만나는 일보다 보도자료를 쓰는 일이 좋았다. 글로 사람을 설득하는 게, 더 편했기 때문이다. 내가 쓴 보도자료를 그대로 긁어서 기사화하는 기자들의 기사를 읽으면서 혀를 찼다. ‘그래도 당신이 이름 걸고 쓰는데, 제목이라도 좀 수정하시지’. 아무리 바빠도 말이다. 물론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이해한다. 보도자료를 기사화 해준 것만으로도 고마워 해야 하는 상황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할 때 내가 생각하는 것은 독자, 인터뷰어, 인터뷰이, 매체다.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을 우선 듣는다. 들어줘야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도 해주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는 내가 궁금한 것들을 쭉 묻는다. 또 식상하더라도 상투적이더라도 독자가 궁금해할 것들을 묻는다. 마지막으로 내가 왜 이 인터뷰를 하지? 어떤 목적이 있지? 책을 홍보하는 인터뷰라면 응당 책의 장점을 나눈다.

 

인터뷰를 마치면 녹취를 푼다. 최대한 인터뷰이의 말투를 살려서. 하지만 구어체는 비문투성이다. 저자의 입말 습관을 살릴 필요도 있지만 가독성을 떨어뜨리면 안 된다. 앞뒤 말이 끊기면 중간에 적절한 배경을 보탠다. ‘내가 입으로 한 말이 아니잖아요! 왜 이런 접속사를 넣어요?’라고 항의하는 인터뷰이는 없다. 기사는 눈으로 본다. 소리 내어 읽지 않기 때문에 눈으로도 잘 읽혀야 한다. 긴 질문과 긴 대답만 쭉 보이면 답답하다. 가끔은 짧은 질문도 섞고 짧은 답변도 넣는다. ‘왜 우리가 한 대화의 순서를 바꿔요?’라고 항의하는 인터뷰이는 없다. 이해가 잘되도록 순서를 바꾸는 건 인터뷰어가 마땅히 할 일이다.

 

간혹 인터뷰하다가 마음이 톡 움직일 때가 있다. ‘상대가 내 질문을 진짜 듣고 있구나’ 느껴질 때. 그 눈빛을 읽으면 이야기가 속사포처럼 전개된다. 진짜 대화를 한다. 녹취를 풀다 뺄 대답이 없어서 진땀이 난다. 『서천석의 마음 읽는 시간』을 쓴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와의 인터뷰가 그랬다. 글과 말의 차이가 거의 없었던 저자. 글도 쉽게 말도 편안하게 했다.

 

글의 색은 여럿이다. 유식해 보이고자 어려운 한자어, 추상적인 표현을 뒤섞은 글이 있는가 하면, 독자가 쉽게 소화시킬 수 있도록 최대한 문장을 여러 번 고쳐 쓴 글이 있다. 때때로 독자들은 이해는 잘 안 가지만, 멋져 보이는 문장과 글을 선호한다. 왠지 읽고 있는 동안 내가 유식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논문조차 어렵게 쓰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건 독자의 폭을 좁히는 일이니까. 우리가 문학을 하는 건 아니니까. 아무리 어려운 용어라도 쉽게 풀어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몇 달 전 유명 소설가를 만났다.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책에 대해 물었다. “혹시 이 소설 읽어보셨어요?” 소설가는 “화제가 되길래 훑어보았으나 소설로써의 완성도는 떨어진다”고 말했다. 나에겐 지난해 읽은 최고의 소설이었는데. 집에 돌아가는 길에 글의 미학, 문장의 미학에 대해 곰곰 생각했다.

 

여전히 세상은 어렵게 말해야 인정을 하는 것 같다. 쉽게 말하면 짧게 생각했다고 여긴다. 일상의 작은 것들을 말하는 것은 중요치 않은가? 작게 보이는 것들은 정말 작은가? 언젠가 패스트푸드 같은 글은 사라질 것이다. 시즈닝을 가득 넣은 책은 몇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반품될 것이다. 소수의 독자만 발견할 수 있다 해도, 나는 알아듣기 좋게 쓰고 말하고자 노력하고 싶다.

 

서천석 인터뷰 다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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