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가 가득한 이 시대로부터 함께 도망치자, 함께 잠들자"
한국에 두 번째로 소개되는 천쓰홍의 소설 『67번째 천산갑』은 유년 시절 한 매트리스 광고 촬영장에서 처음 만난 이성애자인 '그녀'와 동성애자인 '그'의 평생에 걸친 우정을 담고 있다. 어린 시절 둘이 함께 찍은 영화가 프랑스 낭트 영화제에서 상영되면서, 중년이 된 '그'와 '그녀'는 다시 만나 아직 나누지 못한 이야기와 찾아야 할 누군가를 가슴에 안고 길을 나선다.
작가가 게이로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전면으로 내세운 이 소설은 게이인 주인공 ‘그’를 통해 성적지향에 대한 보수적 인식이 가득했던 과거부터, 동성혼이 합법화된 현재에 이르기까지 성소수자들이 겪는 고난과 비애를 생생하게 그렸다. 또한 전작 『귀신들의 땅』에서 다룬 여성에게 사회적으로 강요된 가부장적인 압박과 그로 인한 고통을 ‘그녀’를 통해 재현했다. 전작이 수많은 인물의 입을 빌려 여러 목소리를 쏟아냈다면, 『67번째 천산갑』은 오직 두 사람, ‘그녀’와 ‘그’의 인연을 축으로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인간의 고독과 상처를 하나씩 짚어 나간다.
결말부터 말하자면 이 소설은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실패의 아름다움, 인생에서 ‘도달하지 못함’의 소중함을 말하는 작가 천쓰홍. 그가 붙잡아 재료로 삼는 인생의 이야깃거리는 무엇일까.
정처 없이 헤매다 마주한 것들
책을 열면 산책에 관한 두 사람의 말로 시작합니다. ‘작가의 말’에서도 『67번째 천산갑』은 “산책의 결과물”이라고 하셨죠.
산책을 정말 좋아해요. 서울에 와서도 동대문부터 인사동, 명동 일대를 걸어 다녔어요. 저는 일부러 지도를 보지 않고 방향만 확인하면서 무작정 걸어요. 걷다가 맡는 냄새, 보는 풍경, 맛보는 길거리의 음식이 모두 소중한 경험이죠. 걷기는 세상을 인식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거든요. 저는 소설이 일상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천국이나 지옥이 아닌 사람이 사는 인간 세상에는 냄새도, 맛도 있으니까요.
주인공인 ‘그’와 ‘그녀’의 시점과 시공간이 시시각각 바뀌면서 이야기가 전개되잖아요. 그래서인지 소설을 읽는 동안 정처 없이 헤매는 듯한 기분도 들었어요. 『귀신들의 땅』에서도 비슷한 서술 방식으로 전개돼요.
시간이 흘러가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이끌 수도 있지만 그건 제게 너무 무료한 방식이에요. 저는 고양이가 가지고 노는 털 뭉치처럼 시간선이 얽혀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물론 작품을 준비할 때는 시간 순서대로 사건을 정리하지만 쓰면서 일부러 헝클어뜨리죠.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우리가 어떤 지점을 향해 가더라도 결국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잖아요. 시간은 삶에서 아주 중요한 것이지만 언제든 우리를 배반할 수 있고, 내가 직접 시간을 재구성할 수도 있다는 점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중국어는 영어나 한국어와 달리 동사의 과거형이 따로 없어서 중국어로 쓰인 소설은 시간을 따로 밝혀주지 않으면 현재인지, 미래인지, 과거인지 알 수 없어요. 『67번째 천산갑』은 두 주인공의 아주 어릴 때부터 청소년기, 중년까지의 시간선과 대만과 프랑스의 여러 공간이 혼재되어 있으니 독자가 더욱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죠. 복잡하다고 화를 내는 독자 반응을 보면 기분이 너무 좋아요. 쾌감을 느낍니다.
오히려 시공간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장편소설임에도 단숨에 읽게 되는 것 같아요. 『귀신들의 땅』 독자 반응을 찾아보니 책을 덮을 수가 없었다는 평도 많더라고요.
정말 기쁜데요. 처음 『귀신들의 땅』을 출간할 때, 분명히 잘 팔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혼란스러운 책을 다 읽는 사람이 나타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독자들이 SNS에 남긴 코멘트에도 직접 찾아가 답글도 남기시잖아요. 한국 독자에게도요.
한국어를 할 줄은 모르지만 구글 번역기를 활용해 키워드 검색을 해요. 후기를 읽는 것이 정말 재밌어요. 찾아가서 리트윗도 하고, 하트도 누르고, 이모지도 보내죠. 『귀신들의 땅』 후기를 올려주시는 독자 분들에게는 귀신 이모지를 보낼 때가 있는데, 독자들이 깜짝 놀라는 게 즐거워요. 『67번째 천산갑』 후기에는 천산갑 이모지를 보내려고 했는데 천산갑 이모지가 없어서 안타까워요.
두 주인공이 매트리스 광고 촬영장에서 인연을 맺었으니 침대 이모지를 보내면 어떨까요?
좋은 생각이네요. 앞으로 매트리스로 놀라게 해볼게요.
결국 도착하지 못하는 이야기
한국에서 천산갑이라는 동물이 익숙하지는 않아요. 천산갑은 어떻게 주인공이 되었나요?
서울 동물원에는 천산갑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대만의 낮은 산에 가면 천산갑을 종종 볼 수 있어요. 저는 천산갑을 아주 좋아해요. 부끄러움이 많아서 사람을 만나면 몸을 웅크려 공 모양이 되는데 정말 귀엽죠.
천산갑의 갑(甲)은 중국어로 jia라고 읽는데요. 대만에서 인터넷 용어로 게이를 뜻해요. 좋은 표현은 아니고, 혐오 표현으로 많이 쓰죠. 또, 천산갑이 야행성 동물인데 과거 보수적인 사회에서 게이들이 파트너를 찾기 위해 어두운 밤에 나갔다는 사실이 연상되기도 해요. 과거에는 천산갑이 정말 많이 살해당했어요. 천산갑 비늘이 남성 정력에 좋다는 말이 있어서 약으로 쓰이고, 산에 가면 천산갑 고기 요리 식당도 많았죠. 천산갑이 가지고 있는 여러 요소를 소설 속 ‘그’ 캐릭터와 중첩될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그’가 곧 천산갑인 셈이네요. 부끄럼도 많고 말수도 적고요. 반면에 ‘그녀’는 오랜 친구인 ‘그’를 만나자 쏟아내듯이 말을 해요.
‘그녀’는 자신의 마음속 불안을 말로 감추려고 하는 캐릭터예요. 사실 말이 많은 여성 캐릭터와 말이 없는 남성 캐릭터라고 설정하면서 걱정이 많았어요. 일종의 고정관념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저는 누나가 7명이라 말이 정말 많은 환경에서 자랐어요. 사람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여성들은 친구나 가족끼리 언어를 통해 활발히 교류하더라고요. 차를 마시면서 자기 속내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요. 제가 커서 남성 사회로 들어갔을 때 다들 말을 안 해서 대화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마음속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다는 게 여성들의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마흔 여덟 살인데요. 제 또래 남성들은 자기 감정을 드러내는 방법 자체를 모르는 것 같기도 해요. 둘 남성이 술을 마시러 가도 한마디 없이 끝까지 마실 수도 있어요. 언젠가는 남자 친구들을 데려와서 속내를 얘기해 보라고 강제로 시켜 보기도 했는데요. 모두 저에게 미쳤다고 하더라고요. 왕가위 감독의 영화 <화양연화>를 보면 마지막에 양조위가 구멍에 이야기를 하잖아요. 전형적인 아시아 남성의 언어적 결함을 잘 나타내는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소설 속 ‘그’ 역시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은 신체의 다른 언어인 눈물을 통해 말을 하는 거죠.
‘그’와 ‘그녀’는 ‘잠자리 친구’라는 특별한 관계로 인연을 맺어요. 어릴 적 매트리스 광고 촬영장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어린 시절 우정을 나누고, 함께 영화를 찍고, 중년이 되어 프랑스의 한 영화제에 초청받아 다시 만나게 되는데요. ‘잠자리 친구’라는 설정을 하게 된 이유도 궁금해요.
‘그’와 ‘그녀’는 어릴 때부터 베드신을 함께 찍으며 자란 사이예요. 영화에서 ‘베드신’이라고 하면 주로 섹슈얼한 장면을 의미하잖아요. 저는 다른 방식으로 베드신을 그리고 싶었어요. 매트리스라고 하면 보통은 성적인 부분을 많이 연상시키는데, 저는 ‘잠’이라는 속성에 더 집중하고 싶었죠. 많은 현대인이 불면증이 있다는 부분을 소설에 담고 싶기도 했고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 몸도 아프게 되잖아요.
누군가의 부인, 엄마, 며느리로만 지낼 뿐 자기 자신이 될 수 없던 ‘그녀’가 천산갑을 세어야 잠에 들 수 있을 정도로 불면증에 시달리는데 파리에서 옛 친구를 만나고 나서야 드디어 잠에 들었고, 자신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찾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사회가 여성에게 주는 억압이 너무 크다 보니 현대사회의 많은 여성들이 잘 자는 것조차 사치처럼 느껴질 때가 있겠다 싶었거든요. 전 세계의 여성들이 잠을 잘 잘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글을 썼습니다.
잘 자기에는 ‘그녀’의 인생이 너무 많은 폭력에 노출되었으니까요. 이번 소설에서도 주인공들이 받은 상처와 폭력이 잘 드러났던 것 같아요. 『귀신들의 땅』에서는 사회가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이 주가 되었다면, 『67번째 천산갑』은 주인공들이 여성으로서, 성소수자로서 개인이 일상에서 숨 쉬듯이 경험하는 크고 작은 폭력이 촘촘하게 느껴졌어요.
소설가가 소설을 쓸 때 폭력이라는 주제를 피할 수는 없어요. 인류 사회에는 권력관계가 항상 존재하고, 권력이 있는 곳에는 폭력이 있기 때문이죠. ‘그녀’는 생애 내내 폭력에 노출되어 있어요. 중국어로 ‘냉폭력(冷暴力)’이라는 말이 있는데, 부모가 아이를 방임하고 냉담하게 대하는 것도 하나의 폭력으로 보는 거예요. 한부모 가정에서 자란 ‘그녀’는 어릴 땐 엄마의 냉폭력, 커서는 남성으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습니다. 결혼하고 나서는 남편이 CCTV까지 설치해 감시하죠. 소설을 쓰면서 주변의 여성 친구들을 많이 인터뷰했는데, 상당수가 다양한 방식의 교제 폭력을 경험했어요. 그러면서도 폭력을 당했을 때 제일 먼저 상대방이 아닌 자기 잘못을 생각했다고 하더라고요. 가부장제 사회에서 태어나 죽을 때까지 평생 이런 폭력을 겪는 여성들이 정말 많아요. 남성으로서 소설 속의 여성만큼은 이러한 사회에 저항하고 맞부딪힐 수 있기를 바랐어요. 제 책을 읽는 독자가 이 책을 읽고 용기를 얻어서 자신이 당한 폭력을 깨닫고 도망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대만은 동성혼이 법제화되었고, 전보다는 나아졌다고 하지만 사회 곳곳의 차별은 여전히 만연해요. 정치인들이 표를 얻기 위해 동성혼을 지지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 자신의 가족이 게이나 레즈비언이 되면 안 된다는 경우도 종종 봤고요. 그런 위선적인 모습도 소설 속 캐릭터로 만들었어요.
한국에서 집은 물리적 공간의 집이자, 가족, 가정 등 편안하고 안식을 주는 여러 가지 의미로 함께 쓰이는데요. 읽는 내내 이 소설은 ‘집이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집을 떠나 나를 찾아 나서는 로드 무비 같기도 했고요.
집으로 돌아간다는 개념은 제가 천착하는 주제라고 볼 수 있어요. 우리가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 감정은 왜 복잡한지 자주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소설을 쓸 때 집이 가지고 있는 여러 모습을 그려내려고 해요. 추악함까지도요. 모든 가정이 가족사진처럼 화목한 모습은 아니죠. 소설가로서 제가 포착하고 싶은 것은 가족사진을 찍을 때 플래시가 터지고 나서 웃음 뒤에 짓는 사람들의 표정이에요. 한국어와 달리 중국어로는 하우스(House)와 홈(Home)의 개념이 다른데요. 가정이라는 의미로서 집을 생각해 본다면, 따뜻하고 안전하면서 동시에 되게 폭력적인 공간이 될 수도 있죠. 가족이야말로 가장 큰 상처를 줄 수 있는 존재니까요.
‘그’와 ‘그녀’의 이름이 말미에 정확한 이름이 아닌 병음으로만 공개되는 이유와도 통할 것 같아요.
이름은 자신이 정하는 게 아니라 부모가 주는 거잖아요. 내가 지은 게 아닌 데도 평생을 따라다니죠. 사람이라는 존재에 태그(이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자기 자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이 부분은 자세히 말씀드리기는 어려워요. 독자분들께서 자유롭게 원하는 대로 해석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낭트로 향하던 두 주인공은 결국 도착하지 못합니다. 원하는 곳에 도착하진 못했어도 역설적으로 그 과정에서는 본인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처럼 보였어요. ‘작가의 말’에서도 “우리가 소중히 여겨야 할 것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인생의 ‘도달하지 못함’”이라고 하셨죠.
소설 속에서 가장 재미있는 캐릭터는 실패자예요. 엄청나게 성공하고 되게 행복한 사람의 이야기는 일단 재미가 없죠. 하지만 모든 걸 다 얻은 것처럼 보이는 그런 사람들의 마음속 어딘가에도 여전히 이루지 못한, 아마 절대 이룰 수 없는 뭔가가 숨겨져 있을 거예요. 도달하고 싶지만 도달하지 못한, 이루고 싶지만 이룰 수 없는 유감스러운 아쉬움이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되었어요. 파리에 가보고 싶지만 평생 못 갈 수도 있고, 친구와 5년 후를 기약하며 약속했지만 지키지 못할 수도 있고요. 인생에는 각양각색의 유감과 후회가 남아 있는데, 놀랍게도 이런 아쉬움이 오히려 미학적으로 작용하기도 해요. 그래서 실패자의 인생은 알고 보면 되게 재미있고,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죠. 저는 영원히 소설 속에 실패자의 이야기를 담고 싶어요. 독자들도 용감하게, 자신이 실패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좋겠어요.
게이이고, 결혼도 안 했고, 애도 없고, 사회가 정의하는 어떤 기준으로 본다면 저도 실패자죠. 살면서 많은 상처를 받았지만, 어차피 실패한 삶이라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더 많은 여유 공간이 생겼어요. 자유로워진 거죠. 용기가 생겼고 더 많은 도전을 더 하게 되었어요. 이제는 실패가 두렵지 않아요.
이야기 뒤 더 넓은 세상
이번에 처음 한국에 방문하셨죠. 북토크와 서울국제작가축제를 통해 한국 작가들도 많이 만나셨다고요.
한국 작가들이 이야기를 굉장히 잘한다고 생각해요. 대만 작가로서 많은 한국 소설이 영상화된다는 점은 특히 부러워요. 한국은 사실상 영상 산업의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나라잖아요. 이번에 『대도시의 사랑법』이 영화와 드라마로 공개된다는 사실을 들었는데 정말 부럽더라고요.
대만에서는 아직 한국 소설이 많이 출간되지는 않았는데, 최근에는 늘어나는 추세인 것 같아요. 영문 번역서는 매우 많죠.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정보라 작가의 『저주토끼』, 박상영 작가의 『대도시의 사랑법』 등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박상영 작가는 북토크에서, 정보라 작가는 서울국제작가축제 행사에서 만날 수 있어서 즐거웠어요. 저와 정보라 작가님 소설에 귀신이 많이 등장하는데, 마침 정 작가님께서 귀신 모양 펜을 선물해 주셨답니다.
주로 어떤 대화를 나눴나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한국에 와서 홍상수 감독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신기하게도 한국에서 함께 대화를 나눈 분들 중 많은 분이 홍상수 감독과 연결 지점이 있더라고요. 심지어 민음사 직원 중 한 분은 홍상수 감독의 학생이었어요. 덕분에 감독님에 대한 소소한 정보를 많이 알게 되었어요. 저는 독일 베를린에 살고 있는데, 현지에서 한국 영화를 말하면 모두 홍상수를 말할 정도로 감독님의 인기가 대단하거든요. 베를린에서나 서울에서나 모두가 홍상수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 재밌었어요.
작가님께 문학만큼이나 영화도 각별하잖아요. 영화배우로도 활동하셨고, 소설에서도 영화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오고요.
어릴 때 용징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자랐는데 영화관이 없어서 영화를 보려면 누나와 함께 위안린이라는 도시까지 가야 했어요. 당시에는 영화를 보는 게 너무 정중한 행사라 가난하더라도 옷을 차려입고 갔죠. 깜깜한 곳에서 영화가 시작하면, 스크린 안에 다른 세상, 다른 사람들이 펼쳐지는 게 마술 같았어요. 세상에는 용징만 있는 게 아니구나, 나도 저 영화 속에 있는 뉴욕에, 파리에 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죠. 영화는 제게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가 있는지 알려줬어요. 소설만큼이나 저를 구원했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영화관에 가면 영화에만 집중하며 객석에 앉아 있는 모든 사람과 함께 울고 웃는 게 좋아요. OTT로도 수없이 많은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대지만, 오로지 영화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경험이 너무 소중하잖아요. 젊은 분들이 영화관에 많이 가셨으면 좋겠어요.
곧 출간되는 새로운 소설은 어떤 이야기인가요?
세 자매에 관한 이야기예요. 양말 공장으로 돈을 많이 번, 용징 옆에 있는 서터우라는 지역과 관련된 내용이에요. 여태까지는 비극을 많이 썼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블랙 유머를 시도했어요. 저는 분명히 문학적 걸작이라고 생각하는데, 제 말이 맞는지 제가 망상을 하는 건지 독자분들의 평가를 얼른 듣고 싶네요.
이참슬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