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 빌레프-프로토포포브, <묘지로 향하는 길>, 1941년
‘개고기’에 대한 인식이 점점 바뀌게 된 이유는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서이기도 하지만 개와 사람의 관계 맺는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한 공간에서 뒹굴고 함께 산책을 하며 ‘가족’이 되면 먹기가 어렵다. ‘누구’를 먹느냐는 자연의 생태계에 달린 문제이기도 하지만 인간이 만든 사회적 환경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목숨 걸고 옥자를 구한 미자도 닭은 잘 먹는다.
국립공원 안에서는 동물이 어느 정도 주인이기에 공원 안에서 갑자기 동물이 나타나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가던 길을 멈춘다.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인 미국 옐로스톤에서 들소는 그 공간의 주인이며 동시에 인간들의 구경거리다. 동물원과의 차이점은 울타리가 없으며 조심해야 할 입장이 명확하게 인간이라는 점이다. 들소 가족이 모두 지나갈 때까지 사람들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린다. 그곳에서 동물들은 사냥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인간은 그들의 공간을 존중해야 한다는 약속을 공유한다. 그러나 국립공원 밖에 나오면 이 약속은 깨진다. 국립공원에서 존중하던 대상들을 ‘관람’하고 나와서는 공원 밖의 식당에서 질 좋은 ‘고기’를 찾아 먹는다. 조금 전 공원 안에서 본 평화로운 들소가 직접 간판에 등장하여 자신을 먹으러 오라고 방긋 웃는 얼굴로 접시를 들고 서 있다. 고속도로에는 로드킬로 죽은 동물 사체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미처 피하지 못했다면 운전자는 어쩔 수 없이 동물을 죽이게 된다.
국립공원에서 동물은 나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공간을 보장받으며 살던 하나의 생명이었다가, 고속도로 위에서는 인간의 진로를 훼방 놓는 위험물이고, 식당에서는 인간의 배를 채워주는 먹거리가 되는 셈이다. 이들은 하나의 존재이지만 이렇게 인간과 관계 맺는 상황에 따라 정체가 달라진다. 더구나 로드킬로 죽은 동물에게는 동정심을 가질지라도 먹기 위해서는 의식적으로 동정심을 거둔다. 먹거리가 된다는 것은 가장 비인격적인 대상이 됨을 의미한다. 감정을 교류하는 대상을 어찌 먹을 수 있겠는가.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넘어 인간과 인간의 관계도 얼마든지 서로에게 ‘먹이’가 되는 상황이 있다. 어린아이를 잡아먹는 거인이 나오는 『제랄다와 거인』, 역시 아이를 잡아먹는 마녀가 나오는 『헨젤과 그레텔』을 비롯하여 인간이 인간을 먹는 이야기는 동화와 신화 속에 자주 등장한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원래 내용은 공주의 결혼생활까지 담고 있다. 공주의 시어머니, 그러니까 키스로 공주를 깨운 왕자의 어머니는 며느리인 이 공주를 잡아먹으려다가 실패한다. 사람이 사람을 먹는 이야기는 꾸준히 있지만 식인종이 있다기보다 식인을 하는 상황이 있다. 인간은 ‘상황의 동물’이다.
1972년에 발생한 비행기 사고를 영화화한 <얼라이브>에는 평범한 인간들이 어떻게 식인을 하게 되는지 보여준다. 안데스산맥에 비행기가 불시착했고, 살아남은 승객들은 구조를 기다리는 72일 동안 눈 속에서 얼어붙은 사망자의 시체를 먹으며 버틴다. 이처럼 사람이 사람을 먹는 이유는 극단적인 배고픔 때문일 수도 있고, 카니발리즘처럼 일종의 관습인 경우도 있다.
레닌그라드. 지금은 상트 페테르부르크라는 원래 이름으로 돌아온 도시가 레닌그라드로 불리던 시절. 1941년 9월 8일부터 1944년 1월 27일까지 872일간 벌어진 레닌드라드 포위전은 대부분의 전쟁이 그렇듯이 내 상상의 범주를 벗어난다. 기록과 그림, 사진, 생존자의 증언으로 그 비참함의 정도를 더듬어 보는 정도다. 2차 대전 중에 발생한 이 포위전은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전투로 알려져 있다. 독일군은 총으로 직접 적군을 죽이기보다 포위를 통해 배고픔으로 비무장의 시민들이 스스로 죽거나 서로 죽이도록 만들었다. 레닌그라드 시민들은 항복하지 않고 굶어 죽어가며 버텼다. ‘레닌그라드’라고도 불리는 쇼스타코비치의 7번 교향곡이 바로 독일이 레닌그라드를 침공한 그해에 완성되었다.
님마 네라토프, <빵집에서 : 빵 배급하기>, 1941년
노동자는 250g, 노동자가 아닌 어른이나 아이는 125g의 빵만 지급받을 수 있었다. 평소와 다르게 군인과 노동자가 배급의 1순위다. 전쟁 시 국가에 가장 필요한 인력이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제대로 된 곡물로 만들기 어려워 톱밥을 섞은 빵을 먹어야 했다. 톱밥이 들어간 빵은 어떤 식감과 맛일까.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식재료란 생각보다 무궁무진하다는 슬픈 깨달음이 찾아 왔다. 하루 겨우 125ㅎ의 질 나쁜 빵으로 버티다 겨우 살아남은 한 생존자는 “나는 솔잎의 맛을 잊을 수 없을 거예요”라고 했다. 배고픔 속에서 뜯어먹는 솔잎의 맛이란 솔잎차를 통해서 느끼는 향과 얼마나 닮았을까. 아이티 지진 때 진흙으로 만든 쿠키를 먹던 아이들의 모습을 신문에서 본 적 있다. 중국 공산당은 대장정 시절 구두와 허리띠를 삶아 먹고 나중에는 다른 사람의 배설물을 헹궈 소화 안 된 곡물들을 먹었다고 한다.
이처럼 극단적 상황에 처했을 때 사물과 사람, 동물의 관계들은 조금씩 붕괴된다. 세상 만물이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전환된다. 900일 가까운 고립 속에서 배고픔은 레닌그라드를 무덤으로 만들어갔다. 식료품이 떨어지면 우선 집에서 함께 살던 동물들이 식용이 된다. 동물이란 동물을 다 먹고 나면 죽은 사람을 먹고, 나중에는 먹기 위해 산 사람을 죽인다. 남을 먹다가 가족을 먹을 수도 있다. 기르던 개와 고양이는 가족이 아니라 ‘그것’으로, 급기야 사람도 ‘그것’이 된다. 당시 어린아이들이 기아로 인해 얼마나 많이 희생되었는지는 기록이 정확하게 남아 있지 않다.
이름이 있었던, 부르면 내게로 왔던, 혹은 나를 부를 수 있었던 그 생명체는 오직 나의 먹거리가 되어 숨을 멈춘 채 식탁에 오른다. 이 극도의 배고픔 속에서도 예술작품을 창작하고 지키는 인간들이 있다. 인류 최초의 문명인 수메르 문명의 유물들을 볼 때마다 인간에게 ‘장미’는 기본권임을 재확인하곤 했다. 허름한 토기 하나에도 실용과 무관한 미를 추구한 흔적들이 있다.
그렇다면 전쟁 속에서 미술관이란 어떤 장소일까. 미술관은 평화 시에는 약탈을 자행한 흔적이 진열되는 곳이지만 전쟁 시에는 약탈당할 위험에 놓이게 되는 대표적인 장소다. 모든 박물관은 기억의 물리적 소장품이 있는 곳이다. 그 기억을 둘러싸고 지키려는 사람과 파괴하거나 빼앗으려는 힘이 있다. 이는 곧 이야기를 둘러싼 대립이기도 하다. 당시 에르미타주 미술관 직원들은 굶어 죽어 가면서 미술관을 지켰다.
소설 『레닌그라드의 성모마리아』는 미술관에서 일하는 마리나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그의 젊은 시절과 미국 망명 후 노년이 된 현재를 다룬다. 마리나의 현재는 기억을 잃어가는 알츠하이머 환자지만 그에게 기억은 한때 생명줄이었다. 레닌그라드 포위전이 시작되자 작품을 다른 곳으로 이송하면서 미술관은 점점 비어갔다. 마리나는 작품을 상상하며 마치 그 자리에 진짜 그림이 있는 것처럼 기억에 의존해 관람객에게 설명한다. 한편으로 마리나는 식탁에서는 소시지, 수박, 절인 무의 맛을 상상하며 먹는다. 현실은 빈 액자뿐이지만 액자 안의 그림을 상상하고, 작은 빵뿐이지만 곁들여 먹는 다른 음식을 상상한다. 절대적 빈곤과 비참함이 만들어낸 절박한 상상의 힘이다.
인간은 기억 때문에 버티고 때로는 그 기억이 고통을 유발한다. 해방의 세계이며 동시에 영원한 감옥인 기억. 기억의 정치화는 바로 기록과 재현이다. 고통스러운 배고픔과 죽음의 행진마저 인간이 기록하고 재현하는 이유가 아니겠는가.
이라영(예술사회학 연구자)
프랑스에서 예술사회학을 공부했다. 현재는 미국에 거주하며 예술과 정치에 대한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 『여자 사람, 여자』(전자책), 『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