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지널 <스타워즈> 3부작을 실시간으로 극장에서 접한 이 중 대부분은 캐리 피셔가 연기한 레아 공주를 떠올릴 때 에피소드 6 <제다이의 귀환>(1983)의 황금 비키니를 이야기한다. 자바 더 헛에게 포로로 붙잡혀 목줄이 묶인 채 입고 있었던 문제의 황금 비키니. 그러나 레아 공주가 그런 옷을 입은 게 저항군의 일원 자격으로 한 솔로(해리슨 포드)를 구출하는 작전을 수행하다가 잡혔기 때문이었다는 사실까지 함께 언급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오리지널 <스타워즈> 시리즈 내내 레아가 받았던 대접이 그랬다. 루크(마크 해밀)처럼 포스를 운용할 수 있는 혈통을 타고 났지만, <스타워즈>의 작가들과 조지 루카스는 레아에게 한번도 광선검을 쥐어 주지 않았다. 레아는 늘 저항군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위험한 작전 지역에 직접 투입되어 활약하는 걸 멈춘 적이 없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도와줘요, 오비완 케노비!”라는 대사로 레아를 기억한다. 위기에 빠져 구조를 기다리는 ‘공주’의 이미지로.
‘공주’나 ‘비키니’ 같은 키워드로 과소평가되었지만 언제나 영웅적인 활약을 펼치길 멈추지 않았던 배역. 캐리 피셔의 삶도 그와 비슷했다고 말하면 너무 큰 비약일까. 캐리 피셔는 온 생애를 약물 중독과 조울증에 맞서 싸웠고, 그 과정에서 왕성한 집필활동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치열했던 성장과정과 조울증을 이겨낸 과정을 소설로 써내려갔고, 그 소설은 다시 영화 <헐리웃 스토리>(원제: Postcards From The Edge, 1990)가 되었다. 캐리 피셔는 90년대부터 <시스터 액트>(1992)나 <라스트 액션 히어로>(1993), <리버 와일드>(1994), <웨딩 싱어>(1998)와 같은 헐리우드 영화의 시나리오를 각색하고 다듬는 ‘스크립트 닥터’로 이름이 높았고 <위시풀 드링킹>(2008), <프린세스 다이어리스트>(2016) 등 장르를 넘나들며 저서를 남긴 작가로 활동했다. 세상은 끊임없이 ‘레아 공주’라는 필터를 통해서 캐리 피셔를 바라보려 했지만, 캐리 피셔는 그 이미지를 때로는 배반하고 때로는 확장하며 온전히 제 자신으로 설 수 있었다.
캐리 피셔의 1주기를 보름 남짓 남겨두고 개봉하는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의 예고편, 이미 전작인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에서 오리지널 3부작의 영웅 중 유일하게 한 번도 싸움을 멈추지 않은 저항군의 어른으로 등장해 수많은 팬들의 환호를 자아냈던 레아는 <라스트 제다이>의 예고편에서도 비극의 무게 중심을 잡고 담대한 표정으로 전장을 향한다. 한참 긴장의 속도를 높이던 예고편은 캐리 피셔가 연기하는 레아 오르가나 ‘장군’ 앞에서 잠시 속도를 줄이고 그 얼굴을 한참 바라본다. 어쩌면 그 잠깐의 멈춤은, <스타워즈> 시리즈와 인생 양쪽에서 내내 영웅의 행보를 멈춘 적 없었던 캐리 피셔에게 보내는 제작진의 사랑고백이었을 것이다.
이승한(TV 칼럼니스트)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