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연희를 품은 뮤지컬 <판>
19세기 말 조선, 춘섬의 매설방(이야기방), 잽이들의 장단이 들려오자, 달수는 부채를 들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2017. 12. 13.)
글ㆍ사진 윤하정
2017.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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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에서

 

뮤지컬 <판>이 재연에 들어갔다. 19세기 말 양반가 자제인 ‘달수’가 조선 최고의 전기수 ‘호태’를 만나 이야기꾼이 되는 내용이다. 전기수라는 독특한 소재와 곳곳에 깃든 사회 풍자, 뮤지컬이라고는 하지만 퓨전 마당놀이를 보는 듯한 참신한 무대로 지난 3월 대학로 초연 때부터 관객 평이 좋았던 작품이다. 정동극장으로 무대를 옮긴 재연은 전통 요소를 더하고 좀 더 해학 넘치는 한 판으로 신명나는 무대를 펼쳐 보이고 있는데, 관객들의 반응은 어떨까? 객석에서 들었던, 혹은 들릴 법한 이야기들을 각색해 보았다.

 

1층 B열 45번 : 조선시대에 ‘전기수’라는 게 있었군?

 

1층 B열 46번 : 요즘은 청계천에 가면 만날 수 있지(웃음). ‘전기수(傳奇?)’는 말 그대로 ‘기이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노인’이라는 뜻인데, 거리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소설을 재미있게 읽어주는 사람을 일컬었대. 조선 후기에는 이렇게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며 먹고 사는 전문 이야기꾼이 상당히 많았다고 해.

 

1층 B열 45번 : 전기수가 직업이 될 정도면 그만큼 수요가 많았다는 얘기인데, 조선시대에는 즐길 거리가 많지 않아서였을까? 그래도 책은 있었을 텐데 말이야.

 

1층 B열 46번 : 당시 소설은 매우 유행했다는군. 남녀노소, 양반, 상민 할 것 없이 누구나 소설을 읽고 싶어 했대. 그래서 책을 빌려주는 세책가가 성행하고, 싼값에 찍어낸 방각본 소설도 나오고, 날마다 한양 거리를 뛰어다니며 책을 파는 책장수도 많았다고 해. 문제는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이 많고, 책값도 워낙 비쌌다는 것이지. 

 

1층 B열 45번 : 가난하고 글도 모르는 당시 서민들에게는 전기수가 그야말로 인기 절정이었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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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B열 46번 : 전기수는 동대문 밖에 살았는데, 『숙향전』,『 소대성전』, 『심청전』 등 한글로 된 소설을 잘 읽었다는군. 매달 1일은 초교(종로 6가) 아래에서, 2일은 이교(종로 5가) 아래에서, 3일은 이현(배오개) 시장에서, 4일은 교동(낙원동) 입구에서, 5일은 대사동(인사동) 입구에서, 6일은 종각(보신각) 앞에서 소설을 읽고, 7일부터는 다시 거슬러 올라갔다가 내려오기를 반복하며 한 달을 마쳤다고 해. 워낙 재미있게 얘기해서 사람들이 겹겹이 담을 쌓고 들었는데, 가장 결정적인 대목에서 갑자기 읽기를 뚝 멈췄다는군. 그러면 사람들이 뒷얘기가 궁금해서 다투어 돈을 던졌다지 뭐야(웃음).

 

1층 B열 45번 : 요즘으로 치면 연출 겸 연기를 겸해야겠군. 목소리 연기는 물론이고 표정, 몸짓, 성대모사까지 완벽해야 하지 않겠어? 그런 차원에서 뮤지컬 <판>의 연기자들에게도 큰 박수를 보내고 싶어. 모두가 조선시대 전기수처럼 1인 다역에 노래, 춤, 연주, 인형극까지 다재다능한 모습을 보여줬잖아.

1층 B열 46번 : 워낙에 재주들이 많은 것 같고, 연습도 많이 했겠지. 그리고 모든 배역이 원캐스트라서 더 찰진 연기가 가능할 거야. 초연 때부터 참여했던 배우들도 많고. 창작 공연이라서 함께 극을 만들어가는 배우들의 애정과 몰입도도 높을 테고 말이야.

 

1층 B열 45번 : 호태 역의 김지훈 씨는 조선 최고의 전기수답게 연기며 성대모사며 능청스럽기가 이를 데 없더군. 전통적인 몸짓도 잘 어울리고. 그에 비해 달수 역의 김지철 씨는 뮤지컬배우처럼 보였지만(웃음), 양반 자제가 저잣거리의 이야기꾼이 되는 과정을 담은 거니까 오히려 그 이질감이 더 어울렸어. 윤진영 씨는 나중에야 개그맨인 걸 알았는데, 재주가 정말 많더라고. 사또 등 주요 역할은 물론이고 극의 감초 역할까지 톡톡히 해내잖아. 이번 작품은 내용은 물론이고 의상이나 음악, 소품 등 모두 여느 뮤지컬과 달리 전통적인 색채가 짙어서 배우들이 준비하면서 고생을 많이 했을 것 같아.

 

1층 B열 46번 : 특히 인형극은 연습을 많이 했겠더라고. 두 배우가 작은 인형 하나를 잡고 손짓, 몸짓까지 맞추며 연기해야 하는데, 두 사람의 호흡이 중요해서 연습한 만큼 자연스럽게 표현될 테니까. 그리고 ‘산받이’ 역할도 힘들 것 같아. 일종의 해설자인데, <판>에서는 라이브 연주도 하고 배우들, 관객들과 대사도 주고받잖아. 아무튼 재연 무대는 초연 때보다는 확실히 전통적인 색채가 짙어졌어. 악기 편성에 있어서도 대금과 아쟁이 추가되고, 서양 장단을 국악적으로 만든 동살풀이 장단을 활용한 곡들도 있고. 배우들도 우리 전통의 움직임과 소리를 표현하는 데 좀 더 능숙할 수 있도록 양주별산대놀이 고기혁 선생, 국악인 전영랑 선생 등과 특별 워크숍도 했다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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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B열 45번 : 뮤지컬이라는 탈을 쓰고 있지만 전통 연희에 가까운 무대인 것 같아. 그래서 ‘뮤지컬’보다는 ‘퓨전 마당놀이’, ‘현대식 전통 연희’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까 싶더라고. 정동극장으로 옮기면서 좀 더 전통의 맛을 살렸겠지? 그런 차원에서 래퍼들이 있는 포스터는 작품과 어울리지는 않는 것 같아. 전기수 얘기를 힙합으로 푼 것도 아닌데 말이야. 일단 눈에 안 들어와. 초연 때 포스터가 더 나은 것 같아(웃음).

 

1층 B열 46번 : 뮤지컬이라는 표현이 이번 무대는 확실히 안 어울리지. 서울예술단이 ‘창작가무극’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처럼 정동극장만의 특별한 표현을 만들어도 좋을 것 같아. 한국적인 것을 고수하되 옛것이 아니라 참신한 작품이라는 느낌이 들도록 말이야.     

 

1층 B열 45번 : 사회 풍자는 어땠어? 초연 때와는 달리 요즘 이슈들이 반영됐던데, 단어만 들어도 쉽게 사안을 떠올릴 수 있겠더라고. 관객들 반응도 좋은 것 같아. 

 

1층 B열 46번 : 무대와 객석이 공감대를 이룰 수 있는 건 좋지. 그런데 이 작품이 전문 이야기꾼이 된 달수가 과거를 회상하는 극중극 형식이고, 중간에 여러 이야기도 전개되고, 배우들도 다양한 인물을 연기하는데, 조선시대에서 갑자기 요즘 사회 현안까지 오가니까 좀 산만하더라고. 연결이 자연스럽지도 않고. 극 안에도 조선시대의 신분제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꿈을 실현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불평등, 불합리한 각종 규제, 이야기에서 고단한 현실을 잊는 평민들의 모습 등 지금을 짚어볼 수 있는 소재들이 많으니까 현 사회를 꼬집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던데.

 

1층 B열 45번 : 하긴 전기수들도 하고 싶은 얘기가 얼마나 많았겠어. 하지만 장기적으로 인기를 얻으려면 결국 ‘선택과 집중’을 잘해야 하지. <판>도 조선시대와 2017년을 오가지 않고, 작품 안에서 지금의 사회를 엿볼 수 있도록 녹여내면 좋을 것 같아. 구체적인 단어가 언급되지 않아도 현 사회를 꼬집을 수 있다면 그게 좀 더 맛깔 나는 풍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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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