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영의 읽는인간]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책
‘책책책’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프랑소와 엄과 생선, 그리고 캘리가 한 주제로 여러분께 소개하고 싶은 책을 영업하는 시간입니다.
글ㆍ사진 신연선
2018.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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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소와 엄 : 2주 동안 두 분이 얼마나 영업하셨는지 제가 이번 주부터 영업실적을 보고 받으려고요.(웃음) 저는 방금 메시지를 받았는데요. 최근에 연애를 시작한 절친 후배가 있거든요. 이 분이 제가 추천한 『사랑한다면 왜』 를 두 권 샀대요. 남자친구와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기로 했다고요. 그리고 ‘책책책’에서 소개한 『배움에 관하여』 를 며칠 전에 인스타에 올렸는데요. 몇 분이 댓글로 호감을 보이셨어요. 실적이 0은 아니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웃음)

 

캘리 : 저도 지난 시간에 소개한 정희진 선생님의 『혼자서 본 영화』 영업에 성공했습니다. 제가 친구들한테 저희 방송을 영업하고 있거든요. 방송을 들은 한 친구가 책 재미있을 것 같다면서 샀다고 연락을 줬어요.

 

생선 : 저는 실적 0이고요. 사실 베이킹 소다에 관련된 책을 웬만해서는 돈을 주고 사고 싶진 않을 것 같아요. 하지만 베이킹 소다의 기적을 본 사람들은 많죠.

 

프랑소와 엄 : 오늘 주제가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책’인데요. 제가 이 주제로 하자고 했는데요. 그래 놓고 주제가 너무 어려워서 고민을 했어요. 이 주제는 사실 어떤 책인가 보다는 왜 그 책인가가 더 궁금해지는 주제인 것 같아요.

 

 

프랑소와 엄이 추천하는 책

 

『나의 첫 젠더수업』
김고연주 저 | 창비

 

창비 청소년문고 시리즈 27번째 책인데요. 작년이 이 책을 읽으려고 책꽂이에 꽂아두었다가 언제쯤 읽을까 하던 책이었어요. 청소년 책이라고 하면 사실 제가 아는 내용일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청소년 책들 일부러 챙겨볼 때가 있어요. 좋은 책들도 많거든요. 그래서 이번 주제에 맞는 책이지 않을까, 생각하고 읽었습니다. 더 일찍 알았다면 그 동안 했던 실수나 잘못된 생각들을 하지 않았을 수 있었겠다, 싶은 거죠.

 

‘젠더’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성(性)이죠. 책의 저자이신 김고연주 선생님이 현재 ‘서울시 젠더자문관’이세요. 『82년생 김지영』 의 작품해설을 써주신 분이기도 하죠. 소설을 읽고 작품해설을 읽는데 정말 좋았거든요. 그때 이 분의 이름을 알게 됐어요. 마침 이 책을 쓰셔서 열심히 읽었어요. 젠더에 대해 올바른 관점을 세우고 싶은 청소년이나 자녀를 키우면서 젠더 교육에 대해 궁금해하시는 학부모 분들, 교사 분들, 젠더 감수성을 높일 수 있는 재미있고 쉬운 교양서를 찾는 분들을 위한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도 페미니즘에 대해 공부하려고 하지만 어려운 부분도 있고 그런데요. 이 책은 실생활에서 내가 잘못 알고 있던 것들에 대해 많이 알려주기 때문에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자녀를 키우시는 분들이 읽으면 나도 모르게 편협적인 사고방식으로 하는 말들이나 행동 등에 대해 굉장히 생각할 것들이 많으실 거예요.

 

실험을 해봤대요. 생후 3개월 된 아이들은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지 못한대요. 돌 무렵이 되어서야 남자 목소리를 들려주면 남자가 나오는 화면을 쳐다본다는 거예요. 또 4세 아이들에게 여자 마네킹, 남자 마네킹을 주고 엄마, 아빠처럼 꾸며보라고 했더니 남자 마네킹에 양복과 치마를 입혔대요. 그런데 6세 아이들은 여자 마네킹에는 여자 옷만, 남자 마네킹에는 남자 옷만 입혔다는 거죠. 학습된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그나저나 제가 깜짝 전화연결을 해왔잖아요. 이 책 편집자 분과 인연이 없어서 메일로 번호를 여쭸는데요. 우선, 전화번호를 안 가르쳐주셨어요. 메일에 이렇게 말씀을 하시더군요. ‘제가 말을 잘 못해서요. 전화 연결을 하려고 했으나 안타깝게도 담당 편집자가 너무 부끄러움이 많다는 소문을 듣고 이메일로 답을 받는 새로운 형식을 개발했다고 하시면 어떨까요? 출판계에 이렇게 소심한 직원들이 많았다는 소문은 사실이었다고 하면서요.’ 라고 대본을 써주셨어요.(웃음) 굉장히 센스 있으신 분이시죠. 이 분이 자신의 글을 읽은 후 음성 변조를 해도 재미있겠다는 팁까지 주셨어요. 감사의 마음을 먼저 전하고요. 프롤로그를 읽어드린 후 편집자 분의 답변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이 글이 아니었으면 편집자 분께 전화를 할까 말까 망설였을 텐데 이 글을 읽고서 용기를 갖고 연락을 드린 거거든요.

 

이 책이 나오기까지 3년도 넘는 시간이 걸렸어요. 임신했을 때 쓰기 시작했는데 이제 딸아이가 세 살이 되었네요. 임신과 출산, 육아를 하면서, 또 2017년부터는 풀타임으로 일하면서 책을 꾸준히 쓰기란 정말 어렵더군요. 김선아 편집자가 없었더라면 이 책은 시작도, 마무리도 하지 못했을 거예요. 지난한 시간 동안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정신이 자주 ‘가출’하는 저를 지치지 않고 이끌어준 편집자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6-7쪽)

 

먼저 이 책을 기획한 계기에 대해 여쭤봤어요. 이렇게 답변해주셨어요.

 

‘청소년 기는 어린이였던 이들이 남자, 여자로 각각 분화하는 시기잖아요. 남성성, 여성성에 대한 편견을 본격적으로 익히는 시기이기도 하고요. 청소년들이 자기 자신을 긍정할 수 있도록 괜찮은 성별 정체성을 형성해가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서 이 책을 기획하게 되었어요. 선생님께 기획 의도를 이야기했더니 저자 분도 격하게 공감하셨어요. 젠더 교육은 조기 교육이 중요하다면서요. 다 큰 어른들의 생각을 바꾸는 건 너무 힘들잖아요.’

 

두 번째로, 저자 분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물었더니 한 줄, 임팩트 있게 보내주셨어요.

 

‘다음 책 계약하시죠.’

 

이 저자 분과 얼마나 좋았는지 딱 알 수 있는 거죠. 마지막으로, 이 책을 어떤 독자에게 소개하면 좋을지 여쭸어요.

 

‘청소년이나 남자, 여자, 모두 읽었으면 좋겠어요. 어른이라고 다 아는 건 아니잖아요? 고정관념을 깨주는 여러 가지 새로운 지식들이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으니 젠더에 대해 기초가 조금 부족하다고 느끼는 성인들도 한 번씩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저도 젠더 의식이 아주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 입장인데도 모르는 내용이 굉장히 많았거든요. 청소년 책이라서 굉장히 쉽게 쓰여있으니까요. 사서 읽어보시고 주변에 선물도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여자는 남자와 얼마나 다를까, 다이어트에서 내 몸을 지켜 줘, 사랑은 언제나 낭만적일까, 누가 왜 무슨 일을 해야 할까, 우리 가족은 팀워크가 필요해, 혐오의 말은 그만 모두가 나답게, 같은 목차 제목만 봐도 아실 거예요.

 

 

생선이 추천하는 책

 

『워터멜론 슈가에서』
리처드 브라우티건 저 | 비채

 

제가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게 중학교 3학년 때부터였어요. 당시에 어머니한테 학원을 다닌다고 하고 학원비를 받아서 등록은 안 하고 제가 좋아하는 음반들을 샀어요. 학원 가는 시간에는 집에 없어야 하잖아요. 세 시간 정도 시간이 있었는데요. 갈 곳이 없는 거죠. 오락실도 다녀봤지만 이미 음반을 사서 돈도 없고요. 친구도 다 학원 가니까 친구네 집도 못 가고요. 그때 갔던 곳이 시립도서관이었어요. 그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요. 처음에는 무협지 같은 흥미 위주의 책을 찾아봤었어요. 그러다가 『상실의 시대』를 읽게 됐죠. 고등학교 1학년 때였는데 그때 무라카미 하루키에 빠지면서 책을 본격적으로 읽게 됐어요. 제게 글을 쓰는 동기를 부여한 작가가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에요. 엄청 좋아해서 필사도 하고 나름대로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작가, 리처드 브라우티건도 알게 된 거죠. 하루키 소설을 보면 리처드 브라우티건이라는 이름이 간혹 등장하거든요. 잭 케루악도 그렇고, 앨런 긴즈버그도 그렇고, 스티븐 킹도 그렇게 등장하는데요. 워낙 하루키를 좋아했기 때문에 거기 등장하는 음악을 다 찾아서 듣고 거기 나오는 작가들을 다 읽은 거예요. 그때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워터멜론 슈가에서』도 알게 됐습니다. 만약 하루키 보다 리처드 브라우티건을 먼저 알았다면 지금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 같아요. 문체도 많이 바뀌었을 것 같고, 생각하는 방식도 많이 달라졌을 것 같고요. 하루키의 작품 필사를 워낙 많이 했거든요.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작품 중 제일 유명한 책은 『미국의 송어낚시』 예요. 『호밀밭의 파수꾼』 과 더불어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책인데요. 이 소설의 주인공 ‘쇼티’라는 이름을 달에서 가져온 운석에 붙였을 정도라고 하니까요. 굉장히 상징적인 작품이죠. 목가적인 작품이고요. 생태적인 이야기이기도 해요. 은유적인 표현이 많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한편 제가 소개할 책 『워터멜론 슈가에서』 는 어떻게 보면 잔혹동화예요. 일주일에 일곱 가지 태양이 뜬다는 식의 내용도 있고요. 작가가 약물에 취했던 경험을 통해서 자신이 느낀 것을 쓰기도 했죠. 이 작품에는 가상 공간이 많이 나오거든요. 예를 들어 문을 열고 나가면 다른 곳이 나오는 식인데요. 그런 장면 전환 같은 걸 하루키가 리처드 브라우티건에게서 가져왔더라고요. 하루키의 온전한 상상력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서 만약 이 작가를 먼저 알았더라면 지금과 다른 식의 글을 쓰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에세이보다는 소설을 쓰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래서 가끔 아쉬워요.

 

리처드 브라우티건은 너무 부러워하고 동경하는 작가입니다. 절판도 자주 되고, 출판사도 자주 바뀌어서요. 저는 보이는 족족 이 작가의 책을 사는 편이고요. 책 선물은 『워터멜론 슈가에서』 를 제일 많이 한 것 같아요.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에는 여행할 때도 『미국의 송어낚시』 와 『워터멜론 슈가에서』 를 꼭 가지고 다녔습니다. 정말 글이 안 써지고 막힐 때는 펼쳐서 읽었죠.

 

『워터멜론 슈가에서』 는 그냥 ‘워터멜론 슈가’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이에요.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시는, 특히 그의 초기 작품을 좋아하시는 팬들이라면 읽으면 좋아하실 거예요. 리처드 브라우티건이 엄청나게 많이 원고 거절을 당했다고 해요. 그의 후견인이 되어준 사람이 제가 또 너무 좋아하는 커트 보니것이라는 작가예요. 심지어 『미국의 송어낚시』 가 처음에는 실용서 코너에 꽂혀있을 정도였는데요. 지금은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이 책의 전 세계 버전이 다 있습니다. 저는 영문판 초판을 소장하고 있어요. 이 외에도 국내에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 『임신중절』  등과 같은 작품이 번역되어 있으니까요. 관심 있으신 분들은 꼭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캘리가 추천하는 책

 

『조용한 삶의 정물화』
문광훈 저 | 에피파니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책', 제가 가져온 책은 문광훈 교수님의 에세이 『조용한 삶의 정물화』 입니다. 믿으실지 모르겠는데요. 제가 진짜 막중한 사명감을 가지고 '책책책'에서 정말로 좋은 책을 소개하고 있거든요. 2주 내내 무슨 책을 소개할까 고민하면서 책읽기를 해요. 심지어 지난 2주 동안은 '책책책' 소개 후보 도서를 세 권이나 읽었고, 거듭 마음을 바꿨어요. 고심 끝에, 이 책으로 결정을 했습니다.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책이라기보다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저자 쪽에 가까운, 책 소개입니다. 

 

문광훈 교수님은 2016년 말에 처음 알게 됐어요. 『가장의 근심』 이라는 책을 통해서였는데요. 왜 이전까지는 몰랐을까 싶을 정도로 만족을 주는 독서였어요. 그런데 너무 안 읽히고 있는 것 같아서, 많은 분들이 잘 모르시고 있는 것 같아서 매우 아쉬워하고 있는 저자입니다. 이번 기회에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편안하게 읽히는 글은 아니에요. 매우 집중해서 읽어야 하고, 잠깐만 다른 생각을 해도 다시 앞 문장으로 돌아가야 하는 책인데요. 그만큼 한 문장, 한 문장 밀도가 굉장히 높은 글이고요. 그래서 이 저자의 책은 다 읽어 내려고 하지 말고, 사유 하나를 건져낸다고 생각하고 읽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감을 가져가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주 언어의 부족함을 느끼거든요. 표현하고는 싶은데 잘 안 되거나 도대체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 명쾌하게 판단되지 않기도 하고요. 문광훈 교수님의 글은 거기에 드물게 답을 주는, 그러니까 희미한 것들에 정확히 이름을 붙여주는 글입니다. 가령, 이런 겁니다. 제가 요즘 미친듯이 책을 읽고 있거든요. 거의 해치우듯 하고 있어요. 읽는 속도가 빠르지도 않은데 3일에 2권 정도는 읽으니까요. 저로서는 굉장히 많이 읽는 거거든요. 책 읽는 걸 보통은 좋은 거라고 하고, 그래서 저도 이런 상태에 그럭저럭 만족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문득 이게 현실도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이런 문장을 만나면서 그랬던 겁니다.

 

"어쩌면 사람은 그대로인 채로 세월만 하염없이 오고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올해에는 이 땅에서의 일상이 좀더 깊어졌으면, 그래서 각자 어떤 일을 하고 무엇을 생각하더라도 나날의 틀만큼은 크게 요동치지 않았으면 좋겠다."(85쪽)
 
일상이 늘 요동쳐요. 뉴스나 사회문제에 굉장히 크게 영향을 받거든요. 사실 프랑소와 엄님은 저의 평정심을 높게 봐주시지만 겉으로만 그럴 뿐 내심 그렇지만은 않죠.(웃음) 그런데 제가 책을 읽는 행위가 방금 읽은 문장처럼 "나날의 틀만큼은 크게 요동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비롯했다는 깨달음이 온 거예요. 그러면서, 아, 이 정도면 건강하게 일상을 지켜내고 있구나, 그리고 요즘 내가 나의 일상을 지켜내려고 엄청나게 애를 쓰고 있구나, 생각했어요.

 

『조용한 삶의 정물화』 는 일상과, 품위라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귀한 글들이 많아요. 특히 '조용한 삶의 정물화'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조용한 삶"을 "특별한 선물"이라고 말하면서 "삶의 나날을, 마치 하루 종일 햇볕에 마른 빨랫감을 갤 때처럼, 상큼한 냄새와 뽀송뽀송한 촉감 속에서 감지"하자고 해요. 이 깊은 일상, "일상이면서도 일상을 넘어"선 일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음악이나 영화, 미술과 같은 예술 작품들을 읽어낸 좋은 글도 많고요. 지적인 만족도가 아주 큰 책이니까요. 저는 이 책을 책 읽기를 정말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하고 싶어요. 주변에 책 읽기를 즐기거나 좋아하는 분이 계시다면 선물해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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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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