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채로운 팝 아트 앨범들
여러 시도가 혼재하는 창작의 한복판에서 균형을 잘 잡아냄으로써 이 멋진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다.
글ㆍ사진 이즘
2018.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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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월한 멜로디가 고르지 못한 틀에 갇혀 만개할 수 없어서 아쉽다.

 

 

갈란티스 - < The Aviary >

 

스펙트럼 댄스 뮤직 페스티벌과 유엠에프(Ultra Music Festival) 코리아를 통해 두 번의 내한 전적이 있는 갈란티스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Toxic'을 공동으로 작곡한 크리스찬 칼슨과 아이코나 팝의 'I love it'을 만든 라이너스 에클로로 구성된 스웬덴 출신의 프로듀서 듀오다.

 

전작 < Pharmacy >만 해도 이들의 음악은 데이비드 게타 스타일의 신스 운용과 주요 멜로디가 나온 후 바로 등장하는 클라이맥스(소위 드롭) 그리고 이 결정적인 구간을 반주와 비트로 채우는 초기 EDM 형식이었다. 유일하게 따르지 않는 패턴은 전자 음악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신시사이저를 최소화하고 기타, 베이스, 피아노, 리듬을 담당하는 드럼까지 진짜 악기 소리를 재현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갈란티스의 확실한 차별점이다.

 

1970~80년대처럼 직접 연주하지는 않지만 'Love on me', 'Salvage(Up all night)'에 등장하는 퍼커션과 건반, 실로폰 소리를 내는 마림바, 스틸 드럼 사운드는 하우스의 모태인 디스코, 펑크(Funk)의 영향이며, 음반 전체에 깔린 아프로 팝의 분위기는 이들의 지향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클린 밴딧과 'Rather be'로 이름을 알린 제스 글린이 부르는 듯한 'Tell me you love me'나 'Girls on boys' 같은 가스펠, 소울 트랙은 대중음악의 뿌리를 따른다.

 

'No money'에서는 집약적이긴 하지만 짧은 구간에 각 절과 후렴구가 모두 담겨있고, 'True feeling'은 드롭에 배치한 반복적인 가사 덕분에 '훅송'만큼 따라 부르기 쉽다. 이런 방식으로 EDM이 아닌 팝으로서의 정체성을 띄는 영민한 선택을 했다. 남성 가수 레이블(Wrabel)이 부른 'Written in the scars'의 도입부는 블루 아이드 소울을 연출하며 영역 확장의 의지도 드러낸다.

 

EDM의 형태를 갖추면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팝을 만들다 보니 매끄럽게 흘러가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Girls on boys'처럼 클라이맥스를 위해, 혹은 노랫말이 있는 구간만을 위해 만드는 곡은 절과 절 사이에 위치한 브레이크가 어색하다. 'Written in the scars'는 부족한 베이스라인을 메우기 위해 퓨처베이스의 강하고 속도감 있는 비트를 솔 장르의 곡에 삽입해 온전히 감상하기 힘들다. 탁월한 멜로디가 고르지 못한 틀에 갇혀 만개할 수 없어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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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체로도 여느 아트 팝 앨범과 비교해 모자람이 없는 데다 창작자 개인의 성과까지 확보해 의미까지 덧댔다. 출중한 작품이다.

 


로스탐(Rostam) - < Half-Light >

 

밴드원으로 활동했던 뱀파이어 위켄드 시절보다 훨씬 화려하다. 차분하게 앨범의 시작을 알리다가도 로킹한 사운드와 함께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기도 하며, 큼지막한 음향 공간 속에 서 고독하게 서있다가도 화려한 사운드 콜라주 속으로 파고들어 여러 소리와 함께 러닝 타임을 헤집기도 한다. 앨범 안에 혼자 서있는 아티스트는 자유롭다. 'Gwan'과 'Thatch snow'에서의 정갈한 챔버 팝에서부터 'Bike dream'에서의 경쾌한 업템포 신스팝, 'Rudy'의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스카와 'When', 'Wood' 위를 수놓는 월드뮤직, 'Hold you (feat. Angel Deradoorian)'의 알앤비, 'Half-light (feat. Kelly Zutrau)'의 앰비언트 팝, 갖은 스타일을 한데 엮어 만든 'Don't let it get to you'의 총천연색 아트 팝까지. 로스탐 바트망글리는 다양한 색채와 터치로 음반의 이곳저곳을 꾸민다. 감상을 낯설게 하는, 음반 전반에 깔린 뿌옇고 거친 사운드 톤 또한 창작의 너른 반경을 마음대로 쏘다니는 움직임을 반영한 장치일 테다. 그렇기에 < Half-Light >에는 로스탐 바트망글리가 지닌 아트 팝의 순도 높은 현재가 담겨있다.

 

다채로운 편곡이 역시나 먼저 이목을 잡아끈다. 뱀파이어 위켄드를 2000년대 뉴욕 아트팝의 아이콘으로 만든 사운드 스타일링에서의 재능은 이번 앨범에서도 빛을 발한다. 존 케일과 펭귄 카페 오케스트라를 이어받는 깔끔한 실내악 스트링, 흥겨우면서도 약간은 복잡하게 리듬을 끌고가는 아프로 비트, 음악에 다양성을 더하는 월드뮤직 인자, 사운드스케이프를 아득하게 채우는 앰비언트 음향 등, 각양의 요소들이 교차해가며 < Half-Light >를 더 없이 풍성하게 만든다. 앨범 초입에서부터 아티스트의 터치는 과감하다. 층위 높은 보컬 레이어링 사이를 뚫고 절정의 단계에서 터져나오는 하프시코드의 'Sumer', 댄서블한 비트, 왜곡된 키보드 음과 미니멀한 현악기 라인이 묘한 조화를 이루는 'Biker dream', 브라이언 이노풍 데저트 기타 솔로잉과 피아노 독주로 < Another Green World > 식의 앰비언트 팝과 접촉면을 크게 형성하는 'Half-light (feat. Kelly Zutrau)'만으로도 앨범은 여러 스타일을 충분하게 보유한다. 음악의 국적 경계를 흐릿하게 하는 'Wood', 다각화된 퍼커션 파트 구성이 돋보이는 'When', 스카를 활용한 'Rudy'에서의 월드뮤직 사운드는 물론, 'EOS'의 앰비언트 드론과 'Warning intruders'의 미니멀한 일렉트로니카와 같은 구성 또한 로스탐 바트망글리의 대담한 사운드 메이킹을 배태한다.

 

특기해야 할 점은, < Half-Light >가 이런 독특한 접근들에만 매몰돼있지 않다는 데 있다. 실험적인 양식을 작품에 잔뜩 끌어옴과 동시에 로스탐 바트망글리는 잊지 않고 좋은 멜로디들을 여럿 작품에 새겨놓는다. 로 파이의 사운드 톤에서부터 이따금씩 등장하는 노이즈까지, 낯설게 하기를 위한 장치들이 앨범 곳곳에 포진돼있음에도 < Half-Light >는 더 없이 잘 들린다. 앨범은 결코 실험에만 제 존재 본위를 두고 있지 않다. < Half-Light >의 바탕에는 사운드에서의 여러 시도보다도 송라이팅에서의 팝적인 감각이 더욱 두텁게 깔려있다. 간편하게 접근해볼까. 뿌연 사운드 필터와 스트링, 신디사이저, 조금은 휘청이며 흔들리는 보컬 등의 갖은 편곡 장치를 대강 흘려보내고 나면 곡의 민낯에는 상당한 접근성과 다분한 직관성을 지닌 멜로디들이 남는다. 캐치하게 훅을 구성한 'Bike dream'과 'Don't let it get to you', 팝 선율의 전형을 담고 있는 'Half-light (feat. Kelly Zutrau)', 'I will see you again', 트렌디한 R&B 컬러를 지닌 'Hold you (feat. Angel Deradoorian)', 'Warning intruders'와 같은 트랙들이 특히 로스탐 바트망글리의 음악에서 멜로디가 얼마나 많은 영역을 차지하는지를 보여준다.

 

작품의 강점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 Half-Light >는 기술적으로, 장르적으로 훌륭하게 완성된 아트 팝 앨범이다. 그리고 < Half-Light >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팝 앨범이기도 하다. 로스탐 바트망글리는 자신의 사운드를 특별하게 만들, 많은 요소를 능숙하게 고안해냈으며 음악에 흡인력을 보장하는 팝 선율을 풍부하게 마련해냈다.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인 트랙 리스트 곳곳 그 어디에도 위화감이나 이질감은 드러나지 않는다. 러닝 타임 위, 적재적소에 산물들을 배치하는 단계에서도 아티스트는 뛰어난 모습을 보인 셈이다. 편안한 멜로디와 스케일 큰 챔버 팝 사운드가 공존하는 'Sumer'와 'Gwan', 과격한 사운드 연출과 활기찬 선율이 뒤섞인 'Bike Dream'과 'Don't let it get to you', 차분한 곡조 위로 편곡과 전개에 아트 록의 성분이 짙게 들어선 'Half-light (feat. Kelly Zutrau)', R&B 튠 위로 다변화된 텍스처 구성이 내려앉은 'Hold you (feat. Angel Deradoorian)'를 포함, 앨범 내의 많은 결과물이 위와 같은 작품의 장점을 아낌없이 내보인다. 이러한 맥락에서 < Half-Light >는 수작의 격조를, 로스탐 바트망글리는 다시 한 번 재능 넘치는 음악가의 지위를 획득한다. 실로 근사한 아트 팝 앨범임에 분명하다.

 

아티스트가 사랑하고 자랑하는 온갖 음악 성분들이 들어있으나 앨범은 좀처럼 부담스럽지 않다. 여러 시도가 혼재하는 창작의 한복판에서 균형을 잘 잡아냄으로써 이 멋진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다. 로스탐 바트망글리의 아트 팝이라는 유기성과 다채로운 사운드에서 오는 다양성이 함께 < Half-Light >에 존재한다. 혼자서는 처음 발매하는 첫 프로젝트를 통해 아티스트는 자신이 해온 모든 것,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모든 것을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그것도 대단한 결과물과 더불어. 그 자체로도 여느 아트 팝 앨범과 비교해 모자람이 없는 데다 창작자 개인의 성과까지 확보해 의미까지 덧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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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렉트로닉과 얼터너티브, 힙합에 경도된 밀레니얼 세대에겐 새 경험을 선사할 밴드의 야심작이다. 과연 로커는 영원히 젊다.

 


김창훈과 블랙스톤즈 - < 김창완 >

 

전작 < 황무지 >는 솔로 가수 아닌 밴드 김창훈의 복귀 선언이었다. 자신이 만들고 대중이 사랑한 산울림과 김완선의 명곡, 그의 솔로 곡 등을 재해석한 앨범은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고른 찬사를 받았다. 녹슬지 않은 에너지와 기량을 증명했으니 본격적인 1집 제작에 불이 붙은 것은 당연한 수순. 그렇다고는 해도 이렇게 빨리, 연거푸 풀 렝스 앨범을 발표하리라곤 예상치 못했다. 심기일전 후 밴드로 돌아온 거장의 의욕은 확실히 남다르다.

 

새 앨범의 제목은 퍽 파격적이다. 김창훈과 블랙스톤즈는 첫 오리지널 앨범의 간판으로 '김창완'을 걸었다. 김창완은 김창훈의 친형이자 '전설' 산울림의 대들보, 나아가 우리 대중음악의 아이콘 아닌가. 김창훈 평생의 음악 동료이자 그가 다시 음악에 몰두하는데 결정적 동기가 된 형. 그 이름을 자신 있게 전면에 걸 만큼 앨범의 만듦새는 탄탄하다. '김창완', '묵묵부답', '첫사랑 광주야' 등 앨범 전반에 걸쳐 송 라이터 겸 프런트 맨 김창훈과 기타리스트 겸 프로듀서 유병열의 콤비 플레이가 빛을 발한다. 물론 곡마다 다른 임팩트를 부여하는 유병열을 비롯해 서민석(베이스), 최원혁(드럼)의 우수한 연주가 뒷받침했기에 가능한 결과다.

 

일찍이 김창훈은 블랙스톤즈와 함께 “비정형적 음악, 틀이 없는 음악을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공언한 대로, 음반에는 창의적이고 개성 강한 곡들이 가득하다. '해피드레스', '백일몽'에선 신시사이저를 활용해 춤추고 싶은 록을, '묵묵부답'에선 특유의 그로울링을 동원한 강성 록을 들려주고, '임진강'에서는 어쿠스틱 기타를 중심으로 감성적 포크록을 구사한다. '산할아버지'의 순수한 장난기가 남아있는 '김창완'에선 산울림의 흔적이, 여성 트리오 바버렛츠와 함께한 '러브신드롬'에선 복고의 향취가 진하게 나타난다. 서로 다른 성질의 노래들이 다채로운 '블랙스톤즈 스타일'이 되어 한자리에 모였다.

 

폭넓은 소재의 이야기는 음반의 특장점이다. 지친 이를 위로 하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와 '숨', 각각 설렘과 그리움을 그린 '러브신드롬'과 '백일몽', 짝사랑을 옷장 속의 옷에 빗댄 '해피드레스'는 모두 세대를 초월해 보편적 공감대를 형성할 만한 노래다. “이어폰 좀 그만 듣고” 내 말을 들어보라며 소통의 부재를 말하는 '묵묵부답', 제목을 모르고 들으면 흡사 실연 후의 처절함을 표현한 듯 들리는 '금연'도 재미있다. 그중에서도 형 김창완을 두고 “누군지 모르겠는 괴짜 같은 사람”이라 묘사하는 '김창완'은 동생 김창훈이기에 쓸 수 있는 앨범의 백미다.

 

음악과 메시지 양면에서 반드시 주목해야 할 곡은 단연 '첫사랑 광주야'다. 블랙스톤즈 결성 후 공연차 광주에 내려가는 길에 만들었다는 노래는 광주 민주화 운동의 상흔을 어루만진다. 명료하고 반복적인 노랫말은 주제 의식을 분명히 하고, 국악과 록의 어울림은 소리의 역동성을 부각한다. 마치 진혼곡처럼 들리는 노래에는 전남도립대학교 음악 전공 학생들과 교수들이 전통 북 연주로 참여했고, 각각 부산과 대구를 근거지로 활동 중인 밴드 '바크하우스'의 정홍일과 '아프리카'의 윤성이 힘을 보태 화합의 의미를 더했다. 이처럼 대곡 지향의 감각적 프로듀싱과 꿈틀대는 멜로디 호소력, 역사적 울림을 한 손에 거머쥐는 밴드는 결코 흔치 않다.

 

김창훈과 블랙스톤즈에겐 신인의 신선함과 베테랑의 무게감이 공존한다. 이들에겐 과거에 매몰되지 않고 감수성을 업데이트하는 부지런함, 시류의 유행과 관계없이 정통 노선을 추구하는 묵직함이 있다. 팀을 이끄는 김창훈과 유병열의 환상 호흡이 거둔 결실임이 틀림없다. < 김창완 >은 록의 황금기를 경험한 기성세대에겐 반가움을, 일렉트로닉과 얼터너티브, 힙합에 경도된 밀레니얼 세대에겐 새 경험을 선사할 밴드의 야심작이다. 과연 로커는 영원히 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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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란티스 #로스탐 #김창훈과 블랙스톤즈 #팝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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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