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함께할 1년을 위하여
나는 이 책이 일종의 영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1년 52주에 맞춰 일주일에 하나씩 소개할 맥주, 증류주, 사이다, 와인을 비롯한 52가지 술 중에서 몇 개 정도는 입맛에 맞는 단골 메뉴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18.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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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실로 많은 것에서 편안함을 추구한다. 인간관계와 직장생활에서의 정신적인 평안은 물론이고, 가구, 자동차, 비행기 좌석 선택에서도 편안함을 찾는다. 편안함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편하고 익숙한 것만 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익숙함은 우리를 포근하게 감싸주는 담요 같은 고마운 존재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것을 거부하는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익숙함을 추구하는 행위를 비난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것은 모두가 지닌 습성이다.

 

익숙함에서 벗어나 새롭게 도전하라는 말은 다들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어봤을 것이다. 교수님, 부모님, 파트너, 직장 상사, 그것도 모자라 그 상사의 사무실 벽에 걸린 짜증날 만큼 진부한 내용의 문구까지.

 

동기부여 문구가 쓰인 포스터를 보면 어쩔 수 없이 거부감이 들지만, 가끔 익숙함을 벗어나게 하는 소소한 자극은 개인의 성장과 건강하고 만족스런 삶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익숙함에서 벗어나 삶에 자극을 주겠다고 발목에 고무끈을 묶고 높은 다리 위에서 번지점프를 하거나 8천 피트(약 2.4킬로미터) 상공에서 맨몸으로 뛰어내릴 필요는 없다. 물론 번지점프나 스카이다이빙은 그 자체로 대단하지만, 대부분의 일반인은 자유 낙하가 아닌 다른 것에서도 모험의 기회를 찾을 수 있다.

 

사실 모험의 기회는 일상의 작은 선택 속에 더 많이 존재한다. 우리가 보는 영화, 읽는 책, 목적지까지 가는 경로, 먹는 음식, 그리고 마시는 술. 그 모든 것이 모험의 기회다.

 

이미 눈치 챈 이들이 많겠지만, 앞으로의 내용은 마지막에 예로 든 우리가 마시는 술에서 모험을 즐기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별 관심 없는 내용이라면? 아쉽지만 우리의 인연이 여기까지라고 생각하고 책을 내려놓는 수밖에.

 

솔직히 처음 보는 술로 가득한 바나 주류 판매점에 들어서면 위압감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 지금 이 세상에는 인류의 알코올 섭취 역사상 가장 다양한 종류의 술이 존재하며, 그중 하나를 고르는 것은 그야말로 엄두가 안 나는 일이다. 나 개인적으로는20 세기의 위대한 철학자라 믿고 있는 디보Devo(1970년대 미국의 록밴드-옮긴이)가 선택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freedom of choice(선택의 자유)’라는 곡에서 역설적으로 노래했듯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선택의 자유가 아니라 선택으로부터의 자유일 수도 있다.

 

최근 바에 갔을 때의 기억을 떠올려보자. 바에 들어가 의자에 앉는다. 바텐더 뒤에는 형형색색의 술병이 끝없이 줄지어 있다. 바 한쪽 구석에는 맥주 탭 손잡이가 줄지어 늘어서 있다. 뭘 마셔야 할지 모르겠다. 어서 선택을 해야 한다. 그때 누군가 다가와 뭘 시킬 건지 묻는다. 마음이 급해진다. 결국 소심하게 늘 마시던 보드카 토닉을 달라고 한다. 이런 경험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물론 익숙한 술을 시키는 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인간에게는 모두 익숙함을 추구하는 습성이 있으며, 좋아하는 술이 있다면 앞으로도 쭉 좋아하면 된다. 그러나 그 술을 왜 좋아하는지, 그 이유를 한번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 잘 생각해보자. 다음 세 가지 중 어떤 경우인가? 1) 세상 모든 술을 다 마셔봤는데 그 술이 제일 맛있어서, 2) 술이란 어차피 알코올을 내 몸에 전달하는 매개일 뿐이므로 종류는 상관없어서, 3) 그냥 부담 없고 익숙한 술이어서.

 

만약 1번이라 답했다면 거짓일 가능성이 99.99퍼센트다. 세상 모든 술을 다 마셔봤다면 간이 남아나지 않아 진즉에 세상을 하직했을 테고, 그랬다면 이 글을 읽고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답이 2번인 이들도 이 책을 집어들 부류가 아니다. 무슨 술을 어떻게 마시든 상관없는 사람이라면 굳이 음주생활에서 작은 모험을 즐기자는 책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결론적으로 대부분의 답은 3번일 것이다.

 

사실 내가 자신 있게 단정할 수 있는 건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나 자신이 그런 부류였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2번 부류도 해당했었다는 점을 인정해야겠다.

 

내가 사회적 관습에 따라 대충 익숙한 술을 시키던 모습에서 벗어나게 된 건 음료와 주류를 다루는 잡지사에서 편집 담당으로 일하기 시작한 2003년 초 무렵이었다. 대학 시절에는 무조건 제일 싼 맥주만 마셨다. 바에서는 무조건 한 피처에 2달러짜리 맥주를 주문했고, 술을 사러 가도 늘 24캔 한 상자에 8.99달러 하는 싸구려 맥주를 집어들었다. 맥주는 맛을 기대하고 마시는 술이 아니었다. 적어도 법정 음주가능 연령을 넘긴 첫1 0년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대학 시절 즐겨 마시던 술이 또 하나 있기는 하다. 봄방학 때 영국으로 떠난 여행에서 처음 마셔본 ‘하드 사이다hard cider(사과즙에 효모를 첨가하여 발효한 술-옮긴이)’였다. 영국 여행 이후 하드 사이다는 내 몇 안 되는 레퍼토리에 추가되었다. 하드 사이다의 단맛은 신세계였고, 그저 달수록 더 맛있게 느껴졌다. 어차피 1990년대 미국에서 구할 수 있는 하드 사이다라고 해봤자 진짜 사과를 쓴 건지 아닌지도 알 수 없는 달디 단 제품밖에 없었으니, 내가 단맛을 좋아했던 건 다행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1 5년 후 북미 지역에서 하드 사이다 열풍이 불며 점차 제대로 된 사이다가 나오기 시작했고, 내가 즐기던 달콤한 알코올 설탕물은 아이리시 펍이나 잉글리시 펍을 흉내낸 작은 바에서나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어느덧 세월이 흘러 그런 식의 펍도 찾아보기 힘들어지자 이제는 ‘어른스러운’ 바에서 주문할 만한 술을 새로 정해야 했다. 결정은? 진토닉밖에 더 있겠는가? 28주차 내용에서도 다루겠지만 물론 진은 훌륭한 술이다. 그러나 맨해튼에서 술 한번 마셔보겠다고 가진 돈 탈탈 털어 바에 간 스물다섯 살짜리 가난뱅이가 시킬 수 있는 술이 좋아봤자 얼마나 좋겠는가? 나는 당시 진토닉을 주문할 때마다 간절히 바랐다. 배터리 용액 맛의 싸구려 진이 토닉에 충분히 희석되어 목구멍으로 삼킬 수 있을 정도는 되기를. 하지만 알코올 전달자로서 최소한의 역할은 할 수 있도록 너무 묽지는 않기를(여기서 또 나타나는 어쩔 수 없는2 번 부류의 습성!).

 

그러다 잡지사에서 일하며 탐험하게 된 술의 세계는 정말이지 신세계였다. 이전에는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술의 종류, 스타일, 브랜드에 대해 알지 못했고, 솔직히 말하면 크게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술 세계는 탐험 시작 6개월 만에 내 호기심을 자극했고, 1년 만에 사랑에 빠지게 했으며, 2년 후에는 모든 열정을 불사르게 만들었다.

 

나는 이 책이 일종의 영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1년 52주에 맞춰 일주일에 하나씩 소개할 맥주, 증류주, 사이다, 와인을 비롯한 52가지 술 중에서 몇 개 정도는 입맛에 맞는 단골 메뉴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을 일종의 ‘음주 다양성 선언’으로 봐주었으면 좋겠다. 일설에 따르면 음주인의 3분의 2가량은 한 가지 선호 주종 외에 맥주, 와인, 증류주, 사케, 사이다 등 다른 술도 조금씩 즐기는 ‘크로스 음주자cross-drinker’라고 한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이 맥주 외에는 거의 입도 안 대는 골수 크래프트 맥주Craft Beer(개인이나 소규모 양조장이 자체 개발한 제조법에 따라 만든 맥주. 일명 ‘수제 맥주’-옮긴이) 마니아라면? 이번 기회에 사케를 한번 마셔보는 건 어떨까? 레스토랑에서 늘 화이트 와인을 시키는 와인 애호가라면? 베를리너 바이세(45주에 소개됨)를 시도해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이미 웬만한 술은 다 마셔봤다 자부하는 전문 술꾼이라면? 건배를 외치며 독한 중국 백주를 원샷할 시간이다. 바에 가면 늘 보드카 토닉만 시키던 사람이라면? 한번쯤 과감하게 바텐더에게 “괜찮은 술로 골라주세요”라고 말해보는 것이다.


미리 경고하건대 이 책에 소개하는 모든 술이 다 마음에 들지는 않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일부는 구역질이 날 수도 있다. 비율로 따지자면 80퍼센트가량은 새로운 맛과 풍미를 탐구하기 위하여 소개한 게 맞다. 그럼 나머지 20퍼센트가량은? 우리의 술 세계 여정을 더욱 흥미롭게 해주기 위해 소개했다고 치고 넘어가자.

 

인류가 발효와 증류를 시작한 이래 지금만큼 술 세계 탐험을 시작하기에 적절한 시기는 없었다. 지금 우리는 종류를 막론하고 모든 주종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경험하고 있으며, 전 세계 애주가들은 ‘수제’와 ‘정성’의 가치에 다시 주목하고 있다. 실제 많은 이들이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술에 등을 돌리고 정직하고 다양한 풍미를 내는 수제 맥주로, 오크통에서 미국 대통령의 평균 임기보다 긴 기간 숙성하는 증류주로 옮겨가고 있다.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이 움직임은 우리로 하여금 술의 역사, 전통, 그리고 그 뒤에 담긴 이야기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1년에 걸쳐 이어질 우리의 여정은 1월 첫째 주에 시작하여 12월 마지막 주에 마무리 되도록 느슨하게 구성했다. 일부 장은 해당 계절이나 기념일에 맞는 주제를 선택했다. 예를 들어 성 패트릭 축일St. Patrick’s Day이 들어 있는 3월 중순에는 아이리시 위스키를 소개하는 식이다. 별로 유명하지는 않지만 술 종류별로 특별한 기념일이 있는 경우에도 소개했다. 세상에 ‘전국 밀주의 날National Moonshine Day’이라는 게 있다니, 믿어지는가? 어쨌든 계절과 시기에 맞춰 소개한 술들도 많지만, 기본적으로는 언제든 본인이 마시고 싶을 때 마시면 된다.

 

다만 1년치를 몰아 마시지 말고 일주일에 한 가지씩 천천히 즐겼으면 한다. 책에 소개한 술 중에는 꽤 독한 것도 많으므로 마시는 양도 적당히 조절하는 것이 좋다. 새로운 술이 아닌 쉽고 빠르게 취하는 법 52가지를 찾고 있다면, 당장 책을 덮고 나가 술잔치 동아리를 탈퇴하거나 알코올 중독 치료 프로그램에 등록하기를 바란다.

 

여기 소개한 술 중 상당수는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음미할수록 그 진가를 알 수 있는 것들이다. 52주간의 여정 마지막에는 책에 소개한 술들을 이용한 칵테일 레시피도 소개되어 있으니 꼭 마지막까지 읽어주기 바란다. 그럼 이제부터 52주간의 음주 대모험을 시작해보자. 모두의 행운을 빈다.


 

 

애주가의 대모험제프 시올레티 저/정인성 감수/정영은 역 | 더숲
자신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술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그 뒤에 담긴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내며 새로운 정보와 색다른 읽을거리의 즐거움을 한껏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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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